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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논어; http://blog.yes24.com/document/7541918>를 읽었습니다. 그때 저자이신 심경호교수님께서 “우리는 왜 『논어』를 읽는가?”라는 질문에 “나를 세우고 남을 열어 주며 세상을 밝힌다”라고 답하신 것을 보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남습니다. 동양고전은 해석하시는 분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논어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윤홍식선생님의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저자는 지금의 시대를 한 마디로 평가해서 ‘양심이 땅에 떨어진 시대’라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물질문명을 추구하게 되면서, 양심과 도덕성을 근간으로 하는 정신문명에 대한 관심이 엷어진 탓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그 처방으로는 인간이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양심의 계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며, 이 시점에서 우리가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기원전 551년 노(魯)나라 창평항 추읍에서 태어난 공자의 이름은 구(丘)인데, 공자의 조상은 은나라 황실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나는 본래 은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셨다는데, 은나라는 고조선과 모두 같은 조상을 둔 동이족의 나라라고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구이에 살고자 하셨다는데, 후한시대 학자 허신(30-124)은 『설문해자(說文解字 』 이렇게 적었다고 했습니다. “東夷從大 大人也 夷俗仁 仁者壽 有君子不死之國 故公子曰導不行 吾欲之君子不死之國九夷 乘桴 浮于海 有以也[‘동이’는 ‘大(대)’자를 따랐으니 ‘大’는 ‘사람’을 뜻한다. 동이의 풍속은 인자하다. 인자한 사람은 오래 사는 법이니, ‘군자들이 죽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중국에서)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군자가 죽지 않는 나라인 구이에 가고 싶다.’라 하시고,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려고 하셨으니 참으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15쪽)] 공자께서 추구하신 인(仁)은 고조선의 핵심 사상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고 합니다.
현재 중국학계는 요하 지역에 위치한 홍산문화(紅山文化)를 중국문화의 원형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하는데, 기원전 4,7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홍산문화의 주체는 동이족이라는 것입니다. 동이족이 꽃피운 홍산문화의 한 갈래가 요순을 거쳐 은나라로 이어지며 중국으로 퍼졌다는 것입니다. 공자께서는 我學不厭 而敎不倦也[나는 다만 진리를 배움에 싫증내지 않고, 진리를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을 뿐이다. 『맹자』「공손추(상)」]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고생해서 얻은 진리를 남과 공유할수록 가치가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즉 서로 얻어낸 정보를 나누는 사회야말로 공자가 꿈꾸는 이상사회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정보화사회의 롤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양심계발과 관련하여 저자는 사랑(仁), 정의(義), 예절(禮), 지혜(智), 성실(信)을 양심계발의 다섯 가지 덕목으로 꼽고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맹자는 양심의 덕목으로 1. 남에 대한 공감능력[측은지심(惻隱之心), 2. 부당한 일을 보면 혐오하며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정의감(수오지심(羞惡之心), 3. 나를 낮추어 남과 조화를 이루는 겸손함(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4. 옳고 그름을 구별할줄 아는 판단능력(시비지심(是非之心)]을 꼽고 있습니다. 공자께서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웠고, 30세에 학문이 확립되었으며, 40세이는 학문에 의혹이 없게 되었고, 50세에는 하늘의 명령을 알게 되었으며, 60세에는 하늘에 명령을 잘 듣고 따르게 되었고, 70세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양심발달의 단계를 이르는 것으로 40세까지 양심이 깊어져가는 학문의 발달단계이며, 50세부터는 양심의 근원이라고 할 천명과 통하는 단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양심의 다섯 가지 덕목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더하고 있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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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다 어려운 말을 쓴다 싶으면 문자 쓴다며 놀리며 공자왈 맹자왈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평소 그런 식으로 좀 학식 있는 말을 한다 싶으면 공자와 맹자를 떠올릴 정도로, 공자, 맹자하면 지성인으로 인식을 함과 동시에 그들이 쓴 논어나 맹자 등의 고서들은 어려운 책으로만 여길 따름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궁금하기는 했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어떤 책이길래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 말이다. 하지만 서른이 넘도록 공자든 맹자든 그들과 관련 된 책은 전혀 읽지 않았다.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은데 어려운 책으로 인식되어 있는 책이다 보니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얇은 두께감에 한결 마음을 놓고 논어에 관한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는 어려웠다. 분명 글자로 되어 있기는 한데 분명 눈으로 읽고 읽기는 한데, 머릿속으로 내용이 잘 들어오지를 않았다. 작은 사이즈의 적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끝까지 다 읽은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래도 고서에 관해 풀어 놓은 책이나 보니, 아무리 쉽게 풀어 쓰려고 해도 쉽게 풀어 쓰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인간, 양심, 도덕성, 물질문명, 정신문명, 이익, 세계 등 다소 심도 있는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추구, 근간, 창출, 매몰 등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로 표현되어 있다 보니, 한 줄을 읽고 이해하는데도 집중을 많이 해야 했다. 확실히 쉬운 책은 아니었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나의 부족한 학식과 이해력이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다 중간중간 어려움을 참지 못하고 책을 덮고 싶기도 했지만, 어렵게 읽기 시작한 책인데 이왕 읽은 거 끝까지 읽어보자 싶었다. 부끄럽게도 책<논어>가 공자에 대한 책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다른 어렵고 깊은 내용은 차차 알아가기로 하고 대체 공자의 뜻이 무엇일까를 가장 염두 해두고 책을 읽었다. 공자의 뜻은 다양한 말로 표현될 수 있지만, 이 책의 표지에 적힌 제목대로, 공자의 뜻은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 그대로였다. 하지만 책 표지에 그토록 분명히 공자의 뜻을 적어 놓았음에도 책을 읽으며 공자의 뜻을 헤아리려 하다 보니, 이 말도 저 말 같고, 저 말도 이 말 같고 도통 무슨 말인지 몰라 조금 읽다 다시 처음부터 읽기도 몇 차례였는지 모르겠다. 잘은 몰라도 계속 읽다 보면 머릿속에 남는 단어는 양심이었다.
평소 양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나마 조금 깊이 생각했던 때는 학창시절 도덕시간이었다. 생활 속에서 양심을 떠올릴 때는 길가다 쓰레기 버릴 곳을 못 찾을 때, 급하게 가야하는데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공자는 이 양심을 지키는 것이 군자가 되는 길이라 말하며, 사람들이 양심이 인도하는 대로만 따르면 세상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심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했고, 공자 자신도 평생 양심을 계발하고 알리기 위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그를 따랐고 말이다. 공자는 정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남들은 평생 살아도 모를 삶의 본질을 찾고, 그걸 설파하고 지키며 삶을 살아 갈 수 있었을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오며 자신의 이름과 저서와 뜻을 알리며 말이다.
공자가 말한 양심을 밝히는 것의 중요성이 눈에 가장 잘 들어왔을 때는 정치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그제야 그가 말한 양심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과 크게 동떨어진 학문에만 나오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과 직결된 일이라는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양심이란 것을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는 도덕이라는 관점에만 주로 적용하며, 아이들에게는 지키도록 가르치지만 어른들은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지키는 것이란 여겨왔구나 싶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로 건너고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는 기다렸다가 초록불일 때 건너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도덕이고 양심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어른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과는 다르게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을 비양심적인 행동이라 여기지 않는다. 마음속으로는 이러면 안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급하니까 어쩔 수 없고 어차피 차도 없으니까 라고 합리화 시키며 말이다.
공자의 가르침은 답을 알려주는 가르침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는 가르침이었다. 공자는 모든 것을 각자 자신의 양심에 묻고 양심을 따르라고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부모의 3년 상을 1년 상으로 하면 안 되냐고 묻는 제자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고, 제자에게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를 묻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제자가 간 후에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제자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한다거나 설득하려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다 보니 공자가 한 행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었기에 그의 행동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아이가 옳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아이에게 내 생각을 가르치려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까지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지켜만 보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는 양심적 리더라는 말을 보자마자 정말 그런 사람을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너무 꿈이 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종대왕과 같은 양심적 리더가 정치계에 등장한다면 정말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이미 어딘가에는 존재하지만 아직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이 환한 빛을 발하는 세상이야 말로 살기 좋은 세상일 텐데 말이다. 양심적 리더가 아직 등장을 못한 건지, 그런 사람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세상이 아직 안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직 하늘만이 알 일이니까. - 연필과 지우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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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흉흉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살인, 강도, 사기, 강간... 그중에서도 제일 화나는 건 자식과 부모, 혹은 부부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아무리 예방을 하고, 조치를 취해 봐도 범죄율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인류가 물질문명과 정신문명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 잡힌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심의 계발’이 필요하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는 ‘양심’이 아니면 지구촌 모두가 승복할 보편적 도덕률을 끌어낼 수 없다. (6-7쪽)
어쩌면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 《논어》가 아닐까. 『논어, 양심을 밝히는 길』에서는 공자의 생애와 그의 학문을 다룬다. 어렵게만 보이는 《논어》의 주요 사상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공자는 자신을 위대한 스승이나 학자로 여기지 않았다. 단지, 학문의 즐거움에 푹 빠져 산 학생이었다. 또 힘들게 얻어낸 진리를 남과 공유함에 있어서도 아끼지 않았다.
《논어》에서는 양심을 가장 온전하게 밝힌 존재를 ‘성인(聖人)’이라 했다. 공자는 이러한 성인이 되기 위해 양심을 닦아가는 존재를 ‘군자(君子)’라고 불렀다. 공자는 군자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덕목으로 사랑, 정의, 예절, 지혜 등을 들었다. 그중 ‘사랑’에 대한 내용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군자는 ‘사랑의 실천’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남에게 베풀라!’는 ‘사랑의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61쪽)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상대방에게 베푸는 것. 그 당연한 원리가 사랑의 기본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 원리는 가정에서도 통용되며, 사회에서도 통용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용되어야 할 원리인 것이다.
짧게나마 《논어》의 주요 구절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중요한 건 실천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신문을 보고 낙심하고 분노하기보다 먼저 나 스스로 군자의 삶을 살아가길 다짐해 본다.
이 사회에 군자들이 넘쳐날 때 그토록 우리가 갈망한 세상, 모두가 주인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는 ‘대동(大同)세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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