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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인지도 모를 한 인물의 삶을 알아가며 이토록 바르게 살수도 있는거구나 내내 감탄하게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장일순할아버지의 삶이었는데 조 한 알 만큼 작은 사람’이라는 본명이외 또다른 이름이었던 조한알이란 의미에 걸맞게 참으로 바르고 멋진 평생의 모습이었답니다.
1928년 원주에서 출생, 일제 식민지와 6.25라는 사회적으로 힘들었던 변혁기를 거친후 근대화와 현대화를 이루어가는 대한민국 발전상속에서 그 현실을 고스란히 안고있었던 한 개인의 삶이었습니다. 거기엔 대가족을 책임져야만하는 개인사의 영리를 모두 포기한채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의 정을 몸소 실천한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고 사회운동가로서의 새로운길을 개척해 나아가는 사회운동가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욕심과 이념이 세상을 지배했던 세상에서도 그의 가족들이 모두 무사할수 있었던것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온 베품의 미학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을수있었던건 한치의 거짓도 오만함도 없는 진실되고 겸손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가치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세상을 앞서 바라보는 시선과 몸소실천하는 열정 부단한 노력을 마주하며 한 개인으로 세상이 바뀔수도 있음을 알게됩니다. 교육만이 최선일 시기엔 학교를 설립했고 환경문제가 대두되기전 그의 선견지명은 한살림이라고하는 기구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구어낸 학교였을망정 떠나야할때 말없이 떠날줄도 알았던 사람 바라볼수록 멋졌습니다.
더이상 바를수 없을것같은 한 개인의 삶은 이제 막 자신의 가치관을 다져가는 울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살수있는거지? 라는 의문을 안겨주었답니다. 그만큼 느끼는것도 깨닫는것도 많았던 인생이었습니다. 지금에서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고있지만 당시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기울였을지 짐작해보면 참 고단하고 힘겨운 삶이었음을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이 있기에 사회가 변하고 한 지방이 아름다워진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미약하다고만 생각했던 한사람의 힘이 너무도 클수있음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통해 우리 아이들은 더 높은 이상과 정신을 배우게되었답니다. 책을 읽은후 독후활동을하면서 낯선용어들과 친숙해지고 근대화과정의 아팠던 시간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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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에 사시는 형수님께서 한살림에서 파트타임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다. 조카는 3~4년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아토피로 피가날때까지 긁고 울면서 자고 피부가 거북등처럼 시커멓고 딱딱하게 변해 친구들은 아프리카에서 왔냐는 놀림을 들었다. 옆에서 보는 삼촌도 마음이 아팠었는데...
형수님이 한살림을 통해 먹거리를 바꾸고 살림을 바꾸면서 조카의 아토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치유되기 시작했다. 이런과정을 보며 한살림의 시작을 일구신 분들이 어떤 분일까? 관심을 가지고 신청했는데....
이 책에는 만나는 장일순 선생님은 큰 스승님이자 사상가이자 살림가셨다. 장일순 선생님의 지난했지만 멈춤이 없었던 삶이 큰 여운으로 남는다. 나도 이렇게 사람들에게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배움으로 다가갈수 있을까하는 생각. 작은 생명 하나를 내몸같이 우주같이 담아내는 살림을 살 수 있을까? 훌륭하신 분들을 전하는 정말 좋은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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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살림 회원이 되어 무농약.유기농 식품을 먹기 시작한지는 10여녀 년 전부터이다. 당시 아토피피부염으로 밤낮없이 긁어대는 아들을 고쳐보고자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의 소개로 한살림을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한 살림물품들을 이용하고 있다. 전에 다니던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파는 물건보다 대체로 가격이 비싼 편이어서 한동안 가난한 사람들은 농약 묻은 농산물만 먹는 세상이구나 하며 불평을 했다. 그러다 아이가 자라면서 아토피피부염도 사라지고 교육비로 지출되는 돈이 늘다보니, 한살림 이용는 횟수가 자연스럽게 줄게 되었다. 내가 한살림 물품을 이용한 목적은 오로지 아이의 아토피피부염을 고치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이었지, 힘들게 키운 농산물에 대한 소중함이나 농민에 대한 감사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니 한살림 설립자가 누구인지 어떤 취지에서 이런 사업을 하는지 관심조차 없었다. 얼마 전에야 한살림 설립자 장일순 선생님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주라는 도시는 우리나라에 있는 다른 도시들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만든 신용협동조합, 학교, 다양한 작목반 따위가 활성화 되어 그야말로 모범적인 지역자치를 이룬 도시다. 이런 지역 분위기를 형성하기까지는 장일순 선생과 지학순 주교의 영향력이 컸다. 장일순선생은 어려서 독립운동을 하던 차강 박기정선생님께 서화를 배워 서화에 능했고 조부와 아버지께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와 쌀 한 알의 소중함을 배웠다. 기독교인기도 했던 그는 이웃집 형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해월 선생을 흠모하게 된다. 그런 장일순은 국립대 설치 반대 운동을 하다가 학교에서 쫓겨난다. 6.25전쟁 땐, 국군으로 의심받기도 하고 빨갱이로 의심받기도 하여 죽을 고비를 넘긴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정치범으로 몰려 옥고를 치루고 자신이 세운 학교에서도 쫓겨나 군정에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새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와 뜻을 합해, 다양한 협동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협동조합이 1989년 10월 29일 ‘한살림 선언’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되고 오늘날의 원주를 만들게 되었다. 온 우주와 인간이 결국 한 몸이란 사실을 깨닫고 내 몸처럼 자연을, 지구를, 우주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게 ‘한살림 선언’의 내용이다. 이런 ‘한살림 선언’을 실천하는 단체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살림 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키운 농산물을 중간 거래상을 거치지 않고 도시 소비자들에게 직접 공급하여 땅도 살리고, 농민도 살리고, 소비자들의 건강도 살리자는 것이 한 살림의 취지인 것이다. 길고도 험난한 여정을 걸쳐 한살림 정신이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야 한살림 물품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이 밖에도 『좁쌀 한 알에도 우주가 담겨 있단다.』에서는 장일순 선생님의 인품이 어떠한 분이지, 알 수 있는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장일순 선생님이야 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어른이고 원주야 말로 우리가 그리는 꿈의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곧잘 우리 시대에는 본받을 만한 어른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리교육에서 출간된 우리 인물이야기를 보니 본받을 만한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 분들이 표면으로 드나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한 알에 온 우주가 들었다는 장일순 선생님의 정신, 자신을 조 한 알과도 같이 미세한 존재로 낮추면서도 그 조 한 알에 우주를 담는 분, 그분이 바로 장일순선생 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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