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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떠한 비판적 사고도 거치지 않고 단순히 마음을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책을 만났다. <담장을 허물다>는 공광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전체 3부, 각 15편씩 모두 45편의 시가 실려 있다. 45편의 시는 각각의 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 사람이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며 생각하고 느낀 것을 풀어 쓴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처럼 보인다. 1부에서는 자연을 거닐 때, 2부에서는 고향과 도시를 오갈 때, 3부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간 후를 다룬다. 시인은 주변을 돌아보며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그 아름다움에서 자신의 가슴 속에 간직하던 사랑을 떠올리기도 하고, 가족이 그립다고 말하기도 하고, 세상 사는 이치, 우주의 섭리를 깨닫기도 한다. 내가 이 시집을 알게 된 것은 재작년 가을이었다. 노랗게 변한 은행나무잎을 보고 지은 시, '별 닦는 나무'를 읽고 얼마나 가슴 떨렸던가.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 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 '별 닦는 나무' 전문, 10쪽 이 시를 읽다보면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지만, 더욱 사랑하고 싶어진다. 정성껏 별을 닦듯이 나도 내가 사랑하는 이를 더 곱게, 귀하게 대하고 싶다. 이런 사랑에의 욕구는 '나는 너에게 부서지고 가열될 때만 금광석이 된다는 것'('금광석', 70쪽)을 알아주면 더욱 증폭된다. <담장을 허물다> 의 사랑시는 순애보이면서도, 거침이 없다. 그래서 애절하기보다는 기분좋게 웃을 수 있다. 넓은 평야에 쌓인 눈을 보고 너라는 크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려다가 말았다는 시, '너라는 문장'을 읽어 본다. 경지정리가 잘된 수백만평 평야를 흰 눈이 표백하여 한장 원고지를 만들었다 저렇게 크고 깨끗한 원고지를 창밖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깊고 아름다울 문장을 생각했다 강가에 나가 갈대 수천그루를 깎아 펜을 만들어 까만 밤을 강물에 가두어 먹물로 쓰려 했으나 너라는 크고 아름다운 문장을 읽을 만한 사람이 나 말고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아서 저 벌판의 깨끗한 눈도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결심하였다. -'너라는 문장을' 중에서, 16~17쪽 엄청난 크기의 사랑에 이거 다 허세인가 싶으면서도, 이 세상에 나 말고는 너를 읽을 사람이 없다는 자신만만함에 웃음이 나면서도, 곧 사라져버릴 눈 위에 자신의 사랑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눈 오는 날 사랑을 고백받는다면, 이 시를 듣고 싶다. 지금까지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담장을 허물다>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시는 자연에 관한 것이다. 표제작인 <담장을 허물다>는 우리집 담장을 허물어, 텃밭을 정원으로 과수원을 마당을 삼고, 산과 하늘마저 내 것처럼 즐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담장을 허물다' 중에서, 30~32쪽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별을 막으려는 시인의 도인스러운 호방함은 그림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김슬기 작가가 그림을 그린 바우솔 출판사의 <담장을 허물다>는 판화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선명한 채색과 하얀 바탕이 깔끔하다.
주인공이 아이와 함께 있는 것으로 그린 점이 마음에 든다. 시인 혼자 빈집에 있었다면 기인으로 느껴질 법도 하고 쓸쓸하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린 아이가 실컷 자연 속에서 뛰놀고 이것저것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새싹이 움트고 멧돼지와 토끼가 노다니는 모습만큼이나 생명력이 넘친다. <담장을 허물다>에는 버릴 시가 없다. 직접 보고 쓰지 않았다면 표현할 수 없는 물푸레나무, 금낭화, 이팝나무 등에 대한 묘사는 그림을 보는 것 같아서 눈이 즐겁다. 사람 먹이느라 내 새끼는 먹이지 못하는 염소의 이야기('염소 브라자', 22쪽)를 읽을 때나 만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첫눈과 함께 눈물에 말아 먹는 장면('첫눈', 50~51쪽)에서는 가슴이 막히고 아파온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있다는 구절('속 빈 것들', 63쪽)을 읽을 때는 나 역시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비워야겠다고, 그래서 아름다워져야겠다고 반성하게 된다. 홀딱 반한 나머지, 이성적 판단은 뒤로 미루고 순수하게 즐기고 미소짓고 따뜻하게 읽기만 한 <담장을 허물다>. 그러나 문학이란 그런 즐거움에 읽는 게 아닌가. 올 겨울, 나를 새로이 다짐하게 한 시를 남기며 글을 마친다. 세상에 사람과 집이 하도 많아서 하느님께서 모두 들르시기가 어려운지라 특별히 추운 겨울에는 거실 깊숙이 햇살을 넣어주시는데 베란다 화초를 반짝반짝 만지시고 난초 잎에 앉아 휘청 몸무게를 재어보시고 기어가는 쌀벌레 옆구리를 간지럼 태워 데굴데굴 구르게 하시고 의자에 걸터앉아 책상도 환하게 만지시고 컴퓨터와 펼친 책을 자상하게 훑어보시고는 연필을 쥐고 백지에 사각사각 무슨 말씀을 써보려고 하시는지라 나는 그것이 궁금하여 귀를 세우고 거실 바닥에 누웠는데 햇살도 함께 누워서 볼과 코와 이마를 만져주는데 아! 따뜻한 햇살의 체온 때문에 나는 거실에 누운 까닭을 잊고 한참이나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햇살이 쓰시려고 했던 말씀이 생각나는지라 "광규야, 따뜻한 사람이 되어라" -'햇살의 말씀' 전문, 66~6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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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담장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소유욕, 편견, 물질만능주의 같은 담장 말이죠. 하지만 그 담장을 허물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요? 공광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담장을 허물다』**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깊은 사색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집은 등단 이후 줄곧 사회 비판적인 시를 써온 시인이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내면의 성찰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듯이”, 우리 삶 역시 비우고 나눔으로써 더욱 따뜻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표제작 「담장을 허물다」에서 시골집 담장을 허물자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처럼, 그는 소유의 개념을 넘어선 넉넉한 마음으로 큰 고을의 영주가 됩니다. 또한 시인은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놓지 않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신과 고단한 삶을 함께해온 아내를 향한 시인의 마음은 독자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전합니다. 특히 "손가락 마디가 염주알이 되었다"는 표현은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내의 삶을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이 시집은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죽음'마저도 "자연이 박아넣는 은입사구름 문양 공예품"이라고 노래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뭅니다. 이렇듯 사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찾아내는 그의 시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삶의 담장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담장을 허물다』**를 읽으며 당신의 마음속 담장을 허물어보는 건 어떨까요? 시인이 발견한 희망의 언어가 당신의 삶을 더욱 따스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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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거칠고 직설적이지만 그럼으로써 독자들에게 더욱 깊게 다가오는 시들이 잇습니다. 사실 묘사라는 것이 사물을 빙빙 돌려서 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직설적인 표현과 묘사의 절묘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은 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담장을 허물다는 공광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입니다. 시인의 시들은 마치 꽉 막힌 배수구를 뚫어주는 배관공과 같은 시원한 느낌을 주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직설적이면서도 거칠게 대상을 표현하고 그러면서도 따스한 손길로 보듬어주는 절묘한 균형 감각이 무척 현실적으로 와 닿는 작품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집도 공광규 시인의 그런 시작법이 잘 드러난 작품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험한 말솜씨를 보이고 있지만 잘 바라보고 있으면 그 거친 언어들 속에서 마치 작은 새싹과 같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대적인 감각을 한껏 살려 작품을 쓰고 있음에도 공광규 시인의 시들에서는 바싹 마른 현대의 공기를 맡을 수 없으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도시적인 작품들도 현대 시단에서는 필요한 작품 군이 아닌가 생각하며 무척 즐겁게 흥미롭게 시편들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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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인의 간결하고 단아한 시편들이 삶의 그늘 속에 희망의 언어를 지피며 따뜻한 감동과 깊은 공감을 줍니다. ‘2013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이자 표제작 「담장을 허물다」를 비롯하여 진솔한 삶의 체험 속에서 일구어낸 4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가 좋은 시들로만 채워져 있네요. 쉬운 언어, 누구나 경험하는 일상에서 건져올린 시들로 채워져 감동이 커지는, 그래서 제가 무척 아끼는 시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