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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편한 자세로는 글을 쓸 수 가 없었다고 한다.그는 서서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데 연필 촉도 뾰족하게 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이자 수학자였던 루이스 캐럴이나 버지니아 울프도 서서 글을 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이 낳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알몸으로 글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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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멈춰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생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도 계속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왜 그럴가?'하고 생각해 본 적은 있는가? 한동안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머리를 흔든 적이 몇 번은 있을 것이다. 생각은 이렇게 끊임없이 계속된다. 심지어 자는 동안에도 생각은 계속된다. 그것이 꿈이다.
빛나는 생각을 만나다
왜 생각은 한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걸까? 이는 새로움을 찾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에는 현재까지의 학습과 경험의 기록들이 저장되어 있다. 이 기록을 항상 점검하고 새로운 정보와 비교해서 더 새로운 뭔가를 찾아내는 일이 바로 뇌의 임무이자 존재 이유이다.
그렇다면 생각은 어떻게 생겼을까? 이에 답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외부 세계와 교류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때 작동하는 게 바로 감각기관이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과정이다. 받아들인 세계는 감각수용체에서 인식되어 시냅스를 따라 좌뇌와 우뇌에 전해진다.
감각기관은 세계를 인지하는 창이다. 이를 통한 감각은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의 다섯 감각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가장 강력한 감각은 시각이다. 전체 정보의 약 70% 정도를 시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감각이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하지 말자.
우리의 뇌는 미래, 즉 새로움을 추구한다. 핸드백이 다섯 개나 되는 여성이 오늘 백화점에서 본 신제품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마찬가지로 한 달 전에 차를 새로 샀음에도 한 남성은 새로 발표된 신차를 시승해 본 생각을 계속 머리에 떠올린다. 이는 새로움의 추구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옷, 시계, 차, 스마트폰 등 처럼 늘 새로운 것을 갈망한다. 새로움을 갈망하지 않는 삶은 사실 고여 있는 물과 같다. 그런데, 우리의 감각은 새롭지 않은 것들에 대해 점점 무디게 반응한다. 감각의 무뎌짐은 곧 이성과 감성의 퇴화를 의미한다. 새로움의 추구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식, 내재된 과거의 인식과 결합, 또 다른 새로움을 갈망하는 과정의 순환이 반복된다. 새로움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 이 과정이 계속되는 것이 '생각의 진화'이다. 생각의 진화는 새로움을, 새로움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물한다. 새로움에 다가서는 방법은 첫째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고, 둘째 예민한 감각으로 이성과 감성을 깨우는 것이다. 즉 예민한 감각, 예리한 이성, 섬세한 감성이 바로 새로움에 다가서기 위한 필수 요소들이다. 감각 중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시각을 가진 동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략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 등이 해당된다. 이들의 눈은 자신의 신체와 환경에 맞도록 발달해 있다. 이들의 눈은 '잘 보이는 눈'과 '잘 보는 눈'으로 구분된다.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서서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전에 연필을 아주 뾰족하게 온갖 신경을 다 써서 갈았다고 한다. 당시 허리를 다쳐 서서 글을 썼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서서 글을 쓴 사람은 또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이나 버지니아 울프도 서서 글을 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한편, 미국이 낳은 최고의 과학자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알몸으로 글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아주 오랫동안 물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며 목욕을 즐겼다. 물 온도와 체온이 하나가 되고 머릿속은 저 먼 나라의 여행으로 가득 찼다. 그는 천천히 욕조의 한 귀퉁이에 붙여놓은 소나무 판자를 당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 한 자리에서 25잔의 차를 마심(새뮤얼 죤슨) <파름의 수도원>을 쓰는 동안 아침에 프랑스 법전 두세 페이지를 읽음(스탕달) 시는 노란색 , 소설은 푸른색, 산문은 장미빛 종이에 씀(알렉산드르 뒤마) 알몸으로 글을 쓸때 최고의 작품 <레미제라블>이 나옴(빅토르 위고) 시끄러운 파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시를 씀(하트 크레인)
헤밍웨이나 빅토르 위고는 촉각을 다듬었다. 새뮤얼 존슨은 미각을, 하트 크레인은 청각을, 알렉산드르 뒤마는 시각을 다듬었다. 헤밍웨이가 연필을 뾰족하게 가는 것은 연필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촉각을 가다듬는 것이었다. 이제 날카로워진 연필심 끝에서 피어오르는 감각과 이성의 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감각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이성이 되고 감성이 되고 놀라운 신세계가 된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감각을 최고로 예민하게 다듬어 이성과 감성을 깨우고자 함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과 망각과 감각과 기억에 관련된 소설이다. 이성의 기억은 주로 좌뇌에 저장되고 의지에 의해 자유롭게 꺼낼 수 있다. 하지만 감각과 연결된 기억은 주로 우뇌에 저장되고 특별한 자극으로 기억이 되어 되살아난다.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와 얽혀진 유년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과정이 그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이고 잃어버린 기억이다.
정작 문제는 정상적인 상황, 즉 일상에서도 감각이 떨어지거나 무감각한 사람에게 나타난다. 보고 있는데도 그냥 대략 보이는 것만 인지하고, 그것조차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런 부류다. 뭔가 맛이 이상한데도 뭐가 이상하냐는 표정으로 계속 먹는 사람이 또한 그런 부류다. 이렇게 무감각한 사람은 거의 모든 감각이 다 이렇게 작동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뇌가 감각기관에 제대로 된 수행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감각을 예민하게 다듬었다면, 예민한 감각으로 이성과 감성을 깨워야 새로움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런데, 이성과 감성은 '과거의 경험 학습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모든 감각의 신호가 새롭게 전달되기가 힘들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과거의 경험 학습을 뛰어넘는 수준의 새로운 감각이 이성과 감성에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감각의 대부분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정리되고, 편집되고, 또는 무시되고 만다. 편집이 되는 이유는 감각기관이 편안함을 추구하는 육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육체는 오직 생존에 도움이 될지의 여부만 판단할 뿐이다. 따라서 인지된 감각이 과거의 것과 비교해 크게 새롭지 않다면 대부분 무시되고 만다.
앞서 창조적인 대표적 인물들은 감각, 이성, 감성을 항상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노력함을 살펴 보았다. 보고 있어도 보지 못하고, 느끼고 있어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을 감각의 무감각이라고 한다. 이런 현상으로부터 탈출하는 방법은 뇌(이성, 감성)에 숨어 있다.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첫째로 놀라울 정도의 새로운 감각으로 이성과 감성을 깨우는 것이고, 둘째로 이성과 감성을 날카롭게 다듬어 감각이 예리해지도록 명령하는 것이다.
이성의 예리함 = 감성의 섬세함 = 감각의 예민함
그렇다면 우리가 빛나는 생각, 즉 새로움을 찾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할까? 유일한 방법은 두 번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성과 감성을 날카롭게 다듬어 감각이 예리해져야 우리는 감각, 이성, 그리고 감성이 갈망하는 새로움을 향한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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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고, 좋은 기술이 있어도 인간의 아이디어만큼 반짝이는 것이 있을까? 아이디어라는 것은 인간의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로 부자가 되거나 명성을 얻은 사람들이 종종 있다. 알고보면 작은 아이디어들이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아무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 내었기 때문에 명성과 부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뛰어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해 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발전하면서 직립보행을 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점점 뇌를 발달시켰다. 인간이 뇌를 점점 발달시키는 이유는 '직접 호기심'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닉하고 발견하려 한다. 그 새로운 것이 발견이 되고 발명이 되어서 우리의 생활이 변화하고 발달하는 것이다. 도구의 발달도 작은 새로운 생각에서 출발했다.
더 이상의 발전하는 도구가 없을 것 같지만 매일매일 우리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도구나 기계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 또한 인간의 놀라운 창의성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부를 시킨다. 하지만 창의성은 공부를 시키거나 억지로 주입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이 책 <브릴리언트 2>를 통해 알게 되었다. 창의성도 학습에 의해 발전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창조성의 원리를 학습하고 그것을 실전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원리를 알면 원리를 기본 바탕으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창조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응용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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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2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사람은 EQ와 IQ를 고르게 사용하는 것 어쩌면 좌뇌와 우뇌의 편향적이 아닌 고른 균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창조적인 생각을 할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총평은 우리의 뇌에 대한 어쩌면 인간의 무기인 뇌에 대한 유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 문득 문득 생각했던 것은 처칠이 이야기 했던 "사람은 누구나 대단한 발견을 하지만 정작 그 의미를 모른체 죽어간다" 라는 말이었다. 브릴리언트, 문득 떠오르는 영감들이 인류의 생활을 바꾸고 현대화를 이끄는 추진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본인도 이런 일례를 몇가지 들어 보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결론은 그런 이야기에 대단히 동감한다는 것과, 아무리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실행력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이런 것들은 하루에 생각하는 수천가지 중에 하나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몇해 전 부터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나와의 의견이 다른 것이 틀리다 라는 사람들에게 틀린것이 아닌 단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라는 글을 많이 보았다. 과거에는 다소 엉뚱해 보이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괴짜 혹은 정신이상자로 생각하기도 하였는데 과거의 이야기들을 들어 보면 그런 사람들이 인류를 이끌고 세기의 발명을 했던 이야기 들은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나와 다른 행동의 사람들 그리고 그런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수 있지만 분명 그런 몸짓과 행위에는 분명 의미가 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처럼 본인에게 쓸때 없음은 남에게도 쓸때 없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본인 역시 고정된 시각이 아닌 다각면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유연한 생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총 7장으로 분류 되며 각장의 마지막에는 질문란으로 읽었던 내용을 다시금 생각해 볼수 있는 좋은 구성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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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생각의 구조'를 알 수 있을까? 브릴리언트2는 그런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뇌과학에 대한 책도 많이 출시되고 있어 비슷한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브릴리언트2는 그런류의 책과는 조금 다르다.
헤밍웨이나 빅토르 위고는 알몸인 상태에서 촉각을 다듬었다. 새뮤얼 존슨은 미각을, 하트 크레인은 청각을, 알렉산드르 뒤마는 시각을 다듬었다. 헤밍웨이가 연필을 뾰족하게 가는 것은 연필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촉각을 가다듬는 것이었다. 이제 날카로워진 연필심 끝에서 피어오르는 감각과 이성의 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감각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이성이 되고 감성이 되고 놀라운 신세계가 된다. ---「알몸으로 써내려간 레미제라블」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위대한 시대의 인물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창조적인 결과물들을 만들어 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특히 나는 평소에 창조적인 사고에 대해 관심이 많던터라 읽는 내내 굉장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헤밍웨이나 빅토르 위고, 알렉산드르 뒤마, 마르셀 뒤샹 같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들 때 하는 행동들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창조적 사고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이성과 감성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브릴리언트2를 통해 그동안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결과를 바랬던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움을 원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성공했던 사람들은 이미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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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중요한 핵심은 추천사에서 '이상일 국회의원'이 언급했듯이, 창조성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인데 이러한 인간의 창조성은 새로움을 끊임없이 탐색하는 뇌의 본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좌뇌의 이성적 기능과 우뇌의 감성적 기능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창조성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뇌의 구조와 특징을 통하여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고 빛나는 생각을 만들어 내는지 이 책은 8가지의 주제를 통하여 더욱 빛나는 나를 찾아주고자 한다.
저자는 우선 빛나는 생각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좌뇌와 우뇌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하고 서로가 자극과 통제를 통하여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뇌가 작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과정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이 책은 선천적인 능력과 후천적 연습과 노력의 결과 두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선천적인 능력을 타고 나지 못했다하더라도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좌뇌와 우뇌의 능력을 키울 수 있으며 상승작용을 일으켜 더 빛나는 능력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학습과 경험의 중요성을 창조성의 원리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우리의 학습과 경험의 걸림돌로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적인 감각이라고 한다. 이러한 감각기관이 우리의 뇌를 통제하게 되면 뇌는 점점 창조의 기능을 잃어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역으로 해석해보면 뇌는 항상 새로운 것에 자극을 받기 때문에 우리의 감각기관이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학습하도록 뇌가 감각기관을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실제 사례들을 통해 그러한 예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실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과 미술에 모두 뛰어난 예술인이자 과학자였다. 그는 이성적인 감각과 감성적 감각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많은 학습과 경험을 통하여 좌뇌와 우뇌의 용량을 키웠으며 서로를 상승시키는 도구로 그것들을 충분히 활용했다는 것이다. 이론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 이론은 '통섭'과도 같은 맥락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분야를 전혀 새로운 다른 분야와 혼합하여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통섭이 브릴리언트한 나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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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뇌는 어디까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다른 동물들보다 발달된 뇌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한번쯤은 궁금해 해봤을 문제들이다. 뇌는 큰데 활용을 못 해서 천재와 둔재의 장벽이 갈라지는 것이라면, 그 활용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여러가지 동물들과 유명한 예술가와 유명인사들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그들이 어떻게 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진화해왔는지, 좋은 두뇌로 어떤 업적을 이루었으며 일생동안 뇌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생태계에 존재하는 여러 동물들의 뇌과학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으며, 선인들을 통해 뇌활용법의 비밀을 들여다볼 수 있다.
뇌는 우뇌와 좌뇌로 나뉜다. 이것은 익히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뇌와 좌뇌의 역할 수행이 다르다. 우뇌와 좌뇌가 처리하는 정보의 내용이 다르며, 오른쪽 눈과 왼 쪽 눈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의 차이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이미 밝혀진 인체의 신비이다. 흔히 좌뇌와 우뇌가 잘 연결되어서 조화롭게 발전하는 경우 통합적인 시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저자는 고래의 예를 들어서 좌뇌와 우뇌가 어떻게 각각 움직일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이, 고래는 포유류이기 때문에 허파가 있고 그래서 잠을 자게 되면, 즉 모든 뇌가 수면 상태에 있으면 죽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물 밖으로 나올 수도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진화하게 되었을까?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그래서 고래는 모든 뇌가 수면에 들지 않는다. 우뇌가 잠을 잘 때에는 좌뇌가, 좌뇌가 쉴 때에는 우뇌가 활동을 하면서 반수면 상태에서 바다를 헤엄치기도 하고 사냥을 하기도 한다. 워낙 덩치가 크고 바닷 속 생물 중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의 진화도 가능했던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육지 동물들도 포식작의 위치에 있는 경우에는 눈이 앞을 향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이 부분이 놀라웠다. 약한 적응력의 인간이라고 생각해보면 눈이 180도 쯤 달려있어서 왼 쪽 오른 쪽을 다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앞으로 달려있는 눈으로 인간은 무엇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인가. 인간도 진화 인류학상의 전통적인 포획자란 뜻일까.
이 외에도 재미있는 역사적 에피소드들이 줄을 이어 책에 등장한다. 헤밍웨이가 촉각을 단련시키기 위해 연필 끝을 뾰족하게 가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이야기 등.. 좌뇌와 우뇌의 활동을 동시에 증진시키기 위해서 시각이라든가 후각, 촉각, 온도감각 등 많은 것들을 동원해서 뇌의 활동을 끌어올렸던 위인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뇌의 활동을 어떻게 증진시키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던 이들은 아마 주변 사람들에겐 기인처럼 비춰졌을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의학적 결론 상 두 가지 뇌의 발달을 위해 스스로 고심해서 그런 습관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필을 뾰족하게 깎거나, 따뜻한 물 안에서 물의 흐름을 느끼거나, 옷을 입지 않고 창작활동을 하는 등.. 감각과 이성의 조화와 발전을 위한 위인들의 노력이 참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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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2] 내 머리 속의 빛나는 창조성을 위하여~
아는 것은 수동적이며, 이해한다는 것은 아는 것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 (프롤로그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육은 학생들이 두뇌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도록 하여 정신을 불구로 만들었다. - 버지니아 울프 (본문에서)
21세기는 국가든 기업이든 창조적인 인재를 원한다. 그러니 개인적으로도 창조적 인재가 되길 갈망한다.
창조적인 인재에게서 나타나는 핵심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잘 보고 잘 읽어내는 능력이다. 뛰어난 관찰력에 따른 세밀한 표현을 요구한다. 그리고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다. 서로를 연계한 입체적인 인식이 가능해야 한다.
언어와 이미지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2차원적 이미지, 3차원적 이미지, 시각화 능력, 청각화 능력, 공각감화 능력이 해당할 것이다.
융합 능력이다. 서로 다른 재료를 섞거나 다른 제품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는 제 3의 창조능력이다.
꿈에 도전하는 열정과 용기이다. 꿈과 열정은 어디에도 통하지 않을까. 행운도 꿈과 열정이 있기에 몰려오는 법. 꿈과 열정은 창조성의 보물 같은 것이다.
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한다. 감각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오직 양자의 결합을 통해서만 지식이 태어난다. 임마누엘 칸트 (본문에서)
깨어나야 할 감성과 이성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감각을 깨우는 뇌를 가지려면 어떻게 하는 걸까.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전에는 무시해 버렸던 것이 놀라운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다.
빛나는 생각, 창조성을 끌어내는 방법은…….
유혹을 참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본능을 지닌 뇌와 게으른 육체의 충돌에서 인내심을 발휘해 이겨내야 한다. 마시멜로 실험처럼.
정신은 육체의 판단 기준과 언어와 이미지의 한계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유혹 당한다. 덜 유혹 받으려면 마시멜로를 먹거나 참다가 먹거나 하지 말고 끝까지 참도록 육체를 다스리는 것이다. 육체의 게으름을 몰아내고 육체가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목적을 명령하는 일이 뇌의 임무이다. 위대한 창조자들은 육체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움을 탐구했다.
깨어 있는 뇌가 하는 일은.....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의 역할이 다르다. 좌뇌는 주로 논리, 언어, 수리, 추리와 같은 이성적 판단을 하는데 반해, 우뇌는 음의 인지, 미의 인식, 상상, 차원적 사고, 통찰을 담당한다. 그리고 좌뇌는 우측 신체를, 우뇌는 좌측 신체를 통제한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좌뇌와 우뇌의 상호작용이다. 좌뇌가 주로 이성적 추론과 판단을 하는 데 반해 우뇌는 상상과 통찰을 작동 시킨다. 이때 우뇌가 좌뇌를 자극하고 좌뇌는 우뇌를 자극함으로써 상상력의 불꽃이 일어난다. 창조의 순간인 것이다.
감각 기관은 세계를 인지하는 창의 역할을 한다. 즉 나의 생각과 행동을 명령하는 주체가 육체냐, 아니면 뇌냐의 문제다. 명령의 주체가 육체인 경우는 이성과 감성에 공급한 자극을 감각기관이 만들지 않아서 뇌의 새로운 자극이 굶주리게 되어 점점 힘을 잃게 된다. 이것은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감각조차 둔해져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상태가 된다. 능동적인 것과 주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관성대로 살아가는 무기력한 뇌가 아닌 예리한 이성과 섬세한 감성의 조화를 이룬 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뇌의 본성대로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뇌에 새로운 자극을 계속주고, 긴장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지 말고 꼼꼼히 자세히 살피고 들리는 대로 듣지 말고 세밀한 잡음까지도 주의 깊게 듣기다. 그래야만 감각기관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많이 얻게 되고 민첩하고 예리하게 전달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감성과 이성, 감각과 이미지, 언어와 행동을 통해 생각의 구조와 창조성의 본질에 대한 흥미로운 소주제들에 대한 탐색이 전개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영역들을 잘 키운다고 해서 모두가 창조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각각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서로 상호작용해서 상승효과를 끌어야만 창조성을 나온다는 것이다.
확실히 요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자기 안의 창조성 개발이 화두다. 읽게 되는 책의 상당 부분이 창조성 관련 책이니까. 창조성이 어느 날 불현듯 나타났으면 좋겠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창조성도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오랜 연습과 숙련, 간절함이 빚어낸 결과물이기에.
저자는 인류의 역사의 진보와 혁신을 만들어낸 놀라운 인물들은 생각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뇌의 본능이다. 그러니 창조성도 뇌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뇌의 이성적인 기능과 감성적인 기능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창조성이 발현된다는 것에 공감이다. 융합과 통섭도 그런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고…….
저자의 말처럼 매순간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찾는 뇌의 본능에 맞게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그리고 그것들을 융합하고 연결하다 보면. 이러한 창조의 원리가 습관화 된다면 누구나 창조성은 발현되리라 믿는다.
하나씩 다르게 하기, 하나씩 바꿔보기, 새로운 곳을 가보기, 새로운 물건을 둘러보기……. 그러면 어느 날 육체보다 뇌가 삶의 주도권을 잡을 것이고 창조성이 발휘되는 날이 올 것이다.
창의적인 삶을 살려면, 인생의 순간들을 빛나게 만들려면 , 내 삶이 행복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며 읽은 책이다.
빛나는 생각이 작동하는 원리에 밑줄 쫙~긋게 된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뇌의 본능에 밑줄 쫙~ 긋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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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창조성의 시대라고 한다. 국가도 기업도 창조성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우리 내부에는 우리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최고의 능력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을 통한 지적 능력의 향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자기 안의 창조성을 개발하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말하듯이, 놀랍고도 창조적인 생각은 어느날 갑자기 짠!하고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나는 생각’, 창조성을 끌어낼 것인가? ‘인류의 역사에 진보와 혁신을 만들어낸 놀라운 인물들은 생각의 구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9쪽)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책은 조병학 이소영 두 저자가 창조적 사고가 왜 필요하며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준다. 세계와 소통하는 감각기관, 학습과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이성, 통찰과 감정의 눈을 지닌 감성, 세계의 크기를 한정짓는 우리의 언어와 이미지의 상호작용을 통한 상승작용이 나타나야 창조성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왜 새로운 걸 좋아할까. 행복한 순간은 어느 때일까. 저자들은 뇌의 본능에서 해답을 찾는다. 뇌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으며 뇌의 감성적 기능과 이성적 기능이 조화를 이룰 때 창조적인 게 나온다는 것이다. 뇌의 이성과 감성을 계발하려면 이를 구현할 이미지와 언어를 벼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행복해지려면 이성과 감성을 잘 훈련해야 한다는 말이다. 뇌는 왜 새로운 것을 찾을까? 새로운 핸드백, 새로운 자동차, 새로운 음식을 찾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뇌가 새로움에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감각, 이성, 감성, 언어와 이미지를 키운다고 해서 창조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각각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이고 이를 통해 상승작용이 나타나야 창조성이 발현 된다”(p.12)고 말했다. 또한 “감각기관은 세계를 인지하는 창의 역할을 하지만 본질적으로 육체의 일부인 이유로 게으르다. 육체는 모든 것을 ‘현재의 생존’의 관점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잠을 참아가며 공부하는 것을 육체는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뇌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 새로움 속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뇌는 알고 있다. 그러니 새로운 지식이나 새로운 미래를 뇌가 마다할 리가 있겠는가?”(p.13)라고 말했다. 저자는 창조성은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첫째는 ‘개인의 창조성’이다. 개인의 창조성은 학습과 경험을 기반으로 감성과 감각적 능력이 융합해 발현된다. 문제는 감성적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데 있다. 둘째는 ‘집단 창조성’이다. 집단 창조성은 개인의 창조성과는 다르다. 집단의 창조성이 개인의 창조성의 합이 아니라 개인의 창조성의 융합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뇌를 어떻게 사용하고 진화시킬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힘으로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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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소’와 같은 타이틀에 관심이 많아졌다. 개인이나 기업이 한 일을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해냈다.’라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모든 국민들이 그 이루어낸 업적에 열광하고 찬사를 보낸다.
기업과 조직에서도 ‘좀 더 창의적으로, 다르게 생각해 보라.’며 쥐어짜기 식의 아이디어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번번이 ‘현실과 관례’라는 벽에 부딪히게 된다. 나는 이 불편한 시간이 최대한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이렇다할 배경지식도 열정도 없기 때문이라 스스로 자책하면서 말이다.
<브릴리언트 Ⅱ>는 나에게 ‘새로운 눈을 갖는 방법’에 대해 안내해 주는 책이었다. 프롤로그와 ‘빛나는 생각을 마주하며’를 시작으로 총 7장에 걸쳐 ‘새로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에필로그로 책은 마무리 된다. 지금까지 나를 짓누르던 창의력 부재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해 주었다.
‘감각을 깨우는 뇌’에서는 좌뇌와 우뇌의 감각을 깨우고, ‘이성을 키우는 학습의 기술’에서는 나만의 방법으로 이성을 키우는 학습의 기술을 개발한 사례, ‘빛나는 영감의 시원에 대해’에서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학자들이 하나에 골몰함을 통해 영감을 어떻게 얻었는지, 언어적 정의를 통해 예술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언어와 이미지의 파이’에서 말하고 있다.
또한 ‘본질의 소립자’에서는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였는지, ‘창조와 파멸의 색깔에 대해’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팝아티스트와 CEO의 스토리가 소개되고 있으며 ‘죽음에 다가가는 방법’에서는 또다른 새로움과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 장의 말미에는 ‘Big Questions’를 통해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책에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는 스토리들은 새로움이 어떻게 창조되고 구현되었는지 그 일련의 과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분야, 무슨 일이든 그 틀을 깬다는 것은 위대한 도전과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사례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서 부족한 관련분야의 지식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의 철학이 담긴 ‘명언’이 본문과 잘 어울리게 편집되어 있는 점도 좋았다. 표지에 소개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의 “진정한 발견이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속에 깊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