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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정완용 시조 선집 - 청산아 너는 왜 말이 없이
"[리뷰] 정완용 시조 선집 - 청산아 너는 왜 말이 없이" 내용보기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리뷰] 정완용 시조 선집 - 청산아 너는 왜 말이 없이" 내용보기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피맺힌 열두 줄은 굽이굽이 애정인데

  청산아, 왜 말이 없이 학처럼만 여위느냐.  - '조국' 전문(13쪽)

 

  <청산아 너는 왜 말이 없이>, 이 시조집을 읽기 전에 알고 있던 정완영의 시조는 이 작품 한 편뿐이었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다. 그때는 문학적 감흥이고 뭐고 없이 시험 공부용으로 접했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다곤 할 수 없지만, 그 시절 학교 수업을 통해 배운 문학작품은 시험문제와 연관되어 이해해야만 했다. 당연히 문학적 감흥은 뒷전이 되었고.

  이 시조집의 표제가 된(3수 종장 1, 2음보) '조국'은 정완영의 대표작이다.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데, 창작시기는 많이 거슬러올라가 1948년 해방공간이라고 한다. 일제의 질곡에서 해방된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좌우로 분열되어 혼란이 극에 다다랐던 시기에 조국을 염려하고 안타까워하는 시인의 마음이 가얏고의 비유를 통해 잘 표현된 작품이다. '조국'은 전체 5부로 구성된 이 시조집의 1부 첫 작품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시조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정완영 시조시인은 현대시조문학사에서 이병기, 이은상, 김상옥, 이호우, 이영도를 잇는 1960년대의 대표시조 시인이라고 한다.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에 시조 '해바라기' 당선,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골목길 담모롱이' 입선, <현대문학>에 시조 '애모' 추천, 1961년 <현대문학>에 시조 '어제 오늘' 추천, 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조국' 당선, <현대문학>에 시조 '강'으로 추천완료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1979)과 한국시조시인협회장(1992)도 역임했다. 

  1969년 첫 시조집 <채춘보>를 시작으로 2011년 <세월이 무엇입니까>까지 16권의 시조집을 출판했으며, 한국문학상, 가람문학상, 중일일보시조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청산아 너는 왜 말이 없이>에 실린 작품들은 신작은 없고 모두 기 출간된 시조집에 수록됐던 작품들이다. 말하자면 정완영 시조시인의 주요 작품을 엄선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느 시인이나 그러하겠지만, 한 시인의 작품의 경향을 한가지로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은 시인의 관심의 방향이 한 가지가 아닌 때문일 수도 있고, 또 인생을 살아가면서 시인이 어떤 의미로든 변모하는 때문일 수도 있다. 정완영 시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시인의 경우에는 전자의 이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고 후자의 이유와는 완전 무관하다는 뜻은 아니다.).

  정완영 시인의 시조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경향은 대상에 대한 정서적 밀착이다. 그 밀착의 대상은 조국이나 고향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육친(어머니, 아버지)이기도 하다. 조국, 고향, 육친은 시인의 근본이라고 볼  수 있다. 조국, 고향, 육친이 있었기에 시인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이렇게 보면 시인은 자신의 근본에 대한 사랑을 시조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계열의 대표작이 앞에 인용한 '조국'이다.

 

  내 손녀 연정이가 느닷없이 나를 보고

  산 좋고 물 좋은 마을에 할아버지 가서 살란다

  그래야 휴가철이면 찾아갈 집 저도 있단다.

 

  그렇구나, 그리운 네 꿈도 산 너머에 살고 있구나

  들 찔레 새순 오르듯 하얀 구름 오르는 날

  뻐꾸기 우는 마을에 나도 가서 살고 싶단다. - '내 손녀 연정에게' 전문(84쪽)

 

  2005년에 펴낸 제13시조집 <내 손녀 연정에게>에 수록되었던 작품이다. 손녀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제목이 '손녀에게'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손녀의 이야기가 주가 된 1연보다, 자신의 마음을 손녀에게 이야기하는 2연이 이 시조의 핵심이라고 봐야 한다. '뻐꾸기 우는 마을'로 표현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능청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마치 손녀때문에 고향에 가고 싶다는 듯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은 이외에도 많이 있다. 그리고 문학적 성과만 따지자면 이 작품이 아닌 다른 고향 노래를 인용해야 할 것이다.

 

  분단장 모른 꽃이, 몸단장도 모른 꽃이,

  한여름 내도록을 뙤약볕에 타던 꽃이,

  이 세상 젤 큰 열매 물려주고 갔습니다. - '호박꽃 바라보며' 전문 (73쪽)

 

  '어머니 생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조이다. 어머니의 이타적 헌신을 호박꽃에 비유하여 표현한 수작이다. 내용이 독특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호박꽃의 비유는 참신하다.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노래한 시는 많아도 어머니를 호박꽃, 흔히 못생긴 꽃으로 비유하는 호박꽃의 이미지로 어머니를 노래한 시인이 이전에 있었던가? 나는 알지 못한다.

 

  정완영 시조에는 또 자연을 소재로 취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 작품들은 동양적 관조의 세계를 노래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노스님 북채를 잡고 먼 구름을 두드린다

  산 가득 앉는 어스름, 떠오르는 연꽃노을

  두리둥 두리둥 두리둥 만산에 우레가 떨어진다. - '북소리' 전문(79쪽)

 

  날아온 우편물들 낙엽처럼 흩어지고

  허름한 옷가지들 구름처럼 깔려 있고

  이따금 전화벨 소리가 산과처럼 떨어진다. - '구름 산방' 전문 (87쪽)

 

  두 작품 모두 ,14시조집 <구름 산방>(2010)에 수록되어 있는데, 자연을 원관념으로 한 '북소리'나 자연을 보조관념으로 한 '구름 산방' 모두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세월도 낙동강 따라

  7백리 길 흘러와서

 

  마지막 바다 가까운

  하구에선 지쳤던가

 

  을숙도 갈대밭 베고

  질펀하게 누어 있데.

 

  그래서 목로주점엔

  대낮에도 등을 달고

 

  흔들리는 흰 술 한 잔을

  낙일 앞에 받아 놓면

 

  갈매기 울음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데.

 

  백발이 갈대밭처럼

  서걱이는 노사공도

 

  강물만 강이 아니라

  하루해도 강이라며

 

  김해 벌 막막히 저무는

  또 하나의 강을 보데. - '을숙도' 전문 (56~57쪽)

 

   이 작품은 자연에 빗대 인생을 노래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인 을숙도는 '마지막 바다 가까운' 곳, 무대장치는 목로주점, 갈대밭 등이고 등장인물은 '노사공'뿐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강물만 강이 아니라 / 하루해도 강이라"는 노사공의 말이다. 강물은 '7백 리 길을 흘러와서' 지친 듯 보인다. 그런데 시인은 '강물'을 '세월'로 바꿔 놓았다. 그럼 지친 것은 강물이면서 사람이 된다. 이런 바꿔치기는 "백발이 갈대밭처럼 서걱이는"에도 있다. 서걱이는 건 갈대인데 백발이 그런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시조에서 자연은 인생의 등가물이다. 그렇다면 강물만 강이 아니고 하루해도 강이고, 인생도 강이다. 모든 게 강이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일 게다. 이 시조는 동양적 관조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군으로 묶어도 무방할 것 같다.

 

  다음의 시조는 작품의 경향을 떠나 '가랑가랑'이라는 순우리말 음성상징어를 사용하여 표현의 묘미를 살린, 단순한 듯하면서도 빼어난 작품인 것 같다.

 

  텃밭에 가랑비가 가랑가랑 내립니다

  빗속에 가랑파가 가랑가랑 자랍니다

  가랑파 가꾸는 울 엄마 손 가랑가랑 젖습니다.  - 가랑비' 전문 (72쪽)

 

  이 시조에서 '가랑가랑'의 뜻은 중요하지 않은 듯도 하다. 가랑비가 내리는 소리는 왠지 '가랑가랑'이 맞을 것 같다. 뻐꾹이가 뻐꾹뻐꾹 울고 귀뚜라미가 귀둘귀뚤 운다면 가랑비는 가랑가랑,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가랑비를 맞으며 자라는 파는 가랑파, 엄마손은 가랑손...

 

  이호우, 이영도의 시조집 읽기에서 생긴 현대시조에 대한 관심이 정완영의 시조집 읽기까지 왔다. 그동안 쓴 작품들에서 엄선한 것인 탓도 있겠지만, 이 시조집에서 만난 작품들은 한 작품 한 작품이 저마다의 감동과 여운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왜 정완영이 초기 현대시조작가의 맥을 잇는 1960년대의 대표시조시인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시조집이다.

t*******1 2021.10.05. 신고 공감 6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