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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의 종합예술 세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랑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랑에 빠질 때는 설렘과 기쁨으로 시작하지만 공허한 짝사랑이 되기도 하며, 질투와 분노,상처 등으로 오염되어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오쇼의‘섹스란 무엇인가’는 이런 감정이 왜 생기는지 성과 사랑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근원 에너지는 생존과 번식을 위한 식욕, 수면욕, 성욕으로 발현된다. 인간의 에너지는 하나이고 방향을 갖고 흐른다. 식욕과 수면욕은 금지나 억압이 없어 동물의 본성대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하지만 성욕은 종교와 문화의 억압으로 오히려 에너지가 성욕에 집중되고 성에 대한 탐익과 왜곡된 성으로 변형된다. 성욕이 온전한 사랑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이다. 막힌 출구는 오히려 인간성이 파괴된 문명을 폭발적으로 창조하게 된다.
종교는 성욕을 죄악으로 만들고 원죄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주어 종교의 권위를 공고하게 다졌다. 그리고 성을 억압하여 사람들에게 행복을 빼앗았다. 억압된 성은 온전한 사랑의 방향으로 가기 어렵다. 아마도 사랑을 뜻하는 ‘Love’가 산스크리트어의 탐욕인 ‘Lobha’에서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랑은 성욕으로부터 출발한다. 성욕은 욕망이다. 그래서 성욕이 사랑이 되려면 욕망이 녹아내리는 신비한 연금술이 필요하다. 욕망은 쌓는 것이고 사랑은 나누어 주는 것이다. 사랑은 조건 없는 나눔이다. 내면의 연금술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탐욕은 사랑이 되지 않는다. 성욕은 사다리 맨 아래 칸에 있고 꼭대기 칸에는 사랑이 존재한다. 사다리마저 넘으면 자신을 초과하는 힘이 있다. 나는 그 힘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성에너지는 생명의 근원이고 사랑의 발원지이다. 하지만 성이 억압된 사회에서는 성에너지가 사랑으로 바뀌지 못하고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간혹 소수의 사람들만이 연금술에 성공하여 온전한 사랑을 하고 세상을 밝은 빛으로 채운다. 남녀의 끌림은 번식을 위한 욕망이다. 또 다른 감춰진 이유는 남여의 몸과 마음이 합쳐져 전체성을 느끼는 오르가즘의 초월적 삼매를 맛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작용한 것이다. 이때 오르가즘은 시간이 사라지고 내가 사라지는 삼매의 경지이다. 하지만 성을 통해 몸이 하나가 되기는 쉽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로 합일되기는 어렵다. 이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는 억압과 폭력이 없는 자연스러운 상태 또는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억압된 사회에 존재하며 깨어난 의식은 커녕 성과 사랑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그래서 온갖 감정의 불협화음이 변주되는 것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질투, 분노, 증오 등의 감정을 수반하고 사랑을 위해 날아오를 때는 배려, 나눔, 희생, 기도, 연민 등이 나타난다.
한사람을 사랑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성의 억압과 통제로 마음대로 사랑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자유는 파괴되었다. 사랑으로 날아오르려면 사랑과 자유의 양 날개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복잡한 인간들 속에서 제한된 선택을 하고 하나의 날개로 하늘을 날려고 애쓴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의 날개만을 가지고 있으며, 또 다른 사람들은 자유의 날개만을 달고 있다. 하나의 날개로 하늘을 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신비한 연금술로 사랑와 자유의 날개를 달아 연민과 자비로, 예술로, 창조로 날아오른다. 사랑으로 날아오르면서 경험한 오르가즘의 삼매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것이 명상이다. 삼매가 되는 오르가즘 또는 명상을 격으면 더 이상 성에너지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성에너지를 초월하면 자비와 연민이 생기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질퍽한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을 향해 날아 오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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