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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이제 친구 같은 심이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아, 아직 어린아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최근의 '참 크래커' 사건. 심이가 먹고 싶다며 촘 크래커를 사달라고 했다. 촘 크래커? 그 글자는 촘이 아니라 참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심이는 정말 깜짝 놀랐더랬다. 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참'이야? 한참을 고개를 절레 절레. 이 책을 읽으니 열한 살 대훈이도 똑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은 이랬다.
어린이는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을 풀어간다. 하지만 어른이 보기에 어린이의 오해는 대체로 단순해서 그런 오해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도 모두 재미있는 일화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나도 그렇지만 가끔은 어린이를 조금 놀려도 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잘 알려 주기만 하면 오해는 금방 풀리고, 어린이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이 입장에서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농담 같은 일들이 실은 어린이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무심코 놀리는 투로 말한 적은 없었는지 뒤늦게 반성하며 앞으로 아이가 겪어낼 오해들을 가볍고 재미있는 일화로만 치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어린이 독서 지도를 하고 있는 김소영 작가가 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내내 이런 크고 작은 다짐을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필독서가 되어도 좋을 이 책을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 넘어가고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심이를 많이 떠올렸지만 그보다 이 땅의 어린이들, 어린이였고, 혹은 어린이가 될 모든 사람들을 더 많이 떠올렸다. 아이들을 어른들이 보살펴야 할 연약한 존재라기보다는 한 명의 당당한 자아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겠다는 마무리도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말을 어린이에게도 하지 않는 것. 누군가와 '잘' 더불어 살아가는 비법은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봄부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당연히 마음껏 놀지도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헌신적으로 협조한 집단이다. 물론 어린이는 실내에서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낸다. 그렇지만 어디든 나가서 잠깐이라도 뛰놀고 와야 칩거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게 어린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녀들은 애초에 부모를 그렇게 닮지 않았다. 물론 얼굴이나 체형은 한 번씩 ‘아, 맞다, 가족이지!’할 만큼 꼭 닮은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생활 습관, 말투 같은 것도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린이를 설명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모두 너무 보고 싶다.
제일 자주 발견하는 건 역시 지우개다. 왜 그런지 어린이가 두고 간 지우개에서는 나름의 역사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닳아 있고 별 특징이 없는데도 그렇다. 손에 쥐면 따뜻하다. 이런 자잘한 물건들에는 이름을 써 붙여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다음에 왔을 때 찾아 가져갈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 본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구간이다.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수정할 수도, 지어낼 수도,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시차는 추억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상처를 더 치명적인 것으로 만든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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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어린이는 어떤 존재로 취급받고 있을까? 대개는 '우리 사회의 미래' 혹은 '희망'이라는 수식어들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해마다 '어린이 날'이 되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서 어린이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역설하곤 한다. 하지만 그 때가 지나면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어린이라는 주제 혹은 존재는 다시 무관심의 영역으로 돌아가곤 한다. 오히려 지금 어린이들은 '교육'이라는 제도 아래 혹사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오로지 학교 성적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위해, 자식들을 사교육의 현장으로 내몰고 정당한 휴식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보자.
저자는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저자는 어린이들과 함께 그들의 부모들을 주로 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살아가면서, 글을 쓰기도 하는 저자가 자주 들었던 말은 아마도 '네가 애가 없어서 그래!'라는 표현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를 낳고 길러본 사람만이 어린이를 잘 알 수 있다는 전제일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이른바 '경험주의'의 전형적인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는데, 자신이 겪은 자식을 통해서 어린이의 세계를 전부 다 알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라 할 것이다. 하지만 모든 부모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모두 똑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의 성향도 각자 다르듯이 아이들도 각자 개성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인것이다.
어쩌면 자식을 낳고 길러본 사람들은 어린이 일반이 아닌, 자기 자식만의 특별한 경험을 근거로 그것을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한국 사회의 부모들은 아이를 존중의 대상이 아닌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 다른 아이도 비슷할 것이라는 인식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양한 아이들을 접하면서 그들과 눈높이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저자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특별한 케이스에 갇히지 않고 어린이를 폭넓게 논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어린이를 이해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겪었던 어린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어린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애초에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어린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어린이와의 관계가 저자에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 결과로 이 책이 출간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구성한 책의 내용들에서는 어린이를 단지 구호만이 아닌 한 사람의 존재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어린이를 존중하고 한 사람의 존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당위와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서 양육하려는 부모(기성세대)의 현실적인 태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라는 존재의 의미와 어땋게 그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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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다 거쳐 온 시간들이다. 하지만 모두 잊고 있는 세계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렇게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는 알 듯 모를 듯한 이리숭한 세계다. 분명히 그 시간들을 거쳐 왔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말을 하고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를 해도 어른들의 관점으로 이해한다.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이 살아온 방식이고 살아갈 방식이다. 아득한 세계, 그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신비스러운 세계를 탐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세계를 이 책은 만나보게 만든다.
물론 저자도 어른의 신분으로 어린이라는 세계에 몸을 던져 보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이야기를 앞세우지 않는다.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원장으로 아이들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책은 아이들이 보여준 언행을 기록하면서 의미를 생각해 보고 있는 책이다. 아이들의 행동이, 말이 어떤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궁구하는 속에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답을 찾는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기에 그들과 자신은 누구인지 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의 세계에 접목해 보는 것, 상당한 의미로 다가온다.
독서교실 어린이들은 내가 작가라는 사실을 무척 재미있어 한다. 책을 다 쓰는 데 몇 시간이 걸렸느냐고 묻는 어린이도 있고, 팡 아팠겠다고 걱정해 주는 어린이도 있다. 나중에 자기 딸이 책 읽을 때 가르쳐 줘야 한다며 내가 쓴 독서 교육서를 읽어 보겠다는 어린이도 있다. 그 말에는 웃었는데, “엄마 어렸을 때 독서교실 다녔다고 말해 줄 거예요”에는 눈물이 찔끔 났다.
어린이들의 정신세계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여 준다. 이 책은 이렇듯 설명해 주는 것보다 보여준다. 그러기에 훨씬 공감이 간다. 아이들이 내비치는 언행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독자들이 느끼고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자기 딸에게 가르쳐 주겠다니? 얼마나 깜찍한 상상력의 세계인가. 이 책은 이렇게 맑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린이들의 세계, 우리도 겪어 왔지만 모두 잊어버리고 있는 그 순수의 세계를 찾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읽을 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는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받은 대로 성장한다는 지론을 가진 저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존중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이 존중할 줄도 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존중 받으면서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존중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안다고.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그래야 바로잡고 고쳐나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그런 것들이 모두 성장하면서 자신이 받은 대로 느껴갈 수 있다고.
저자는 어린아이들이 학습 현장에 오면 코트 같은 것을 벗겨 주고 그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생활을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아이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선생님이 코트를 벗겨주는 것을 어색해 하더니 익숙해지니 당연하게 어깨를 돌려대고 옷을 벗겨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일들이 가르치는 선생님은 어린아이를 대접하는 일이고, 아이는 존중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쌓여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읽기와 쓰기는 나란히 간다. 읽기 시작한 어린이가 힘것 글자를 쓰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대견하다. ‘ㄹ’를 그리다가 언제 끝낼지 몰라 본의 아니게 한자 ‘弓’을 쓰기도 하고, ‘ㄹ’에 익숙해질 무렵 잘 쓰던 ‘ㄷ’이 갑자기 ‘⊃’이 되는 때도 있다지만 결국 해낸다. 나는 어린이가 글을 쓰다가 모르는 글자를 물어보면 되도록 책에서 찾아서 가르쳐 준다. ‘책에는 뭐가 많이 있다.’ ‘선생님도 책을 보고 알게 됐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아이들의 세계가 잘 다가온다. 아이들이 언어를 배워가는 과정을 이끌어가는 선생님의 자세가 마음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모르는 글자가 있어 물으면 책을 찾아서 가르쳐 주는 일은 아이에게 책의 소중함을 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자가 이상해도, 잘못 되었어도 끈기 있게 참으면서 지켜주는 선생님의 태도는 많이 본받고 싶다. 아이들의 세계, 그 순수와 열정의 시간들이 너무 눈에 선하게 다가온다. 이렇게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생각이 여물어 지면서 성장하는구나!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넉넉해진다. 책을 읽으면서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든다. 책 속에 우리들의 아이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읽기와 쓰기 아이들에게는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고 줄곧 쓸 수도 있게 된다. 아마 지각 가운데 언어를 익히는 능력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어른들이 그렇게 안달 나게 가르친다고 하지 않아도 때가 그렇게 만들어준다. 아이들의 언어 세계, 정말 신비롭다.
어린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 집에 빗댄 설명을 종종 한다. 단어를 벽돌로, 문장을 벽으로, 문단을 방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하나의 문단에는 하나의 생각만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잠자는 방, 부엌, 화장실을 구분하는 데 비유하면 설명하기가 좋다. 집의 크기가 식구 수에 따라 방의 개수가 달라지듯이, 글도 상황에 따라 단락 수가 달라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대는 어린이들이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내 경험을 덧붙인다.
글쓰기 교육이 참신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본다. 아이들이 집에 비유한 글쓰기를 잘 수용할 듯하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에 비유하는 것만큼, 무엇을 전달하려 할 때 적당한 다른 방법이 있을까? 이런 방법이 아이들의 뇌리 속에 각인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어릴 적 기억된 것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특히 그것이 좋은 기억임에랴. 좋은 교육을 하고 있는 자리가 행복하게 보인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글쓰기에 먼저 접하게 될 것은 당연하다. 아마 이것이 성장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이런 배움과 관련이 없이 자라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좋은 조건을 지녔다. 그만큼 기회를 부여받고 있다는 뜻이리라. 언어를 다듬는 글쓰기는 생각을 가지런히 하는 수단도 된다. 글쓰기를 배우면서 하는 성장한 축복을 받은 성장이다. 책 속에서 만난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잘 성장할까 기대가 된다.
어린이가 횡단보도를 간널 때 손을 드는 것은 운전자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다. 몸집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까 봐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는 것이다. 대중교통의 좌석에 않을 때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어린이도 있다. 어른이 한 걸음 걸을 때 어린이는 두 걸은 걸어야 한다. 어린이는 비 오는 날 투명 우산을 써서 시야를 확보한다. 어린이가 작은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다.
어린이의 눈높이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그들의 생각의 자락을 쫓을 수 있다. 어린이를 어른처럼 생각해버리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역할이 있고, 활동 범주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어릴 때 기억이 좀 난다. 그때는 놀고, 먹고, 자고, 공부하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정말 시간이 안 가는 것이었다. 긴긴 여름 날, 멱을 감기도 하고, 밭에 가서 과일들을 따 먹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놀아도 시간은 가지 않는다. 해는 늘 중천에 있는 것 같았고 저녁이 오기까지 정말 시간이 길었던 듯하다. 아마 어린 마음에 어른들이 그렇게 커 보였고, 시간이 그렇게 긴 듯했다. 지금은 하루가 너무 빨리 흐른다. 어린이들의 세계, 규모가 작고 느린 세계다. 그 세계를 이해할 때 아이들의 성장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는 온전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어린이들의 꿈과 배움을 인지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바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맑고 고운 신비스러운 세계, 하지만 너무나 지혜로운 그들의 세계에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도 복된 일이 될 것이라 여겨진다. 이 책, 어린이라는 세계는 신묘막측 하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다. 그 세계가 곱게 그대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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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편집자를 꽤 오래했고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는 한때 모두 어린이였다. 그 시절이 까마득하여 어린이였던 시절을 곰곰 생각해야 할 정도다. 주변의 아이들이 좀 더 어렸을 때는 어린이들이 하는 말 때문에 웃고 감탄을 하였던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었다. 어린이들은 이렇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존재. 어른은 자기의 마음을 감추고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받는데 아이들은 말을 하지. 뭐든 어른은 어린이에게 가르친다며 말을 하곤 하는데 오히려 어린이에게서 배우는 게 많지 않나.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다그치고 기다려 줄줄 몰랐던 어른들의 세계를 혼내는 것만 같다.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 스스로 운동화 끈을 잘 묶을 수 없어 밸크로(일명 찍찍이 테이프)로 된 신발을 사준다. 운동화 끈을 묶는 법을 몇 번이고 가르쳐주었지만 어린이들에게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때까지 가르쳐주면 늦기는 해도 묶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한쪽 끈이 풀어져 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느슨하게 묶어 생긴 결과다. 어른들은 운동화 끈이 풀어진 어린이의 신발을 보지 못하고 묶어 주려 한다.
그것도 맞는데, 지금도 묶을 수 있어요. 어른은 빨리 할 수 있고,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만 달라요. (18페이지)
독서교실에 축구화랑 비슷한 풋살화를 새로 신고 온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어려웠던 일들도 쉬워진다고 말해 주었을 때 아이가 한 말이다. 아이는 신발 끈을 묶을 수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어른들은 어린이의 느린 동작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린이 같아지는 면이 없잖아 있다. 아마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대화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에게서 전해오는 따뜻함에 절로 애정이 솟구치고 말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시선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앤(엔) 제 마음이 있어요. (72페이지)
라고 말했던 아이의 말을 생각해 보자. 아이가 마음을 담아 선물한 책이다. 그 마음이 선생님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책을 받은 선생님은 책을 볼 때마다 그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저절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어린이의 마음이 가득 담긴 책을 소중히 보관할 것이다. 마치 내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다. 잊고 있었던 내 어린이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만큼 감동적이었다.
최근 어린이 실종과 유괴관련 소설과 뉴스에 오르내리는 어린이 학대와 사망사건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저자도 책에서 어린이 학대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 모두가 유념해야할 주제다. 훈육한다는 명목하에 다섯 살 어린이를 학대한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아이에게 해소했던 것과 같다. 어린이는 어른의 보호와 배려로 자라는 법이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아이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어린이는 말 그대로 어린이인데 부모는 아직 어린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마음만으로 되지 않으니 나도 보고 배우고 싶은 좋은 친구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나 기웃거리는 요즘이다. (45~46페이지)
아이를 낳았거나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어린이들의 세계를 아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다양한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한다. 어린이들이 가진 순수함. 교육과 나름의 생각에서 비롯된 순수함을 보며 잊었던 어린이 시절을 기억해볼 수 있다. 비록 서툴지만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어린이들을 아이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어른에 가려 보이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거. 어린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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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아직도 내 삶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게 힘들기도 하다.. 그러다 발견한 어린이라는 세계 제목을 보자마자 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어른의 눈을 통해 본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너무나도 소중하고 따뜻한 존재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행복했든 불행했든 이 책의 어린이들처럼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순수하고 소중했던 마음을 잃고 살아간다. 나를 힘들게 한 것도 어른들인데 커서 내가 그 어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은연 중 무시하고 있었다는 게 매우 부끄럽기만 하다. 아이들은 소중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쉽게 망각하는 듯... 나도 그랬고...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있는 그대로 지켜봐주고 소중히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어린이였을까 궁금해졌다.? 나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따뜻한 존재가 되어준 적이 있을까? "연두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나도 어 렸을 때 저만큼 부모를 사랑했을까? 처음 먹어 보는 작고 예쁜 초콜릿을 엄마 아빠에게 가져다주고 싶어서 방법을 고민했을까? 손에 쥐고 가면 녹을까 걱정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연두처럼 나도, 엄마의 감기약이 식을까 봐 약국에서 집까지 약 봉투를 품에 안고 달려간 적이 있다.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어린 나도 몰랐고, 아마 부모님도 모르셨을 것이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 다만 서툴러서 어린이의 사랑은 부모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하는지 모른다. 마치 손에 쥔 채 녹아 버린 초콜릿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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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어린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가 항상 부담스럽다. 더 어린 아기들은 귀엽긴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할지 막막해서 뭔가 몸과 표정이 굳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한 때는 어린이였다. 이런 나조차 어린이였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건,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되면서였다. 나에게도 김소영 작가같은 어른이 있었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내 옆에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으로 기억에 남았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는지 알 수 있다. 김소영 작가는 확실히, 그가 가르치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소영 작가처럼 어린이를 어른과 같은 '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실은 당연한 것인데, 작가가 이 책에서 언급했듯 많은 어른들이 그 사실을 깜빡한다.
나는 어린시절에 항상 작은 아이였다. 지금도 보통 사람에 비해 체구가 작은 편이어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느낀다. 체구가 큰 사람들은 자주, 아무 의식없이 체구가 작은 사람들 앞에 끼어들고 밀치고 무시한다. 그리고 체구가 큰 사람들이 주변에 둘러싸여 있으면 시야가 가려지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서 무섭다. 어린이들은 항상 그런 것을 느낄 것이다. 어린이였던 우리는 그 마음을 헤아려 배려해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대할 때 귀여워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특히나 어린이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이성'으로 가르치려고 한다는 부분이 인상깊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를 대할 때 사랑으로 가르친다고 하며, 심지어 내가 학교다닐 때는 '사랑의 매'라는 표현도 있었다. 신체적 체벌을 '사랑'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어른이 편한 방식의 훈육을 하는 것이 과연 정말로 어린이를 위한 것일까?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말을 할 필요 없이 그저 어린이를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적절히 대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이 어린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모습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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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마무리를 장식해주었던 <어린이라는 세계>. 읽고나서부터 길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책 읽어보라고 대뜸 말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을 만큼 재미있게 읽었던 지라, 독서모임의 발제 도서로 선정해두었다. 내가 어린이라는 세계 앵무새라서 독서 모임 멤버들은 읽기 전부터 제목에 질렸을 지도 모른다...?? 김소영 작가님이 연재하는 경향신문의 '김소영의 어린이 가까이' 칼럼을 읽고 나서 꼭 칼럼을 모은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나와서 너무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구매했다. 작가님은 칼럼 연재 제의를 받으셨을 때 엄청난 분량(광고를 제외하면 신문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양이라고 한다.)에 많이 고민하셨지만 지인이 '어린이에 대한 이 만큼의 광고를 낸다고 생각하면 정말 흔치 않은 기회'라고 하여 수락했다. 작가님은 글 한 편에 독자가 어린이에 대해서 반드시 한 가지는 알아갈 수 있도록 글을 구성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발간된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을 재빨리 구매해서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거의 매 챕터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읽었다. 얼마 전 독서모임 발제를 위해 세 번째로 읽었을 때도 또 다시 주책 없이 솟아나는 눈물에 "흑흑, 작가님 너무 좋아... 작가님이 하는 말 정말 정말 좋아"를 남발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나면 가슴이 너무나 따뜻해진다.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의 경험과, 내가 어린이와 겪었던 일들이 떠오르고, 새롭게 알아가는 사실과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오해들이 스르르 풀리는 그 느낌이 참 신기하다. 작가님이 나눠주신 소중한 경험과 생각들 덕분이다. 착하고 바르고 따뜻한 마음가짐에 내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혀있던 세상에 대한 냉소도 부드럽게 녹는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여러 에피소드가 인상 깊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어린이가 '있다'>이다. 비출산 여성으로서 경험했던 일들과 비출산에 관련된 문제적 발언을 지적하고 있는 챕터다. 나도 종종 친구들과 대화할 때 "아니, 진짜 이런 세상에 애를 낳으면 아이한테 죄 짓는 거 아냐?", "애 낳지 말고 나라 다 망해봐야 알지" 등등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2016년 행정자치부가 공개하고 이슈화된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이트를 비판할 때 그렇게 맞섰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임신 말기의 임산부 생활수칙에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 옷 잘 정리해두기', (집 비운 동안 밥을 제대로 차려 먹지 못할 남편을 위한) '밑반찬 준비해두기' 등을 리스트에 올린 '서울시 임신·출산 정보센터' 사이트에 비난이 쇄도할 때에도 SNS에는 '내가 애를 낳나봐라. 어린이가 없어야 정신을 차리지'와 같은 반응을 숱하게 볼 수 있었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말에 섞인 함의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했을 것 같다. 책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어린이는 사회가 잘할 때 주고, 못하면 뺏는 상과 벌이 아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상과 벌의 도구적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의 몸을 임신과 출산, 육아의 도구로 생각하는 정부의 성 감수성에 대해 질책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와 양육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본질적인 정책을 제정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어린이라는 '약자'를 쥐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요구해야 한다. 그 어떤 약자도 상처 받지 않는 '모두를 위한 요구'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노키즈존, 노 배드 페어런츠존 논란에 대해. 무엇보다 책을 읽고 나서 아직도 많은 가게에서 보이는 '노키즈존', '노 배드 페어런츠 존'에 대한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노키즈존과 노 배드 페어런츠 존은 명백히 차별적이고 혐오적이다. 시끄러운 어른들에 대해서는 조금 화가 나도 참거나, '어른 중 일부'에 대해서만 몰상식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린이는 '모든 어린이'가 말썽을 피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참는 게 아니라 '가게 내부로 들일지 말지'부터 생각한다. 술에 취해 소리를 높이는 시끄러운 어른들에 비해서 어린이들은 만만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양육을 오로지 양육자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린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비난의 눈길이 쏟아지고 양육자들과 아이들은 움츠러든다. 어쩔 때는 손님이 먼저 자신의 조용하고 안락한 시간을 위해 노키즈존을 권하기도 한다. 종종 가게의 주인의 선택을 이해하는 양육자들이 등장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다. 노키즈존 가게의 주인과 그걸 옹호하는 손님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보다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는 큰 흐름에 대해서 비판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 싶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가 없어 문제적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어린이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에는 노력을 쏟지 않는 것만 같아 답답하다. 어린이 대상화에 대한 경계 한편, 어린이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었던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도 반성할 수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 역시 '어린이를 싫어한다'고 스스럼 없이 말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여학생들과는 다르게 아이를 싫어하고, 어린이에 대해 '그게 뭐가 귀여워?!' 하고 반응해서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했다. 반대로, 나이 차이가 12살이 나는 어린 막내동생이 생기고나서부터는, 어린이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에게 마구 공격적으로 굴고 아이들을 무조건적인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때도 있었다. 어린이를 너무 귀엽고 작은 존재로만 대했다. "하찮고 바보같고 귀여워!" 어린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자라고 있는데 나는 그런 모습을 존중하지 않았다. 귀여워만 했었고, 실수를 할 때는 짓궂게 놀린 적도 있다. 그러니까 어린이를 나와 같은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보호해주어야만 하는 대상으로서 바라봤다. 그래서 어린이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너무 속상해 했고, 어린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짜증도 났다. 어린이를 대상화했던 것이다. 대상화는 겉으로 보기에 '긍정적인 감정'을 통해서도 발현된다. 어린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대상화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엘레베이터에서 귀여운 아가를 보면 한참을 빤히 보며 웃는 것도 어린이를 존중하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건 부끄럽게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어린이 인권'과 <어린이라는 세계> 책을 통해 지금까지의 태도를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이를 나와 동등한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할 것. 작가의 말처럼 '어른에게 하지 않을 행동'은 '어린이에게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린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 "어린이는 사고를 친다. 참을성이 부족하고, 예측불가능 하며, 통제 불능하기 때문이다."라는 통념을 다른 시각에서도 바라볼 수 있었다. 맞다. 어린이는 사고를 친다. 말썽을 피울 때도 있다. 참을성이 부족하기도 하고, 종종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보여 주변 어른들을 긴장하게 한다. 그건 세상이 어른을 위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는 의문을 넌지시 제시한다. 사회에는 분명히 '항상' 어린이가 존재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시스템을 갖춘 곳은 드물다.
저자는 그림책 작가 안노 미쓰마사의 책을 통해 그 근거를 말한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두 눈 사이가 좁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려운 지점'이 어른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위가 어린이 쪽이 더 좁다는 뜻이다. 어린이가 돌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통제 불능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다른 탓도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나를 둘러 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불편했다. 박물관의 팜플랫을 받으려면 한참 위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서 엄마가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걸 기다려야 했다. 지금 당장 박물관이 궁금했기 때문에 엄마가 일을 보는 사이에 나는 한참 떨어진 팜플랫 꽂이까지 뛰어가다가 어디엔가 부딪혀 다친 적이 있었다. 엄마는 왜 조금만 기다리면 줄 걸 거기까지 뛰어가다가 다치냐고 한숨을 쉬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밥 먹을 때마다 식탁에서 다리를 흔들거리는 내게 부모님은 몇 번이나 호통을 쳤다. 땅에 다리가 낳지 않아 흔들다보면 꼭 맞은 편에 앉은 여동생과 다리가 부딪혔고 우리는 식탁 아래에서 다리 씨름을 하다가 혼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불편함과 억울함은 잊고 어른이 된 나는 어른의 세계에 금방 적응한채 어린이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어린이들의 세계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반성하는 시간이 참 많았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자세, 무의식중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표현을 되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혹은 이번 포스팅을 읽고 어린이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봐야지 하고 다짐했다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요즘 들어, 사회 곳곳에서 처음 시작해서 익숙하지 못한 상태의 사람을 '0린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는 무언가를 못하는 단계도, 인생에 있어 미숙함을 대표하는 시기도 아니다. '0린이'가 통용되는 사회에는 (화자의 의도가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 전반적으로) 어린이가 어른보다 못한다거나, 어린이를 얕잡아보는 무의식적인 사고가 기저에 깔려 있다. 지금부터 '0린이' 대신 '00 초보'라는 좋은 표현을 쓰면 어떨까? 사용하는 표현을 바꾸는 아주 작은 노력들이 모여 희망이 되고 사회를 바꿔 나갈 원동력이 된다. "그런 걸로 뭐가 바뀌겠어?"라는 냉소보다는 지금 바꿀 수 있는 것들부터 당장 실천하는 태도를 가져보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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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부모, 하지만 과연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난감하다. 어떻게 하면 어른의 시선이나 입장이 아닌 그들의 입장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이었다. 그러다 만난 김소영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이 책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챙긴 것은 '어린이'였다.
사계절출판사 신작도서 『어린이라는 세계』다. 책을 손에 잡게 된 계기는 김영하북클럽 2월 도서였기 때문. 그러나 김소영 에세이를 읽으며 느낀 점은 현재의 내 아이, 내 마음속의 아이까지 돌아보며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게 했다. 그녀는 어린이책 편집자다.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키운 적은 없다. 그래서 더 객관적으로 적을 수 있었을까? 내 아이보단 다른 아이를 감정적이지 않으면서 더 주의 깊게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런 한 발짝 떨어진 관찰자는 아이였다. 바로 아이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며 그 자체로 대했고 진심으로 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1. 곁에 있는 어린이 2. 어린이와 나 3. 세상 속의 어린이
그녀가 이야기할 주제들이다. 독서교실을 하면서 만난 아이들과 경험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식으로 아이를 대했는지 세심하게 체크한 시선 중 배우고 싶은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착한 어린이'라는 말에는 '남의 평가'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이때 '남'은 주로 어른들이다. 부모님, 선생님, 산타 할아버지 같은. (...)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p.33)
이런 단어들로 아이를 만들어내지 말아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그런 아이로 자랐기에, 그래서 마음 편히 행동을 할 수 없었던 나의 안에 있는 아이가 떠올랐다. 내 아이만큼은 이렇게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되지 않도록....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저자 김소영의 말에 귀가 기울여진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돼야겠다는 그녀의 다짐에 나도 손을 들어본다.
어린이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으로서 어린이도 체면이 있고 그것을 손상시키려고 노력한다. 어린이도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신경 쓰고, 때와 장소에 맞는 행동 양식을 고민하며,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쓴다.(p.42)
이렇게 객관적으로 아이를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내가 가진 어른이라는 시선으로 아이를 마음대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행동하고 말하고 있지 않은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내가 이미 지나온 생활이라고, 아는 생활이고 그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판단하지 않고 아이가 겪어야 할 사회생활을 존중하며 뒤를 따르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주는 것이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p.53)
현재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가장 협조적인 집단이 아이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밖에 나가서 뛰어놀고 싶지만, 가고 싶은 것이 많지만 아이의 입에서는 "*로*가 끝나면..."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어딜 가나 불편할 수 있는 마스크를 가장 잘 착용하고 있는 것은 아이들이다. 놀이터를 지나가도 사람이 많으면 다음에 놀자고 하며 그 자리를 떠날 줄도 안다.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도 알아야 한다.(p.62) 우리의 투덜댐을 줄여야 하지 않을까? 꼭 바깥이 아니더라도 어린이가 놀 수 있는 환경만큼은 어떻게든 만들어보는 것에 대해 말한다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 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의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으로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p.91)
사람들이 각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주는 활기차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이야말로 사무적으로 보일 만큼 안정적인 질서다.(p.92)
세상에 모든 사람은 각자 다른 존재다. 다른 점, 비슷한 점 모두 나이며, 그 사람임을 인정하고 살아감이 필요함을 느낀다. 무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을 두 가지 색으로 생각하는 것을 바꾸어야 할 때다. 김소영 에세이 그녀가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담겼다.
아이들이 당한 인권파괴로 인한 사건 이야기를 통한 그녀의 한 마디다. '피어 보지도 못했다'라는 표현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필요함을 느낀다. 매 순간이 소중한데 그런 식의 표현은 아이를 나와 같은 하나의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고 전한다.
삶의 순간순간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p.163)
독서교실에서 선생님이 준 초콜릿은 몇 개 집어 든 아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녹아버릴까 노심초사한 모습에서, 녹지 않게 담을 곳이 생기니 안도하는 모습에서, 집에 가서 함께 할 가족을 생각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 어린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지 않는다.(p.179)
아이의 이야기를 하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살아갈 세상에 관한 이야기.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무조건 낳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왜 낳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찾아야 하는데... 태어난다고 좋아질까? 생명들이 살아가기 좋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 사회는 그대로이면서 아이들이 미래가 밝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욕심 아닐까.
사회가, 국가가 부당한 말을 할 때 우리는 반대말을 찾으면 안 된다. 옳은 말을 찾아야 한다.(p.219) 어린이를 사랑한다고 해서 꼭 어린이를 존중한다고 할 수 없다.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람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p.227)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이니 뭐니 하는 말도 자제하면 좋겠다. 어린이는 나라의 앞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을 위해서 살아 있다. 나라의 앞날은 둘째치고 나라의 오늘부터 어른들이 잘 짊어집시다.(p.247)
어린이가 가르쳐 주어서 길을 아는 게 아니라 어린이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고심하면서 우리가 갈 길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 된다.(p.254)
김소영 에세이에는 아이를 그대로 존중하는 그녀가 있다. 시선을 맞춰주는, 너무 귀엽다고 어른의 시선으로 웃지 않기, 비 맞는 어린이를 존중하면서 우산 씌워주는 모습 등... 세심함 속에서 서로 간의 신뢰가 보인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우리 곁의, 내 안의, 세상 속의 어린이를 쾌활하고 다정하고 신중하게 반기는 목소리는 우리의 세계를 넓힐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섣부른 어른이 되지 말자. 김영하북클럽 2월 도서 무궁한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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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책이라 자주 눈에 띄였다. ‘우와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제목 멋지다. 에세이인가?’ 에서 내 관심은 끝이었다. 김영하 작가가 북클럽 도서로 선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예전에 독서모임을 함께 했던 지인들이 갑자기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하자고 해서 부랴 부랴 구매해서 읽었다. 와, 왜 하자고 했는지 알겠고, 김영하 작가가 왜 선정했는지 알겠고, 왜 베스트셀러인지도 알겠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보다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 마음이 먹먹한 책이다.
<어린이라는 세계> 제목이 인상적이다. 처음에 언뜻 보고 ‘어린이의 세계’로 잘못 알고 있었다. 책을 구매할 때야 제대로 알았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어린이들이 사는 세계. ‘그사세’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저자의 말대로 아주 차츰 차츰 어른이 되었기에 잊어버리고만 그 세계. 그래서 살짝이나마 저자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세계다. 두번째는 어린이들이 사는 세계, 즉 우리 사회 안에서 어린이들의 세계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궁금증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그런 세계.
이 책을 5가지 질문으로 뽑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성미가 급한 한국 사람들. 아주 평범하디 평범한 한국 사람인 엄마도 나에게 결코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빠르게 제대로 해내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자랐고, 이는 내가 모든 걸 시작조차 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어차피 엄마 마음에 들게 할 수 없다면 애초에 시도를 안 하면 된다. 내가 뭘 하든 답답하여 본인이 중간에 가로채갔던, 아니 지금도 그런 상황이 종종 벌어지기에 나의 압박감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미뤄 짐작했던 아이가 진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어 버린 거다. 다행히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육아서에서도 잘 배웠기에 우리 아이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물론 급하게 나가야 하는 시간에 빈둥거림이 폭주하는 아이에게 독촉하는 건 별개로 하자. 이 때도 적어도 가로채거나 억지로 내가 해주진 않는다. 아이가 해야 하는 일은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온전히 믿어 주는 것도 엄마의 역할임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엄마이고, 엄마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게 많다는 걸 용납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들도 아기를 낳기 직전까지 자연스럽게 갖고 있던 사회 속에서의 다양한 역할과 본인 자신의 모습이 있다. 여기에 엄마라는 자아만 하나 덧붙여지는 게 아니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출산과 동시에 이전 역할을 뒤집어 엎어, 나라는 자아가 완전히 새로이 태어나는 시간이 시작된다. 내가 알던 세상과 더 이상 같은 세상에서 머물 수 없으며, 나 또한 낯설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이 때 다행히 어디서부터 나를 알아가야 할지, 어떻게 나를 알아가야 할지, 어떤 점을 신경 써야 할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엄마가 되고 좋은 점 중 하나다. 애초에 우리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대로 나 자신에게도 신경 써주면 된다. 좋은 걸 먹이면서 나도 먹고, 좋은 걸 입히면서 나도 입고, 좋은 걸 읽어 주면서 아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읽어 주면 된다. 빨리 하라고 독촉하지 않고,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토닥여주고, 잘 안 되면 다시 한 번 해보자고 응원해주면 된다. 나를 돌보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이 방법 또한 단지 몰랐기에 해줄 수 없었던 거고, 아이를 낳고 잘 알게 되었으니 이제라도 해주면 된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다치지 않기를, 힘들지 않기를 정말 말 그대로 ‘꽃길’만 걷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내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고, 내가 다쳤던 것처럼 다치지 않길 바라고, 몰라서 손해 본 걸 미리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모든 건 아이들의 몫이다. 스스로 직접 경험하면서 터득해나가고 성장해갈 시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아이의 고유성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거름들이다.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 아이도 나도, 어제와 다른 오늘을 새롭게 살 수 있다는 것. 아이도 온전히 그걸 알고 자신의 고유성을 단단히 하여 그 기반에서 자라길 바란다.
많은 반성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었다.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나라는 사람은 한 인격으로 아이를 다른 인격으로 존중해주는지, 그 작은 인격의 시선에 당당할 수 있는지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어린이는 나를 보고 자랄 테니. 게다가 그런 어린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인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생존의 위협 없이, 자신의 경험을 차곡 차곡 쌓아가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걸까? 개인의 사고 방식이 중요하다. 그들을 없는 존재로 여기고,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여기기에는 그들은 너무 많은 걸 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아는 경우도 있고, 많은 걸 보고 느낀다. 그들이 보는 나는 어떤 어른일가?
책도 어쨌든 상품이고 팔려야 한다. 그러려면 타이밍이 좋아야 한다. 모두가 씁쓸한 일들이 연일 보도 되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진 느낌이다. 아동 학대 이야기로 떠들썩하여 의도치 않은 ‘어린이’라는 단어로 이목을 끌 수 밖에 없는 이 책. 그래서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을까? 적어도 내가 기대했던 바를 뛰어넘은 건 확실하다. 가해자들의 그 어떤 배경도, 숨겨진 이야기도 궁금해하지 않다는 저자의 사이다 발언. 그저 그들이 저질렀던 악행에 대해서 엄중히 처벌하고,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길 바랄 뿐이다. 특히 아이에게 일어나는 가해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아니, 피해자가 아닌 타인이 용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린이는 단순한 약자가 아니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이다. 그에 행해지는 범법 행위는 어떤 것도 용납될 수 없다.
교육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는 걸 주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마땅히 이러이러 해야 함’을 알려주는 과정이다. 어린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일이 결국 우리 사회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다. 아이에게 이 세상은 믿을 수 없고, 타인을 밟고서라도 일어서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그 사회는 그런 무자비한 사회가 되는 것일테고, 함께 살아야만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공존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이야기 해주셨다. 가정에서의 문제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사회 자체가 문제가 가득하기에 가정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가정이 모여 사회가 이루어진 것인데, 한쪽 방향으로만 영향을 줄 수 있을리가 없다. 문제가 생긴다면 양쪽을 다 들여다보고 신경 써야 한다. 결국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많아지는 책. 연결해서 여러 책이 떠오르는데 그 어떤 책보다도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잘 표현하고 드러내면서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점들을 정확히 짚어낸다. 과연 긴 시간 어린이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의 내공이 느껴진다. 정말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특히 아이를 낳고 더 이상 객관적으로 생각하거나, 의견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밖에서 봤을 때는 이런 것 같아요, 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아이가 없는 저자가 이런 책을 쓰면 안 되는 이유가 아니라, 더욱 써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저자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개인 가정에서의 일이 아니라 사회로 끌고 나온다. 엄마들이라면 우리 아이들의 이익이 걸린 일이라 그럴 수 있다, 혹은 그들만의 이야기다 라며 치부하고 넘어갈지 모르는 일들을 아이가 없지만 어린이들을 항상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느끼고 필요한 일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리라. 어린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로서 무척 감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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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출판사 편집자 출신, 어린이들과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선생님이 쓰신 에세이다. 청소년들과 독서모임을 하는 입장에서 궁금하고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어린이는 청소년과 분명히 다르지만 배울 점이 많았다. '착하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중략)..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착한 마음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33쪽)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37쪽)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41쪽)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모습을, 함께 노는 즐거움을, 다양한 가족이 자연스러운 모습을, 가족이 아니어도 튼튼한 관계를, 강아지와 고양이를, 세상의 호의를 보여 주면 좋겠다. 세상이 멋진 집이라고 어린이를 안심시키면 좋겠다. (102쪽)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용기와 관용이 필요하지만 인간으로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202-20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