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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울음소리를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아이들의 소리가 동네를 뒤흔들 듯 생명체가 어우러져 지냈던 유년 시절의 마을은 현대 기계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점점 공동체가 와해되었다. 정이 메마르고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각박한 시대에 주민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던 마을이란 단어는 아련한 향수를 돋운다.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동생들을 불러 둑길을 뛰어다니며 놀던 기억이 난다.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며 비료 포대 썰매를 타느라 지치면서도 어스름 저녁이 되어서야 할머니가 부르면 집에 가던 기억이 있다. 한 아이가 다치면 먼저 본 사람이 나서서 아이의 상처 치료에 나섰고 힘든 일은 서로 도와주며 살아 마을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경쟁 구도로 변화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원을 전전하며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이 늘어났다. 흉흉한 사건 사고가 늘면서 이웃에 대한 경계는 더없이 늘어나는데다 사생활 존중을 외치며 이웃과는 담을 높게 두르고 살고 있어 삭막한 세상으로 변모했다.
『 마을의 귀환 』은 콘크리트 숲에 둘러싸인 각박한 도시 속에서 피로한 삶을 잇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도시공동체에 살며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서울과 영국 잉글랜드의 현장을 담은 1년여의 기록은 현안을 해결하며 공동체적 질서를 회복하여 가는 길의 가능성을 역설한다. 지역민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어 일상의 문제를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리며 질적인 발전을 이루며 사는 마을이 도시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생애주기 형 공동체, 에너지 자립 공동체, 대안개발 공동체, 아파트 공동체 등 마을 공동체의 다양한 종류와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은 총 2부로 나누어 구성이 되었다. 1부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서울의 마을공동체 17개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는다. 주거 중심 종합 공동체, 상업, 협동조합 공동체, 문화, 예술 공동체의 3개의 장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2부에서는 지속가능한 마을공동체의 사례로 영국의 혁신적 공동체 9곳을 지역 맞춤 공동체, 자산 소유 공동체의 2개의 장으로 나누어 자급자족에서 머물지 않고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를 준비하는 한국의 마을공동체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 대안을 모색하는데 도움을 준다.
공동체적 삶의 질서를 유지하며 상생하는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공동체’ ‘관계성’ ‘자발성’ ‘지속성’이 네 단어의 가치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공동체의 모태는 가정에서 시작되어 마을로 확대되어 지역사회를 이루는 근간으로 마을은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같은 경쟁 구도의 이기심이 팽배한 도시화의 급격한 진행은 인간적인 관계 파탄까지 야기할 수 있다.
관계성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지업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마을 구성원들끼리 서로 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지만 서로를 상호 존중하며 배울 수 있다. 관심사에 따른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동호회 활성화로 닫힌 마음을 여는 자발성과 지속성으로 마을공동체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민들에 자발적 참여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자각한 한 사람이 마을 공동체를 위해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서로 간의 정을 확인하며 공공의 선을 실현하는 마을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적 삶이 와해되고 만연한 이기심이 양산하는 사회 문제점들이 줄어들어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 생활에 따른 일자리 창출로 실업률이 줄어든다면 낙후된 지역사회도 살아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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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마을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아이가 온전히 자랄 수 있는 것일까?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에 앞서 ‘마을’이라는 개념자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 실제로 이 말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속담이다. 부족단위의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있어 이 말은 속담이라기보다 생활을 반영하는 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시대가 변해, 이전과 같이 함께 사냥하고 함께 육아를 하는 형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마을’단위의 부락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마을’은 멀게 느껴지는 단어가 아니었다. 옆 집 밥상에 어떤 반찬이 올라가고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꿰고 있는 밀접한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다수 존재했다. 그러나 도시가 개발 되고, 젊은층의 인구가 소수의 도심으로 유입되면서 ‘마을’도 함께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실제로 지방의 시골마을에는 노년층이 대부분이며, 곳곳에 빈집도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한 마을의 필요성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국내에서 ‘귀농’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1 귀농인구조사 결과 및 2012년 귀농귀촌 종합대책’에 따르면 2011년 도시지역에서 농어촌(읍·면 지역)으로 귀농·귀촌한 가구는 전년보다 158% 증가한 10,503가구(23,415명)으로 1만 가구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각 지방도시에서는 유입되는 귀농·귀촌인들을 붙잡으려 다양한 지원정책을 마련하고 있는 추세이다. 갑작스럽게 왜 이렇게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일까?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는 경쟁사회속에서 자신을 소진시키며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아보고자 새로운 삶의 터를 찾아떠나는 이유, 둘째도 마찬가지로 경쟁사회속 아이들이 겪게되는 정신적, 사회적 부담을 덜어주고 ‘참 교육’을 회복시키고자 귀농·귀촌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귀농하는 사람들이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고학력자들이라는 사실이다. 3040세대의 귀농 비율은 전체 64%로 다수를 차지한다. 이렇게 귀농한 사람들은 단순히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 협동 사업, 마을 체험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면서 재능을 기부할뿐만 아니라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쯤되면, ‘한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귀농인구는 아직도 증가추세이지만, 또다른 변화가 있다. 바로 도시에서도 ‘마을 공동체’건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임하면서 핵심공약으로 내건 사업 중 하나가 바로 ‘마을 공동체 지원사업’이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2개 마을 사업에 222억원을 투입하는 ‘2013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발표하고 시민을 대상으로 공모 접수를 받아 지원을 하는 형태를 이어가고 있다. <마을의 귀환>에서 바로 도심 속 마을공동체들이 소개된다. 콘크리트 숲 서울에서 ‘마을’이라니,,,어쩐지 마을의 개념이 더 생소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책을 통해 바라본 이들의 삶은 친숙함 그 자체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이웃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 했다. * <마을의 귀환>은 2012년 8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특별기획 ‘마을의 귀환’을 재구성하고 수정한 책이다.
2012년 한 해 동안 부모커뮤니티, 마을미디어, 마을북카페, 마을예술창작소 등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 사업 대상으로 선정된 마을 공동체만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서울시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운영하며 마을공동체 건립에 관한 상담, 교육, 지원사업 등을 안내하고 있는데, 이런 지원정책을 힘입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마을공동체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도심 속 마을공동체 인가? 강북구에 위치한 삼각산 재미난마을의 사무국장인 산나물(이 마을에서는 어른이든 아이든 서로 별명을 부른다)은 말한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사는 삶을 꿈꾼다는 이야기다. ‘재미난마을’도 처음에는 자녀 교육을 위해 시작된 공동체가 생활, 문화의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하나의 마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영화배우 고창석’씨도 마포구 성미산마을에 자리잡은 공동주텍에서 이웃들과 함께 거주하며 살고있다. 마을공동체는 공동거주의 형태에서 끝나지 않는다. 협동조합을 이용한 사업공동체, 새로운 문화의 창출을 위한 문화예술공동체 등 형태가 다양하다. 한때는 개인적으로 지역화, 생태도시와 같은 주제에 관심이 많았었다. 독일 프라이브루크의 생태도시와 일본과 쿠바의 수도 아바나의 도시농업, 미국 포클랜드의 자전거도시 등 지금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삶을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둑같았다. 각각의 주제가 굵직하고 많은 이야기거리를 담고 있어서 지금 이 글에서 다 논할 순 없지만, 핵심은 '사람들이 변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세상은 개인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최고가 되라고 외치지만 최고는 소수만 도달할 수 있는 자리이다, 개인의 가치판단에 따라 의견이 달라지기도 하겠지만, 지금 시대가 원하는 세상은 다시금 이웃과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살아있다'는 것을 공동체 안에서 느끼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한병철씨는 자신의 저서 <시간의 향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유를 주는 것은 해방이나 이탈이 아니라 편입과 소속이다.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상태는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롭다frei, 평화Friede, 친구Freund와 같은 표현의 인도게르만어 어원인 'fri'는 '사랑하다'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자유롭다는 것은 본래 '친구나 연인에게 속해 있는' 이라는 뜻이다 결국 참 자유는 질서안에, 관계안에 속해있을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마을공동체의 귀환은 이런 의미에서 시도해 볼 만한 시스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많고 과연,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각종 문제를 마을공동체가 어느정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재미난마을의 대표가 말했던 것과 같이 결국 사람이 정답이다. 한 아이를 공동체가 어떻게 온전하게 길러내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대안적인 삶을 꿈꾸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자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삶의 근원적인 문제로 질문을 하게 만든다. 분명한것은 지금 시대가 아이들에게, 또는 부모들에게,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인생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으며 그 안에서 참 된 가치를 고민하고 배워가는 것은 소중한 경험일 것이다, 마을 도서관, 대안 교육(환경, 에너지)을 통해서 다음 시대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마을'이 감당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나 시스템을 너무 맹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때 마을의 귀환이 진정한 행복의 귀한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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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와서 깜짝 놀란 것이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주민들끼리 적극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아주머니들끼리 목례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남학생이나 아저씨들까지도 안녕하세요, 안녕히 들어가세요, 말을 걸어주어서 처음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였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이 되어 낯을 가리던 나도 반갑게 인사하는 정도로 발전했다.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도시민의 생활에서 서로 인사하고 알아가는 것이 마을공동체로 가는 출발일 것이다. 『마을의 귀환』이라는 이 책에서는 서울과 영국의 모범적인 마을공동체를 방문하여 공동체적인 삶의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래도 영국보다는 우리나라, 그것도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사례들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 많은 공동체들이 육아와 교육의 문제를 풀기위해 시작되어 점차 에너지절약과 환경운동, 도서관, 문화활동 등으로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보았다. 현재 청년세대들의 주거문제가 심각하여 공동주거에 대한 움직임이 있지만 앞으로 베이비붐세대가 노인이 되면 노인들의 빈곤과 주거문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앞서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보곤 하는데 괜히 비싼 실버주택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마음맞는 사람들과 함께 마당이 있는 집에서 텃밭도 가꾸고 가사도 분담하며, 아플 때 서로 병간호도 해주면 자식세대에 부담주지 않는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책을 모아 소규모 도서관을 열어서 책에 관해 이야기도 나누고 정기적으로 재미난 영화도 상영하여 지역사회와도 소통하는 신나는 노인공동체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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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란 의미를 지녔다. 마을의 첫 번째 뜻은 물론 시골에서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란 뜻이다. ‘마을의 귀환’이란 책은 마을 공동체 만들기 프로젝트의 성과가 반영된 책이다. 귀환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며 나는 그것이 마을이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마을의 귀환은 이웃과의 단절, 무관심, 때로는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우리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에 과제를 일깨우는 제목이기도 하다. 책은 1, 2부로 구성되었다. 1부 마을, 콘크리트 도시에서 숨을 쉬다, 2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찾아서... 한 사연자는 “자본주의는 집단을 싫어하”지만 ‘마을은 뭉쳐야 살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마을의 지속가능성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말 역시 중요하게 전해졌다. 12년제 대안학교인 마포구의 성미산 마을이 내 관심을 특별히 끈다. 처음 나는 국가가 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안전 보장, 재난 예방, 상생의 모색 등을 하는 것에서 마을의 정체성을 찾았다. 물론 맞지만 공동체와 대안 학교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구체적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완화된 협동조합 창립 여건에 따라 여러 협동조합이 출범하는 가운데 내게는 특별히 번역 협동조합이 관심 있게 다가온다. 나는 대안 공동체, 협동조합, 기대와 과제를 함께 부여하는 마을이란 단어들을 보며 변화하는 우리의 시대상을 본다. 지금 우리의 세기(世紀)는 어느 시기보다 특별하게 변동성과 유동성이 두드러지는 시기이다. 공동체 마을 가운데는 에너지 공동체(에너지 자립 공동체)도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원전(原電) 줄이기 캠페인과 연결된다. 가정에서 매달 에너지를 10 ~ 12 퍼센트 아끼면 원전 하나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본문에는 에너지 절약의 여러 사례가 생생하게 나온다. 자전거를 돌려 전기를 만들고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내복을 입고... 본문에도 나오지만 ”한 명의 아이를 온전히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외국 속담이야말로 마을 공동체의 이상과 목표, 지향점 등을 웅변하는 전형적인 슬로건이다. 은평구 산새 마을은 주민들이 함께 범죄 예방을 하는 것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느슨한 공동체를 넘어 협동조합을 꿈꾼다는 산새마을의 성취를 기원한다. EM 발효액 자체 개발로 음식물 쓰레기 처리하기, 입주민 독서실 운영, 아파트 난간에 고추 텃밭 만들기, 방과 후 공부방 운영, 시장 공동체 건설, 여성친화 마을 기업을 만들어 면 생리대 만들기, 외국어 재능 기부 등 마을이 하는 일은 모범적이고 틈새적이다. 특별히 생협(생활협동조합)이 주목된다. 생협은 상품이란 말 대신 생활재, 소비라는 말 대신 이용 등의 단어를 사용한다. 생협은 대형마트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착한 소비를 지향한다. 한 생협은 농산물은 여성민우회 생협 유통망을 통해 공급받고 강원도 횡성군의 언니네 텃밭과 직거래 계약을 맺어 꾸러미 사업 등을 한다. ”조합원들 사이의 관계가 깊어질 때“ 확장되는 생협은 마을공동체를 샘솟게 하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한다.(140 페이지) 저자들(오마이뉴스 특별 취재팀)은 마을기업도 기업이기에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익원 확보가 필수라 전제한다. 문화 예술 공동체에서 눈을 끄는 부분은 아이들을 학업 성적으로 평가하지 않으며 춤, 연극, 악기 연주, 탁구, 독서 등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본문에 인용된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착해서 살아가는 마을공동체보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계를 맺는 유목적 공동되기“를 지향한다는 한 젊은 공동체 구성원의 말이다. 어떤 예술 공동체는 페이스북을 운영하기도 해 부러움을 산다. 궁금한 것은 유목적 공동되기가 ”사적인 부분을 지키면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있는 삶, 도시와 시골의 장점이 결합된 형태“(213 페이지)와 같은 것인지, 이다. 전국 최초로 마을 만들기 지원조례가 제정된 곳은 광주라고 한다. 대표적 토건도시인 서울의 경우 2012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마을공동체 만들기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늘어나는 아동 상대 성범죄, 자살, 빈곤, 청소년 문제 등에 마을이 묘약이라는 말을 한다.(218 페이지) 마을이 묘약이라는 말은 결국 공동체 정신이 관건이라는 말이다. 2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찾아서’는 외국의 모범적 사례를 집대성한 챕터이다. 도시(city)와 시골(country)의 중간쯤 되는 타운(town)인 한 마을 공동체의 경우 코하우징(cohousing) 사업으로 히피, 녹색 정당, 사회주의자 등의 이름을 얻기도 했다. 코하우징(cohousing)은 함께 살면서 책무, 재산 등을 공유하며 공동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코뮌(commune)과 달리 개인공간을 따로 가지면서 공동공간도 갖는다. 층간 소음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와 달리 스스로 갈등을 조절하는 비폭력 대화에 능한 모습을 보이는 그들은 더할 나위 없이 부러운 대상이다. 물론 외국의 경우도 한국의 홍대 주변이나 이태원이 그렇듯 빈곤층 지역에 부유한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빈곤 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오르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의 사례와 함께 외국의 사례를 함께 모아놓은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은 우리나 그들이나 그들이나 마을 만들기란 각기 다양하고 특수한 환경과 여건에 적응하고 대화화고 모색하는 점이란 사실이다., 그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난을 극복하는 과정과 맞물린다. 쇠고기 가공 식품에 말고기를 섞어 제조한 말고기 파동이 일어난 영국의 경우 주주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기업이 만들어낸 현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322 페이지) 이는 ”지역경제와 소비자가 가까운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안셀름 그륀 신부의 ‘베네딕도 이야기’(2007년 출간)를 읽은 이야기를 해야겠다. 저자는 다임러 벤츠의 한 경영자가 한 “과거에는 사원들에게 좋은 자동차를 만들자고 하면 동기가 부여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들 주가(株價)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일을 해야 주주들도 더 많이 번다는 말만으로는 도저히 동기부여가 안 됩니다.”란 말을 소개한다. 저자는 베네딕도를 우리가 공동체 생활을 신앙 안에서 할 수 있도록 본질적인 도움을 준 존재로 소개한다.(5세기 경의 聖人인 베네딕도는 베네딕도 수도원들의 시발점 역할을 한 성직자이다.) 그륀은 공동체의 첫째 가는 성공 요건으로 타인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꼽았다. 공동체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만 개인의 필요성도 외면하지 않은 베네딕도의 주의(主義)는 마을의 이상과도 부합한다. 그륀은 공동체는 정서적 친근감만으로는 부족하며 명확해야 하고 권력 관계가 규정되어야 하며 의사 소통이 원활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베네딕도의 理想이 서구의 건강한 노동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본문에 소개된 로컬리티의 스티브 클레어는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라는 말을 한다.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라는 말은 내게 인문 정신의 회복을 일깨우는 말로 다가온다. 베네딕도가 (수도원) 공동체 정신만으로는 안 되고 하느님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인간, 그리고 인문 정신에 대한 신뢰와 구비(具備)가 필요하다. 마을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는 말을 기억할 말로 정리하며 나는 마을과 공동체에 지지를 보낸다. 마을 공동체가 선순환(善循環)의 점증하는 사례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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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죽은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쪽방촌 독거 노인,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칼부림까지 불사하는 사람들, 이웃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관심조차 둘 수 없는 각박한 현실. 회색빛 도시에서 파편화 된 사람들의 삶은 외롭고 위태롭다. 아무리 먹고 살기 바쁘다지만 지금보다 더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사람 사는 '정'이라는게 있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이웃과 서로 나누고 협동하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물자는 넘쳐나는데,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망은 끊어지고 '공동체'는 어렴풋한 유산으로 기억될 뿐이다. '마을'이 사라진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자본주의가 무자비한 '민낯'을 드러내며 생존을 위협하자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대안적 삶에 대한 갈구. 사람들은 다시 '마을'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관에서도 마을만들기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철학의 부재와 일방통행식,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으로 아까운 혈세를 낭비하며 변죽만 울리고 있는 부작용도 있지만, 어쨌거나 '마을'이 대세가 된 것 만큼은 분명하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엮은 <마을의 귀환>은 서울시의 주목할만한 17곳의 마을공동체를 취재한 현장 보고서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돌봄공동체로 시작해서 대안학교를 만들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생애주기형 공동체, '원전 하나 줄이기'를 목표로 절전운동, 에너지 축제 등을 벌이는 에너지 자립 공동체, 밀고 다시 짓는 재개발이 아니라 오래된 주거 지역을 고치고 단장해서 다시 쓰는 대안개발 공동체, '콘크리트 숲' 아파트에서 함게 텃밭을 가꾸고 먹을거리를 나누는 아파트 공동체, 지역 주민과의 관계망 형성을 통해 전통시장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장공동체,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먹고사는 방법을 고민하는 마을기업 등(6쪽, 프롤로그) 다양한 형태의 마을공동체를 소개하고 있다. 각각의 마을공동체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사람사는 이야기가 있는 곳에 마을이 있고, 마을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음을 이 공동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21세기 '마을' 개념의 변화 : 마을이 움직인다?
21세기에 부활하는 '마을'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전통적인 마을의 형태와는 자뭇 다른 모습을 취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마을이라는 개념이 잡힐 듯 잘 잡히지 않은 이유다. 시간과 공간을 오랫동안 함께 하며 사람들이 맺어온 관계의 총체를 마을이라고 한다면, 오늘날 마을공동체 특히 도시공동체의 모습은 분명 이와 다른 특색이 있다.
옛날이야 누구 집 개가 똥을 쌌는지까지도 속속들이 알게 될 정도로 공동체의 연결망이 촘촘했지만, 구속을 싫어하는 현대인의 삶은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이 어느정도 보장되는 '느슨한 관계'를 선호한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짊어져야 할 의무를 포함하는 '공동체'라는 말이 주는 무거움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때문에 21세기의 마을은 다각화된 현대인의 삶의 방식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재창조되고 변화한다. 도시적 라이프 스타일과 옛날 시골의 정서를 결합하는 방식, 성북구의 예술공동체 '정릉생명평화마을' 김국희씨는 이를 '도시골'적인 삶이라고 정의한다. 마을은 생활의 문제와 요구를 연대와 협동의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호혜적인 생활관계망'이다.
이러한 마을 개념의 변화는 흡사 '네트워크'를 떠올리게 한다. 만났다 흩어지고 다시 만나는 것이 유연하고 탄력적이라는 점에서 도시공동체는 '촛불집회'와 유사한 틀을 보인다. 특히 한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청년 계층의 마을 만들기는 하나의 공간에 고정되기를 고집하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활력을 유지한다. 구로구의 청년공동체인 '구로는예술대학'은 지도에 없는 마을을 추구하며 경계없는 공동체라는 새로운 마을의 실험을 보여준다. 자칫 마을 만들기의 주변부에 머무를 수 있는 청년들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의 동력으로 전환시킨 사례다. 물리적인 밀착도보다는 가치의 친밀함을 추구하는 것, 호혜와 연대 협력이라는 '공동체' 본연의 가치를 발현시키면서도 현대인의 생활방식 변화를 반영한 느슨한 관계맺기의 결합. 21세기에 재탄생된 마을은 움직이고 있다.
도시공동체,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되지 않으려면
서울시는 2017년까지 975개의 마을계획 수립, 마을활동가 3180명 양성, 돌봄공동체 70곳에 56억원 지원, 1080개의 아파트 공동체 활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민간이 주도하는 혁신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풀뿌리 방식으로 주민들을 주인으로 세워나간다면 도시공동체는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며 발전해나갈 것이다. 1000개의 주민 요구를 수렴한 1000개의 마을이 1000개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마을과 마을간의 네트워크와 상호협동이 이루어지는 도시. 어쩌면 자본보다 인간성이 우위에 선 다른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바짝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 주거, 문화예술, 먹거리, 미디어, 대안개발 등 마을 만들기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여전히 과제는 있다. 경쟁적인 마을 만들기 열풍속에서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마을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넘어서기 위해 반드시 주목해야 할 문제다. 이 대목에서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을 지적한다.
거칠게 표현해 도시공동체가 '동호회' 수준 이상의 기능을 하려면 사회경제적으로 마을이 '절실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마을 만들기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쪽방촌 단칸방을 전전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마을이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이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복지정책일테니 말이다. 때문에 마을은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되고 '루저'로 전락한 이들이 연대하고 협동의 힘으로 삶을 재생시켜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국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며 시혜적인 떡고물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치와 자립의 힘으로 관계지향적이고 대면적인 복지전달체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신뢰와 연대, 호혜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고 나눔과 돌봄이 일상화해야 한다. 마을이 주민들의 '복원력'을 향상시키는 훌륭한 거점으로 될 때, 미을은 한철 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 속에 튼튼히 뿌리 내릴 수 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고 했던 반세기전 간디의 외침은 21세기에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할 패러다임 대전환의 선언이 되었다. 마을공동체는 자본주의 세계화 전략에 맞선 지역화 전략의 거점이자 상호연대와 호혜협동의 원리로 삶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터전이다. 자본주의 경쟁 논리와의 싸움을 동반하는 마을의 부활은 화려한 귀환이 아닌 '오래된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쉽지 않은 여정일지 모른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다양한 시도와 도전 끝에 옥석은 가려질 것이다. 협동은 번거롭지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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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귀환
어렸을 적 살던 동네는 말 그대로 작은 마을이었다. 글을 쓰면서 찾아봤더니
동네는 자기가 사는 집 근처이고, 마을은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한다.
동네는 주관적인 개념이고 마을은 공동체적인 개념인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중인 마을공동체 사업은 공동체적인 삶의 일환이다. 공동체적인 삶을 추구하는 방식에서도
서울시인 관이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민이 주도하게 만든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은
전시행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그러했기에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업들이 수몰되었을 것이다.
마을의 귀환에는 주거중심 종합공동체와 상업∙협동조합 공동체, 문화∙예술 공동체
등이 소개되었다. 이 공동체들은 주민 스스로가 만든 점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서울이라는 대도심이 갖는 특성은 참 여러 가지다. 각기 다른 지방에서
올라와서 지방색도 강하고 배태적인 성향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카테고리는
바로 내가 사는 마을이다. 내가 사는 마을은 이런 이질적인 문화를 하나로 묶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단독과 빌라보다는 아파트가 더 많다. 단독과 빌라는 거주하는
구성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인사 정도는 하고 산다. 하지만 아파트는 그렇지 않다. 나 조차도 출근과 퇴근 때에 만나는 사람들과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만 하는 정도이다. 굳이 만나는 분들이 있다면 첫째와 둘째의 학부모 정도일까?
아파트의 관리만 문제가 일어나는 것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부족이 아닐까 한다. 요즘같이 범죄가 많아지는 것도 이웃에 대한 관심의 부족일수도 있으리라.
마을 공동체를 구성하여 스스로 방범 활동을 하고 있는 은평구 산새마을 주민들은 마을지킴이 덕분에 밤길을 마음
놓고 다닌다 한다. 우리의 부모가 형제자매가 같이 순찰을 돈다면 더 깊은 애정으로 마을 주민들을 보살펴
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방범 활동은 없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는 우리가 거주하는 곳 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일어나고 있다. 금천구
남문시장 시장 상인분들은 2011년 문성성시 프르젝트와 시장통 문화학교로 공동체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시장만의 특색을 살린 것이다. 또한 남문시장신문을 발행하는데
이 신문엔 상인들이 기자로 참여한다. 대형마트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끊임없는 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처럼 마을 공동체는 주거, 사업,
문화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금 불편할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자가면 빨리가나 같이가면 멀리갈수 있다.”라는 말을 되새길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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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참여예산한마당_ 강하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장충체육관에 가보니 엠보팅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했다지만, 의욕 넘치는 주민들이 가득하다. 자신이 제안한 사업을 설명하러 먼 길을 마다않고 온 사람들, 시장님과 토크콘서트 때 여전히 관 주도의 탑다운 방식을 지적하며 우리의 손으로 정책 입안부터 집행까지 이루어내고 싶다는 정책참여 열망을 확인하며 참여정부 시절 휘몰아쳤던 거버넌스를 떠올리게 한다. 마당과 골목길이 있던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 익숙한 나에게, 마을이란 단어는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_ 경계없는 마을에서 여전히 산적한 문제들을 조금씩 천천히 해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지면에 오롯이 담겨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마지막 섹션은 필진이 직접 영국으로 날아가 마을 곳곳을 돌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재개발이 되려면 최소 10에서 15년은 걸려야 하기에 그 기간 동안 뭐라도 할 수 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그들을 공동체로 이끌었다는 말. 한국에서의 속도감이 이 느릿한 여유를 인정할 수 있을까. 당신은 어느 지역 사람이냐라고 물었을 때, 단순히 서울 사람이 아닌 구로 사람, 종로 사람_ 이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로컬리티 혁신 디렉터 제스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차에 치일 위기에 처한 아이를 위해 내 한 몸 던지는 일은 분명 자애로운 행동이지만 지속가능하지는 않잖아요. ‘이타심(selflessness)'이 한 쪽에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이기심(selfishness)이 있어요. 그리고 그 중간에 자신의 관심(self-interest)이 있고요. 자기 스스로 관심이 가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직접 해보는 거에요. 마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떻게 개인의 욕구를 사회적 요구로 만들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일상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관심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마을안에서 풀어내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느슨하지만 신뢰로 연결된 마을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야 하고 돈을 바탕으로 한 경제관계가 아니라 노동시간이나 물건을 공유하는 공유경제로 풀어낼 수 있다. 정부의 지원에서 시작해서, 정부의 지원이 없을 때는 또 어떻게 커뮤니티를 지속시킬 것인가, 즉 자조(self-help)에 대한 대안. 지역 구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을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파트너십도 함께 필요하다. 마을만들기는 누가 이기면 누가 지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협력 구조 안에서 모두가 잘 될 수 있는 파지티브 모어 게임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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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꼭 닫으니 내 세상이 펼쳐진다. 이웃집에 누가 살며 무엇을 좋아하는지 따위에 관심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사라진다. 이따금 윗집에서 아이들 뛰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무시하면 그만이다. 몇몇은 끓는 피를 주체 못하고 윗집에 삿대질을 할지도 모르나 나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이는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골목이 사라지는 그 순간 마을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굳이 이웃과 교류를 하지 않아도 생활은 가능하다. 시간도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은 제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형태의 삶을 택한 지 오래다. 마음 어딘가가 허하다. 왠지 삶이 신명나지 않다는 불만이 쌓여간다. 욕구불만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고, 심지어 가장 편해야 할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데도 불안감마저 느낀다. 우리 사회의 마을만들기는 안타깝지만 하나의 정책으로, 관에 의해 주도되기 시작했다. 사람 소리로 넘치는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다부진 포부 뒤에는 행정이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일종의 회피 의식도 자리한 게 사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성공적이라는 평을 하기엔 전반적으로 부족함이 많다. 그나마 성과라면 자생적인 흐름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는 것 정도가 아닐지 싶다.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은 서울의 곳곳을 방문했다. 일부 부유하다 싶어 보이는 지역 명칭도 없진 않았으나 대부분은 서울의 변두리다 싶은 곳이었다. 거주민들은 알게 모르게 상대적인 소외감을 가졌다. 재개발이 이루어져 한 몫 단단히 벌어들일 수 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값에 대한 불만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 채워지지 아니 한 것들을 욕망하는 목소리를 저마다 지녔다. 하지만 이미 그러하니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은 다른 이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상황이 역설적이게도 마을을 살리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가장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고민은 자녀 교육에 대한 분야였다. 입시일변도 교육에 많은 이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왕이면 내 자녀가 남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느 부모가 아니 하겠는가마는, 막대한 지출을 요구하는 풍토와 동시에 자녀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부모의 마음을 움직였다. 부족하나마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공동육아를 시작하고 대안학교를 세웠다. 나름의 규칙이 있었으나 그 규칙으로 인해 상처 받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하루하루를 즐겼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제 동생들을 위해 활동가가 되어 마을을 누볐다. 긍정적인 환원이다. 마을일꾼이 마을에 머물면서 마을은 생동감을 머금게 됐다. 시장도 좋은 활동 공간이었다. 각종 대형마트가 자리를 잡게 됨에 따라 전통시장은 고전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무엇이 전통시장을 살아 숨 쉬게 할지를 두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조금은 의외다 싶은 아이디어들도 도출됐다. 시장 안에 생긴 도서관과 문화공간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상인이라 하여 24시간 장사만 하란 법은 없다. 그들은 책을 읽고 잠깐의 교류를 통해 서로를 보듬었다.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김에 장을 보는 이들도 나타나는 등 나름의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협동조합과 마을기업 등 지역에 토대를 둔 새로운 경제단위가 탄생한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해 수익보다는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지만, 소비자들이 오로지 싼 가격에만 이끌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앞으로는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착한 생산과 착한 소비가 이루어지는 마을이 조만간 탄생하지 말란 법은 없다. 저자들은 자리를 옮겨 영국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왜 영국일까 의아했다. 사회 시스템적인 측면을 놓고 본다면 북유럽 쪽이 보다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각종 제도를 받아들일 때 영미권 국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기에 상대적으로 영국의 사례가 우리와 가까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지금은 이해하고 있다. 산업혁명의 선봉에 섰던 영국은 더 이상 첨단이 아니다. 석탄은 고리타분한 자원이 된 지 오래고, 자연스레 영국의 도시들은 죽어갔다. 경제가 죽으니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고, 그 빈자리는 이민자들이 차지했다. 우범지대가 우후죽순 늘어가는 상황, 나라가 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마을을 되살리기로 작정했다. 머리를 맞대니 개인주의적인 문화권에서도 공동체가 싹트기 시작했다. 재범률을 낮추는 방법의 하나로 마을의 일에 사람들을 참여시켰다. 이민자들의 사회적응 역시 마찬가지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전 지구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했다. 쓰레기를 줄이고 재활용률을 높이는 마을 활동은 나를 뛰어넘어 우리 모두가 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란 점에서 시사점이 많았다. 각종 자원이 고갈되고 돈이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사람은 가장 큰 자원으로써 막대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마을의 잠재력은 무한했다. 여럿이 모인만큼 어디로 생각이 튈 줄 모른다는 점에서 마을은 즐거울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시민사회가 과거 그러했듯 마을의 자생적 움직임을 받아들이기에 전통적인 관은 너무도 보수적이다. 민관 협력이 강조되는 시대라지만 두 영역이 서로 부닥치고 급기야 갈등과 반복을 거듭하는 형국이 연출되지 말란 법은 없다. 활동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한계점도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마을만들기는 기존의 유관단체 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경우가 많다. 소수의 활동가가 제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으로 마을만들기가 변질되지 않으려만 다수의 침묵하는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끄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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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언제나 우리를 매혹한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그곳에서는 밤낮 가리지 않고 화려한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그것은 즐거움이자 동경이다. 반듯하게 닦인 쇼핑몰의 바닥을 거닐다 보면 마치 우리 삶도 그렇게 매끈하게 빛이 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는 안다. 그곳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그것은 도시를 ‘더럽히는(더럽힌다고 생각되는)’ 부랑자들의 존재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제 무심한 풍경이 되었다. 사실 도시를 아름답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지금 자리한 한 줌의 공간 말고는 편히 발 디딜 곳 없다는 현실감과 그 공간마저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은 매 순간 우리에게 대문을 닫아걸라고 속삭인다. 그런데 도시 어디선가 그 대문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이 둘러쳐 놓은 담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으며 우리의 손과 발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을 만들어낸다.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손을 잡아보자며 말을 건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도시가 무너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과거가 다시 찾아온 건가? 책 <마을의 귀환>(오마이북, 2013)은 바로 그런 이상한 일을 다루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특별취재팀이 펴낸 이 책은 닫힌 틈을 여는 사람들의 공간 ‘마을’에 대해 얘기한다. 책은 연재된 기사들을 재구성하여 다시 엮어낸 것으로 약 8개월 동안의 취재 결과물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에서 마을을 일구어 내는 사람들의 풍부한 인터뷰와 실제 사례들, 그리고 외국의 사례도 제시하면서 ‘마을’을 둘러싼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또한, 책의 저자들은 물리적 장소로서 ‘마을’뿐만 아니라 다양한 목적과 관심에 의해 생겨난 공동체들의 모습을 그려내면서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연대의 장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거대 도시에서 마을이란 이름이 다시 붙기 시작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 때문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 놓고 아이들을 기를 공간이 필요했던 몇몇 부모들이 공동육아를 목표로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많은 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그들의 목표는 점점 커졌다. 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책을 볼 수 있게 도서관을 만들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게 카페를 지었으며, 경쟁에 내모는 기존 교육체계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자 학교까지 지어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며 도시가 이어주지 못했던 관계를 스스로 다시 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재 서울에는 강북구의 재미난마을, 마포구의 성미산마을 같은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마을은 비단 위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는 만큼 마을은 가지각색의 방식으로 생겨난다. 은평구의 산새마을 주민들은 범죄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순찰을 나서면서 서로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노원구의 청구아파트 주민들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없애기 위해 다 함께 친환경 발효액을 만들면서 굳게 닫힌 아파트 철문을 열었다. 몇 가지의 작은 계기들이 그들을 다시 이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관계는 새로운 공간과 활동으로 그 폭을 넓히며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으로 발전한다. 책은 이 밖에도 영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마을 공동체의 모습들을 소개하면서 ‘마을’이라는 것이 현재 세계가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임을 밝힌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을의 귀환’이 결코 전근대사회나 농업사회로 귀환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도가 어떻든지 간에 그들의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바로 ‘마을’을 통해 도시사회에 대한 대안을 그려내는 것. 이는 분명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향수를 일상에 재현하려고 하는 것이 잠깐의 휴식이거나 도피라면, 마을 공동체는 도시 생활을 그대로 향유하면서도 극도로 개인화되어버린 현실의 무력함과 소외를 깨뜨리려는 활기찬 발버둥이다. 그들은 개발보다는 재생을, 기계에 대한 의존보다는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생활을 말한다.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지기보다는 가진 것을 서로 나누기를 꿈꾼다. 즉 마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도시에서 다시 찾아내고, 그것을 통해 연대를 실현하거나 실험하는 하나의 장(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에서 주인공은 어떠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물론 이런 마을이 유토피아인 것은 아니다.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만큼 분명 그곳에도 수많은 이기심이 작동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갈등 또한 빚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허물없이 친해지면서 생겨나는 ‘참견’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할 즈음에 어떠한 곳에서는 감정싸움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실망해서 떠나버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해결 방식을 모색하면서 그러한 갈등과 참견의 문제를 이겨낸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국 마을 만들기 사업체 연합에 속한 어떤 이의 말은 도시 공동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본보기가 될 듯하다. 그는 ‘이타심’으로는 지속적인 공동체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관심을 실현’하는 것으로 마을 만들기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어떻게 개인의 욕구를 사회적 욕구로 만들 것인가’가 가장 중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는 마을 만들기에서 이타심과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을에서도 많은 갈등과 조정의 과정을 안고 가야만 한다.
이렇게 <마을의 귀환>은 다양한 마을의 모습을 소개하면서도 섣불리 마을을 유토피아로 그리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마을 만들기가 아직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는 현재 진행형임을 말한다. 이 때문에 책은 마을을 둘러싼 많은 우려와 고민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원자화된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텃밭을 꿈꾼다면, 바로 그런 고민을 함께 나눌 때야 그곳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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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오마이북에서 펴내는 책의 제목들은 뭔가 특별하다. 하루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세상에 <새로운 100년>을 꿈꾸고, 대한민국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세상에 <정치의 즐거움>을 나눈다. 최근에 펴낸 책 <마을의 귀환> 제목을 보고는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여섯 번째 에피소드 <제다이의 귀환>이 떠올랐다. 제다이는 '포스'라고 불리는 자연의 힘을 선의의 목적으로 사용하며 우주 평화를 지키며 우주의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는 무리다. 제다이와는 반대로, 똑같이 주어진 힘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사용하는 권력을 상징하는 세력들이 나오는데 이들과 대립하는 이야기가 영화의 큰 줄거리이다. 책 <마을의 귀환>에 나오는 마을은 영화 속 제다이와 비슷하다. 특별히 갈고닦은 재능이 아닌 타고난 성향과 에너지를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는지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러한 방향은 내가 속한 무리의 성격을 만들기도 하고 비슷한 성격을 가진 무리에 속하게 된다. '래미안에 살아요.'라는 유명 상표 아파트 광고 문구처럼 과연 내가 사는 곳의 이름이 나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위치를 대변하는 것일까?
처음 만난 사람과 나누기 좋은 이야기는 지금 사는 곳이나 고향에 대한 것이다. 보통은 행정구역을 나누는 시, 군, 구 또는 동, 읍, 면에 산다고 말하지, 어디 마을에 산다고 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실제로 마을에 살고 있더라도 대게는 잘 모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알려진 행정구역을 말한다. 나도 경기도의 한 '마을'에서 15년째 살고 있다. 사실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1,400여 세대가 사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이다. 보통은 세대 단위별로 준공 순서에 따라 '단지'라는 호칭 앞에 숫자를 붙여 아파트 이름을 짓지만, 내가 사는 지역의 모든 아파트는 '단지'라는 용어 대신 '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공동체 개념도 없던 20여 년 전 거대한 콘크리트 숲 속에 새싹이 알아서 싹트길 바라며 씨만 뿌려 놓았나 보다. 지난 5월, 내가 사는 마을의 아파트 관리 규약이 새로 개정되었다. 아파트 공동체 지원 활성화라는 항목이 추가되면서 주민 10명 이상이 모이면 입주자 대표회의 또는 부녀회 등 기존 아파트 자치 단체의 사전 의결 없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고 투명한 공동체 사업이 가능하면 재정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마을의 귀환>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포스'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았다. 최근 에너지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지니 서로의 비결을 나누며 아파트 관리비 줄이기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 커피 관련 서적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웃과 남미 여행 관련 서적을 많이 가진 이웃이 서로 서재 를 공유하면 어떨까,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주민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장기간 여행을 가게 되었거나 집에 손님이 오게 되었을 때 이웃의 반려 동물을 챙기는 일을 나누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마을의 귀환>의 공동체는 우리 마을이 살기 좋으니 이곳으로 오라고 손짓하지 않는다. 살다가 필요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고 덤덤히 이야기한다. 어느 공동체도 완료형으로 말하지 않고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살고 싶은 마을을 골라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경험을 교훈 삼아 내가 사는 곳을 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시도를 해보자. 마을은 내가 만든다고 그냥 생기지 않는다. 마을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 사람이 마을로 돌아온 것이다.
이런 곳에서 살았으면 하고 꿈꿔본 적이 있는가. 지금이라도 <마을의 귀환>을 옆구리에 끼고 내가 지금 사는 곳을 꿈꾸던 곳으로 만들어 보자. 도시공동체? 대안적인 삶이 아니라 주류가 되길 바란다. 마을은 당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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