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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존재에 맞선 목소리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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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카 솔닛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흥분하거나 스타카토를 좀체 찍지 않는다. 문체도 풀어진 실타래마냥 나아가는데 실제 말도 그렇다. 발언권을 갖기 힘든 상황이 만든 버릇일까 아니면 말도 연상적으로 뻗어나가는 글을 같이 추구하는 것일까. 솔닛 언니는 내게 여러 면에서 반전 있는 저자이다. 고요하고 담담한 어조로 핵심을 관통하고 여성성을 부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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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베카 솔닛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내 기억이 맞는다면 흥분하거나 스타카토를 좀체 찍지 않는다. 문체도 풀어진 실타래마냥 나아가는데 실제 말도 그렇다. 발언권을 갖기 힘든 상황이 만든 버릇일까 아니면 말도 연상적으로 뻗어나가는 글을 같이 추구하는 것일까. 솔닛 언니는 내게 여러 면에서 반전 있는 저자이다. 고요하고 담담한 어조로 핵심을 관통하고 여성성을 부인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이번 책표지도 그러하다. 이 여자가 누구지? 설마 작가? 책에 실체를 밝히고 있으니 읽어보면 될 듯하다.

 

  솔닛 언니는 나보다 열여섯 살 연상이다. 글로 접하며 받은 인상은 늘 대학 선배 같다. 책을 구매해두고 좀 나중에 읽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주 환자인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이어 터졌다. 시장의 자살을 둘러싼 추문은 비교적 입장 정리가 간단했다. 문제는 한 젊은작가를 둘러싼 진실공방이었다. 혼란스럽고 결과적으로 몸이 다 아팠다. 왜 이럴까. 이유는 용서받을 때를 놓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고 실망감에 한국소설을 외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수년 전 독자에게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진 작가와 분리해볼 수 없는 사건이다. 그때는 정권도 달랐고 독자 시민의 탄생 전의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체감한 출판사와 작가의 태도는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다른 예술도 아니고 상상력과 감정이입을 강조하는 소설가들이 피해자를 비롯한 독자가 받았을 상처(신뢰 붕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다. 출판사는 엄연히 기업이고 작가와 작품도 상품으로 봤으면 아파할 일도 없었을 텐데 현실감 없는 순진한 독자가 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렵다. 지금 내가 환호하며 지면 할애를 특별히 여기는 작가도 내 믿음을 저버릴 수 있다는 상흔이 생겼다.

 

  뭘 그렇게까지, 라고 싶겠지만 나는 온 마음으로 책을 대하는 사람이다. 나를 잡아주고 이끌어줄 문장을 찾아 책을 유영하는 독자라는 정체성이 내게 큰 부분을 차지한다.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을 달래주거나 확장시켜줄 공간을 찾아 영미소설과 관련 텍스트를 떠돌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멀리 가지 않더라도 한국소설과 한글 텍스트에서 듣고자 했던 말과 보고자 했던 현상과 본질을 보고 싶다. 끝 없을 듯 복잡한 마음은 뜻밖에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를 통해 정리가 되었다. 버리고 돌아서는 건 바다 같은 마음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데 그러느니 차라리 믿고 <널 사랑하는 거지>가 나에게 맞는 답인 듯하다.  

 

  불편하고 심란한 마음을 이해하고자 리베카 솔닛의 신간 회고록을 다급히 펴들고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나의 미래 독서와 독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거리를 두고 내다보았다. 그런 과정에서 잊고 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내 논문이 표절 인용되었다는 이메일에 나는 응답하지 않았었다. 고발자는 연구대상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당사자가 대학에 몸담고 있어 기관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여러 논문의 어느 부분이 표절되었는지를 분석 정리하여 해당 논문 집필자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번 일을 겪고 그의 저의를 조금이라도 의심했던 나의 태도를 후회한다. 그는 시간이 남아돌아서도 열의가 넘쳐나서가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일이 교육 기관에서 빚어짐에 참담함과 부당함을 느끼고 대응하고 함께 변화를 위해 움직이자고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 것이었다. 고발 대상자의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의 윤리성을 문제시하며 그가 옳지 못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갔을 자리를 차지했다는 데에 대한 합당한 지적이었다. 뜻하지 않았지만 그를 더 무력하게 만든 것 같아 부끄럽다. 이번 계기를 통해 아닌 것은 죽어도 아닌, 잘못에 준해 책임지고 죗값을 치르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한다..

 

  다시 리베카 솔닛 책 얘기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녀는 이십 권이 넘는 책을 집필했고 페미니스트이면서 환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자 지역 연구가이자 저널 편집자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했다. 유대인 피가 섞인 그녀는 이민자 후손으로 지나온 과거의 흔적을 담은 공간과 사람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고 어린 나이에 독립하여 문화 변혁기 70년대를 현장에서 겪었다. 비트 세대와 히피 문화와 흑인 강제 철거 및 원주민 학살과 반전 운동 및 살충제와 핵실험 등의 환경보호운동에 참여했다. 예술도 미술과 행위예술과 비디오아트를 가리지 않고 공동 작업을 병행하고 길거리 행진 저항에도 적극 가담했다.

 

  그는 확실하게 주어진 특권이 없었기에 - 극심히 외롭고 불안했지만 - 눈앞에 열린 길들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통해 다양한 친구를 사귀며(물론 이십대에는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고자 하는지 몰랐기에 교우 관계도 서툴렀다고 한다) 다채로운 공간을 탐험하고 자기를 펼쳐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널리즘을 전공한 학도이지만(길거리 폭력을 당해 과제가 담긴 가방을 분실하고도 전공 교수에게 믿음을 살만큼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던 OTL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이성적인 하드보일드체 보다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와 열어둔 결론을 선호한다. 에세이의 내용뿐 아니라 개성적인 고유한 문체가 부단히 달려온 그의 삶과 닮았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질문에 답하고 새로이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 책에서 구하며 흩어지지만 연속적인 점을 찾아나가는 중이다..  

 

  이번 신간 회고록은 작가의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업적을 다루는 게 아니라 어떻게 길과 길이 만나 다른 길이 열리고 저자이자 활동가의 삶을 나란히 두게 되었는지 그 우연과 꿈의 경로를 더듬어나간다(하루키 할아버지가 repeater라면 솔닛 언니는 pursuer이다). 그녀의 대부분 저서들이 망각되거나 분실된 이야기와 이야기를 이어 맥락과 패턴을 읽어내듯이(유명한 맨스플레인 용어도 난데없이 뮤즈와의 단독 대면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밝히고 그 흐름과 조력에 감사를 표한다.) 자신의 인생의 대표 별자리를 어둠 속에 희망처럼 찬란하게 띄운다.

 

  자신이 추구해온 삶에서 역사는 진보하기도 하고 퇴행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분명히 나아짐의 시간이었노라고 증언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누구나와 깊이 대화 나누고 야영의 잠자리를 갖고 싶다는 시 구절을 인용하며 분명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고 강조한다. “존재(생명)하는 모두의 자유를 환하게 외치는 그녀에게서 절망과 비관은 비-참여를 정당화하는 안이한 자세임을 다시 배운다.

 

[내가 꼽은 키워드와 문장]

 

권리

# [T]o survive as a person possessed of rights, including the right to participation and dignity and a voice. More than survive, then: to live.

 

갈망

# [W]hat is incomplete in you is a hole that can be stuffed with stuff, that the things you have are eclipsed by the things you want, that wanting can be cured by having, beyond having what is essential.

 

공감

# All the worst things that happened to other women because they were women could happen to you because you were a woman. Even if you weren’t killed, something in you was, your sense of freedom, equality, confidence.

 

거부권

# I have the authority to assert myself. They have any obligation or inclination to respect my assertion.

 

걷기

# Walking was my freedom, my joy, my affordable transportation, my method of learning to understand places, my way of being in the world, my way of thinking through my life and my writing, my way of orienting myself...

It was a means of thinking, of discovery, of being myself, and to give it up would have meant giving up all those things.

 

믿어줌(신빙성)

# I was often told that I was imaging things or exaggerating, that I was not believable, and this lack of credibility, this distrust of my capacity to represent my self and interpret the world, was part of the erosion of the space in which I could exist and of my confidence in myself and the possibility that there was a place for me in the world and that I had something to say that might be heeded.

 

공적 대화 속으로

# [E]ach one treated as an isolated incident or at least something that was not part of any pattern worth naming. I connect the dots, saw an epidemic, talked and wrote about the patterns I saw, waited three decades for it to become a public conversation.

 

공간

# Faith in yourself and your rights. Faith in your own versions and truth and in your own response and needs. Faith that where you stand is your place... to speak, to participate, to roam, to create, to define, to win.

 

대화

# Conversations are another territory where questions arise about who may take up space, who is interrupted or harassed into silence, that condition of occupying no verbal space. At its best, a conversation is a joy and a collaborative construction. 

 

허기

# I was hungry for stories, books, music, for power, and for a life that was truly mine, hungry to become, to make myself, to distance myself as far as possible from where I was in my teens, to keep going until I arrived someplace that felt better.

 

독서

# I was building up a body of literature, points of reference for a map of the world, a set of tools to understand that world and myself in it by reading... when it does, there are epiphanies, and raptures in seeing the world in new ways, in finding patterns previously unsuspected, in being handed unimagined equipment to address what arises, in the beauty and power of words.

# Alone, immersed in a book, I was faceless, everyone, anyone, unbounded, elsewhere, free to meetings. I wanted to be someone, to make a face and a self and a voice, but I loved these moments of reprieve.

 

리좀

# Your life should be mapped not in lines but branches, forking and forking again.

 

콜라주

# We collages ourselves into being, finding the pieces of a worldview and people to love and reasons to live and then integrate them into a whole, a life consistent with its beliefs and desires, at least if we’re lucky. 

 

글쓰기 윤리

# [W]hat you believe in, why you write, who and what you write about, and who you write for.

 

질문의 파동

# Though they were more than questions; they were demands for change and for the redistribution of power and value.

이달의 사락 s********d 2020.07.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