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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가지고만 본다면 일종의 야사(野史)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야사라기보다는 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를 더 깊이 파헤쳐 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과거에 알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의 책들을 근거로 해서 좀 더 깊이 그리고 더 알기 쉽게 그 사건이 일어난 배경을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해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의 다양한 면을 바라볼 수 있고 또한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을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봄으로써 이 시대를 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총 4부로 이어져 있는데, 1부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에서는 오늘날과 전혀 다른 과거지만 오늘날과 별반 다를바 없는 사람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문명이 발달했다고 하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성이나 모습을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모든 권력은 돈으로부터” 라는 장은 유럽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자본이 권력과 종교마저도 삼켜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부자들은 영생과 현세의 물질 둘다 포기할 수 없었고, 이런 심리들을 종교지도자들은 교묘히 이용하였고 부자들이 현재의 삶을 누리게 하되 죽을 때에 재산을 교회건축이나 종교단체에 기부하게 함으로써 영생도 누릴 수 있도록 타협하게 했고, 그 결과 교회의 재산은 불어날 수 밖에 없었고,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돈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음을 보여주는 장이라 할 수 있다. 2부 위험한 기독교 역사에서는 서구 중심에 사로 잡혀 있던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만드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특별히 잘못된 신학 사상과 사람들의 무지가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 등에 대해서 우리는 긍정적으로 공부를 해 왔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원주민이 무참히 학살되고 노예로 전락해 온 것을 지적함으로써 역사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무지한 사람들을 자극하여 죄없는 사람들을 마녀사냥으로 몰아감으로써 여자들을 학살하고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학살한 장면들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성경을 바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고 교회가 진정으로 선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3부 거꾸로 보는 기독교 역사에서는 당연시 여기는 기독교의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기독교 역사에서는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으로 인해 기독교가 로마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을 비중 있게 다루는 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콘스탄티누스가 과연 진짜로 기독교인이었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여러가지 자료들을 제시한다. 또한 성인들은 우리가 신앙적으로 위대한 일을 했기에 추앙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느정도 허구와 과장이 있음을 밝히면서 성인들은 비범하기 보다는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영웅적인 덕행의 수준까지 노력한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루터가 95개조 반반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못 박으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은 오독이 부른 오해이고 사실이 아님을 저자는 밝힌다. 마지막으로 4부 궁금한 기독교 역사에서는 우리가 궁금하게 여길만한 것들을 이야기 해 준다. 루터의 스캔들에서는 신부였던 그가 종교개혁을 하면서도 어떻게 누구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또한 커피와 와인의 싸움에서는 커피가 이슬람의 상징이고 와인이 기독교의 상징인 것과 그 이유를 설명해 줌으로써 우리가 잘 몰랐던 소식들을 전해준다. 사실 내용상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을 다 찾아보려면 역사책을 몇권이나 읽어야 하지만 저자의 노력을 한권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저자는 이 책을 처음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면서 산책하듯이 기독교의 역사를 돌아보도록 내용을 구성했다.” 이 말처럼 역사책이지만 정독을 하면서 연구하듯이 읽는 것이 아니라 여유롭게 책을 들여다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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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벌써 100년이 지났다. 기독교가 지난 100년의 세월을 통해 한국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종교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서학으로 지칭되는 서양의 문화로써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조선시대에는 개화세력으로써, 일제시대에는 독립 세력으로 우리역사 곳곳에 기독교의 영향력이 두루 미쳐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기독교는 신앙의 절대성을 넘어 그 문화마저도 미화되어 절대시 되어 가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나머지 문화는 예수를 표현하고 담기위한 그릇일 뿐이다. 그러나 그릇을 다루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곡해하는 것은 물론, 그릇을 통해 진리마저 훼손하여 맹목적 신앙인들을 만들어 내어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는 우리가 얼마나 편협한 사관에 휩싸여 있는가를 다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다. 거룩하지 못했던 십자군 전쟁, 노예제도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인정했던 수많은 신학자들과 신부들... 특히 원주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노예화 했던 복음을 든 정복자들의 행태를 보면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선교사들을 앞세운 채 제대로 무장하지 않은 원주민들을 살육했다. 전투를 개시하는 방식은 대체로 이랬다. 먼저, 군대는 원주민들과 전투를 치르기에 앞서 기독교의 신앙을 요약한 글을 스페인어로 크게 읽었다. 그런 행동에 대해서 원주민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일방적이지만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병사들은 원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면서도 거리낌은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예수를 모르니 지옥에나 가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통과 불관용을 기독교의 대표적인 독선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만한 것이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타종교의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의 불관용을 지적하는 사람도 사실 어떤 의미에선 가면을 쓰고 기독교 자체를 불관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은 느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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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현재를 지나면 과거가 되면 과거는 나의 삶의 흔적이다. 흔적을 돌이킨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의 흔적은 오늘을 있게 한다. 또한 현재의 결과는 과거를 낳게 된다.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것을 회고하기를 원한다. 역사도 그래서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만날 수 없지만 현재를 낳게 했으면 현재는 과거를 낳게 된다. 함께 가는 것이다.
본서는 기독교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어떤 사상이나 인물, 종파에 쏠리지 않고,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고자 함도 아니며 단지 여유롭게 역사를 보고자 구성했다고 한다. 저자는 역사라는 세계를 안방의 세계처럼 쉽게 접근하고자 했다. 역사를 사회적, 정치적, 논리속에서 형성된 산물에서 뛰어넘어 누구나 겪게 된 과거의 모습임을 보게 된다.
그렇지만 본서를 읽어보면 기독교의 역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기록된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기득권의 산물, 이긴자의 산물, 산자의 산물이라고 한다. 평민과 천민들의 역사는 우리가 보기 어렵다. 왕가의 역사가 조선실록이다. 조선왕조들의 세계를 통해 역사를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는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지만 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계속 반복되어진다. 반복된 역사를 바라보면 시대적 흐름을 알 수 있다. 마치 유행처럼 역사의 흐름이 반복된다는 것은 신기하기까지 한다. 저자는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를 말하고 있다. 중세시대의 현상이 오늘의 현상과 흡사하다. 기독교의 변질과 기득권에 대한 작용도 오늘날과 비슷하다. 기독교가 사회적 문제를 양상하는 것은 시대발전과 함께 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우려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는 만민의 종교여야 한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특정인의 종교로만 치부되어지고 있다. 거꾸로 가는 기독교의 현실을 기독교 역사에서도 찾게 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진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다. 정복의 역사이다. 패권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를 뒤집어 쓴 탈의 모습인 것이다.
본서를 통해 새로운 기독교 역사적 관점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보다는 기독교 역사에 대한 개론적 지식을 다시 확인한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그렇지만 기독교 역사는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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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며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일어났던 사실들이 남겨진 흔적이라 할수있다. 역사속의 시점에 벌어졌던 사건사고가 반드시 과거에만 국한된것이 아니라 오늘날 생활속에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속에서 다람쥐쳇바퀴 처럼 반복되이 일어날수 있다는것은 실로 아이러니하다고 볼수있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역사를 생각할때 기독교문화가 뒷배경에 깔려있어서인지 역사속의 기독교그림,건축물,음악같은 경우에는 거룩한 느낌까지 느끼게도 하였다. 루터나 콘스탄틴누스,앙리4세 성경속의 노아나 마리아와 같은 인물들에게 기존의 다양한 해석으로 저마다 존경심에서 신성시에 이르렀던 점들을 시대상황적,인간적인 면을 들어 어렵지않게 흥미를 돋우어 역사의 이해를 갖게해주었다. 이처럼 인간사에서 생긴 유산들로 선입관을 갖은채 종교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문제를, 예전에 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역사를 저술하셨던 서울신학대학교의 유재덕교수님은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라는 저서를 통하여 뜻밖의 사실로 반전감을 느끼게 하여 편견속의 기독교역사를 재인식케 하여주었다. 이책은 모두 4부로 우리가 살아가는데 보여지거나 얼마든지 시사화될수있는 점들이 중세시대를 통하여 기독교역사가운데 있음을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역사라는 1부에서 보여주고 거룩과 성스러움과는 사뭇 다른모습으로 인간군상속의 면모를 위험한 기독교역사라는 2부를 통하여 말해주고 있다. 또한 성서와 역사에 대한 막연한 생각에서 발견될수 있는 사실들을 보여주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에 why? 라는 의문점을 가지게 하여 무심코 지나칠수 있는 기독교역사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하는 계기를, 거꾸로 보는 기독교역사라는 3부와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을 막론하고 역사라는 무거운 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궁금해 할수있는 점을 4부 궁금한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제공해 주도록 편제되어 있었다. 오랜시간동안 신앙생활과 역사지식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문제의식과 보편적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자칫 성경에 대한 오해를 가져올수 있음을 기독교역사를 통하여 보게되는 시간이었다. 독자들로 하여금 기존관념을 깨뜨리는 내용이 많았기에 자칫 혼란스러울수도 있었으나 책내용이 매듭짓거나 구성상 코너에 박스와 참고문헌을 밝혀주어 신뢰감과 이해를 돕도록 하여 기독교역사를 바라보는 시야가 거시적으로 될수있게 해주기에 두루 권하고 싶은 서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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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현재를 변화시키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놀라운 작업이다. 역사를 공부하지 않고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현재도 내일도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지금까지 잘 발견하지 못한 기독교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기독교의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오늘과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매우 뜻 깊은 시간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와 감추어진 역사 모두를 알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과 내일을 더 나은 모습으로 더 발전된 형식으로 가꾸어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이미 완성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숨겨진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서 하나하나 배우게 되고 알아가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이 표면적으로 등장하는 것 배후에는 언제나 동기와 원인이 있고 배후세력을 통해서 현실세계에 나타나는 과정이 바로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면에 나타난 것들 보다는 오히려 더 숨겨진 의미들을 파악하는 것이 역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이 책 가운데 의미 있는 내용은 바로 거꾸로 보는 기독교 역사라는 부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내용이 이 책에서 뒤집어지게 된다. 우리가 이미 진리(?)라고 믿었던 부분도 사실은 객관적인 역사의 고증 앞에서 상당한 내용에 교정을 받아야 한다고 이 책은 설명해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역사가운데 여성이 부당하게 대우받는 글을 읽으면서 오히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학대하고 여성을 짓밟는 역사가 바로 기독교의 역사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른 성경의 내용, 바른 진리의 내용이 전해질 때 여권이 신장되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공평하게 대우받고 사랑받는 일들이 역사가운데 일어나게 되었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위대한 것은 바로 중세 암흑과 같이 진리가 오염된 가운데 하나님께서 바른 말씀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어서 왜곡된 진리가 바로잡혀지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루터가 받았던 오해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의 가르침이 낮은 계층에 저변으로 확대되어 위로는 군주들과 왕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고 아래로는 수많은 저변의 사람들이 종교개혁을 부르짖게 만드는 일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이 책은 설명해주고 있다.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야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시대에 잘못된 가르침 또는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들을 말씀가운데 바로세울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향한 자들을 오늘도 찾고 계신다.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가운데 세워주신 자들의 삶을 배우며 오늘과 내일을 주님께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자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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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앙의 역사가 바로 기독교의 역사이며 인류의 역사가 기독교의 역사 속에 담겨져 있다고 언젠가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신앙인으로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마음껏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을 키우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성경도 바로 역사 속에서 헌신하고 투쟁하며 이겨낸 루터와 여러 선각자들의 목숨을 건 열매임도 알게 되고 또 인류의 반이 여성임에도 여성은 사람취급도 못 받던 시대의 역사도 알게 됨은 충격이기도 하다. 십자군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조직으로 살생하며 무자비한 피를 뿌리던 역사에서는 가슴이 저려오기도 함은 올바른 신앙이, 성경대로의 신앙이 참으로 중요함을 알게 된다. 시대를 거쳐 오면서 시대와 적당히 타협하며 계시된 성경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버리고 억지 해석을 하면서 말씀을 오염시키며 선량한 성도들을 현혹시키는 이단의 탄생 역사도 알게 된다. 책의 네 가지의 파트마다 읽어가면서 어느 순간 기독교의 역사를 배우고 올바른 신앙이 정말 중요함도 깨우치게 된다. 1부에서는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에서 음악의 발전사와 종교개혁, 화장술의 부활까지 다양한 역사를 배우고 2부에서 노예제도와 사형제도 등 성경을 왜곡하여 권력의 수단으로 삼았던 역사속의 권력자들의 속샘을 보게 된다. 3부, 4부에서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와 커피와 와인의 싸움 등은 읽어가면서 인류사의 역사공부도 하게 되어 상식으로 나를 채우게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 한권의 책이라도 읽어서 과연 우리의 신앙의 역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들고 다니는 성경을 얻기 까지 종교개혁자들의 헌신이 무엇인지를 알고 왜 우리의 신앙은 타협이 없고 유일하신 주 하나님만 섬기며 예배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아 세상과 타협 하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을 증거하며 이웃을 섬기며 예수님의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는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책은 우리 신앙인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고 감히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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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렵다는 편견이 있다. 역사를 읽을 때 연대와 순서와 어려운 이름들을 볼 때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함께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나 또한 기독교 역사가 중요함을 앎에도 불구하고 거의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역사를 조금 더 가까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역사속에 해답이 있고, 길이 있고, 역사를 보면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역사는 딱딱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 가까이 두고 즐겨 읽지는 않는다. 이런 어려움들을 알기에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의 저자도 역사를 다룬 저서는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 역시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역사적 교훈까지 함께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이 책을 통해서 제공해 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는 역사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특정 사건 하나 하나를 미시적인 접근을 통해서 독자들의 흥미와 역사가 가진 의미를 깨닫게 해 주고 있다. 대부분 역사는 시대순으로 기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숨어 있던 기독교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기독교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함께 재미를 선사해 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 위험한 기독교 역사, 거꾸로 보는 기독교 역사, 궁금한 기독교 역사이다. 이런 목차만 봐도 읽어보고 싶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사의 딱딱함이 아니라 흥미진진한 역사의 이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가 겉으로 드러나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역사의 내용과 그 역사와 관계된 숨겨져 있던 모든 가능성들을 통해서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돋보이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역사를 알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만들고, 역사를 더 깊이 볼게 함으로 역사가 전달해 주고자 하는 교훈과 의미를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는 방대한 참고문헌을 통해서 저술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단편적이고,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아는 것이 힘이고, 그 역사를 통해서 왜곡된 역사가 아니라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함으로 바른 역사관을 갖게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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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를 읽고 어디를 가든지 간에 십자가가 세워진 교회를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기독교의 모습이라는 생각이다. 정말 믿음과 소망, 사랑이 생활 속에 충만 하는 그런 삶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사람들도 한시 빨리 우리 예수님을 만나서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로 이어졌으면 한다. 내 자신은 아직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해서인지 교회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권유하는대도 아직 마음이 딱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고려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관련 있는 행사에도 참석을 하고, 관련 책도 읽곤 한다. 사람이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만큼 보게 된다는 말과 같이 이런 기회를 갖다 보면 더 가까워지리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해보고 있다. 여러 교과 중에서 역사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학창 시절에도 점수가 비교적 가장 잘 나오는 과목이기도 하였다. 말 그대로 역사는 오늘이 있게 한 바로 근본 바탕이기 때문에 역사를 확실하게 알고, 그것을 교훈 삼는다면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의 모습도 훨씬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개되리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일반 사람들도 아주 유용하게 대하고 공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공부했던 시간이 오래 세월동안 지나오면서 가물거리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되새김과 함게 새롭게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기독교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은 다시 한 번 기독교는 물론이고 새로우면서도 지혜롭게 역사적 안목을 갖출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역시 공부는 나이와 관계없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 시간도 되었다. 막연한 추억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면서 부족했던 내 자신을 다시 채워주는 계기도 되어 아주 유용한 독서시간이었다. 정말 세계의 역사는 기독교 관련 내용을 빼놓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해냈다는 사실과 함께 다시 한 번 세계사 속에서의 기독교의 역할과 진실 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흠잡을 데 없는 한국 최고의 기독교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반성과 함께 도약하는 계기로 삼는 데에도 이 책이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튼튼한 역사 인식 속에서 강건한 모습으로 모든 분야를 주도할 수 있는 그런 기독교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오래 만에 기독교에 대한 세계사 속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기독교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함께 더 발전해 나가리라는 느낌을 받은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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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표현했다. 이렇듯 역사는 인류가 쌓아온 온갖 지혜와 지식,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의 기록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진정한 고찰 없이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우리는 수많은 방법으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라는 방대함 앞에서 누구나 머뭇거리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기독교역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란 사건과 연대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나는 이번에 <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기독교 역사>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기독교 2000년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는 사회의 리더로서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19세기 말 조선에서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이 시작된 이후 한국 개신교는 세계의 주목을 끌만큼 놀랍게 성장해왔다. 오늘날 4명중에서 1명은 개신교 신자일 정도로 한국 개신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왔다. 1884년 미국 북감리회의 맥클레이는 고종을 만나 병원설립과 학교설립에 대한 허가를 받아 병원과 학교를 설립했다. 이 책은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과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이며 기독교교육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는 유재덕 교수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숨어 있는 기독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오늘날과 비슷한 기독교 역사’에서는 과거의 일들을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본다. 2부 ‘위험한 기독교 역사’에서는 기독교의 크고 작은 역사적 오류들을 검토한다. 3부 ‘거꾸로 보는 기독교 역사’에서는 우리가 가진 역사적 상식을 뒤집어본다. 4부 ‘궁금한 기독교 역사’에서는 평소에 알고 싶었던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이 책은 신학생들은 물론 일반 기도교인들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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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 자신이 흥분과 경이로움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지금의 이땅에 있기까지 우리가 교회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를 드리기까지 얼마나 전쟁과 죽음 권력 싸움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어갔는가 생각을 해보니 내 마음이 흥분이 되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기독교역사가 100년 조금 넘은 이 시대의 한 사람으로 카톨릭에서 나와 오직 믿음을 외치면서 마틴루터는 이땅에 개신교를 뿌리 내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는 너무나 부패하였고 종교개혁자 마틴루터가 지금 이땅을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때 제사장같은 우리 종교인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권력싸움과 명예 부귀로 인하여 영적인 눈이 가리워 졌고 오직 부와 명예를 지키기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세상을 너무나 많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12제자를 통하여 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다시오시겠다는 약속을 남기시고 이 땅에서 떠나셨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 나라의 경우를 비춰본다면 일제시대에 당신의 우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하여 주기철 목사님은 일사각오의 믿음으로 굳건한 믿음을 지켜 나갈수 있었고 안이숙사모님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순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진정한 복음을 설교하는 교회는 사리진 상태이고 오직 양들의 머리숫자로 목회자는 장사를 하고 교회를 매매하고 설교는 세상의 강의와는 다를 것이 없는 설교를 강단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정말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복음에 대한 설교를 듣고 싶으나 이 세상에는 너무나 이런 설교를 찾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대접받고 섬김을 받고 싶어 목회자가 된 사람도 있고 인기에 영합하여 강단에서 코메디와 같은 설교를 하는것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너무나 신앙의 선배님과 순교하신 많은 목사님들에게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책을 읽어 나감으로 다시한번 내 신앙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고 그 옛날 기독교가 어떻게 탄생되고 어떻게 진행되어 져왔는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어떤 내용보다 저는 왜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지금은 왜 주일날예배를 드리고 지키는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이교도의 태양절을 주님의 부활절이 주일이라하여 이교도를 섬기는 날이 주일날이 되었다고 하여 너무나 기막히고 놀랐습니다. 그것도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기 위해서 카톨릭에서 주관을 하고 카톨릭에서 먼저 조장하고 법령을 만들어 나가 결국은 지금 현실에는 주일날이 안식일인것처럼 변질된 날에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어서 안식일이 회복되어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천년이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시금 카톨릭이 변질된 종교요 이방종교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카톨릭이나 개신교나 예배나 방식이 조금 다를뿐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으나 너무나 틀리고 음녀의 종교 타락한 종교라는 것을 깨닫게 됨에 따라 카톨릭 성도님들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고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이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진정한 기독교역사를 둘러볼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 되었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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