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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으면서 가슴 찡한 감동이 있는 그림동화입니다. 일곱살 아이를 읽어주다 잠시 덮어 놓으니, 4학년 큰아이가 열심히 읽네요. 책을 안 좋아하는 아빠도 읽어주며 아이들과 자얀스레 이야가 나누고 공감하는 모습이 흐뭇허기도 했어요. 유치원 아이애게 읽어주기애도 좋지만. 초등학생들이 읽기애도 좋은 두꺼운 그림동화예요. 막내에게도 자기 전에 조금씩 읽어주니 무척 좋어해요. 눈에 띄는 신체 장애를 가져 놀림 받던 당당이가 연습끝에 지붕 보다 높이 올라 홰치는 모습에 암탉도 홀딱 반해버리는 결말. 외모가 중요한게 아니라 속에 든 꿈과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아이들에게 느끼게 해주는 간덩적인 이야기입니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자연스레 대하도록 도와주는 이야기. 환경을 소중히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나누게 되네요 아이들과 읽고 토론할 거리가 엄청나게 많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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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당당이 #조연화 글,그림 #고래책빵 #그림동화 #환경오염 #장애 #편견 #선입견 #도전 #극복 #우화 앞표지에 수탉 한 마리가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 크게 ‘꼬끼오’ 외치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수탉의 뒤로 햇님이 떠오르는 모습이 살짝 보여요. 이 수탉의 이름이 ‘당당이’ 인가봐요. 그림을 자세히 보면 수탉의 목이 틀어져 있습니다. 뒷표지에 공장 폐수 때문에 목이 틀어지는 장애를 가진 당당이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꿈을 펼칠 수 있을까요? 당당이의 꿈이 실현될 지 궁금해집니다. #조연화 글,그림 책의 줄거리 공장 폐수로 인해 어미는 죽고 목이 틀어져 태어난 수탉 당당이는 같이 지내는 깃돌이에게 치여 살지만, 살아남으려고 노력합니다. 당당이의 꿈은 감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온 포구에 들리도록 소리치면서 홰를 치는 것입니다. 길고양이 타로는 그런 당당이를 응원하고요. 그 꿈을 위해 당당이는 매일 연습합니다. 몸의 장애로 인해 균형을 잡기 어려워 하루하루 고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아요. 조금씩 가지 위로 날아오르며 소리도 치기 시작해요. 하지만 뒷집 할머니는 이런 당당이를 아주 못마땅해합니다. 목이 틀어져 괴상한 소리를 낸다고요. 그리고 가로등 불빛 때문에 환한 밤에 운다고 화를 내지요. 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과연 당당이는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당당이가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책을 통해 확인해 주세요 ^^ 약자를 무시하는 세상 당당이는 공장 폐수로 인해 오염된 물을 마신 어미닭의 영향을 받아 목이 틀어져서 태어납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었고, 이 환경오염은 이기적인 이들이 만들어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당당이는 약자라는 이유로 당하는 삶을 살아요. 함께 자라는 수탉 깃돌이에게 먹이를 빼앗기거나 이유없는 공격을 받으며 무시당하고요. 뒷집 할머니는 겉모습이 멀쩡하지 않다면서 당당이를 싫어합니다. 세상의 편견은 참 무서워요. 나보다 약한 이를 물어뜯는 자들이 많습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이기주의 모습들이 이 조그마한 마을의 어느 마당에서도 여과없이 보여집니다. 장애를 안고 있는 게 잘못이 아닌데,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그들 위에 올라서 짓밟으려고 하는 걸까요? 씁쓸한 현실이 동화 속에 드러나니 안타깝고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연대 사회적 약자인 당당이는 그래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아요. 멋진 수탉이 되어 해가 떠오를 때 크게 ‘꼬끼오’ 하며 울어대고 싶은 거예요. 이 꿈을 위한 당당이의 노력은 참 눈물겹습니다. 하지만 여러 장에 걸친 그의 성장을 보면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약자가 언제까지나 약한 모습으로만 살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내면의 힘을 가진 정신력이 강한 자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대도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개인적으로, 너희 알아서 힘을 키워라, 이런 게 아니예요. 당당이에게도 자신을 돌봐주며 뒷집 할머니에게 쓴소리 마다앉는 주인 할머니가 있고요. 자신의 꿈을 응원하며 계속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길고양이 타로도 있어요. 함께 생각해 봐요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촉구하며 장애는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당당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요. 이건 어쩌면 개인이 장애를 극복했다고 결말 맺을 수도 있겠지요. ‘장애를 극복했다’는 건 누구의 기준에서 바라보며 쓰는 말일까요? 비장애인들의 기준에서 ‘장애’는 불편하고 눈앞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게 그대로 주입된 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모든 장애가 개인의 힘으로만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의 도움이 있어야 해요. 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연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을 도와줘야 할 때는 돕고요. 자립을 위한 사회적 기반도 충분히 마련해줘야 해요. 장애를 가진 이들이 홀로, 단독으로 이 사회를 살아갈 수는 없어요. 그들도 똑같은 사회 구성원이에요. 얼마전에 끝난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보면서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봤습니다. “올림픽에서는 영웅이 탄생하지만, 패럴림픽에서는 영웅이 출전한다.” 우리는 어떤 편견을 넘어서야 할까요? 이 책은 출판사를 통해 제공받았지만 솔직한 저의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