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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천재라고 떠드는 유명한 프랑스 고전시인, 랭보를 알기위해 산 책이었다. 헌데 시를 다 읽고 난 이후에 남았었던 허무함과 갑갑함이란... 번역의 문제인지, 아니면 원래 랭보란 시인이 김수영이나 이상처럼 어려워서인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불문학도도 아니요, 그렇다고 랭보의 다른 책들을 접해본 것도 아니요, 이것저것 주워삼킨 랭보관련 지식만으로 무작정 천재의 '시'에 덤벼든 탓이었을까. 또한 랭보의 천재성에 대한 반론마저 맘속에 솟아올랐음은 내가 시를 시로써 대하지 못한 무지의 탓이였을까... 몇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어지러운 편린들만이 머릿속을 맴돌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삶은 단지 부드러운 광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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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한 철》랭보
이런 말이 있다. 시인은 어린 나이에 등단할 수록 천재 소리를 듣고 소설가는 늦게 등단할 수록 그 내공을 인정받는다.
물론~ 모두에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창작 시간에 주워들은 말인데 어린 나이에 등단할 수록 천재 소리를 듣는다는 '시인'의 사례는 아마 랭보를 보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열여섯살에 발표한 처녀작 ‘고아들의 새해 선물’로 돌연 천재의 반열에 오른 랭보는 꽃미남 천재 시인으로 불리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시집으로는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채색판화집》이 있으며 스무살이 되던 해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계를 떠난다.
시집 제목으로 사용 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베를렌과의 폭풍같은 연애를 끝낸 뒤 쓴 시이다. 3년여의 연애는 베를렌이 랭보에게 권총을 쏘며 끝이 나는데, 그 뒤 베를렌은 감옥으로 랭보는 고향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거기서 쓴 9편의 작품들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이룬다.
시집 왼쪽 페이지는 번역문을, 오른쪽 페이지는 원문을 담고 있어 원문을 더듬거리며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만약 내가 불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이 시집을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모든 직업을 무서워한다. 주인과 노동자들, 모두 촌스럽고 상스럽다. 펜을 쥔 손은 쟁기를 잡은 손과 비길 만하다.
<나쁜 혈통 - 지옥에서보낸 한철> 본문 중에서
랭보의 시는 대부분이 악몽같다. 악몽을 글로 풀어 쓰거나, 혼잣말을 중얼중얼 적어 내려간 것 처럼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내가 언제나 열등한 종족이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나는 항거를 이해할 수 없다. 내 종족은 약탈하기 위해서만 봉기했다. 늑대들이 스스로 죽이지 못한 짐승에 대해 그렇게 하듯이.
<나쁜 혈통 - 지옥에서보낸 한철> 본문 중에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침 출근길에 이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내가 언제나 열등한 종족이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랭보가 천재라는 사실은 시 구절 구절 마다 여과없이 드러난다.
가장 유명한 구절이 나왔다. 밑줄 쫘악 별표 땡!
아 그래! 삶의 시계가 방금 멈췄다. 나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있지 않다. 신학은 진지하다. 지옥은 확실히 <아래에>있다. 그리고 하늘은 위에 있다. 불꽃의 둥지 속에서의 황홀, 악몽, 잠.
<지옥의 밤 -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본문 중에서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심오하고 어지러운 단어들이 가득하다. 베를렌과의 연애는 폭력적이고 우울했다고 한다. 마지막을 권총으로 장식 했으니 그 기억이 더욱 충격적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지옥에서 한 철을 보냈다고 설명할 만큼.
책 맨 뒷장에는 그의 연보가 나온다. 스무살 이후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계를 떠난 랭보를 사람들은 '천재 시인' '조숙한 반항아' '저주받은 시인' '타고난 방랑자'라고 부르며 추억했다.
절필을 선언한 후 랭보는 아프리카로 건너가 커피 중개 회사에 근무하기도 했고, 총기 매매도 했다. 베를렌이 지어준 랭보의 별명 '바람 구두를 신은 사내'답게 그는 어릴때 부터 몇 번의 가출을 경험했고 연애를 위해 수시로 국경을 넘었으며 산과 들을 몇 시간씩 쏘다니며 걷는 걸 즐겼다고 한다. 관절염으로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쉬지 않고 걸어다녔던 그는 끝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방랑을 즐기고 모험과 여행을 즐겼던 랭보의 일생과 그가 남긴 작품은 천재의 작품이었다가 반항아의 객기였다가 악몽이 되기도 하고 환상이 되기도 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리가 몽롱해서 혼났다. 랭보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시인선. 나는 아직 랭보, 보들레르, 말라르메만 소장하고 있다.
한 권씩, 한 권씩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하고 읽으며 세계의 시인들과 만나봐야 겠다 ^ㅡ^
랭보는 부르주아 문명을 조롱하고, 노동자들에게 형제애를 느꼈으며, 황제를 조롱하고, 전쟁에서 죽은 자를 애도했고, 기독교 문명을 저주했다. 수수께끼와 같은 삶 속에서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물에의 접근에서 벗어나 프랑스 시에 새로움과 놀라움과 시적 사상을 그리고 문명과 그것을 지탱하는 중산계급에 대한 조롱을 맛보게 했다.
- 표4 문구 발췌
한 권의 시집과 그의 일생을 깔끔하게 정리 한 표4 문구. 사실 랭보의 모든 것이 다 저 문장 안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롱과 분노와 방랑을 사랑한 시인 랭보!
2012년 3월 4일 다 읽음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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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랭보는 시사의 독특한 천재이고 반항의 상징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자신의 수필집에서 랭보를 청소년기와 반항의 상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한국의 한 작가도, 소설에서는 나이어린 천재가 나올 수 없으나 시에서는 가능하다고 말한 유일한 예가 바로 랭보였다. 그의 시는 보통의 시 해석법과 평범한 논리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시들은 그의 눈을 통해 해석되고 의식 속에 내재된 것들을 순서 없이 마구 쫓아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더욱더 순수할 수 있다. 대개 사춘기 시절에 랭보의 시에 빠지게 되는 것은-그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카뮈는 삶의 부조리에 항거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반항을 말했다. 시를 썼던 짧은 기간동안, 그리고 그 후의 삶도 그는 치열하게 반항했고 온 몸을 던져 살았다. 그의 시를 읽으면 누구나 그 반항에 전염된다. 데카르트식의 기존 해석법들은 잊어도 된다. 그저 시를 읽고, 랭보를 느껴라. 참고로, 그간 랭보 시집이 몇 권 나왔으나 이책-김현의 번역-을 가장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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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알게 되었던 이 랭보라는 천재시인. 그때 내 감성에 거의 지배적으로 군림했던 랭보. 당시 학교 문예부에 몸담고 있었던 내게 죽음과 어두움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기도 했었다. 솔직히 처음엔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 끌렸던게 사실이다. 그런 삶이 그의 작품의 바탕이 되었겠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참으로 신랄하고 아름답다. 내가 랭보의 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꼽는
<새벽>에서의 모든 은유는 진정으로 랭보만의 것이다. 그만의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을 번역판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랭보의 시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불어실력이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하고 생각해 본다. 랭보의 시와 더불어 베를렌과 보들레르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것도 좋을듯하다. [인상깊은구절] <새벽> 그러자 나는 베일을 하나하나 걷어올렸다. 길에서, 팔을 흔들면서. 내가 수탉에게 그녀를 알린 들판을 가로질러. 대도시에서 그녀는 종탑과 궁륭 사이로 도망갔다. 하여 나는 거지처럼 대리석 부두 위로 달리면서, 그녀를 쫓아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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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느껴지는 랭보의 이미지다. 물론 그의 <모음> 이나 <헛소리> 같은 시에서 느낀것 이기도 하지만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 디카프리오가 분한 영화속의 랭보의 이미지나 랭보의 그림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으리라. (영화에서 랭보를 영어로 발음하여 람보 처럼 들리는건 정말 깨는 일이었다..ㅡ.ㅡ;;)
십대 시절 쓴 시로 천재로 칭송 받던 미모의 천재 소년, 폴 베르렌과의 동성애, 방탕한 생활, 류머티즘염으로 한쪽 다리를 절단 등 시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의 기묘한 삶에 관심이 더 가는게 사실이다. 중고등학교때 점심 시간에 보던. 그의 삶에 흥분하고 시에 매료 됐었던(물론 시에 대한 이해라기 보다는. 그냥 젊은 시절의 감상으로 더 매료 됐던거 같다) 가슴 쿵쾅대던 학창시절의 추억 으로 남은 시인. 나에게 랭보는 그런 존재다.
자유롭고, 담배 피우며, 보라빛 안개에 싸여 상승하는 나,
훌륭한 시인들에겐 맛 좋은 잼인,
태양의 이끼와 쪽빛 콧물이 있는
붉어가는 하늘에 벽처럼 구멍을 뚫은 나, [인상깊은구절] 랭보 시론의 골자는 <시인이란 모든 감각의 오랜, 거대하면서도 이론적인 뒤클림에 의해 견자가 된다> 라는 그의 편지의 한 구절 속에 명백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가 시인의 최고 상태를 말로써 표현한 견자라는 어사는 그 이후의 시론에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물에의 접근에서 벗어나 모든 감각이 뒤틀렸을때 보여지는 새롭고 놀라운 사물의 현현을 시적 이상으로 삼고, 그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자만이 견자라고 생각한다. 그의 견자시론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세련된 과장법을 음절 단위의 리듬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된 프랑스 시에 대한 대담한 반항으로서의 의미이며, 또 하나는 기독교 정신에 기반을 둔 구라파 문명 자체에 대한 문학적 혹은 직관적 회의로서의 으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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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이클립스' 라는 영화에서 나는 그와 처음 만났다. 술병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베를렌느와 그들만의 독특한 사랑을 나누고, 또 시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 사랑을 사막의 모래 한가운데 던져버린 랭보.. 그의 시는 자폐적이고, 공격적이고, 때로는 낯선 은유를 서슴치 않는다. 시를 쓰는 그의 이미지는 언제나 세상을, 사랑을, 그리고 시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조숙한 소년의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 불행한 천재성을 채 다 피우지도 못한 채 스스로 그 꽃봉오리를 시들게 했다.
그는 죽음과 어두움에 대해 너무나 일찍, 잘 알아버렸고,그것이 그를 '지옥'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아 그래! 삶의 시계가 방금 멎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세계에 있지 않다..' 삶의 시계가 멈춰버린, 더이상 이 세상이 아닌 그곳에서, 그는 자기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의 언어는 생경하고 때로 놀랍다. 때로는 자신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때로는 세상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명쾌하게 늘어놓는다. 자유분방하고 자폐적인 소년의 이미지에서, 어느덧 자신만의 언어로 은밀한 언어를 늘어놓는 그에게, 나는 조금씩, 빨려들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낮은 태양을 보았나니, 그것은 신비한 공포로 얼룩져, 아주 옛날 연극의 배우들과 비슷한 긴 보랏빛 응고선들로, 덧문 떨리는 소리를 내며 멀리 굴러가는 물결들을 조명했다! 나는 꿈꾸었다 눈부신 눈이 내리는 푸른 밤을, 천천히 바다의 눈들로 올라오는 입맞춤을, 들어보지 못한 수액들의 순환을, 그리고 노래하는 형광체들의 노랗고 파란 깨어남을! 나는 신경질적인 암소떼들처럼 암초에 부딛치는 파도를, 여러 달 내내 뒤따랐다. 마리아의 빛나는 발이 콧잔들을 헐떡이는 대양에 쳐박을 수 있을 거라는 건 생각도 않고! 알다시피 나는 사람의 피부를 한 표범의 눈들이 꽃들과 뒤섞이는 믿기지 않는 플로리다, 수평선 아래에서 청록 가축떼에 고삐처럼 묶인 무지개들과 부딛혔다! 나는 보았다 거대한 늪이, 레비아탄 한마리가 골풀 사이에서 온통 썩어가는 통발이, 잔잔한 가운데 폭포를 이루는 먼곳이 술렁이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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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책을 사서 읽었다. 그래선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메세지는 없었는지도 모른다. 랭보 자신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이런 시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는 정말로 천재다. 몇 번인지도 모를 만큼 이토록 꼬아놓다니.
듣지도 못했던 식물들(서양지치,사출화,메꽃 등)이나 우리말로 번역해도 어려운 단어들은 한층 더 시를 이해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다. 요컨대 그의 정서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주제에 그를 천재라고 칭하는 것은 그에게는 모욕일런지도. 그러나 랭보씨, 우리가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살고 있었다 해도 서로 이해할 수 있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겠죠.
어쨌든 천재가 아닌 나로서는 수사적이되 현학적이지는 않은 그의 문장들에서 그의 옅은 향기만을 느낄 수 있었을 뿐이었다. 불어를 모르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번역된 시만큼 애매한 문학도 또 없다. 랭보씨 다시 한 번 미안.
2001. 3. 6
f.y. [인상깊은구절] 나는 아직도 자연을 아는가? 나는 내 자신을 아는가? <유구무언.> 나는 죽은 자들을 내 뱃속에 묻는다. 외침, 북, 춤, 춤, 춤, 춤! 나는 백인들이 상륙하여 내가 무(無)로 떨어질 시간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굶주림, 목마름, 외침, 춤, 춤, 춤, 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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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그의 이름을 불러 보면,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서의 이미지와 어느 화가가 그린 그림 -시인들 틈에서 턱을 괴고, 폴 베를렌을 향해 앉아 있는- 이 떠오른다. 폴 베를렌과의 유별난 관계와 너무 일찍 시를 알고, 너무 일찍 시를 버렸던 그 조숙함에 더 유명해진 시인.
그의 추상적인 이미지는, 감수성 예민한, 아름다운 영혼의 미소년이다. 하지만 그의 글을 접하게 되면, 변덕스럽고 산만한, 읽는 이를 배려하지 않는 난해한 상징과 은유, 어느 짜증 섞인 소년의 넋두리를 듣고 있는 느낌이다.
저 멀리서, 그 특유의, 허공에 던져놓는 듯한 시선으로 번역가와 평론가들을 비웃고 있는 듯 하다.
"난 그렇게 쓰지 않았다고, 그 의미로 쓴 게 아냐. 잘 들 풀어보시지....하하하" [인상깊은구절] 감각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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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신비를 꿰뚫어볼 작정이다. 종교적인 신비건 자연의 신비건, 죽음, 탄생, 미래, 과거, 우주발생론, 무를, 나는 몽환의 대가이다" - 지옥의 밤中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나는 시를 잘 모른다.. 불어는 더더욱 모른다.. 하지만 랭보의 시에서는 냄새가 난다. 그만의 색깔이 선명하다..!! 그를 보고있으면 나는 자꾸만 천재 요절시인 이 상(李相)이.. 떠오른다. 둘은 중첩되는 이미지로 내게 다가온다.
책에서는 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랭보는 부르주아 문명을 조롱하고, 노동자들에게 형제애를 느꼈으며, 황제를 조롱하고 전쟁에서 죽은 자를 애도했고, 기독교 문명을 저주했다. 수수께기와 같은 삶 속에서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사물에의 접근에서 벗어나 프랑시 時에 새로움과 놀라움과 시적 사상을 그리고 문명과 그것을 지탱하는 중산계급에 대한 조롱을 맛보게 했다.
너무 많은 은유와 상징은 읽는 이를 당혹케하지만.. 뒤집어 본다면.. 그만큼 다양한 해석과 자기주관화를 이룰 수 있는 시가 바로 랭보의 시이다. 책 첫 페이지에 소개된 랭보의 사진을 보노라면.. 그의 허무하게 주저않은 눈동자를 보노라면.. 나도 가방하나 들쳐메도.. 방랑을 떠나고 싶다..!! 난.. 왜.. 용기가 없는 것이지..?? [인상깊은구절] 지긋지긋해 죽겠다. 이건 묘지다. 나는 구더기들에게로 간다. 공포 중의 공포로다! 사탄이여, 어릿광대여, 너는 너의 매력으로 나를 분해하고 싶어한다. 나는 애원한다! 쇠스랑의 타격을, 한 방울의 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