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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어쩜 이리 심통 맞을까 싶은 표정에 웃음이 난다. 글씨는 왜 저렇게 춤을 추는겨? ㅋㅋㅋ <이책은> 리뷰어클럽 [다]조 지정 도서.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빨강이 주는 느낌은 강렬함, 그리고 정열이 아닐까. 오늘 기사에 올 가을 빨강이 대세...열흘 전쯤 붉은립스틱을 하나 샀다. 여름내 분홍립스틱을 거의 고수했는데 내가 좀 앞서가나 싶은 마음이 드네 하하하. 대세라고 하니까 자꾸만 빨간 가방도 사고 싶고 빨간 트렌치 반코트, 빨간 가디건도 하나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드네. 읽은 책도 공교롭게 '더 빨강'. 갖다 맞추려니 젊은날에 몹쓸짓을 당할 뻔했던 아찔했던 순간에 강렬한 빨강가죽가방과 그보다는 약간 옅은 빨간단화를 신고 있었다는... 빨강색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위기에서 날 구해주기도 한 색이며 원숭이띠의 상승색은 빨강이라는 걸 들은 후론 참고한다. 허나, 더 빨강을 띄는 강한 음식 즉 매운 음식은 잘 못 먹는다. 매운 음식을 열 번 먹으면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설사를 한다.
표지를 보면서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심통맞은 저 표정이 전혀 밉살맞게 보이지 않음이 이상하다. 은근 까칠해 뵈는 저 표정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그가 불어제낀 저 풍선같은 크기의 실체는 뭘까? 책을 읽고나서 감히 말해본다. 그건 욕망, 즉 성욕이다. 참아보려고 해도, 신경을 딴 데 팔아도, 온갖 노력을 다해도 결국은 혼자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성욕은 물밀듯 밀려오나니...그런 상태가 되면 자위도 해보건만 세상에 맛난 음식을 먹거나 갖고픈 물건을 가졌을때의 느낌과는 또다른 그런 기분좋은 느낌은 없다. 또 허탈하기도 하다. 그건 외로움이다. 성은 길이요 이름은 동인 길동의 결론을 빌리자면 성욕은 외로움이다. 그럴까? 남자들의 세계를 잘 알 수 없으니 그렇다쳐야나!!!
한창기인 청소년기에 왕성한 식욕만큼이나 왕성한 성욕은 주체할 수 없는 벗이자 외면하고픈 친구런가. 케이트 윈슬럿을 타이타닉에서 본 것을 기점으로 더 리더의 여주가 그녀인 줄도 모른 체 풍만한 그녀를 탐하는 남주가 자신인양 느껴지는 길동. 그렇게 영화의 배우이름을 외우면서 성욕을 달래던 그가 야동을 알게 되면서 심취하고, 탐닉하다 수많은 파일로 저장하고 그것을 안보고는 하루를 지내지 못하는 상황. 허나, 성에 관하여 잘못 피력하면 무지 추하고 원초적인 되는데 여기선 청소년의 심리를 아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수줍은 남학생이 성에 눈 떠가는 그 과정들이 매우 사실적인 것 같고 대부분이 그런가 싶은게 어째 다 도매금으로 보이는데, 물어봐야지...아들에겐 차마 묻지 못하겠지만...
길동은 고등학생인데 앞날이 참 막막하다. 이삿짐을 날라주던 아버지는 사고로 7살 소년이 되었고, 철거보상금 중 일부로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책임지는 엄마. 조그만 텃밭에서 싱싱한 채소를 가꿔 먹이던 그 낭만은 너무나 행복한 한 때 였음이라. 10살이나 차이나는 형 길명은 인서울의 계획서 지방대로, 정규직서 비정규직이라도 오매불망 이력서를 넣었지만...현재 치킨집 배달맨겸 돕고 있었다. 십자드라이버 하나로 못고치는 게 없던 형은 길동의 우상이자 선망의 대상였는데 그런 형이 주식으로 사고를 크게 쳤다. 컴에 저장된 내역을 보건대 벌던 때도 있었지만 엄마 명의로 고스란히 남게 된 부채들. 형은 기여히 가출을 감행하고...
철거보상금도 다 날아간 판국에 철거반은 점점 반경을 좁혀오는데 갈 곳이 없는 우리집. 치킨집도 닫고서 술독에 빠진 엄마는 세상을 등진 듯 했다. 아버지도 안중에 없다보니 나는 작은형이라 부르는 아버지를 건사하면서 살림도 하고...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가 사라졌다.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불안감이 동시 교차하는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을 들킬까봐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그 새벽이 다가오는데 엄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길재덕 씨를 부축해 데리고 온 두 경관을 보면서 엄마와 나는 안심하면서도 절망감을 느낀다. 아버지는 큰형이라 부르는 큰아들을 찾으러 갔다는데 그 곳은 부모님이 처음 살았다는 동네...
아버지는 우리에게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일했지만, 성실하다고 해서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건 아니었다. 형에게는 폭력적이었고, 엄마에게는 신경질적인 잔소리꾼이었고, 나에게는 무관심했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 식구 중 누구도 그런 아버지를 좋은 가장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197 페이지
가장이라는 책임을 다하는 아버지에게 삶은 늘 팍팍하고 궁핍만 안겨주고, 때론 몸에 상처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게 큰아들에 대한 기대심리로 폭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 당한 큰아들은 아버지와 담을 쌓았는데 아버지는 7살 배기가 되어버렸다는 현실. 자신이 가장이 되어야 하는 삶을 탈피해 보고자 아버지만큼 성실했으나 역시 녹록치 않은 현실은 큰아들마저 좌절하게 한다. 생존본능이 시키는대로 현명해진 작은아들이 그나마 가족의 중심이 되어 희망이 되는 이야기. 참 순한 책을 만났다. 시선이 긍정적이고 울컥하는 가족애, 그리고 왕따인 친구들과의 진한 우정이 그려진다. 청소년책은 모름지기 이리 순하고 좀 동화되는 맛이 있는 이런 게 좋은데...
저마다 살아 온 환경이나 처해진 상황이 다르다. 경제력이 없다고 해서 다 불행한 가정도 아니요, 안정된 기반에 있다고 행복한 가정도 아니다.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서 가족안에서 소통의 부재로 힘겨운 아이들. 희우의 친구 오미령을 보고선 길동은 관심이 생겼다. 그녀가 운영한다는 카페에 불닭이란 닉네임으로 들어가는데 오미령이자 와사비, 마파두부,고추조아. 이들이 매운 맛을 즐기며 즐기게 된 사연은 매웁다. 그렇게라도 자신들을 추스리려 그들은 안간힘을 썼던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이나 청소년이나 행복하다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상대적 빈곤감을 더 많이 느끼도록 매체들이 앞다퉈 보도하는 바 대다수가 행복감에서 멀어지고 있다. 결국 행복감도 자신이 정하는 기준이 있을 때 만족감도 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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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먹을때나 국밥을 먹으러 갈때 어김없이 매운 고추를 잘게 썰어 쌈싸 먹거나, 잘게 자른 고추를 국물에 넣어 먹는다. 매콤한 것이 좋은 이유, 입맛이 깔끔해진다는 것, 입안을 톡 쏘는 그 맛이 자꾸 중독성이 있다는 것. 맵다고 혀를 내밀고 후후 거리면서도 매운 맛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텃밭에 고추를 심을때도 청양 고추를 20그루 가까이 심었다. 김장 김치도 매운 고추가루가 들어가야 깔끔한 맛과 톡 쏘는 맛이 나와 좋다.
우리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때 무의식적으로 매운 것을 찾는 것 같다. 매워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불닭을 시켜놓고,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다. 너무 매운 것 같으면서도 속이 뻥 뚫린 듯한 느낌 때문에 불닭과 생맥주는 피할 수 없는 맛이다.
갑자기 매운 맛이 땡기는 소설을 만났다. 사계절문학상 대상에 빛나는 김선희 작가의 『더 빨강』이다. 여기에서 빨강은 빨간 딱지 붙은 영화, 일명 19금 영화의 그 빨강이기도 하고, 음식에 들어가는 매운 맛을 나타내는 그 빨강이기도 하다. 한창 성적으로 불타오른 십대의 '길동'이란 이름을 가진 이, 취미가 야동 보는 것이어서 컴퓨터에, 휴대폰에 야동을 다운 받아 오로지 야동에 죽고, 야동에 사는 청소년이다. 그에게는 작업하다 사고로 머리를 다쳐 일곱 살의 지능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보살펴야 하고, 아버지의 사고로 치킨집을 하는 엄마의 가게에서 형과 교대해서 치킨 배달도 해야 한다.
밤마다 오로지 여자와 잘 상상(?)만 하는 그는 우연히 친구의 휴대폰에서 본 오미령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미령이 하는 '더 빨강' 이란 카페에 가입한다. 카페의 정모 공지가 떴을때 몇번 망설이다 나갔더니 그 카페는 '매운 맛을 즐기는 카페'였다. 그들의 정모도 매운 맛을 찾아 다함께 음식을 맛보는 정도였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길동은 미령 때문에 카페를 기웃거린다. 이들은 모두 나름의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이들로, 이들이 쓰는 이름도 와사비, 마파두부, 고추조아, 칠리인조이, 길동은 불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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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속의 주인공 동이를 보면서 올해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을 생각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서 제일 먼저 아이 방에다 챙겨준게 화장지였다. 모든 결과물이 성으로 끝난다는 그 시기에 혹시라도 바닥이나 어딘가에 흘리지 말라고 챙겨주었건만, 제대로 쓰는지 도무지 알아챌 수가 없다. 몽정은 해봤느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 자위는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해도 이 녀석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렇다고 화장지를 쓰는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집 엄마와 이야기하다보면 엄마가 알아챌만큼 한다던데 그 녀석은 꼼꼼 숨겨두고 있는가 모르겠다. 사실 많이 궁금한데. 늦터지면 더 곤란하다던데.
작가는 성욕을 외로움에 비유했다. 하고 싶으나 하지 못하는 것, 상상하나 상상대로 되지 않는 것. 혼자만의 갈망으로 외로원하는 소년들이 보였다. 또한 청소년들의 고민과 괴로움, 또는 절망 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 쓰리게 매운 것, 더 빨강으로 이겨내려는 그들만의 의지가 보였다.
아버지가 건강했을때는 아버지와의 추억들을 어느것 하나도 생각해내지 못했던 길동이었다. 어린애처럼 변해버린 아버지를 보살피며, 아버지의 자리, 아버지를 품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성욕을 참아가며, 매운 맛을 느끼며 길동은 점점 의젓해져가고 있었다. 그들이 아는 가장 먼 미래의 시점을 이야기할때도 그들을 향해 달려갈 수 있을 만큼 의젓해졌다. 여전히 힘들겠지만, 힘든 여정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보여 빙긋 웃었다.
아, 어쩐지, 매운 불닭에 맥주 한 잔이 땡기는 구나.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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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교 다닐 때가 제일 좋았어, 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그때로 다시 되돌아간다면 역시나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공부하기 싫다고 투덜대거나, 모의고사 점수 1점에 일희일비하기도 하지만, 자율학습 땡땡이를 치거나 하는 소심한 일탈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1점이라도 오르면 기분이 좋은 건 당연하고,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학교를 나와 영화관을 돌던 그 기분과 그 맛을 아는데,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만 할 거야.’라는 다짐은 쉽게 서지 않는다. 다만, 어차피 땡땡이 치고 놀 거, 좀 더 신나게, 기억에 남게, 공부와는 별개의 관심사로 눈을 돌리는 시간을 보낼 걸 하는 아쉬움이 남고는 한다. 그래서인지 청소년문학을 읽을 때마다 오래 전의 기억이 나서 웃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의 답답함을 이해하는 부분들과 숨통 트일 구멍 하나를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을 공감한다. 지금 어른의 입장이라는 나의 위치가 태도를 다르게 하기도 하지만, 백지 상태로 어른의 입장만을 표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책 『더 빨강』처럼 어른(길 동의 부모)의 안타까운 현실과 아이(길 동과 아이들)의 마음을 같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입장이 다른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의미와 기쁨, 그 맛을.
길 동. 성은 ‘길’, 이름은 ‘동’이다. 이런 기가 막힌 이름이라니. 처음 만난 상대방에게 이름이 길 동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길동이냐고 묻는다. 아닌데요? 저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걸요~. 열여덟의 동이에게는 치킨집을 하는 엄마와 엄마의 치킨집 일을 돕고 있는 열 살이나 나이 차이나는 형과 일곱 살의 지능을 가진 아버지가 있다. 이삿짐 일을 하시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구사일생했지만, 일곱 살의 지능으로 살아가는 신세다.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자연스레 동이의 차지가 되었고, 쉰아홉의 아버지는 동이의 일곱 살짜리 동생이 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사라져서 보면 지붕의 용마루를 말처럼 타고 있으면서 사람을 긴장시킨다. 천진난만하게 “이랴~이랴~” 외치면서 지붕 위에서 말을 타시는 아버지. 게다가 재개발구역으로 묶인 집은 비워줘야 할 형편이고, 사고로 일을 할 수 없는 아버지 대신 엄마는 생계를 위해 보상금을 미리 받아 치킨집을 열었다. 빈집들의 철거작업이 계속되고, 동이의 집을 향해오는 철거의 소리는 점점 커진다.
열여덟 소년의 불안한 나날들이 이어진다. 학교에서도 그다지 정을 못 붙이고 특별히 주목받는 학생도 아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가서도 아버지를 돌보는 일이 쉽지가 않다. 많은 것들이 불안정하다. 그런 동이의 돌파구는 야동섭렵이다. 빨~강 동영상이 머리를 식혀준다. 일상이 답답함의 연속일 수밖에 없는 동이의 환경과 마음이 야동과 친하게 해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든 숨 쉴 구멍 하나는 있어야 살아가는 법이니까. 그게 꼭 야동이어야 하냐고? 글쎄, 꼭 야동이 아니어도 되겠지만, 꼭 야동이어서 안 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내가 가끔, 풀리지 않는 스도쿠 한 페이지를 붙잡고 끝장을 보자고 씨름하는 거나 비슷한 맥락으로 끄덕이게 된다. 아, 동이의 돌파구는 야!동! ^^
하여튼, 이때, 빨강이란 색은 야동의 색인 줄로만 알았던 동이에게 빨강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매운 맛! 동이의 절친인 희우의 사진첩에서 본 오미령에게 꽂혀, 미령과의 접점을 마련하고자 미령이 개설했다는 인터넷카페 ‘더 빨강’에 가입한다. ‘더 빨강’이 무엇이냐 하면, 고추를 좋아해서 미령이 만들었다는 매운 맛의 모임인데, 첫 정모에 나가서 동이는 매운 맛을 제대로 보고 돌아온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동이였는데... 입안으로 들어가 혀를 얼얼하게 하는 그 매운 맛뿐만 아니라, 미령의 질문 하나로 인생 매운 맛의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네가 아는 가장 먼 미래는 언제야?” 동이는 정모 때마다 그 매운 맛의 끝장을 보지는 못하고 항상 포기했다. 너무 매워서. 다 삼킬 수가 없어서. 게다가 길지는 않지만 미령과 대화를 할 때마다 뭔가 오소소한 느낌에 솜털이 쭈뼛 선다. 미령이 말한 ‘가장 먼 미래’는 너무도 가까이 와 있었고, 동이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먼 미래’를 아직 정하지도 못했다. 그 사이에 얘기치 못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동이는 열여덟 인생의 아주 빨갛고 맵고 뜨거운 맛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별것 없을 것 같은 지루한 일상에도 매운 고춧가루 팍팍 뿌려졌으면 싶은 날이 있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고 싶을 때, 뭔가 변화될 것 같고 기대되는 다음 날을 갖고 싶을 때, 혼자가 아님을, 외로움이 아님을 느끼고 싶은 그런 때. 원하는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진정 우리가 바라는 삶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게 채워지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삶이 아닌 것도 아니므로. 그 빈 공간을 채울 것들은 너무도 많다. 채우고 채워도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게 채워지지 않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오늘이 주어지는 이유라면, 그것도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항상 부족하고 갈망하고 채우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너져 내리던 순간에 다시 일어난 동이의 엄마, 입장이 바뀌고 나서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동이, 우상처럼 여겼던 형이 변해버린 모습을 이해할 것도 같은 동이의 성장. 또 그렇게 오늘을 살아가고, 매운 맛으로 한 번씩 긴장하면서, ‘가장 먼 미래’의 시기를 수정하면서 살아갈 모습이 그려진다.
주어진 지금을 살아가는 게 현실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현실임을 인정하는 것. 미령이 매운 맛을 보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의미로 보인다. 맘에 들지 않는 이 순간을 피해갈 수도 없을 때,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순간을 매운 맛으로 만났기에, 심심해서 ‘청산가리’를 검색해보던 순간을 잊게 하는 것은 미령이 경험한 매운 맛일 것이다. 지루한 일상이더라도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 그런 매운 맛 한번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건너고 싶은 것. 누구에게나 그런 전환을 만들어줄 비상구 하나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운 맛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미령, 야동으로 스트레스를 풀던 동이. 이제 동이도 야동이 아닌 매운 맛으로 무언가를 더 맛 볼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매운 맛 1단계를 목표로 시작해서 점차 그 단계를 높여가고 미령이 점령하고자 하는 5단계까지 갈 수 있는 동이를 기대한다. 하지만 뭐, 인생의 맛은 매운 맛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매운 맛 5단계가 아니라 달콤한 맛 5단계로 방향전환해도 괜찮다, 동이야. 중요한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 순간이므로. 다시 빨강의 개념이 야동으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무슨 문제 있나? 다시, 매일 밤 꿈속에서 교복 입은 그녀가 나오더라도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지금을 살아가는 내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의 맛이다. 지금은 그게 매운 맛이라 하여도, 바로 몇 분 후에 쓴맛을 본다고 하여도... 열여덟에 맛보기 시작한 그 맛은,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해질 테니, 지금의 맛이 좀 맵더라도, 쓰더라도, 입맛에 안 맞더라도, 문제될 게 없다. 이제 막 맛보기 시작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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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 독특한 제목이다. 우리는 보통 빨강색하면 정열적인 느낌을 떠올린다.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불이 활활 타오르고 붉은 태양 등 붉은 색은 우리에게 강렬함을 전해주고 있다. 표지속 아이는 지붕 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요즘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많아 표지속 아이처럼 지붕위에 올라가는 일은 거의 힘들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 아이의 행동이 더 궁금해진다.
![]() 앞표지만큼 눈에 띄는 것은 뒷표지에 있는 글이다. 대부분은 동료작가나 작품을 심사한 분들이 책에 대한 글을 적어놓는데 이 책은 학생들이 읽은 후의 한줄 느낌을 적어놓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청소년이 읽은 청소년소설의 느낌이기에 좀더 확실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그 아이들이 읽고 난 후의 촌철살인 같은 글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된다. 이 책을 읽은 친구들의 내공도 만만치 않은가보다. 책의 내용을 정확히 꿰뚫고 누구보다 더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제 열여덟살인 길동은 한 집안의 가장 아닌 가장 역할을 하게 된다. 사고로 일곱살 어린 꼬마가 되어버린 아빠. 아빠는 늘 권위적이고 서로 살가운 말을 해본적이 없는 사이다. 그런 아빠는 길동을 작은형아 라고 부르며 길동을 따른다. 열 살 차이가 나는 형은 집 재건축 보상으로 받은 돈, 엄마가 그동안 모은 돈을 몽땅 주식으로 날려버린다. 그 돈뿐만 아니라 빚까지 얻은 형은 미안하다는 한 통의 편지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치킨가게를 하던 엄마도 이런 현실이 힘든지 술로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길동은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미령이 '더 빨강' 이라는 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고 가입을 한다.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식도락' 이라는 부제가 적혀있는 카페의 회원은 아홉명이다. 고추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미령이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가입을 하는 길동.
"매운 걸 좋아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거야. 어떤 사람은 그냥 좋아서 먹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 불만 일때 먹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삶이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질 때 매운 걸 먹고 정신이 번쩍 들수도 있고." - 본문 43쪽
여기에 모인 아이들은 많은 음식 중 매운 맛을 즐기는 것일까. 누구나 알다시피 매우 맛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과 달리 통각을 느끼는 것이다. 말그대로 아픔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맛이라 할수 있을까. 이 아이들은 자신의 아픔을 매운맛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돈을 들여 유학을 보냈다는 말을 계속 들어야만하는 '고추조아',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마파두부', 어릴 적 유괴를 당한후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마음의 짐이 되어버린 '와사비' 미령, 자신이 떠안고 있는 문제에서 벗어날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야동을 보는 것이 되어버린 '불닭' 길동.
우리가 느끼는 맛에는 매운 맛만 있는 게 아니다. 쓴맛도 있고 신맛도 있고 떪은 맛, 단맛, 짠맛도 있다.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맛들도 있다. 시큼털털한 맛이라든가, 달콤짭짜름한 맛, 매콤씁쓰레한 맛. 삶은 여러 가지 맛의 변형이다. - 본문 205쪽~206쪽
아직 이 아이들에게는 매운맛과 같은 삶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매운맛을 즐기는 식도락이 아니라 앞으로는 다양한 맛을 즐길줄 아는 식도락이 되어가지 않을까. '더 빨강'을 통해 우리는 현재 그들의 매운맛을 보았지만 미래에는 그들에게 다양한 맛들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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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르의 책들을 두루두루 좋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손이 가는 몇몇의 장르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성장소설 혹은 청소년소설이다. 이전에는 딸아이와 함께 읽다가 요즘에는 아들아이와 함께 읽는데 약간은 노골적인 묘사들이 심하다싶은 책들도 자극적인것을 추구하는것이 아니라면 어지간하면 읽으라고 권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이책은 조금 헷갈린다. 자극적인 묘사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열여덟이라는 나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눈에 아직 내아이는 이런정도의 수위를 감당하지는 못할것같아..하는 말도 되지않는 커트라인을 정하고 있는것이다. 얼마전인가 열일곱살인 아들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본적이 있다. "혹시 너도 야동같은거 보냐?" 내가 원한 대답은 아마도 "아니" 였을테지만 아들아이는 본적은 있다는말로 말을 돌리고만다. 당연한 답이겠지.나이가 하나도 아니고 자그마치 열일곱이나 되었는데, 아직까지 어린아이로 보려고하는 내 마음이 문제인것이겠지..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간 대화가 [더빨강]의 동이녀석의 모습과 합해지면서 도대체 이책을 읽으라고 줘야해 말아야해..이상야릇한 신세계를 경험하기위해 몸부림치는 장면들만 아니라면 대체적으로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끌고 가는 이야기라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은 마음이 구할인데...
밤이면 밤마다 동이는 불타는 욕망을 해소하기위해 꿈을 꾸려고 한다. 꿈에서는 잡힐것같은 여인이 눈을 뜨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비극은 동이가 살고있는 현실에 비하면 비극축에도 끼지못한다.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왔던 아버지는 어느날 갑자기 사고를 당해 일곱살의 아이가 되어버렸다. 병원에서 말하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중 어느것이 좋은것이고 어느것이 나쁜 것인지 의아할만큼 동이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는 이제는 집안의 막내가 되어버렸다. 큰아들을 큰형으로 동이를 작은 형으로 아내를 엄마로 부르는 아버지덕에 집안의 위계질서는 엉망이 되어버렸고 가장의 능력을 상실한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가 치킨집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자상한 다른 아버지들과는 달랐다. 가부장적이었고 위협적이었으며 당신말에 토를 다는것을 좋아하지않았다. 형과 열살이라는 터울이 나는 덕분에 형의 뒤에 숨어서 아버지의 매를 피할수 있었던 동이와 달리 형인 명이는 늘 아버지의 매를 감당하며 살아야했다. 언제인가 눈에 핏발이 선 눈으로 명이는 아버지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곤 했는데 아버지가 아버지의 위엄을 잃게되자 반격에 나선 명이에 의해 아버지의 등에는 멍자국이 새겨지게된다.노인들을 학대하는 대부분의 경우를 차지하는것은 바로 그 자녀들이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통탄할 노릇이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임은 부인하지못할것 같다. 명이가 아버지를 향해 매를 드는것을 목격한 순간 동이는 언제나 큰산 같았던 명이에게 반기를 든다. 어렵지만 형이라서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의 두툼한 손길이 날아드는것을 막아주는것도 형이었고 고장난 로봇을 고쳐주는것도 형이었고 다른집의 아버지가 보여주는 모습들을 동이에게 알려준것은 다름아닌 형 명이였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이제는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때리는 모습을 용납할수는 없었다. 며칠을 가만 방에서 움직이지않던 형이 종적을 감춰버리고 만다...
라면이 없었더라면 우리 식탁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것 같다. 수많은 법조인들을 만들어낸 것이 다름아닌 라면이라는 우스개소리가 아니더라도 간단하게 밥을 대신해서 한끼를 때우는 라면은 그야말로 비상식량이상의 효용가치를 가지고 있는듯하다. 수없이 쏟아지는 수많은 라면중에서 우리집에서 가장 오랜시간 버틴라면은 이름도 매운 그 '신라면'인데 이제는 그만 우리집에서 모습을 감출것같다. 언제인가 애들이 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등장한 그 라면맛에 반해버린 아이들은 이제는 물에 빠진 라면은 먹기 싫다고 온리 그 라면만을 찾는다. 한입만 먹어도 입에서 불이나는듯한 그 매운맛에 반해버린 아이들은 이제는 이전의 라면맛이 밋밋하다며 입에 대려고도하지않는다. 우리집녀석들 뿐 아니라 매운맛을 찾아다는 아이들이 개설한 카페 [더 빨강] 동이는 그 카페의 회원이 된다. 매운맛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창이나 거리가 먼 동이가 카페의 회원이 된것은 순전히 오미령이라는 여자아이에게 관심이 있었기때문인데 카페의 회원들과 매운맛을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기던 동이는 그만 난데없는 패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보호자를 대라는 요구에 고아도 아닌 동이는 부를 보호자가 없다. 보호자를 대신해 동이앞에 나타난 사람은 한번도 보호자라 생각해본적없는 학생주임..카페 [더 빨강]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학생주임은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는데..
동이의 아버지에게서 우리의 보통의 아버지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집으로 귀가하는 순간 집안에 흐르던 웃음기는 사라지고 저마다의 공간으로 모습을 감추는 시간, 혼자인것이 원하지않아도 익숙해지는 쓸쓸한 아버지들의 모습.. 동이 아버지가 처음부터 그렇게 강압적인 사람은 아니었을것이다.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던 어린 아이의 모습은 천진난만했으니까..그러나 힘든 현실은 점점 더 감성을 메마르게 했을테고 살아도 열심히 발버둥을 쳐도 나아지지않는 살림살이는 자꾸 발목에 매단 짐 같았을것 같다.변변히 화풀이 할 상대를 찾지못하니 그 화는 자연스레 자식들과 아내에게로 향했을테고..동이아버지의 사고이전 모습을 편드는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을 가장이란 무게에 눌린 모습을 조금은 이해하는 것이다. 다만 성실한 가장이라는것이 좋은 아빠와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답답할뿐이다.성실하면서 좋은 아버지들 또한 많은 것을 아는 까닭이다.동이아버지는 사고로 아버지의 삶을 잃고나서야 자유로워진다. 가족이기에 기다리고 가족이기에 찾아야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나이를 잃어버린 아버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은 가족들은 이제야 비로서 가족이 주는 행복을 느끼게 되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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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수월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 딸이었다. 괜히 툴툴대고 차려 놓은 밥도 일부러 먹지 않고 그냥 학교에 갔다. 집보다는 학교가 더 좋았고, 칭찬이 인색한 엄마보다는 선생님이 더 편했다. 그 시절을 지금을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성과 외모에 관심이며 갑자기 변화하는 몸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아이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다스리기도 버거운 상태인데 집안 상황까지 나쁘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삐뚤어 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주인공 열여덟 살 동이는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동이는 사고로 일곱 살 아이로 변해버린 아버지를 생계를 위해 닭집을 운영하는 엄마와 취업 준비로 항상 화가 나 있는 형을 대신해 돌봐야 한다. 사고 전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을 작은 형이라 부르며 사고를 치는 동생 같은 아버지를 씻기고 먹이는 일은 동이의 몫이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착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청소년 소설과 다르게 심각한 학교 폭력나 왕따, 입시 위주의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스트레스를 야동을 보는 것으로 해결하는 성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의 소년 동이와 무서운 집착에 가깝게 매운 맛을 좋아하는 소녀 미령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동이는 친구 희우를 통해 미령이 운영하게 카페 ‘더 빨강’에 가입한다. 매운 걸 잘 먹지도 못하면서 미령과 친해지고 싶어 정모에 나간다. 아이들은 모두 매운 음식을 신나게 먹는다. 하지만 동이는 그런 분위기가 낯설기만 하다.
“매운 걸 좋아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거야. 어떤 사람은 그냥 좋아서 먹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 불만일 때 먹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삶이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질 때 매운 걸 먹고 정신이 번쩍 들 수도 있고.” 43쪽
동이와 미령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이는 아버지를 돌보고 치킨 배달을 하는 육체적인 고통과 집 재건축 보상금을 주식 투자로 날리고 빚을 남기고 사라진 형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를 지켜봐야만 했다. 미령은 어린 시절 유괴 당했던 상처 때문에 힘들었다. 미령이 만든 매운 맛 카페가 자살 카페라는 소문이 돌며 자살 여행을 계획한다는 걸 듣고 동이는 미령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낸다. 동이는 달라진 아버지를 통해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든 미령을 말리고 싶었던 동이는 여행에 합류한다. 여수에 도착한 미령과 친구들은 각자 준비해 온 재료로 매운 음식을 요리하고 먹을 준비를 한다. 긴장한 동이는 먹지 말라고 살아야 한다고 소리친다. 미령은 단순하게 매운 맛 대결을 위한 여행이라는 걸 확인시킨 후 동이에게 유괴 이야기를 한다. 유괴 후 자신을 향한 시선 때문에 외로웠던 시간과 매운 걸 좋아하게 된 이유를 말한다.
“어느 날 멋모르고 매운 고추를 먹었는데 왠지 모르지만 확 당기는 거야. 지루하게 걷고 있는데 누가 발을 거는 느낌?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어. 그냥 걷는 건 재미없잖아. 누가 발도 걸어주고 뺨도 때려 주고, 그래야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느끼지. 또 살아야겠다는 전투력도 생기고. 너희는 나하고 다른 이유로 매운 걸 먹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아 있기 위해서 매운 걸 먹는다는 공통점이 있잖아.” 191~192쪽
미령은 통증처럼 밀려오는 매운 맛을 통해 살아 있다는 걸 느꼈던 거다. 저마다의 이유로 매운 걸 좋아하지만 살아 있기 위해서 매운 걸 먹는 건 같았다. 그래, 살아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평생 일곱 살로 사는 아버지, 갚아야 할 빚으로 고생해야 할 엄마,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형이지만 가족이고 살아 있으니 괜찮다.
사는 동안, 동이가 맛보게 될 맛은 무한할 것이다. 그 맛을 다 맛보는 게 삶일 것이다. 빨강으로 기억될 열여덟을 지나 다양한 색으로 마주할 수많은 동이와 미령의 인생을 응원한다.
‘우리가 느끼는 맛에는 매운맛만 있는 게 아니다. 쓴맛도 있고 신맛도 있고 떫은 맛, 단맛, 짠맛도 있다. 우리가 표현하지 못하는 맛들도 있다. 시큼털털한 맛이라든가, 달콤짭짜름한 맛, 매콤씁쓰레한 맛. 삶은 여러 가지 맛의 변형이다.’ 205~206쪽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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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의 지붕위소년이 불고 있는것.. 풍선처럼 보이는 그것의 정체가 무언지에 대해 나는 조금 엉뚱하게도 가슴을 떠올렸고.. 내 신랑은 콘돔을 떠올렸다.. 아마도 신랑이 보통의 반응.. 내가 특이한 반응이었을거같다^^ 이렇게 독특한 그림과 함께 만난 이야기는 소년과 그 주변인의 이야기로 정리할수있겠다.
다정함이라곤 없고, 폭력적이고 힘만 센 주인공의 아버지가 어느날 사고로 일곱살어린이의 기억으로 돌아가버린다. 졸지에 덩치만 커다란 일곱살짜리를 뒤치닥거리하게된 가족들의 수고로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넘쳐나는 성욕을 다스리기 위해 매일밤 야동을 섭렵하는 주인공이 호감이 가지만, 매운맛에 집착하는데다 뭔가 수상쩍은 미령을 알게되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소동을 그리고있다.
이 책의 제목 더 빨강.. 빨강에서 우리네가 연상하는것들은.. 빨간고추.. 빨간딱지비디오.. 위험을 의미하는 빨강경고등.. 활활타오르는 빨간불꼿의 이미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빨강이 연상되면서 제목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책을 다 읽고나서 내가 고민하게된것.. 이 책을 중학생인 내 아이에게 읽혀도 될까? 란것..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람'임을 보이는 부분도 나오고.. 평소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는 성욕이란 없는 사람인것처럼 보일것같은데 이 책을 읽고는 우릴 다른 눈으로 보지않을까? 살짝 염려스럽기도하고..
여러 다양한 이유들로 해서 내 아이가 주인공의 나이인 열여덟이 될때까지 기다릴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주인공과 몇살 차이 안나니 오픈해도 될것인지?? 글을 쓰고있는 지금 이순간도 고민스럽다..-.-.. 얼마전 '아이의 사생활2' 를 보고는 청소년들이 성에 관심갖는걸 인정해야한단 '가르침'을 받았는데.. 겉으로 보기엔 성에 그닥 관심있어하지않는듯한 내 아이가 이 책으로 인해 더 호기심을 갖게되는건 아닐지? 혹은 반대로 겉으로 보이는것처럼 무심함으로 일관할지 궁금해지는 마음이다~ 하긴.. 이 책으로 인해 성에 관심을 갖는다면 또한 어떠랴? 아이가 뭘 제대로 알아야 적어도 몰라서 하는 실수는 덜지않을까? 싶은 맘이 들기도한다~~
사계절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 일독하시고 고민에 빠져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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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 이 책을 표지만 보고서는 미술책인가 하는 호기심을 갖고 책장을 넘겨 보았다. 아니었다. 나와 같이 청소년기의 자녀를 키우는 한번쯤 읽어봐야 할 성장소설이었다.
쉰아홉의 남자, 즉 우리들의 남편이자 아빠는 2년 전 사고로 머리를 다친다. 그 이후 일곱 살 꼬마가 되어 틈만 나면 지붕에 올라간다. 정말 상상하기 싫은 이야기이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와 형은 아빠의 사고 이후 차린 생계를 위하여 치킨집을 운영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아빠를 보살펴야 하는 일은 열여덟 소년, 길동의 몫이 되고 만다.
우리 어른들도 상상하기 싫은 일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길동, 정말 너무나 답답할 것 같다. 어른인 나 자신도 그야말로 상상하기 싫은데 열여덟 소년에게 주어지다니 너무나 어렵기만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갑내기 소녀 ‘오미령’이 나타나며 책 제목의 의미가 살며시 나타난다. 바로 너무나 맵기만 한 청양고추를 상상하게 매운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바로 『더 빨강』의미는 미술책이 아니라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인것이었다.
길동은 미령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더 빨강-고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식도락 모임’에 가입을 한다. 그 모임에 가입한 아이들은 가정문제,스트레스 해소를 위하여 매운 음식을 먹게 된다. 우리 어른들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저마다의 방법이 있듯이 아이들은 음식을 통하여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매운 음식을 먹으며 그들만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 나간다.
작가는 '삶은 여러 가지 맛의 변형이다.’(206p.)라고 이야기를 하며 『더 빨강』 을 끝맺는다. 그러면 내가 작가라면 나는 삶을 무슨 색으로 표현을 했을까? 잠시 생각해보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작가의 눈으로 본 『더 빨강』 작품세계로, 우리 아이의 마음도 다시한번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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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이라는 아이, 성이 길씨고 이름이 동이다. 유쾌, 상쾌, 통쾌한 청소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사고로 갑자기 50년의 세월을 거슬러 7살의 지능을 가지게 된 아빠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조금 우울해지려 했지만 야동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나왔을 때는 이걸 이제 중1인 아들이 먼저 읽었으니 어째?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성실하지만 좋은 아빠는 아니였지만 이제는 아이가 되어 버린 아빠를 대신해 생활 전선에 나서게 된 엄마는 재건축 바람이 불어 보상비으로 나온 돈으로 형과 의논해 치킨집을 차렸다. 나이 차이가 있어 동이가 유치원때 고등학생이였고, 초등학생일 때 대학생이였고, 중학생일 때 군인이였던 형 명이, 동이로서는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먼 세계에 먼저 닿아 있기에 멋있었다. 그런 멋있는 형이였는데, 형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아기만 했다. 과학자가 꿈인 형이였는데 고등학생때는 인 서울 대학으로, 지방대에 다닐 때는 정규직으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지금은 치킨 배달을 하고 있다. 그런 형이 사고를 쳤다. 주식 투자를 하다 빚까지 지고 가출을 해버렸다. 엄마는 실의에 빠졌다.
희우의 폰에 저장된 여자 아이들은 다 똑같은 표정에 똑같은 포즈를 하고 있다. 그래서 미령이게 더 관심이 갔나보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분위기. 미령이가 만들었다는 카페에도 가입했다. 매운 맛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모임,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더 빨강'. 미령이 때문에 가입은 했지만 동이는 매운 맛은 쥐약이다. 그런데 '더 빨강'이 자살사이트라니. 어쩐지, 미령이도 뭔가 비밀이 있어 보였고, 다른 아이들 역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억, 억 하며 돈 얘길 하는 엄마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고추조아,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마파두부. 이 아이들이 자살 여행을 가려고 한다.
미령이에게 여행을 제의받았을 때만 해도 동이는 빠지려고 했다. 하지만 자기도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사는데, 내가 생각하는 가장 먼 미래에 가보지도 않았는데 죽으려고 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말리고 싶었다. 여행을 가서 아이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에 뭔가 가루를 뿌리고 먹으려 했을 때, 나도 함께 마음이 조마조마, 동이와 한마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안돼!!!
모든 건 오해였다.
상황만을 본다면 동이는 참으로 불쌍한 아이다. 사고로 장애를 가지게 된 아빠, 빚더미에 앉게 돼 실의에 빠진 엄마, 꿈도 희망도 없이 사고치고 가출한 형, 상처와 아픔으로 매운 맛에 집착하는 친구들까지. 하지만 전혀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씩씩하게 이 상황들을 받아들여 더 좋았다. 이제는 더 이상 야동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나도 가끔 매콤한 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속이 답답하거나 짜증날 때, 속상한 일이 있으면 왠지 매운 게 땡긴다. 나도 매운 건 잘 못 먹는다. 그래도 왠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비빔밥에 고추장을 더 넣어 빨간 밥을 한 수저 퍼 먹는다. 맵다는 떡볶이 생각이 난다. 매콤한 쫄면, 짬뽕 생각이 간절할 때가 있다. 먹고나면 정말 속이 쓰릴지는 몰라도 마음만은 훨씬 편해진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도 엄마가 억, 억 할 때마다 아빠의 폭력에 맞닦뜨릴 때마다, 어린 시절 유괴를 당한 후, 이유없이 잘해주고 그럴 때마다 매운 게 생각난다고 했다. 어려운 상황들을 마치 매운 맛으로 감싸는 것 같다. 그래서 고통이지만 오히려 중독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매운 맛은 아이들에게 도전하고 극복해 나가야 하는 일종의 의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도 그럴까? 매운 거 진짜 못 먹는데.... 그래도 이 책은 잘 볼 것 같다. 야동 이야기에 집중해서 더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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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이 강한 것이 있다. 늘 마시는 차나 커피도 그렇고 다른것보다 유독 '매운맛'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나 또한 매운맛을 가끔 찾는다.그중에서도 매운불닭발은 정말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자주 먹는 게 아니고 정말 매운맛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고나서 개운함을 느끼고 싶을 때,마음이 편치 못하고 무언가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에는 한번씩 마트에서 파는 매운양념불닭발을 사다가 한 번씩 먹어준다. 그러면 땀을 뻘뻘 흘리고나서는 개운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 버린다. '더 빨강' 매운맛에 중독된 십대의 이야기,매운맛을 아니 인생을 맛을 알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다. 그러나 그들이 왜 매운맛에 중독되어야 하는지 현실은 그들은 녹록치 않게 만들었다.아니 현실이 아니라 몇 년 살지 않은 그들의 과거는 그들을 힘들게 붙잡고 늘어져 매운맛으로 무언가 날려 버리게 만들었다.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던 오십이 넘은 아버지는 어느 날 이삿짐을 옮기던 중 사고로 인해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게 되고 식물인간이 되지 않고 며칠만에 깨어난 것은 하늘이 도운 일인데 쉰이 넘은 아버지가 일곱살 아이가 되었다. 아들은 '큰형아,작은형아' 라고 부르는 아버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동생처럼 낮추어 말해야 하나 아님 아버지니까 존대를 해야 하나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말은 이상하게 꼬이고 집안도 꼬이게 되고 세상도 꼬이게 되었다. 재개발지역이라 이사를 가야하는데 보상을 받은 돈으로 엄마는 치킨가게를 차렸다. 형은 취업을 포기하고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엄마를 도와 치킨가게에서 배달일을 한다. 중학생인 나는 '작은형아'가 되어 아버지를 보살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뭔가 단단히 꼬여도 정말 단단히 꼬였다. 무슨 이런 엿같은 세상이 다 있나. 어제까지 자신들을 무관심 혹은 폭력,폭언을 일삼던 아버비는 자신들을 형아로 아는 일곱살 지능의 어른아이가 되어 집밖에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으니.
"매운 걸 좋아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을 거야. 어떤 사람은 그냥 좋아서 먹을 수도 있고,어떤 사람은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욕구 불만일 때 먹을 수도 있고,어떤 사람은 삶이 재미없고 시시하게 느껴질 때 매운 걸 먹고 정신이 번쩍 들수도 있고."
무언가 풀어내야 했던 나는 '야동'에 심취해서 밤마다 야동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몽정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 온 여자가 있었으니 '오미령'은 친한 친구가 잘 알고 있어 친구를 구워 삶아 겨우 오미령에 대한 정보를 얻어 오미령이 운영하는 '더 빨강'이라는 이름도 야릇한 카페에 가입을 했는데 그 카페가 그러니까 '매운맛'을 찾아 매운맛에 중독된 이들이 함께 하는 카페다. 그들은 왜 매운맛에 중독되었을까? 아니 오미령은 매운맛이 뭐가 좋다고 매운맛에 중독된 것일까? 자신은 매운것을 정말 싫어한다.그래도 오미령을 위해서는 카페에 가입은 물론 매운맛도 서슴치 않고 먹으리라. 그러다 그들과 정모에 참여하여 매운맛을 보게 되었고 혹독한 신고식처럼 매운맛에 얼떨떨,불같은 매운맛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게 되었는데 이 오미령이란 인물이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왜 그녀는 매운맛을 가장한 자살카페를 운영하는 것일까? 정말 그녀가 자살을 원하는 것일까? 자신과 같은 사람도 살고 있는데 왜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그녀들이 자살카페에 회원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길동은 미령이가 '먼 미래'라고 말한 시월의 마지막 날을 선생님께 밀고하고 싶지만 참고 그가 한번 그녀를 설득해 보려고 한다. 그런다고 길동의 집안 경제 사정이 풀린 것도 아니다. 일은 점점 더 꼬여 믿었던 형은 주식으로 모든 것을 날려 먹고 사라졌다. 엄마는 가게를 접듯 완전히 밑바닥을 치듯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손을 놓아 버렸다.아버지마져 집을 나갔다 겨우 찾게 되었는데 그 순간 둘은 아버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한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아버지를 찾게 되고 다시 뛰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길동도 그렇게 다시 집안의 가장이 되듯 아버지를 책임지게 되고 엄마는 다시 치킨집으로 향하게 되었다.형도 어디선가 잘 견디어내고 있을 것이다.이런 현실도 견디어 내고 있는데 오미령을 포함한 더 빨강의 회원들이 왜 자살을 하려고 할까? 그들과 함께 동행을 하기로 맘 먹은 길동은 따라가서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녀들의 자살을 막기로 한다.그런데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들은 정말 '더 빨강'의 회원답게 '매운맛'에 확실하게 중독된 그들만의 맛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녀들의 매운맛 중독이 와전되어 오해하게 된 것이 잘못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하길 얼마나 다행인가.덕분에 그는 오미령을 매운맛을 통해 알게도 되고 또 그렇게 둘이 연결될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한 일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람은 어쩌면 기억이 없을 때 더 행복해질 수도 있다는 거지. 네가 일곱 살 때 어떤 끔찍한 일을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기억이 네 삶을 붙잡아 두고 행복해지는 걸 방해한다면 그건 아니라는 거지.그 기억에서 벗어나든지 극복하든지.죽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거지."
어느 것이나 중독되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하찮다고 생각한 것에 중독되는 것도 벗어나기 힘든데 매운맛은 특히나 중독성이 강해 빠져 나오기 힘들다고 들었다. 매운맛은 점점 더 강한 맛을 빠져 들게 되고 속이 버려도 또 다른 매운맛을 찾는 사람들,그 맛을 알기엔 조금 어리다 싶은 나이지만 그들은 인생의 맛을 알아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미령은 유괴를 경험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른 자기 해석을 경험하였고 길동은 아버지의 사고로 인해 가정이 와해될 위기에서 그래도 가족이 있어 모두 잘 견디어 나가고 있다. 가족이란 위기에서 더 끈끈한 무언가를 발휘해 하나로 묶어주는 듯 하다. 비록 형이 주식으로 재산을 날리기는 했지만 형도 분명 잘살아 보자고 시작한 일이고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손해를 본 것이지 나쁜 의도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고 있지만 모두 잘 헤쳐나갈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개운한 그 시간이 오듯이 매운맛의 그 현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모두 지금 땀을 뻘뻘 흘리고 나면 언젠가 다시 하나의 가족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미령은 어린 나이게 '매운맛'을 보았다면 길동은 지금이 매운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그렇다고 그들이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부딪혀 이겨내려고 하고 있어 기특하다. 매운맛을 싫어했던 길동이 점점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지듯 현실 또한 그렇게 이겨내리라 본다. 꼭 그들 가족에게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목마가 힘차게 날아 오를 그 날이 올 것이다.'이랴 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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