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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기 19주차에 지두환 저자님의 책 <숙종대왕과 친인척 - 지두환>을 읽고 독후감을 남겼으며, 20기 26주차에는 <숙종대왕자료집> 셋째 권에 대한 독후감을 쓴 적 있습니다. 숙종은 그 전대에 왕실의 정통성이 휘청거리거나, 강력한 사림(그 중에서도 서인 노론)의 발호를 상당 부분 억누르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먼 과거에 벌어졌던 여러 정변에 대한 논란을 적정선에서 정리, 타협하고 넘어간 공이 있습니다.
속종 초에 능양군(...)의 손자인 복선군이 동지사로 청에 건너가 강희제를 알현했는데 이 자리에서 천자가 "너희 나라는 군약신강이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하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정반대의 생각을 해 왔습니다. 확실히 그전까지의 상황에 대해서는 맞는 말입니다만, 오히려 지금 이 숙종, 영조, 정조의 치세에는 반대로 왕권이 더 강했습니다. 그랬기에 숙종과 영조 사이의 경종 대에 노론 4대신의 목숨을 모조리 날리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이것 때문에 경종이 암살당한 것 아니냐는 일부의 추측은 근거가 부족합니다.
숙종 연간에는 지금 이 책에서 보는 대로 뭔가 약간 어수선하던 왕실 족보를 확실한 기준 하에 정리하는 등, 그간 흔들렸던 왕실의 권위를 다잡는 면모가 돋보이는 여러 업적을 남겼습니다. 족보 정리가 무슨 업적이냐는 현대의 반론은, 이 무렵의 정치 원리나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현종 연간의 예송 역시 민간의 보학과 경전 이해가 왕실의 그것을 압도한다는 사림의 자신감에서 비롯한 건데(왕실은 정작 제껴 두고 노론과 남인이 크게 한판 붙음) 이런 숙종의 노력 이후로는 그런 현학적인 논쟁의 빈도가 부쩍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이런 작업의 의의는 단순히 논쟁이 잦아들었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2차에 걸친 현종 연간의 예송에서 노론과 남인은 무승부에 그쳤지만, 남인이 설령 최종의 승리를 거뒀다고 해도 왕실의 권위가 높아졌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리 되었다면, 왕실은 내내 후원자을 자처하는 남인에 끌려 가야 했을 터입니다. 영리한 숙종은 이를 내다보고 기사환국에서 한 번 남인을 봐 준 후, 5년 후 이어진 갑술환국에서 거의 최종적으로 남인을 제거한 것입니다. 이는 세간에 알려진 대로 무슨 여인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왕실을 옹호한다는 구실로 오히려 레드 라인을 넘어버린 무리수를 둔 남인에 대한 단호한 징치였던 것입니다. 정치가 뭔 장난도 아니고 무슨 여자에 대한 변덕 때문에 피의 숙청을 벌였겠습니까.
영빈 김씨는 안동 김문에서 파견한, 아주 노련한 서인 측의 궁정 스파이에 가까웠는데 이분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것도 역시 어떤 선을 넘었기에 숙종이 특정 정파에다 대고 경고를 보낸 것입니다. 태종 이방원이 자신의 처가를 쓸어버린 것과 그 맥락이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영빈 김씨 역을 맡은 배우들은 (이제는 영화 기생충 때문에 너무도 유명해진) 조 모 씨이며, 1980년대 후반의 드라마 <인현왕후>에서는 개성적인 연기자 차주옥 씨가 열연했습니다. 대개 평면적인 악역으로 나오는데 사실 재조명이 필요한 인물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