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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을 읽다가 저자가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란 시 한 연을 인용한 것을 발견했다. 문득 그 시를 생각해보았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핑계삼아 그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을 읽는다. 김광섭 시인의 대표시는 아마 <성북동 비둘기>일 것이다. 그 시가 대표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학교 다닐 때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그 시가 실려 있었던 것 같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 (중략)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이 시를 배우면서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산업화시기 무분별한 개발에 비둘기마저 집을 잃고 쫓겨나는데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하는 의미로 배운 것 같기도 하다. 동네에 비둘기가 많다.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이 나무 저 나무, 그리고 마당 곳곳에 비둘기들이 앉아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천적은 길고양이다. 시집을 읽은 것은 이 시를 읽기 위해서가 아니었지만, 김광섭 시인하면 의례 이 시가 떠올랐기에, 주위에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된 비둘기가 많이 있기에 시집 속에 들어있는 이 시를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저녁에 전문 -
서울에 살 때는 몰랐는데 밤하늘에 별이 너무도 많다. 특히 달빛마저 숨어버린 그믐 즈음에 밤하늘을 쳐다보면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느낌이다. 수 억년 전 저 별을 떠난 빛이 오늘에서야 내 눈에 들어왔음을 느끼는 순간 인연이란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더욱이 저 많은 별 중 어느 별에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 가슴은 환희에 찬다. 그는 아마 어디선가 저 별을 바라보고 있을 ‘너’가 투영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 별을 보고 있는 ‘나’는 이 순간을 어디선가 역시 저 별을 보고 있을 ‘너’와의 만남으로 생각한다. 그 만남을 저 별은 알고 있을 것이다. 헌데, 저 별이 기억을 하는지 모르겠다. 시인은 저 너머 보이지 않는 별이 또 있다고 하는 걸 보니.. 여기 촛불을 켜고 있음은/누구를 기다림인가//시간을 잊어버린 뒤에/별들이 나타난다//조고만 샛길을 걸어/사람들은 지나간다//너를 보고 가는 사람들을/별들아 다 너는 기억하느냐//아침엔 자라는 잎사귀 같이/짙은 봄 생각을 하건만//저녁 빛은 멀어지며/향수 가까이 젖는다//저 너머 보이지 않는/별이 또 있는가//아마 내가 빠지는 건/빛 이르지 못하는 거긴갑다// (보이지 않는 별 전문) 밤이 깊어 간다. 다시 하늘을 쳐다본다. 이 어두운 밤, 쏟아지는 별빛을 보면서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별을 찾아본다. 그리고 방금 읽고 나온 시를 나직하게 읊어본다.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