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세요. 듣지 않으려 해도 듣지 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이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빙하가 녹아내리는 극지방이나 생명이 꺼져가는 심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폭풍이 연신 으르렁대는 소리에, 들판에서 새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봄의 침묵에,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에 잡아먹힌 나무들의 단말마에 귀를 기울입시다. 물에 잠긴 마을들의 비탄에,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병이 든 아이들의 기침에 귀를 기울입시다.
기후정의선언(이하 선언)의 첫 문단이다. 선언이란 널리 펴서 말하는 것으로 국가나 단체가 필요에 따라 자기의 방침·주장·의견 등을 외부에 정식으로 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 출처: Oxford Languages) 그렇기 때문에 선언문은 간결한 문체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후정의선언은 제목이 아니었다면 선언문인지도 모를 만큼 많은 수식어가 들어가있고 부드러운 문체로 쓰였다.
기후위기라는 이슈가 유행을 타고 그 문제가 우리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심각성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출간되는 책들은 심각성보다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다루는 책이 많은 편이다. 선언은 지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역설한 후 원인과 해결 방안까지 짧은 글 속에 함축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항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였습니다.
선언은 이윤 창출만을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하는 다국적기업이 문제의 본질이며 정부가 기업의 신탁 관리자로 전락하며 이에 일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시민이 소비자가 되어 저항성을 잃은 점 또한 지적한다.
인도의 우타라크핸드주 고등법원도 개인이 고소한 사건을 다루면서 인도에서 가장 공해가 심한 열 개 강 가운데 하나인 갠지스강과 지류인 야뮤나강에 대하여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인정했습니다. 법원은 이 두 강이 힌두교에서 신과 같은 존재로 인정받는다는 점을 지적했지요. 그래서 이 강의 수질을 해치는 행위는 사람을 해치는 범죄와 똑같이 처벌받게 됩니다. 인류는 늘 폭정에 맞서 들고일어났습니다. 공장이 노예만을 원할 때도 인류는 사회권을 쟁취하려고 싸웠습니다. 인류는 보편 인권을 채 식지 않은 전쟁의 잿더미에 또렷하게 써 내려갔고, 해방 사상에 끊임없이 전율하며, 학살당한 원주민들의 탁월한 생존 능력을 긴 세월 동안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자(단체)의 주요 영역인 '법'과 법적 승리에 대한 사례에 비중을 두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저항을 이야기한다. 인류의 발전 과정에서 보여준 억압에 대한 인간의 저항에 주목하며 지금의 해법 역시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투쟁을 계승하고 포괄하는 거대한 연대가 유일한 해결책임을 천명한다.
선언을 보다보면 마치 운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언문이 꼭 단호한 산문의 형태여야 한다는 편견을 깨는 이 선언은 함께 할 시민들에게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더 이상 실패할 권리가 없다며 폭넓은 연대를 빠르게 꾸려야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신세대입니다. 기후 세대입니다. 어디 출신이든, 나이가 몇 살이든, 이번만은 역사의 좋은 편에 서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대형 마트 판매대에 넘쳐나는 상품들이 살육에서 나왔음을 이해하는 것이 소비자의 소명입니다. 인간이 가한 손상을 보수하는 것은 인간의 소명입니다. 죽음의 곡선을 바로잡을 시간도 겨우 몇 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실패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 말은 마지막이 아닌 중반부에 투쟁을 소개할 때 등장한다. 그러나 책 제목에서부터 마지막까지 머리 속에 계속 떠돌며 우리가 지금 당장 행동을 시작해야함을 일깨워준다.
뒤이어 조천호 교수의 보론도 짧은 글이지만 핵심을 잘 담고 있다. 부록을 포함해도 92쪽이라는 짧은 텍스트로 많은 울림을 주는 기후정의선언, 기후위기를 대하는 우리가 한두시간을 들여 꼭 읽어볼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