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가을의 기도>의 앞에는 다음과 같은 '시인의 말'이 있다. 제 3시집 <견고한 고독> 이후 쓰여진 시편들 가운데서 40편을 골라 이 시집을 엮었다. 제1부에는 내 시 생애의 최후의 추구가 될지도 모르는 고독을 주제로 한 시편들을, 제2부에는 경험을 거쳐 차츰 생명에 대하여 반성하고 깨달아져 가는 것들을. 그리고 제3부에는 수시로 쓰여졌던 것을 묶어 놓았다. 수시로 쓰여진 것들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에도 나의 고독의 자세가 어떻든 스며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고독 속에 파묻히는 것은 감상이나 위축이 아니다. 고독을 추구하는 것은 허무의식과도 그 색채가 다르다. 고독을 표현하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예술의 활동이며 윤리적 차원에서는 참되고 굳세고자 함이 된다. 고독 속에서 나의 참된 본질을 알게 되고, 나를 거쳐 인간일반을 알게 되고, 그럼으로써 나의 대 사회적 임무까지도 깨달아 알게 되므로. 김현승 시인을 일러 고독의 시인이라고 한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 스스로 밝힌 바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말'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이 추구하는 바가 고독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나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책을 덮게 한 최후의 지혜여, 인간은 고독하다!
우리들의 꿈과 사랑과 모든 광채 있는 것들의 열량을 흡수하여 버리는 최후의 언어여, 인간은 고독하다!
슬픔을 지나, 공포를 넘어, 내 마음의 출렁이는 파도 깊이 가라앉은 아지 못할 깨어진 중량의 침묵이여, 인간은 고독하다!
이상이란 무엇이며 실존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의 현대화란 또 무엇인가, 인간은 고독하다! - '인간은 고독하다' 1~4연 (60쪽) 김현승이 깨달은 최후의 지혜이자 언어, 곧 깨달음은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이 깨달음에 따라 고독을 추구한다. 다음 시처럼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 '가을의 기도' 전문 (13쪽) 김현승이 추구하는 고독은 기도하고, 사랑하고, 혼자 있는 것이다. 김현승의 대표작 중의 한 편인 이 시는 '~하소서'라며 기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자기 다짐이나 결의, 혹은 맹세로 봐도 좋을 듯하다. 여기에서 김현승이 취하는 고독은 고립과는 다르다. 오히려 '오직 한 사람'으로 표현된 사랑의 대상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이기도 하고, 삶에 대한 겸허함과 시간을 비옥하게, 곧 알차게 쓰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추구하는 고독한 자신을 '까마귀'에 비유하고 있는데, 시인은 시 '겨울 까마귀'(62~63쪽) 1연에서 '까마귀'를 "영혼의 새."로 표현하고 있으며, 시 '산까마귀 울음소리'(31쪽)에서는 "저녁 하늘이 다 타버려도 / 내 사랑 하나 남김없이 / 너에게 고하지 못한 / 내 뼛속의 언어로 너는 울고 간다."고 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까마귀'는 실제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영혼을 상징하는 상징물로 봐야 한다. 시집 <가을의 기도>에는 인용한 시 외에도 고독을 노래한 작품이 상당히 많다. '견고한 고독', '절대 고독', '고독의 순금'처럼 제목에서 '고독'을 드러낸 시는 물론, 작품 속 시어로 고독이 쓰인 시도 많다. 그러나, 이 시인의 작품이 모두 고독을 노래하고 있지는 않다. '가을의 기도'외에도 유명한 작품으로 '플라타너스'(16쪽), '눈물'이 있는데, 이 작품들은 고독을 주제로 하고 있지는 않다. '고독'이라는 주제와 더불어 김현승 시에서 엿보이는 것은 기독교적 가치관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은 어린 아들의 죽음을 모티프로 한 시 '눈물'일 것이다.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주시다. - '눈물' 전문 (26쪽)
위의 시들이 유명하긴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다음 시를 더 좋아한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바깥은 요란해도 아버지는 어린것들에게는 울타리가 된다. 양심을 지키라고 낮은 음성으로 가르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 가장 화려한 사람들은 그 화려함으로 외로움을 배우게 된다. - '아버지의 마음' 전문 (22~23쪽)
김현승을 고독의 시인이라고 하지만, 김현승의 고독은 허무의식이나 고립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고결한 정신의 경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다음 시처럼, 빈 들의 맑은 머리와 단식의 깨끗한 속으로
가을이 외롭지 않게 차를 마신다.
마른 잎과 같은 형에게서 우러나는
아무도 모를 높은 향기를 두고두고 나만이 호올로 마신다. - '다형' 전문 (79쪽) 이 시 제목 '다'은 김현승의 호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를 / 높은 향기를' 지니고 사는 삶의 자세, 곧 혼탁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깨끗함을 지니고 사는 삶, 이게 김현승이 추구한 고독의 일면은 아닐까. 시집 <가을의 기도>는 고독을 추구하는 순결한 영혼이 빚어낸 시들이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순결한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
|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이다. 고독 속에 홀로 있는 까마귀가 생각나면서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며 청명한 하늘을 보며 기도하듯 읊조리가 된다고나 할까? 가을에 사색하고 싶은 분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시집.
|
|
가을이면 맨먼저 떠오르는 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지인에게 부담없는 선물로 주고자 구매. 책값이 너무 오른 가운데 단비같은 보물시집 소장하기도 좋고 선물용으로도 좋은 가성비 최고의 시인생각 시집시리즈 중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
|
개인적으로 시는, 글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내게 있어, 화가이기도 하고, 요즘 말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이들과도 같다.
사람의 언어란 참 무궁무진해서, 그 표현되는 방법과 사용되는 단어들이 어떻게 배치되고 어떻게 읽히느냐에 따라서 다양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럼 점에서 김현승 시인님의 가을의 기도는 봄에 읽어도, 독자의 마음에 가을을 그린다. 그리고 가을과 같은 감성에 젖어, 가을을 생각하고, 가을을 살게 만든다.
시란 참 신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