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꽃'-
김춘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꽃이 떠오른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은 가을... 가을을 더욱 설레게 하는 예쁜 시집이다. 얼마전에 읽고 좋았던 이중섭과 그의 부인에 대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
|
부다페스트에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을 떠올렸다. 돌아와서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의 문제를 풀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꽃' 외에 도대체 내가 김춘수 시인의 작품을 읽은 게 무엇인지 송구한 마음에 이 시집을 샀다. 적어도 작가의 시집을 한 권이라도 봐야 학생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딱 시만 담겨 있다. 다른 시집들처럼 해설, 서평 이런 게 없다. 다른 이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말고 오로지 내 힘으로 읽고 파악하고 젖어 들어야 한다. 쉽지 않은 시 세계다. 몇 편은 본 적 있기는 했다. 본 적이 있었을 뿐, 내가 따로 적어 봤다거나 인용해 본 적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에 담긴 상징 체계가 내가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내 취향인 시 구절도 그리 흔하지 않은 편이었다. 누구나 알만하다고 여기는 작가의 대표작 '꽃'도 사실은 존재론적 시각에서는 아주 어려운 시라고 하는데, 이 정도의 의미 파악을 할 수 있는 시는 몇 편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내 수준에서는 섭섭할 수밖에.
시 밖에서 의외의 정보를 얻는다. 시인이 통영 출신이라는 것, 마산중학교와 경남대학교에서도 근무를 했다는 것, 유치환만큼이나 경남의 시인 대표라고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쉽지 않은 시편 사이에 '가을 저녁의 시'를 건진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덕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