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고전의 반열에 오른 문학작품들 중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 [삼국지]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사 [삼국지]와 역사소설인 [삼국연의]를 종종 헷갈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삼국지]는 거의 [삼국연의]라는 소설을 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정사 [삼국지]는 촉나라출신으로 삼국시대 이후 사마염이 세운 진(晉)의 역사가 진수가 편찬한 역사서이다. 그리고 [삼국연의]는 원말명초의 작가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를 텍스트삼아 통속적으로 풀어쓴 연의(演義)이다. 연의라는 말은 ‘부연하여 이치에 도달하도록 한다’는 의미로, 역사적 사실에 연의라는 말이 처음 제목으로 등장한 것이 [삼국연의]라고 한다. 여기서 연의란 역사를 윤색하여 알기 쉽게 만들었다는 뜻으로, 쉽게 말해 역사를 통속적으로 이해한다는 의미이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시내암이 쓴 [수호전], 오승은의 [서유기], 조설근의 [홍루몽]과 함께 중국고전 4대 명작에 속하기도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 나관중은 왜 [삼국지]를 풀어서 소설로 썼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삼국연의]와 [삼국지]가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삼국연의]의 세계와 [삼국지]의 세계를 함께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삼국지]는 조조의 위나라를 역사의 정통으로 삼고 있는데 반해, [삼국연의]는 유비의 촉나라를 정통으로 삼고 있다. 이는 [삼국연의]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소설임을 보여준다. 청나라의 역사가 장학성은 [삼국연의]를 두고 7할의 사실과 3할의 허구라고 평했다지만 실제로는 3할의 사실과 7할의 허구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삼국지]보다 [삼국연의]에 더 열광하고 이를 역사로 알고 있는 것은 ‘승자는 역사를 쓰고 패자는 소설을 쓴다’라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대중들이 이루지 못한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소설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총 16장면에 걸쳐 [삼국연의]를 [삼국지]와 비교하며 읽는다.
내가 [삼국연의]를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은 ‘무릇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分久必合), 합쳐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누어지는 법이다(合久必分).’라는 말이다. 이는 [삼국연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로 중국의 전통적 역사관인 일치일란(一治一亂)을 의미한다. 주왕조 말기부터 시작하여 춘추전국시대, 진제국, 초와 한의 대립, 한제국에 이르기까지 분(分)과 합(合)을 반복해온 천하의 대세는 후한말기에 이르러 다시 分의 길로 들어섰고 그 중심에 황건적의 난이 있었다. 그래서 [삼국연의]는 그 시작을 합쳐진지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는 合久必分의 과정이라 보고 있다. 책을 읽으며 [삼국연의]에서 나관중이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 중 흥미로운 부분 몇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삼국연의]의 첫 장면인 도원결의는 나관중의 창작이라고 한다. 물론 [삼국지] <촉서>에도 유비와 관우, 장비가 형제처럼 지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후한말기의 ‘결의’는 상인이나 무뢰배 같은 사회적 하층민 사이에서 유행하던 행위로 지식인으로부터는 경멸의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원명시기에 이르면 ‘결의’의 사회적 의미가 달라지는데 도원결의는 바로 작가가 살던 사회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이다. 조조는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고향 쪽으로 달아나다 여백사의 집에 투숙한다. 그런데 여백사가 신고하는 줄로 오해하여 그의 일가족 모두를 몰살한다. 이 장면은 작가의 창작으로 허구적 사실을 통해 조조를 잔혹하면서도 천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물임을 독자들에게 제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조가 죽기 전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의 이미지보다는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고 남겨진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졸장부 같은 이미지로 조롱한 것은 나관중이 촉을 정통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후대에 조조의 이미지가 추락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외척과 환관의 권력투쟁으로 혼미한 정국에 동탁이 권력을 장악하여 전횡을 일삼자 왕윤이 여포를 꾀어 동탁을 살해한다. 이때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미인중 하나로 꼽히는 초선이 등장하는데, 초선 역시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라고 한다. 또한 [삼국연의]는 물론 [삼국지]에서도 동탁을 잔인하고 포악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가 살해된 후 많은 사대부들이 그를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는 진수나 나관중 모두 역사와 소설의 배경인 삼국시대의 존재에 대한 필연성과 정당성을 동탁의 포악함에서 찾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그런가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장비나 관우, 제갈량의 이미지 역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장비는 관우와의 이미지가 겹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단순무식하고 거친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했지만, 그러면서도 용맹함을 겸비한 장수로 설정하여 대중들에게 친근한 존재로 만들었다. 관우 역시 유비의 처자식과 함께 조조에게 사로잡힐 때 세 가지의 항복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나, 적벽대전에서 패한 조조가 도망치다 화용도에서 관우를 만나자 목숨을 구걸하고 관우가 살려준 것은 충정과 의리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설정된 것이었다고 한다. 또 번성전투에서 독화살을 맞고 화타가 수술할 때 바둑을 두며 낯빛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나, 죽은 후 혼령이 되어 복수극을 전개하여 여몽이나 조조를 죽게 만들고, 승려 보정에 의해 성불이 되었다는 것 모두 관우의 이미지를 위한 작가의 상상력이었다. 또한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삼일밤낮 기도하여 동남풍을 일으키고, 주유가 요구한 화살 10만개를 조조군을 기습하는 척하여 마련한 것, 남만정벌에서 칠종칠금으로 맹획을 굴복시킨 일, 최후의 북벌전투가 일어난 오장원에서 죽기 전 7일간 생명연장 기도를 드리는 설정 모두는 제갈량을 동서고금 제일의 책사로 만들기 충분했다.
이처럼 [삼국연의]는 나관중이 전체적으로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과장하거나 허구를 삽입하기도 했고, 소설의 전개상 순서를 바꾼 창작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저자는 나관중이 연의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 즉 역사적 진실을 소설적 진실로 바꾼 이유는 민중이 바라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따라서 [삼국지]의 어떤 부분을 [삼국연의]에서 어떻게 변형시켰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며, 이 책은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함께 읽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황건적의 난과 도원결의’에서부터 ‘삼국시대의 종언과 재통일’에 이르기까지 150년의 역사를 16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비교 읽기를 한 것이다. 역사서를 통해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연의를 통해서 알게 해주는 셈이다.
[삼국연의]는 누가 뭐래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삶의 방식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어쩌면 그것이 역사적 진실만을 담고 있지 않기에 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다. 역사소설을 읽으면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하는 진실 역시도 그것을 쓰고 읽던 시대의 민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이 책은 [삼국지]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연의되었는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제대로 된 [삼국연의]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도 든다. 다시한번 [삼국연의]를 읽는다면 전과는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
블친의 소개글로 만나게 된 책이다. 내가 아는 삼국지가 진짜 삼국지가 아니었구나. 오리지날 삼국지는 따로 있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삼국지, 1800년 전 관우 장비 유비 제갈량 조조 여포 동탁 등등등등등.....·위·촉 오 삼국의 항쟁사를 다룬 삼국지는 실제 14세기 나관중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삼국연의라는 소설이 그 바탕으로 하고 이후, 17세기 모종강이 다듬은 모본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다. 원래 나관중은 이야기꾼이자 극작가였다.
실제 삼국지는 촉나라 출신으로 삼국시대 후기에 들어선 진나라의 역사가 진수(233~297)가 편찬한 역사서이다. 즉 나관중은 삼국지라는 실 역사적 사실을 텍스트 삼아서 쉽고 재미있게 통속적 소설로 만들어 ‘연의’를 붙인 것인데, “부연하여 이치에 도달하도록 한다”라는 연의의 의미로 볼 때,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통속적인 소설이라는 의미로 볼 때 많은 대중에게 읽혀 얻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저자는 본문에서 우리가 아는 삼국지의 여러 사건을 떼어서 실제 삼국지와 연의를 비교하며 사실과 허구, 과장을 알려준다. 새록새록 익히 아는 삼국지의 내용이 나와 사뭇 반갑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허구와 나관중 이후의 많은 판본에서 추가된 과장임에 씁쓸하기도 하다. 또 이런 책이 아니면 어느 누가 삼국지연의에서 창작인지 사실인지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 하며 무릎도 치게 되고. 유비는 세우고 조조는 낮추는 그 무엇…….
전문가를 제외한 일반 우리는 사실 실 삼국지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실제 역사적 사실임에도. 역사를 냉철한 시각으로 보아야 함에도. 오래전에도, 오늘날까지, 나까지도 창작으로 지어진 삼국지를 더 기억하는 것. 그것은 아마도 지은 나관중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염원이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 아닐까. 허구라는 소설을 통한 진리의 염원. 진리는 모두가 바라는 그 무엇이다. |
|
예전에 내가 아는 삼국지가 소설이라는 걸 알고 놀랐던 적이 있다. 정사는 촉나라 출신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이고 내가 아는 삼국지는 약 천 년 뒤 명나라 작가 나관중이 진수의 삼국지를 각색하여 쓴 소설 <삼국연의>라는 거다. 그렇구나. 어쩐지~ 하며 그러려니 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 책을 발견했다. 경희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삼국지와 삼국연의를 비교하며 각 시대적 상황과 차이를 잘 알려준다. 마침 삼국지 드라마를 보고 있어서 책도 한 달에 걸쳐 천천히 비교하며 읽으니 더 재밌었다. 정사와 소설의 차이가 얼마나 되느냐 하니 70% 정도가 허구라 한다. 진짜와 허구를 가리는 것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나 많은 부분이 소설인지 궁금했다. 복숭아나무 아래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도원결의'부터 만든 이야기고,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미인계로 이용된 중국 4대미녀 중 한사람인 '초선'도 가공의 인물이다. 관우를 치료한 화타도 훨씬 전에 죽은 사람이고, 조조에 투항할 때 내건 조건이나 화용도에서 조조를 살려준 것이나 5개 관문을 뚫고 간 이야기들은 모두 나관중의 관우 사랑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다. 조조도 정사에선 인정하는 유일한 왕이지만 나관중의 소설에선 은혜를 베푼사람을 죽이는 여백사 사건을 만들어 초장부터 비열한 인물로 만든다. 천하의 귀재 제갈량은 적벽대전에서 신기에 가까운 동남풍을 불게 하고 10만개 화살을 얻고 맹획을 7번 잡아 7번 놓아주는 것도 제갈량 같은 훌륭한 인물이 나타나길 바라는 나관중의 심중이 반영된 것이다. 이밖에도 삼국지의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삼국지를 다시 한번 읽는 느낌이다. 정사와 달라도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는지,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달라도 백성이 나라의 평안과 훌륭한 인물을 원한다는 것, 백성의 마음을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삶의 지혜도 가득한 삼국지. 정사든 소설이든 드라마든 삼국지의 세계에 푹 빠져 즐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