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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제목의 일치성이 직관적으로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진 한국어 제목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의 원제는 <권위>다. 제목을 보고 예상한, 정확히는 제목을 보고 기대한 내용에서 빗나간 제목 덕에 해외판을 찾아봤다. 네덜란드판 원서와 독일판, 영미판이 있는데 찾아보니 강조하려는 뉘앙스에 따라 각국의 제목이 모두 다르다. <권위>라는 원서의 제목으로는 매출을 고려해야 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웠나 보다 하고 유추해 볼 따름이다. 책은 내가 읽기에는 무척 어려웠다. 한 줄 읽고 열 번 이상은 생각해야 했다. 이런 걸 철학적 사고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어려운 책 덕분에 여러 번 다각도로 생각하기 훈련을 하게 됐다. 생각에 생각을 하게 만든 문장들 중에 특히 인상 깊고 재밌는 생각이라고 동의하며 오래 기억하고 싶은 저자의 주장 몇 가지를 뽑았는데 무려 열 개나 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개인이 자기 힘만으로 권위를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권위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무언가에 의해서만 유지되고 드러난다. 권위란 도덕 그 자체로, 사회가 구성원들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규범과 가치에서 탄생하는 강력한 힘이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23P 이 부분에서는 권위와 권력의 도덕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봤다. 권력을 가진 한 개인이 권위를 지니지 못했을 때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나는 작년 12월에 경험했다. "권위란 도덕 그 자체"라는 저자의 규정에 깊이 공감한다. 권력은 복종을 강요하고 권위는 존경을 이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도덕적이면 자연스럽게 권위가 수반된다. 하지만 비도덕적일 경우에는 그 권력을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무효화하거나 무력화 시키려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도덕적인 권력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권력이 행사할 수 있는 최종병기를 사용하게 된다. 이에 복종과 불복종의 판단은 개인의 도덕적 양심에 의해 선택된다. 비도덕적 권력이 남의 도덕을 시험대에 올리게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권위는 도덕을 체현하고 권력은 도덕을 시험한다. 권력 남용은 가부장제의 틀 안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권력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가려고 하다가 우연히 저지른 실수가 아니다. 그 자리 자체가 그런 실수를 범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88P 권력의 기본 환경 자체가 남용하게 만든다는 주장 역시 완전히 공감하며 내가 그런 행사를 하고 있음에 깊이 반성한다. 내 말을 듣지 않는 자녀에게 나는 내 권력을 이용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협박성 발언을 한다. "지금 당장 숙제를 하지 않으면 간식은 없어!"라는 식으로 말이다. 온정주의는 다수의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적, 도덕적 결점에서 태어난 필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스템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다. '우리 모두가 믿어온 거짓말이 얼마나 많은가!' 온정주의는 사람들 손에서 결정권을 빼앗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사람들을 위한 최선을 원하는 척한다. 타인의 결정권을 빼앗는 행위가 순수 권력의 남용이라면, 타인을 위하는 척하는 건 설령 선의를 지녔다 해도 분노가 솟구칠 만큼 위선적이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99P 사전에서 온정주의는 '아랫사람에게 동정심이 있는 태도로 대하려는 생각'이라고 정의한다. 사전은 온정주의를 따듯하고 다정한 언어로 정의하지만 온정주의의 본질은 배려의 언어로 포장된 통제의 언어다. 온정주의가 만든 '우리 모두가 믿어온 거짓말'에는 어떤 것이 있었나를 떠올려 봤다. "개천에서 용난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예전에는 많이 났다고? 아니다. 그때는 나라 자체가 그냥 개천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한때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문장이었으나 요즘은 아픈 사람에게도,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그저 개그 소재 정도로 전락한 말이다. 고통을 예쁘게 포장한 대표적인 온정주의 문안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희망과 위로의 말은 저자의 말마따나 위선적이다. (하지만 나는 분노가 솟구칠 정도는 아니다) 여론은 굉장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바꿀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여론이 조작될 수 있고, 자신들이 그 조작을 가장 잘 통제한다고 추정하며 필사적으로 표를 얻으려고 한다. (중략) 또 정치인들은 유권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없고 독립적으로 결정하지 못한다고 상정한다. (중략) 이러한 관점은 다시 한번 '아버지가 제일 잘 안다'는 식의 가부장적인 모델을 입증한다. 이 관점은 최소 세 가지를 간과한다. 일단 소수 엘리트는 사회 전체의 이익에는 반드시 부합하지 않지만 소수의 이익과는 일치하는 결정을 내린다. 또 이들의 지식수준은 생각만큼 월등하지 못한 때가 많으며, 이들이 취한 조치는 돌이켜봤을 때 완전히 잘못됐음이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다. 지난 두 세대 동안 '대중'은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식수준을 갖췄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149P '여론조작' 사건부터 '사회 전체의 이익에는 반드시 부합하지 않지만 소수의 이익과는 일치하는 결정'을 내리는 식의 부조리를 '어느 때보다 높은 지식수준을 갖춘'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것을 그냥 눈 감고 지켜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제보다 오늘 더 잘 살고 있다. 피라미드식 권위와 수평적 권위의 결정적 차이점은 실수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권위가 가부장제에 기초할 때, 실수는 우두머리에게 치명적이다. 그는 왕좌에서 내려오게(하강의 움직임) 되고, 누군가 벌써 그 자리를 차지할 테세다. 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실수가 은폐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모델에서 지도자는 끝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잘못은 늘 다른 사람에게 있다. 반면 수평적 권위에서는 권위자가 실수하더라도 애초에 높은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추락하지 않는다. 집단 구성원이 실수를 저질러도 그에 대한 비난 없이 행동이나 의견을 바꿀 수 있다. 오히려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실수를 감추려는 사람보다 더 강하다고 여겨진다. 이 모델에서 타인은 적이 아니다. 이들은 당신이나 나와 매우 비슷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156~157P 수직적 권위와 수평적 권위의 실수에 대처하는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실수를 감추려는 사람보다 더 강하다고 여겨진다'는 저자의 생각은 권위를 떠나 개인의 처세에도 바람직하고 유용한 사고라 생각한다. 타인은 적이 아니며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란 말에 공감한다. 생각과 의견이 다른 타인도 어쨌든 이 땅에 나처럼 발붙이고 더 잘 살겠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 사람들이란 생각을 숙지하고 남을 대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통제 대신에 '예의 주시해 보살피기'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220P '통제 대신에 예의 주시해 보살피기'는 책 6장의 소제목이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태도다. 이보다 더 현명한 조언이 또 있을까? 몰래 처리하던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라캉이 지배자의 감정이라고 말한 수치심을 유발한다. 그러나 아무리 민망하다 한들 수치심이 죄책감보다 낫다. 죄책감은 처벌을 내포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배제(희생양)를 초래한다. 수치심은 잘못된 기회를 바로잡을 기회를 만들어주며, 이때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이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오메르는 이러한 상황에서 취해야 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명시한다. 처벌이 아닌 교정을 목표로 할 것. 무엇보다 아이가 어떻게 협조할지를 아이와 함께 고민할 것. (중략)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처벌하기보다)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피해 복구 방안을 아이가 직접 생각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바로잡음으로써 아이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를 되찾는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225~226P 남들 앞에 부끄러워서 숨긴 내 잘못 때문에 장시간 더 부끄럽고 지금도 여전히 부끄러운 기억이 나는 있다. 결론은 잘못을 숨기는 것보다 지금 당장 부끄러운 게 백배 낫다. 이건 살면서 깨달은 진리이자 삶의 지혜다. 이것만큼은 어린 자녀에게 반드시 가르치고 싶은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말처럼 잘못에 대한 처벌이 아닌 교정으로, 그것도 당사자와 함께 고민하는 것. 기본소득 보장을 옹호하는 경제 논리('소비자는 있어야 하니까')가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긴 하지만, 결국 기본소득 개념은 현 '시스템'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 기본소득에 드는 돈을 감당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계산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스위스는 기본소득이 적어도 실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스위스 기차가 제때 운영되는 것으로 보아 나는 그들의 계산 능력에 확신을 갖고 있다.), 기본소득이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게 되면, 그들을 조종하기 힘들어지고 권력을 행사하기도 덩달아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240P 재정적으로 그게 되나 싶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고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기본소득의 안정감이 원활한 권력 행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발상이 신선하면서 반대하는 이들의 깊은 곳에는 이런 심리가 작용할 수 있겠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미래에는 시민들에게 특정 정책에 투표할 기회를 (그리고 어떤 정책에는 반대할 기회를) 부여해 어떤 정책이 대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는지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거일에 유권자들은 수백 명의 이름이 찍힌 투표지가 아니라, 80여 개의 정책 선택지가 적힌 종이를 받는다. 선거운동은 각 정책에 대한 정보를 배포하는 행위가 된다. 다수결로 채택된 정책들이 집행 권력의 어젠다를 결정하는데, 다시 말해 채택된 정책이 권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296P 찬성하고 싶은 의견인데 저자가 '미래에는'이라고 시간을 제한한 것을 보면 왠지 100년은 더 지나야 실현 가능하게 느껴지지만 이 방식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런가 하면 사법권력은 정치권의 인사 임명 때문에 점점 정당의 정치색에 물들고 있다. 이 문제는 합리적으로 대표들을 모은 정책 기관, 즉 정당이 아닌 시민을 대표하는 집단에 의해 타파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 299P 요즘 대법원장의 문제로 사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다. 물론 옹호 여론도 존재한다. 이런 일은 현재의 우리나라나 말고는 독재 후진 국가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나라가 꽤 있나 보다. 대법원이 개인회사도 아니고 인사권한을 한 사람에게 몰빵하는 건 문제가 있긴 하다. 특히나 그런 사람이 자신의 정치색을 조직에 물들일 때는 더욱 그렇다. 이해가 어렵고 너무 많이 생각하는 게 힘들어서 철학 책은 어지간하면 피하는데, 독서모임 덕에 어쨌거나 읽어야만 했던 <우리는 왜 어른이 되지 못하는가>는 사유의 고통과 즐거움을 만끽하며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 체험을 하게 했다. 이런 책, 은근히 매력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