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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교는 성리학이다. '숭유억불'이라는 표어처럼, 조선 초기부터 성리학자들의 불교에 대한 비판은 가혹했다. 성리학의 근본주의적 시선으로 본다면, 불교는 '무부무군'이라는 이단 중의 이단인 것이다. 삼봉 정도전의 『불씨잡변』은 이런 조선 지배층의 척불 논리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글이다. 『불씨잡변』은 윤회의 변, 인과의 변, 심성의 변, 작용이 성이라는 변, 심적의 변, 불교가 도와 기에 어둡다는 것에 관한 변, 인륜을 버리는 것에 대한 변, 자비의 변, 진짜와 가짜의 변, 지옥의 변, 화복의 변, 걸식의 변, 선교의 변, 유가와 불가의 같고 다른 것에 관한 변, 불법이 중국에 들어옴, 불교를 섬겨 재앙을 얻음, 천도를 버리고 불과를 말함, 부처 섬기기를 공손히 하면 할수록 시대는 더욱 단축되었음, 이단을 물리치는 것에 관한 변 등 총19개 조항으로 주제를 나누어 불교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정도전은 불교의 가장 큰 폐단이 바로 생산의 근본인 농삿일을 거부하는 데 있고 남에게 걸식기생한다는 점을 꼽았다. 승려가 수도 많고 비생산적이며 사치와 낭비로 인한 소비가 심하므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숭유억불의 시련 속에 불교가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했던 선승들로 세종 때의 함허득통 기화와 성종 때의 설잠 김시습 같은 인물이 있다. 이들은 그나마 불교 내부에서 불교를 옹호하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꺼져가던 불교의 맥을 되살린 데는 명종 때의 허응 보우와 서산 휴정의 공로가 지대하다. 특히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휴정의 공이 매우 크다. "조선시대로 들어오면서 불교가 지식인들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은 일종의 자업자득이요 인과응보였던 셈이다.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중생구제의 푯대를 굳건히 세웠던들 불교에 대해 실망할 일이 무엇이었을 것이며, 수많은 지식인들이 사상적으로 방황할 때 철저한 수행을 통해 사상적 지표를 제시했다면 어찌 지식인들의 비판에 직면하였을 것인가. 시대가 흐르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살펴 깨달음을 추구하는 한편 중생들의 삶을 자비로 살폈더라면 불교의 타락은 없었을 것이다."(35쪽)
오늘날에도 종교계의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16세기 때와 마찬가지로 가짜 수행자, 사이비 선지식, 가사 입은 도적, 까까머리 장사치가 여전히 판을 친다. 말법시대의 징후라고 마냥 보아 넘길 수 만은 없다. 휴정이 말한 '말세우학'(末世愚學:말세의 어리석은 학인)의 행태를 21세기의 사이비 종교인들이 자행하고 있다. "말법시대의 비구들은 박쥐 중, 벙어리 양 중, 까까머리 거사, 지옥 찌꺼기, 가사 입은 도적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아! 이는 그럴 만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230쪽) "배움이 아직 도(道)에 이르지 않았는데 보고 들은 것을 자랑하고, 다만 입으로 이익을 말하는 것을 가지고 서로 이기려 한다면, 이는 변소에 단청을 하는 것과 같다."(229쪽) 비록 참담한 말학시대이지만 올바른 수행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휴정은 『선가귀감』을 찬술했다. 『선가귀감』은 휴정이 50여 종의 불교 경전과 어록에서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절들을 뽑고 여기에 주해, 송과 평을 단 책이다. 휴정은 서문에서 스스로를 '백화도인'이라 했는데 『선가귀감』이 1564년(명종19) 금강산 백화암에서 찬술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휴정의 나이 45세.이 책은 선정을 근본으로 하지만 참선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간경, 염불, 주력 등 불교수행의 전반적 지침을 모두 담고 있다.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는 말씀처럼, 휴정은 선을 중심으로 불교 일반을 융합하려는 회통불교의 사상을 지향했다. "부처님의 삼처전심은 선지가 되었고 평생토록 설법한 것은 교문이 되었다." 삼처전심이란 다자탑전반분좌, 영산회상거염화, 쌍수하곽시쌍부의 세 가지 고사를 말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는 방식으로 가섭이 석가모니에게서 법의 등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핵심이다. 대개 가섭을 선학의 출발로 삼고, 아난을 교학의 출발로 삼는다. 즉 선과 교의 근원은 석가모니이고, 선과 교의 분파는 가섭과 아난이다. 휴정의 특징은 선학, 교학, 염불을 모두 수행의 체계 안으로 포섭하여 수행자 자신의 근기에 맞춰 열심히 정진케 하는 삼문수행에 있다. 휴정 이전에 선교양종과 함께 염불을 수행방식의 하나로 언급한 선지식으로 보조지눌과 나옹혜근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허균은 청허당집 서문에서 목우(보조지눌)와 강월(나옹혜근)을 휴정과 유정의 법맥으로 서술하지만, 20년이 채 안 되어 편양언기(鞭羊彥機,1581-1644)가 휴정의 법맥을 새로이 정립하게 된다. 이때는 지눌과 나옹이 빠지고 태고보우를 적통으로 삼는 태고법통설이 확립된다. 휴정이 자신의 법맥을 직접 언급한 텍스트는 「삼로행적」인데, 자신에게 불법의 요체를 전해준 세 분의 스승, 벽송지엄(碧松智嚴), 부용영관(芙蓉靈觀), 경성일선(敬聖一禪)의 행장을 정리한 글이다. 법계에 대한 조계종의 입장은 '석옥청공ㅡ태고보우ㅡ환암혼수ㅡ구곡각운ㅡ벽계정심ㅡ벽송지엄ㅡ부용영관ㅡ청허휴정ㅡ편양언기'로 본다.
휴정이 『선가귀감』을 편찬하면서 적극 참고한 서적은 대혜종고(1089-1163)의 『서장』이다. 본문에 10회나 등장한다. 『서장』은 송나라 때의 선사인 종고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2명과 주고받은 편지 62편을 모은 책으로, 일상선과 간화선을 강조한다. 또 자주 인용된 저작은 황벽희운의 『전심법요』와 임제의현의 『임제록』이다. 각각 5회의 인용횟수를 보이는데, 이는 황벽-임제로 이어지는 임제종의 전통을 중시한 휴정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외에도 선가의 필독서인 『전등록』12회, 『능엄경』7회, 『치문경훈』9회, 규봉종밀의『선원제전집도서』5회, 『원각경』4회 등이 있다.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세 가지 요소를 갖추고 참선을 해야 한다. 자성을 보고 반드시 깨칠 수 있다는 믿음인 대신근(大信根), 깨달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인 대분지(大憤志), 화두를 철저히 의심하는 자세인 대의정(大疑情)이다. 고봉원묘는 이렇게 말한다. "수미산처럼 당당하게 흔들리지 않는 큰 믿음,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만나서 단칼에 잘라 버리겠다는 큰 분발, 캄캄한 곳에서 어떤 것이라도 분명하게 그러내고야 말겠다는 큰 의심."
"휴정이 여러 선 수행 방법 중에서도 간화선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이전의 수행이 조사선 혹은 묵조선의 전통을 중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교는 불교를 비판하면서 늘 공적(空寂)함에 빠져서 실제로는 어떤 현실적 영향력도 없다고 하였다. 허무적멸(虛無寂滅)의 무리라고 승려를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교의 수행에 무지한 유학자들이기 때문에 조사선이든 간화선이든 그저 가만히 앉아서 허무함에 빠져 버리는 것으로 파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관(觀)한다는 차원에서 묵묵히 앉아 있다가 오히려 어떤 지혜도 나지 않는 적멸의 경계에 빠진다면 수행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경전을 읽으면서 거기에 얽매이고 뒤섞여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15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