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2)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과거를 통해 오늘을 배운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배운다." 내용보기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A4 한 장이 안되는 글을 쓰는 게 쉽다는 얘기도 아니다. 오히려 지면의 제한이 있을 때에는 굉장한 압박을 느끼기 마련. 신문지면에 실리는 칼럼이나 사설 중에 인상 깊은 글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역사를 소재로 컬럼을 싣는다고 하면 자칫하다가는 견강부회로 치닫기 십상이
"과거를 통해 오늘을 배운다." 내용보기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A4 한 장이 안되는 글을 쓰는 게 쉽다는 얘기도 아니다. 오히려 지면의 제한이 있을 때에는 굉장한 압박을 느끼기 마련. 신문지면에 실리는 칼럼이나 사설 중에 인상 깊은 글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런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역사를 소재로 컬럼을 싣는다고 하면 자칫하다가는 견강부회로 치닫기 십상이다. 틀은 정해져있고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게다가 마감 기한까지 꼬박 꼬박 돌아오니, 이건 악조건 중의 악조건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 한 역사학자가 있다. 꼼꼼히 사료를 뒤져가며 독자들에게 친절히 보여주고, 그 속에서 현실에 들이댈 수 있는 날카로운 날을 찾아낸다. 게다가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신문 사설을 그대로 모아다가 낸 스크랩북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자신의 글을 고치고 또 살을 붙여 책으로 만들어냈다. 희망 따위는 없을 것 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겐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도 '오늘'이란 지리하고도 노곤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과거는 우리에게 교훈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위로도 해준다. 그것이 바로 역사. 하지만 우리를 속이는 것 또한 역사.

 

  유럽 각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19세기 중반부터 노예적 성격을 지닌 피압박계층이 신분 해방의 기쁨을 맞았다. 조선 후기 사회에 나타난 노비의 감소 추세는 그 시기 세계사를 지배한 하나의 흐름이었다. 나라마다 제각각 사정이 조금씩 달랐지만 인신 구속을 통한 전면적 지배는 사라지고, 그들을 상대로 한 노동력의 착취가 또 하나의 풍조를 이루게 됐다. '노비해방'이란 멋진 구호에 비해, 그들이 맞게된 새로운 삶의 정체는 초라하다 못해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의 국사 교과서에는 마치 해방된 노비들의 다수가 부자도 되고 양반도 된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다. 그들의 해방은 신분상승이 아니라, 빈한한 소작농 또는 임노동자로서의 평행이동이었다. (32쪽)

 

이 관점은 톨스토이가 '우리시대의 노예제'에서 피력했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데,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든 톨스토이의 관점이든 간에, 이것은 역사적 통찰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역사 지식을 위해서도, 역사적 통찰을 위해서도 좋은, 재미있는 책.

1******n 2013.09.2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용보기
이 책이 나온 것이 2013년이니 정권이 2MB에서 503호로 막 바뀐 그 때인 듯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레이저를 쏘고 “그 사람 아직도 관두지 않았느냐?”며 질책을 하던 시기. 기가 막혀 가슴을 치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누구나 몸을 사리던 그 때에 용감하게 이렇게 해야 할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도 말 보다 백 배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글로 말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용보기

이 책이 나온 것이 2013년이니 정권이 2MB에서 503호로 막 바뀐 그 때인 듯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레이저를 쏘고 “그 사람 아직도 관두지 않았느냐?”며 질책을 하던 시기. 기가 막혀 가슴을 치며 한숨을 내쉬면서도 누구나 몸을 사리던 그 때에 용감하게 이렇게 해야 할 말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것도 말 보다 백 배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글로 말이다. 역사를 인용하기는 했으나 내용은 정치 비판. 역사가들이 의당 해야 할 일이기는 하나 세태가 늘 그렇듯 함부로 하기 어렵고 그렇기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 일이다. 우리 역사학계에서 흔치 않은 경우.

내용을 보면 역사를 보는 저자의 시각이 우리 학계와는 사뭇 다르고 자유분방함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독일에서 공부한 까닭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석사 논문 하나를 쓰는 데에도 문장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고 써야 할 단어와 쓰지 말아야 할 단어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곳이 우리 학계라고 한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하는가?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는 공령(功令)이라는 특수한 문체를 써야 했고 대우와 압운 등 까다로운 형식에 맞춰 답안지를 작성해야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과거시험에 쓰는 독특한 공령체 글을 과문(科文), 과체문(科體文)이라 했다는데 정약용 같은 천재도 이것을 익히느라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그래, 배울 게 없어서 이런 걸 아직까지 써먹고 있다니 참. 그러니 우리 역사학이 아직도 식민사학 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이 모양 이 꼴이 아닐런지.

저자는 그런 형식적 규제를 받지 않았던가 보다. 자고로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야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하고 그래야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비록 칼럼으로 썼던 글이라 지면의 한계로 짤막한 글의 연속이지만 그것이 또 감칠맛이 나는 법.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의도적으로 일본식 어투를 멀리하려는 노력 또한 보기 좋다.

r****l 2019.05.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