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아이들이 방학하면 엄마들은 개학이라고 했던가? 나름 각자 스케줄에 맞게 스스로 생활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끔... 핸드폰에 온 몸이 빠져 들어갈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 오죽하면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할까? 정말이지 잔소리할 게 없는데, 그놈의 핸드폰 때문에 사이가 나빠질 것 같다고.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우리 어릴 때엔 밤늦게까지 놀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현실에. 자유롭지 못한 아이들이 그나마 빠질 수 있는 것이 핸드폰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 만약 이오덕 선생님이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아파하셨을까?
이오덕 선생님의 유고 시집은 983쪽 341편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35편을 골라 시집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작은 시집으로 발행된 이 책은 내 아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린이는 무엇일까요.
어린이는 꽃이라고 / 어른들은 말한다. / 정말 어린이는 꽃인가 꽃을 꺾어 병에 꽂는다. / 그러면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 꽃을 보고 웃는다. / 하지만 사흘도 못 가서 시들어 버리지. / 열매도 못 맺고 시들어 버리지. / 그러면 어른들은 쓰레기통에다 버리고 / 또 다른 꽃을 꺾어 온다. / 불쌍한 꽃들! 어린이는 열매라고 / 어른들은 말한다. / 정말 어린이는 열매인가 열매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 / 오랜 날을 기다려야 익는 것. / 그와 같이 온갖 어려움 참고 기다려야 / 사람이 된다고 한다. / 보기 좋고 먹음직한 열매같이 된단다. / 온갖 어려운 일 참고 이겨 낸 다음은 / 어른들에게 먹혀 버리는 열매. / 불쌍한 열매! 어린이는 나무라고 / 꿈나무라고 한다. / 정말 어린이는 꿈나무인가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는 것. / 하늘보고 주욱주욱 뻗어 오르는 것. / 정말로 어린이는 나무 같아야 / 나무같이 자라야 될 것 같구나. 그러나 그러나 어찌 될까? / 나무가 자라나면 어찌 될까? / 좋은 재목이 되겠구나 하고 어른들은 / 낫으로 도끼로 베어 버리지. 톱으로 도막내어 팔아 버리지. / 그래서 어린이는 나무라 하는 구나. / 나무야 꿈나무야 자라나라 하는구나. / 불쌍한 꿈나무들! 어린이는 꽃이 아니다. / 어린이는 열매가 아니다. / 어린이는 꿈나무가 아니다. 어린이는 어린이다. / 어린이를 죄 짓게 하는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는 / 하늘나라의 시민증을 가진 /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이다. (59~62)
우린 혹 아이들의 다양한 꿈을, 기운을, 느낌을 잘 되라는 이유로 꺾으려 하지 않았던가? 꽃, 열매, 나무. 그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무서운 짓을 했었구나. 있는 그대로의 내 아이로 봐주지 않았구나.. 싶어 반성하게 된다. 네가 살아갈, 네가 만들어갈 인생인데 우린 너무 심하게 간섭했구나 싶다. 이오덕 선생님의 말씀처럼 ‘너희들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그 자체를 인정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방학.. 더 나은 내 아이를 만들겠다고 잔소리 하지 말고... ^^
|
|
교회당 뾰족탑 하늘을 찔러 가장 높이 솟은 우리 마을 제일교회 예배당 뾰족탑 하느님, 조심하세요. 제발 여기는 내려오지 마세요. 2013년 8월 16일(금) 문학의 집 서울에서 이오덕 선생님 10주기를 추모하는 행사를 했다. 최근에 출간된 『이오덕 일기』(양철북, 2013년)를 편집한 이송희 선생은 43년 동아 쓴 방대한 분량의 일기를 읽으면서 새삼 시인의 모습을 재발견했다고 한다. 교육자, 문학비평가, 한글운동가 등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시인의 모습을 새롭게 많이 봤다고 한다. 노래 만드는 백창우 선생님은 무대에 올라 이송희 선생의 말을 받아 『일하는 아이들』(보리, 2002년)이나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친 어린이들 시집, 그리고 직접 쓴 시를 통해 시인의 모습을 이미 많이 봐 왔다고 말했다. 세월이 좋았으면 우리는 이오덕 선생님에게서 더 많은 시인의 면모를 보았을 것이다. 위에 인용한 시편 같은 작품을 더 많이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울음 그 울음소리는 갈 곳을 잃었다. 수많은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갈 수가 없었다. 꽃밭도 회전그네도 국기게양대도 교과서도 모두가 즐겁게 하하하 웃고 있었으니까. 그 울음은 눈물로 땅에 떨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 울음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검은 새가 되었다. 눈물에 적은 돌멩이가 함께 울어주고 구름이 포근한 팔을 펴고 안아 주었지만 학교는 입을 벌리고 웃고 있었다. 꽃밭도 교실도 교과서도 네모반듯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선생님의 시는 위 시와 같이 어린이에 집중되어 있다. 방에서 책을 읽다가 비가 오면 “우비도 없이 학교에 온 아이 / 점심밥도 굶은 아이”(「비」)를 걱정하고, “이제 겨우 2학년짜리들이 / 살아갈 걱정”(「참회」)을 하는 글을 보며 한밤에 무릎을 꿇어앉는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서 “조국의 목소리”(「떠드는 이유 2」)를 듣는가 하면, 아이들만 보면 “웃음이 나온다. / 너희들 앞에만 서면 / 웃음이 나온다.”(「너희들만 보면」)고 고백한다. “모두 모두 방 안에 갇혀 있”(「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해야 한다.”(「아이들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를 떠난 이오덕 시인을 생각할 수 없다. 선생님 시 35편이 실린 추모 시집을 읽으면서 341편이 실린 유고 시집 『이 지구에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얼마나 아름다운 지구가 될까?』(고인돌, 2011년)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너무 두꺼워 주저하고 있었는데 피할 수 없겠다. 그리고 10주기 추모 시집이 이오덕 선생님 개인의 시선집이 아니라 이오덕 선생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한 편 한 편 시를 써 그야말로 추모 시집을 만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