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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진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전문>
내가 신동엽 시인을 알게 된 것은 <껍데기는 가라>는 시로 인해서였다. 그 시를 알게 된지가 벌써 수십년이 지났지만 그의 시집을 읽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물론 장편서사시 <금강>이나 시인의 다른 시 이를테면 <아사녀>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을 다른 책을 통해 읽어본 적은 있지만 말이다. 시인 서거 50주년을 맞아 시그림집으로 나온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읽고서 시인의 다른 시집도 읽어 보고 싶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시집이었다. 헌데 중복되는 시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다시 읽는 기분으로 끝까지 읽은 것은 잘은 모르지만 시라는 것은 읽는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시인 김형수는 어느 글에선가 김소월, 이육사가 3월에 속한다면 1970년대의 김지하나 1980년대의 김남주는 5월에 속하고 신동엽은 4월에 속한다고 했다. 신동엽을 사월에 속한다고 한 까닭은 아마 4.19혁명을 겪으면서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는 시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신동엽을 사월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 일게다. 신동엽 시인을 알게 된 것도 그렇지만 그의 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역시 <껍데기는 가라> 때문이기도 하다. <껍데기는 가라>를 처음 읽으면서 ‘동학년 곰나루’라는 글 때문에 장편서사시 <금강>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끝까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두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다시금 <금강>을 완독해보겠다고 마음먹지만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아사녀>라는 시 또한 ‘아사달 아사녀’라는 글 때문에 찾아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4월 19일, 그것은 우리들의 조상이 우랄 고원에서 풀을 뜯으며 양달진 동남아 하늘 고운 반도에 이주 오던 그날부터 삼한으로 백제로 고려로 흐르던 강물, 아름다운 치맛자락 매듭 고운 흰 허리들의 줄기가 3.1의 하늘로 솟았다가 또다시 오늘 우리들의 눈앞에 솟구쳐오른 아사달 아사녀의 몸부림, 빛나는 앙가슴과 물굽이의 찬란한 반항이었다’ <‘아사녀’ 6연>
시집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시 하나가 있다. <산문시 1>이 그것인데, 제목처럼 산문으로 된 시이지만 그 내용들이 머릿속에 머무른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 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대통령 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시인은 말로 들은 다른 동네의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국무총리가 매표구 앞에 줄서서 표를 끊고 그것을 본 역장은 그저 인사만 하고 자기 일을 보러간다. 대통령이 칫솔을 사기위해 딸아이와 함께 백화점에 오고, 또 시인을 만나러 막걸리 병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시대가 변해서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현직이 아닌 전직 국무총리나 대통령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50년도 더 전에 쓰여진 시이건만 지금의 우리에게도 당시 시인이 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시인의 시들이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인의 시들은 전반적으로 길다. 장편서사시 <금강>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미 <아사녀> 혹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의 시에서 시인의 시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장시를 대한다는 것이 조금은 어렵게 다가온다.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마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때는 지금과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금강>을 완독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