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성, 시대가 지나도 부모가 달라도 변하지 않는 사랑.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모두 같습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 효도를 이렇게 하시는 분도 있군요.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책을 읽으며 저희 부모님이 생각났습니다. 당신들의 생각과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지역은 달라도 시대가 달라도 달라지지 않는건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이런 정서를 공감하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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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지막 말들”은 생의 마지막으로 향하는 엄마와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떠올려지는 엄마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아들의 시각에서 담백한 말로 정리한 글이다. 아내와 남편을 향한 부모님의 사랑, 끝없이 아들을 바라보고 보살피는 엄마의 사랑, 부모님의 삶을 존중하는 아들의 사랑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연로한 부모님을 둔 이들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죽음과 이별’이 담겨있어 읽는 내내 나와 내 가족을 돌아보는 잔잔한 시간을 가졌다. 때론 돌아가신 지 이제 곧 10년이 되는 아버지 생각에 울컥하고,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는 엄마 생각에 시큰거리기도 하였다. 130쪽의 ‘시간은 곧 슬픔이다. 젊디젊었던 엄마의 그때를 생각하면.’이 인상 깊게 남는다. 저자처럼 나도 엄마의 젊은 시절을,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엄마도 나와 같은 성장의 시간을 거쳤을텐데 말이다. 저자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인지하지 못하고 기억 속의 말로 꺼내는 엄마를 바라보며 슬픔을 느낀다. 시간은 슬픔이다. 죽음과 이별 뒤에 오는 시간이 슬픈 것은 그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그 슬픔으로 그 시간을, 그 사람을 다시 볼 수 있으므로 시간은 꼭 슬픔만은 아니다는 생각도 든다. 생전에 나의 아버지께서는 뒷베란다에서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늘 큰소리로 ‘차 조심허고!’를 당부하셨다. 유치원생인 막내 손주나 쉰을 넘긴 큰아들에게나 예외없이 ‘차 조심허고!’였다. 아버지도 저자의 엄마처럼 말기암과 치매로 1년 정도 요양병원에 계시다 생을 마감하셨다. 다행히 형제들이 차로 5~10분이면 가볼 수 있는 곳이어서 오며가며 자주 들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사실 당신이 암환자인 것도 모르셨고, 폐암임에도 불구하고 큰 통증 없이 지내셨다. 그 점이 참 다행이었다. 돌이켜보면 순전히 간병하는 자식들 입장만 그랬던 것 같다. 우리가 모르는 아버지의 아픔이 그 시간 동안 가슴에 쌓여 있었을 듯 싶다. 엄마는 아버지 떠나시고 그 집에서 혼자서 지내신다. 역시 형제들이 각자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방문을 하면 엄마는 오래된 아파트의 자그마한 개인 텃밭에서 기른 것으로 이것저것을 해 주신다. 엄마는 우리가 집을 나서면 꼭 대문 앞까지 나오셔서 한 층을 다 내려가는 것을 보고 문을 닫으신다. 한 층을 내려가 ‘엄마 들어가. ’한 후에도 한참 있다 ‘삐빅 삐리릭-’ 현관문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여든 셋, 우리 곁에 건강하게 계시는 엄마가 늘 고맙다. 가끔 아파트 주차장에서 3층 엄마집을 올려다보면 문득, 생전 아버지의 모습이 ‘차 조심허고!’ 소리와 함께 떠오른다. 그런 기억을 갖게 해 주신 아버지도 참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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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몇 이야기씩을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내내 엄마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하는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을 기억하게 됩니다. 엄마와 마음으로 진실되게 따뜻하게 마주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아..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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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암과 인지장애가 겹친 말년의 엄마를 호스피스 병동에 모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1년 여를 보낸 아들의 기록이다. 죽음에 바짝 다가선 시간에도 엄마는 아들의 끼니와 건강, 공부(정년에 가까운 교수님의 공부!)를 챙긴다. 바깥에서 겪은 피로와 스트레스를 순식간에 알아챈다. 아들은 엄마의 말씀에서 눈 밝고 마음 넉넉한 사람의 존재, 한없는 사랑을 느낀다. 엄마가 마지막까지 사람의 존엄을 지키실 수 있도록 애썼고 이 책 또한 그 노력의 결과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반듯하고 생각이 분명하게 전해진다. 개인사조차 이렇게 정리해내고마는 학자의 성정이 감탄스럽다. 의사, 간호사,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이 제발 주의깊게 읽어줬으면 하는 대목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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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먹먹해지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도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입이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편찮으신 엄마와의 관계를 다룬 책들은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이 돋보인 것은 서문에서 알 수 있다. 나와 어머니의 사적인 기록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이 다가 아님을 말하면서 인문학은 본디 실존과 사회적 문제 의식을 분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교수인 만큼 인문학자로서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를 무시로 넘나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고찰을 어머니를 통해 전달한다. 말기암 환자와 인지저하증 환자에 대해 우리가 지니는 편견과 더불어 호스피스 병동의 시스템 및 의료 체계 전반에 대해서도 일갈한다. 따라서 사적인 기록이라고만 할 수는 분명 없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다보면 생소하지만 인상적인 우리말 단어들도 얻을 수 있다. 조리가 맞다는 뜻으로 '동이 닿다'거나 '머들머들한' 보리밥이라거나 하는 식인데 때로는 그게 좀 지나쳐 사전을 찾아도 그 의미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단어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전달하는 매시지 자체가 워낙 강하니까. 자신이 춥거나 배고프거나 잠이 부족하진 않은지 늘 걱정해주는 존재가 이젠 없다는 사실에 저자는 먹먹해 하고 그걸 읽는 독자도 먹먹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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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풍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개개 집안의 이런저런 사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기세를 누그러뜨릴 생각이 없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지난 추석에는 그저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수준이었으나 이번 설에는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강제되었다. 명절 전날 우리 가족과 동생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가, 명절날 아침에 다시 모여 아침을 식사하는 우리집 명절 루틴도 지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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