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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많이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를 친숙하게 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서양의 시들이 동양인의 정서와 맞지 않는 연유도 있겠지만 상징주의 시들의 난해성을 힘들어하는 독자들이 있는 까닭이랄 수도 있다. 어쨋거나 유명한 프랑스 시인의 시를 대하고픈 맘에 사보았던 이 시집은 어느정도 보들레르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것은 여타의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그러했지만 보들레르 또한 여색과 술에 탐미한채 방탕한 나날들을 보냈다는 것이다. 특히 <검은비너스>잔느뒤발과의 관계속에서 탄생한 시들은 엄청난 생동감을 주었다. 그의 은유적 묘사법은 비록 그것이 추한 것일지라도 추함을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뛰어남이 있었다.
보들레르를 느끼고픈 독자들이 있다면 우선 이 시집으로 보들레르를 향한 문을 열기를 바란다. 프랑스어엔 문외한이지만 시에 대한 주석과 번역또한 괜찮았다고 감히 평가하는 바이다. [인상깊은구절] 태풍이 싹트는 납빛 하늘 같은 그녀 눈에서 넑을 빼는 감미롬과 뇌쇄의 쾌락을 마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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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들레르의 시집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도대체 내가 어떤 경로를 통해 보들레르라는 천재 시인을 접하게 되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문학이라는 것을 이해할 턱이 없는 어린 나이에 접했던 보들레르의 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당사 내가 배웠던 시의 정의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시의 범주를 훌쩍 넘어버린 시집 한 권은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천재라는 칭호는 어떤 사람에게 붙여지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줬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문학에로의 꿈을 꾸게 해준 최초의 문학작품이었다. 당시 내가 읽었던 시집은 ‘악의 꽃’이란 제목이 적혀 있는 온전한 한 권의 번역 시집도 아니고 ‘보들레르의 명시’라고 적혀 있는 옛날에나 볼 수 있었던 조악한 디자인에 풍경 사진 한 장이 생뚱맞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던 문학소녀를 자처하는 여고생이나 옆구리에 끼고 다닐 것처럼 생긴 옛날 스타일의 시집이었다. 그 시집에 실린 시들이 ‘악의 꽃’이라는 시집에 실려 있는 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시집을 읽고 한참이 지나서였다. 지금 같아선 인터넷에서 ‘보들레르’를 검색하면 내가 알고자 하는 모든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화면에 나타나겠지만, 그 당시에는 도대체 그런 정보를 어디서 구할 수가 없었다. 지난 봄에 이사를 하면서 책장에 꽂혀 있던 ‘보들레르의 명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책을 다시 발견했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도대체 책이라고는 담을 쌓고 살고 있다가 그제서야 내 유년시절의 충격 그 자체였던 시집을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표지가 다 헤져있는 데다가, 여기 저기 덜렁덜렁 떨어지려고 하는 페이지들도 있고, 책의 곳곳에 볼펜으로 밑줄을 쳐진 자리들에 잉크가 번져 있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악의 꽃’이라는 시집을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 보자는 생각이 들어 국내 출판사 가운데서 문학 분야에서는 가장 믿을만하다고 할 수 있는 민음사에서 출판된 ‘악의 꽃’이라는 시집을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번역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느낄 수 있었다. 왜 번역을 제 2의 창작이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하도 여러 번 읽어서 처음의 그 느낌이 되살아 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 번역에 따라 이렇게 큰 차이가 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의 그 ‘보들레르의 명시’를 꺼내 ‘악의 꽃’과 함께 펴놓고 시 한 편, 한 편을 비교해 가면서 읽어 보니, 예전에 읽었던 그 ‘보들레르의 명시’에 사용된 시어 및 시어의 배치와 민음사의 ‘악의 꽃’에 사용된 시어 및 시어의 배치에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 시라는 것은 소설과는 달리 단순히 의미만을 전달해서는 그 맛이 절대로 살아날 수 없는 문학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관계로 역자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았더니, 민음사에서 출간된 ‘악의 꽃’은 서울대 불문과 교수인 김붕구 교수의 번역판이고, 어린 시절 읽었던 ‘보들레르의 명시’는 서강대 불문과 교수인 김기봉 교수의 번역판이었다. 불어라고는 ‘메르씨 보꾸’ 밖에는 모르는 내가 어떤 번역본이 원작에 충실했는지 같은 학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논할 자격도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김기봉 교수의 번역본이 훨씬 멋지다고 생각된다. ‘보들레르’를 접하고자 하는 독자가 있으면, 김기봉 교수 번역본을 추천하고 싶은데, 혹시나 하고 도서 검색을 해 보았더니 김기봉 교수의 번역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지만… (BOOK : 2010-062-00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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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18p
학창시절에 이 시를 읽었었다. 당시 보들레르라는 시인이 누구인지... 이 시가 현대시의 시작을 알리는 악의꽃이라는 시집에 들어가있는지는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다만, 이 시에서 시인의 절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자유에 대한 갈망이 느껴졌다. 당시 장자의 대붕이야기를 들었고 내게는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
자유...이 말은 내게는 아직도 소화되지 않아 명치끝 아리는 말이다. 시인 김수영은 피냄새가 난다고 했다. 보들레르는 절망했다. 장자는 스스로 대붕이 되고자 했다.
푸른하늘을 - 시인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자유를 위하여
혁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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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국립도서관의 한 구석에는 지옥실이라는 방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18c 나폴레옹 시대에 정부의 명령으로 만들어 진 곳이었다고 하는데, 에로틱한 책만 모아놓은 이곳은 공개 금지실이었다. 그곳의 장서는 겨우 2,500권에 불과했지만 한결같이 진귀한 서적들 뿐이었다고 한다. 1913년에 간행된 그곳의 장서 목록을 보면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1409번이었다고 전해진다. 시와 이름앞에 늘 퇴폐적이라거나 타락, 악, 그리고 우울이라는 낱말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시인 보들레르. 과연 보들레르의 시집은 왜 금서가 되었는지, 그는 또 왜 어두운 단어들로 수식될 수 밖에 없는지...
가장 뛰어난 상징주의 시인. 최초의 현대 시인이라고 불리는 샤를 보들레르. 그는 19c중엽, 전통과 인습의 벽을 과감히 허문 파괴적인 시인이다. 1957년 출간한 시집 악의 꽃. 이 한권으로 그는 세계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되었다. 총 101편의 시가 수록된 이 시집은 암울과 이상, 악의꽃, 반항, 술, 죽음 이 5부로 나뉜다. 시집 악의 꽃은 시인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읉고 있으며 전체가 하나의 건축물 처럼 일관된 의도를 가지고 구성되어있다.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 초고의 서문에 이런 글을 남겼다.
[유명한 시인들은 오랫동안 자기들끼리 비옥한 시의 영역을 나누어 갖고 있죠. 따라서 나는 다른 어떤 것을 시도할겁니다.] |
| 이 책은 [악의 꽃] 전체 130편 6부 중 20편을 발췌한 시집이다. 권두의 서시를 포함하여 전체 흐름을 위해 6부가 빠뜨리지 않고 포함되어 있으며, 90여편으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1부 [우울과 이상] 중 14편을 나머지 한 부에 한편씩의 시를 싣고 있다. 서시인 [독자에게]는 도전적 서문으로, 너희도 알지 않니? 죄악 밖에 없는 인생 그 허접함의 권태란...이런 뉘앙스를 던지고 시작한다. 1부 [알바트로스]에서는, 추락한 영혼을 인식하고 이 땅에 산다는 것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시는 6부 [연인들의 죽음]에서 그들의 불꽃이 사그러드는 자리에, 흐린 거울과 죽은 불길을 되살려주는 은총이 임하리라는 암시로 끝맺는다. 보를레르의 시적 예술관, 예술 안에서 영원과의 교감 혹은 절대 자연과의 하나됨을 찾고자한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표현된 시집인 셈이다. 번역임에도 프랑스적 인생의 권태로움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도 정제된 시어와 와닿는 표현으로 전달되는 것은 번역자의 보를레르에 대한 이해 때문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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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샤를 보들레르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인 같으면서도
반항적이며 사회파괴적인 시를 통해 자신의 근원적
의문에 충실히 살다 간 사람이다.
세계 근대문학에서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주목받고 있는
베들레르는 낭만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후대 상징주의 시의 출발을 암시하는 작품들을 많이 썼다.
불우한 가정사(특히 의붓아버지와 불화가 심했다.),
방탕한 소비생활, 그에게 치명적인 아픔을 주었던 혼혈여자 잔느 뒤발,
그런 복합적인 환경속에서 시 창작에서 만큼은 세밀한 부분까지
절차탁마하는 성실성...
위의 시 <알바트로스>는
파리의 방탕한 생활로부터 보들레르를 떼어 놓기 위한 의부의
의도된 공작으로 인해 캘커타로 가는 배를 타게 되면서 겪게 되는
당시의 심정을 노래한 시다.
무력하고 비참한 <저주받은 시인>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사족;
번역자의 문구가 몹시 매끄럽지 못하다. 특히 이어지는 어미부분에서
읽기를 괴롭힌다. 프랑스어 원문을 같이 써 넣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책 두께를 좀 늘려서라도 해설과 경향을 좀 더 상세히 기록해야
했다. 적어도 난해한 시집을 출판하려면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
일반독자들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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