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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지인의 산장에 방문했다가 투명한 벽 안에 갇히게 된다.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고 오갈 수도 없는 산중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냥개 '룩스'와 암소 '벨라'를 벗 삼아 자연에서 생존하며 봄에는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겨울을 위한 장작을 준비하고, 가을에 감자와 콩을 수확하고 갓 짠 우유로 치즈를 만들고...문명세계에서 벗어나 산 속에서 혼자 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라다. 고난을 극복하며 가까스로 살아가는 중에도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인간으로서의 삶'이다. - 동물이 될까봐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동물이 될 수 없다. 인간은 동물 이하로 전락한다. 벽, p58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글을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동물-사람의 관계성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람이 없는 공간이니만큼 동물과 함께 생활하며 쌓이는 유대감이 돋보이는데, 이 점이 처절한 생존일지를 좀 더 평화롭고 전원적으로 만드는 요소 같다. 주인공을 고독 속에서 버티게 만드는 힘도 자신이 책임져야 할 동물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 것이다. - 내가 살아 있는 한 너는 나의 발자국을 따라오겠지. 허기와 그리움에 가득 차서. 나 역시 허기와 그리움에 가득 차서 보이지 않는 너의 발자국을 좇겠지. 우리 둘이 다시 만날 수는 없겠지만. 벽, p162 원래 소설이나 영화에서 사람이 죽는 것보다 동물이 죽는 것에 더 마음을 쏟는 편이다. 하물며 서로 의지하고 애정을 나누던 동물을 잃게 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책을 읽으며 나에게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던 동물들이었기 때문에 상실도 컸다. 주인공은 이별의 상실을 새로운 만남으로 극복하며 계속 동물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벽>>에서 그는 문득 찾아오는 고독 속에서 지난 생을 고찰하고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여자 그리고 엄마에서 벗어나 '갈색 나무 그루터기'와 같은 모습이 되어간다. -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근심들은 두 눈에 숨긴 채로. 우리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무언가를 사랑하는 능력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다. 벽, p.97 삶을 성찰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소설을 읽으며 많은 감상이 들게 했던 부분이다. 책을 다 읽어갈수록 소설이 끝나는 게 아쉬워서 책장을 덮곤 했다. 그만큼 마음에 쏙 드는 책이었고 책을 덮은 후에는 좋은 책을 만났다는 기쁨에 사로잡혔다. <<벽>>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