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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와 성 정체성은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50:50의 파트너십, 성역할에서 자유로운 양육에 대하여”
책의 제목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을 보고 나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주의에 관심이 많은 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어떻게 나를 지켜야하는가 많이 고민했다. 그 끝의 결론에는 항상 ‘비혼’이 있었고 비혼만이 나를 지키는 하나의 답이라고 생각했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어쩌면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나에게 결혼에 대한 선택지는 없었다. 최근에 학교 과목인 ‘성과 사회’를 수강하면서 더더욱 그러한 마음이 굳혀졌고 동성과 결혼하지 않는 한 이 이성애 중심적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는 결혼생활은 결코 영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사실 아직도 한국사회 안에서 결혼한다고 가정하면 이 생각은 유효하다. 더하여 동성 결혼에 대한 어떤 편견적인 의미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동성결혼 자체가 한국의 가족주의를 탈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급하였다.- 그러나 책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이러한 나의 통념을 깨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결혼생활을 제시한다.
| 예민함에 대해
사실 나는 되게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하다고 하면 너무 부정적인 것 같고 sensitive?라 표현해야 하나..? 어찌 되었든 남이 캐치하지 못 하는 요소들-예를 들어 여혐 언어들-에 대해 잘 캐치한다. 성격이 둔한데 되게 예민하게 보려고 노력한다고 해야 하나? 정리하자면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나임에도 보면서 저자의 예민함에 놀랐다. 내가 여기서 예민함이라고 적은 이유는 나에게 조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인권 감수성을 예민함이라는 부정적인 어휘로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을 경험했던 나였지만, 저자의 높고 실천적인 감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샌디, 당신은 학업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고 자기 일을 하려고 준비 중일 텐데, 일과 결혼의 조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샌디는 이 질문을 받고 그 당시에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지 못 했지만 페미니스트로 정채화한 이후에는 “세상에, 대릴, 참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대시 당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당신은 커리어와 결혼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갈 생각인가요? 이 문제에 대해 여자들만 고민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솔직해지자면 나는 처음 대릴의 질문에 별다른 불쾌감을 느끼지 못 했다. 그러나 곧 그 질문은 여성에게‘만’ 쏟아지는 상투적인 질문임을 자각할 수 있었다.
최근에 불평등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남성이셨고 아내 역시 교수였다. 더하여 두 분 다 매우 바쁘셔서 아이 양육을 번갈하가면서-교수님이 화목 강의라면 아내분이 화목에 양육. 아내분이 월수 강의라면 교수님이 월수에 양육-하셨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남교수님들과 회의 날짜를 정할 때 매우 곤혹을 치렀다고 말씀해주셨다. 다른 남교수님들은 아내분께서 모두 양육을 100% 하셨기 때문에 어느 시간이나 가능했지만 교수님은 강의와 연구 외의 시간을 양육으로 보내야 했기 때문에 아내와의 시간 조율이 필요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성이 과연 커리어와 결혼의 조화를 결혼 전에 고려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맞닥뜨리는가 라고 질문했을 때 쉽사리 맞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예민함이 놀라웠고 이를 처음에 부정적이고 불쾌하게 받아들인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특히 ‘그렇게 예민해서 어떻게 살겠어’라고 생각한 나의 말이 타인에게는 정말 폭력으로 다가갈 수 있겠구나 반성했다.
| 도전적인 이야기
“공식과 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기화가 열리게 된다. 이저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고, 보게 되면 행동할 가능성이 열린다.” 저자가 보여주는 평등주의와 페미니즘에 기초한 결혼, 육아, 그리고 삶은 그 분투기 속에서 깨어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도록 한다. 그리고 20세기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이 21세기인 현재에도 마치 금서처럼 부담스러운 혹은 비관습적인 책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는 여성주의와 평등주의가 여전히 도전적인 의제임을 보여준다. 어떻게 관습과 경계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해볼 문제이다.
*김영사의 지원을 통해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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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십년을 따로 살아온 남녀가 '부부'라는 또 다른 공통의 이름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간다. ? 살아가다 어떤 이유에서건 헤어지기도 하지만.. ? 이 책의 추천사 중에는 이런말이 있다. " 제도화된 가족, 자아, 타인으로 인해 인생이 흔들리는 모든 이에게 깊은 통찰과 위로를 주는 책이다. " ? ?? 남녀 평등을 말하는 가사일의 균등한 분배를 생각하게 하는 무턱대고 내세우는 페미니즘이 아닌, 세상이 만든 대본을 바꾼 특별한 가족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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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82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샌드라 립시츠 벰 지음/김영사)> 세상이 만든 대본을 바꾼 특별한 가족 이야기 50이 넘으면서 나의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특히 결혼생활이나 자녀 문제에 관한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한 가이드가 아니었다. 바로 페미니즘 심리학 즉 여성학의 선봉에 섰던 저자의 자서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의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의 위상을 논하기에 나의 지식이 너무나 짧았기에 공부하는 태도로 책을 읽었다.
우리 사회의 결혼과 서양의 결혼이 차이는 있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꾸리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 과정에서 부딪치는 여러 문제 역시 비슷한 것이 많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가문의 영향이 존재하고, 기본적으로 ‘남, 여’ 간의 결합이고, 연애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 등등. 저자 역시 당사자 간의 선택에 가문, 가족의 영향이 심하게 개입되는 경험을 한다.
카네기공대 심리학에 재학 중이던 저자는 당시 심리학과 교수였던 대릴 벰을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하게 된다. 관습적인 결혼생활을 거부하기로 합의한 두 사람. 지금이야 가사 노동에 대한 공동 책임이 익숙하지만, 여성해방운동이나 성차별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1960년 당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기꺼이 경력에 있어서 희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내가 희생을 감내하는 것이 아닌, 두 사람의 희생 말이다. 유대계 가족의 관습에서 벗어난 결혼에 대한 가족의 거부 반응에 저자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결심과 입장을 전달한다. 그 편지를 통해 저자의 결혼 계획을 바꾸려는 가족들의 시도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대릴이 내면 한가운데 갖추고 있는 바위처럼 굳건한 정서적 안정과 합리성은, 내가 나 자신에게서 구하던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 요소였다. 당시 대릴이 나에게 내 인생에서 부족했던 합리성과 견고함을 선사했다면, 나는 그에게 부족했던 감성과 격렬함을 주었다. -p67 대릴과 나의 젠더 비순응성은 문화적 규범으로부터의 독립이나 무관심처럼 보였고, 이런 방식은 우리를 함께 엮어준 심리적인 기질의 또 하나의 측면이었다. -p81
결혼 이후 그들이 실천했던 평등주의 결혼생활은 1967년부터 시작한 공동강연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공적인 페미니즘 주제로 빠르게 번져갔다. 부부의 강연으로 여성의 평등권과 레즈비언과 게이 평등권에 대한 투쟁에 있어 생산적인 성과들을 거두게 된다.
진정한 평등주의 결혼은 ‘룸메이트 테스트’라 불리는 조건을 만족하는 노동 분업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학교에서 혹은 독신자 아파트를 함께 쓰는 두 남성 혹은 두 여성이 일을 나누는 방식을 말한다. 심부름, 가사와 이런저런 일들은 서로의 선호, 합의, 동전 던지기, 번갈아가며 하기, 외부의 도움받기 아니면 가장 자주 등장하듯, 그냥 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방식으로 나누어 맡아야 한다.” -p138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면 평등주의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모두를 위해 동일한 권리를”이라는 구호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남성 위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평등주의를 위해서라면 문화적인 맥락에서 (그리고 남성 자신도) 당연히 남성의 것이라고 여겼던 권력과 특권을 빼앗아 여성 (궁극적으로는 커플)에게 넘겨주어 확보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p155
두 자녀를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키우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성과 젠더 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에 대항해 보호하려 했다. 큰딸 에밀리와 둘째 제러미가 남성과 여성에 관한 어떤 문화적 고정관념 혹은 신체에 관한 어떤 문화적 오명을 익히지 않은 채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관해 배우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 조금 다른 말로 하면 성교육은 앞당기고 젠더 교육은 늦추는 것이 부부의 목표였다. 아이들의 성교육은 앞당기고 젠더 교육은 늦춤으로써 대릴과 저자는 아이들에게 섹스와 성별 차이에 대해 최대한 빨리 배우도록 할 수 있었다.
저자는 1976년에 미국 심리학회로부터 젊은 연구자상을 받게 된다. 이는 젠더에 관한 저자의 연구를 평가했을 뿐 아니라 당시 떠오르고 있던 여성학 전체에 대한 평가였다. 그해에는 많은 일이 있었던 제러미가 태어났고 스탠퍼드대학의 종신교수직이 거부되었다. 스탠퍼드대학 종신교수직이 거부되고 나서 몇 해 동안 다른 페미니스트 학자처럼 성차별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다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제러미가 겨우 21개월이었을 때 저자의 네 가족은 스탠퍼드를 떠나 이타카로 이사했고, 저자는 코넬대학 심리학과와 여성학과의 부교수(종신교수직), 그리고 여성학 프로그램의 디렉터가 되었고, 대릴은 심리학과 교수(종신교수지만 처음에는 반일제로 시작했다)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저자는 미국 심리학회로부터 수상까지 한 저명한 학자임에도 여성학 프로그램 운영에 부담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게 된다. 여성과 젠더 분야에서 훌륭한 페미니스트 학풍을 만들 수 있도록 최고의 여성학자들을 최대한 많이 채용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최고로 관심을 갖고 있던 젠더와 성과 섹슈얼리티를 통합하는 큰 그림의 책인 《젠더의 렌즈》를 대릴의 도움으로 집필하게 된다.
1965년 대릴과 나는 결혼하면서 우리만의 젠더 해방 실험을 시작했는데 여기에는 궁극적으로 두 가지 극단적인 목표가 있었다. 오늘날 사용하는 언어로 써보자면 첫 번째 목적은 젠더의 대립과 남성 지배적 사고로부터 자유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두 번째 목적은 우리 아이들이 젠더에서 해방되어 동성애를 혐오하지 않으며 섹스에 대해 긍정적으로 사고하도록 키우는 것이었다. -p253
페미니즘과 여성학을 단지 이론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으로 표현하고 설득했던 샌드라 립시츠 벰. 남성과 여성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일생을 살아간 저자는 2009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안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로 마음먹고, 2014년 남편인 대릴이 보는 가운데 독이 든 와인을 마시고 세상을 떠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를지키는결혼생활 #샌드라립시츠벰 #김영사 #페미니즘 #여성학 #평등주의결혼생황 #대릴벰 #젠더 #함께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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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라는 고유한 영역. 우리는 그것을 몇 천년동안 변화시키지 못했다. 남자는 밖에서 사냥을 해오고, 여자는 안에서 살림하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원시사회부터 뿌리박혀 내려와 그 인자가 몸에 박혀 있을 정도이다. 남자는 이래야 된다. 여자는 저래야 된다. 라는 가치관을 바꿀 사이도 없이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성고정관념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여자가 대기업 다니는 애 둘딸린 워킹맘이라니 첨언은 할 필요도 없겠다. 이 책은 성역할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족형태를 고민했던 한 페미니즘 학자의 실천기를 담았다. 그녀는 남자가 집안일을 3일 했으면, 여자도 마찬가지로 3일을 하는 구조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녀의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남녀 성고정관념에 갇혀 살지 않도록 자유롭게 키워나갔다. 우리가 원하는 새로운 가족의 형태는 대체 무엇일까? 남자들이 단순히 집안일을 하는 정도는 아니다. 집안일은 여자들 몫이고, '도와주는' 정도로만 생각하며 자신이 베푼 아량을 대단한 것인냥 으시대는 것은 제3자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 무얼 돕는단 말인가? 남인가?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은 하는 것이 왜 돕는 것인가? 가정도 하나의 사회처럼 생각해야 한다. 누구하나 희생하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것!'. 돕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인식부터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좀 더 새로운 세상은 조금씩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을런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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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지키는결혼생활 #샌드라립시츠벰 이 쓴 특별한 가족이야기에요.결혼생활만 얘기한 책이 아니에요. 비혼인 분이 봐도 좋은 책이라고 완전완전 적극추천요.입에 거품물고 피토하는 심정으로다가 새벽2시넘어서 올려봅니다. 읽다보니 이 시간이야.그럼 보통 다음날 오전에 올리는데 이 책은 지금 올려야겠거든~왜냐구?저자님의 삶과 죽음이 너무 대단해서 그래. 번역가 김은령님과 김호님의 옮긴이의 말이 너무 인상적이라 5장을 찍었네요ㅋ샌드라의 글도 너무 좋거든요.우리 이 책 꼭 좀 읽어보자요. 샌드라가 이 회고록을 출간했을 때 1998년 54세였어요. 그때는 남편 대릴도 다른 파트너를 만났고 샌드라도 다른 파트너가 생겼지만 이혼하지 않은 상태였대요.그 둘은 헤어졌지만 계속 좋은 파트너였어요. 2009년 65세때 경도인지장애판정을 받고 맨해튼에 치료받으러갈 때면 대릴이 늘 동행했다고 해요. 2014년5월20일 샌드라는 대릴앞에서 미리 준비해둔 약과 포도주를 마시며 세상을 떠났대요. #김은령번역가님 도 샌드라에 관심갖게 된 계기가 샌드라의 죽음의 방식때문이었다네요.저 역시 책을 다 읽고 나니 삶의 마지막까지 그 자신 샌드라로 살다가고파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샌드라와 대릴은 에밀리와 제레미를 키우면서 성역할에서 자유로운 양육을 추구했고요. 그림책에서나 생활전반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he or she라며 옷을 다 벗기전엔 #성별 을 구분할 수 없는 거라고 그렇게 아이들에게 말했어요. 아이 스스로도 성고정관념에서 자유롭게 크도록 했고요.부부로서 #가사 와 #양육 도 같이 했어요.남편이 #집안일 도와주는거 아니죠~같이 해야하는거죠. 전 이 책 읽으면서 많이 깨달았네요. 아이들에게 남자는 이래야해~하고 전통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을 얘기하고 다그쳤던 적이 있었다고요. 앞으로는 그런 말들 삼가는걸로요.아들이 아니라 아이로 바라봐주고 키워야겠다 결심했네요. 아 진짜 이 책 좋은 부분 너무 많은데 정리가 안되네요.페미니즘학자의 자전적 실천기 한번 더 읽어보려고요.한번만 읽어보기에는 아까운 책이에요. 저도 #페미니스트 이고 열린 시각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더 깨져야할 부분이 있군요. 미쿡에서 98년 나온 책인데 2020년의 한국가족에게도 꼭 필요한 메세지가 가득해요.이 책을 번역한 부부가 보증하고 이 책 읽은 제가 제 열손가락 다 걸고 보증합니다. 새벽2시넘어 서평쓰기 자제해야겠어요.글이 두서가 너무 없네요??????이 책의 원제가 더 나은 거 같은뎅?An Unconventional Family ?? ♥ 세상이 만든 제도화된 #가족 이 아닌 그 여자 그 남자 50:50 #파트너십 으로 꾸려간 그 가족들 꼭 만나보세요. #페미니즘 #과거페미니즘 #사회학 #사회학추천 #책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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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평등한 결혼 생활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 내용은 단순하지 않았다. 평등한 관계와 페미니스트적인 자녀 양육을 실천한 자전적인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아내와 남편에서 '파트너'가 되고, 아들과 딸이 '아이'가 되는 일과 가사 및 양육이 50:50인 결혼생활. 뿌리 깊은 가부장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책이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가 현실에서 가능했다는 사실에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오로지 나를 위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얻었던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1960년대 여성성과 남성성의 새로운 척도를 제시한 '벰 성 역할 검사'를 개발했으며,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은 젠더 양극화 연구에 업적을 남긴 페미니즘 학자가 1998년 쓴 결혼 회고록이다.
저자 '샌드라 립시츠 벰'이 1965년 스무 살에 당시 카네기 공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던 여섯 살 연상 '대릴 벰'과 평등한 결혼 형태를 만들어 낸 뒤, 27년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법적으로 이혼한 것은 아니지만 이내 헤어져 각각 동성 상대와 사귀기도 했다.
따라서 두 사람은 단순히 사회가 정한 이성애자, 동성애자, 양성애자로 규정할 수 없음을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길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있어 문화적 구분에 딱 맞출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는 2009년 알츠하이머를 알게 된 뒤 2014년 대릴이 보는 앞에서 독이 든 와인을 먹고 사망했다. 죽음마저도 오롯이 자신이 결정하는 삶, 가족을 위한 희생이나 눈치를 보지 않는 인생이 '나를 지키는 결혼생활'이라 생각했다.
부부간의 평등이 지켜지고 성 역할이 고정되지 않은 결혼생활, 그리고 젠더 고정관념 없이 키우는 양육방식,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체계화되지 않았을 무렵에 목숨처럼 지켜왔고, 1967년부터는 공동 강연을 통해 미국 전역에 전파했다.
특히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가풍으로 만들어진 인격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고, 사랑에 빠진다는 개념으로 상응할 수 없는 파트너십 관계를 만들어 냈다. 저자 샌드라는 엄격한 유대교 집안에서 자라며 부모님의 잦은 싸움으로 어린 시절 불안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 그로 인한 성격은 사춘기를 지나며 악화되었고, 독립의 욕구를 크게 불태운다. 하지만 독립하기에는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아 선택한 학교에서 큰 마찰이 있었고, 따라서 대릴의 존재는 자신을 구해 줄 생명줄 같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가족들이 주지 못했던 안전한 토대를 제공해 주면서도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대릴은 남성의 성공 때문에 여성의 커리어가 망가지게 놔두지 않았다. 일주일에 3일씩 나눠 집안일을 하고 샌드라의 커리어를 위해 대릴이 직장을 옮기기도 하며, 샌드라와 일하기 위해 엄청난 제안을 거절하기도 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들을 벌인다.
두 사람은 이론과 강연으로만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일종의 실험이라 말해도 좋을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꾸리면서 겪었던 감정과 주변 상황을 정리해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독박 육아 및 가사, 시월드와의 갈등, 여성의 전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의 틀이 얼마나 견고한지 깨닫는 계기도 된다. 진정한 실천으로 완성했던 샌드라의 삶을 통해, 여러 형태의 가족이 존재하는 긍정적 미래와 다수와 달라 배척당하는 소수가 생기지 않는 사회를 잠시나마 꿈꿔 볼 수 있었다.
어차피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는 일은 나의 인생이다. 이를 두고 누구도 강요하거나 참견할 수 없지만 어쩐지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말을 듣고 스스로 검열한다. 이것은 꼭 해야 한다, 결혼은 격식을 차려야 한다며 수백, 수천만 원 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세태. 내 결혼식인지 부모님 결혼식이지 알 수 없는 보여주기 식 관행. 결혼 해서도 아내와 남편, 시가와 처가에서 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온전히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아니기도 한 상황에서 이 부부의 실천기는 통쾌한 쾌감을 선사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결혼에 관한 다른 생각, 해보지 못한 관념들을 각성하며 다음 세대는 내 세대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길 고대하는 바이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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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제목에서 조금 거부감이 느껴진 게 사실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현재의 결혼생활을 유지해 가면서 '결혼' 이라는 제도 안에서는 '나' 를 말하는 것보다는 '나와 너' 를 동시에 같이 말해야 그 생활이 비로소 사랑과 격려로 점철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나' 를 위한다는 결혼생활이 과연 양쪽 배우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오지라퍼의 생각이 앞섰기에.... 그럼에도 읽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동의했던 건 이 심리학자가 (더군다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결정을 하기까지 했던) '여성' 이라는 자신의 위치에서 남성 배우자와 동등해지려는 일련의 생각, 행동, 그리고 그 상대 배우자와의 시간들을 '회고록' 적인 에세이로 묶은 이 책 앞에서 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결혼이란 무엇인지, 여성이든 남성이든 결국 그 결혼이라는 제도 앞에서 어떻게 '나' 라는 개인을 지키면서 '너와 나' 를 동시에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무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스트' 라는 단어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지금은 생각하기에. 다만 마음속으론 '페미니스트' 이나 나는 그저 '인류' 와 '사람' 의 인권과 '인간애' 와 그런 의식이 더 버젓하게 자리잡힌 시대와 사회라면, 그런 '젠더' 를 뚜렷하게 구분해서 일컬어지는 그 단어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그렇기에 페미니스트의 아이 기르기라는 소제목의 이야기라든지, 이 심리학자의 '대릴' 이라는 남성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 집단 속에서 아이를 기르면서 느끼는 '전통' 의식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서구권이든 동양권이든 국경 불문... 결국 '여성' 이 느낄 수 밖에 없는 결혼 생활의 모순들마저 생각하게 되고 마니. 나는 자꾸만 이 기혼제도 앞에 놓인 두 사람의 결합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 지극히 현실적인 해결책들만을 개인적으로 떠올릴 뿐이다... 전통적인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대한 결론에 동의하며 우리는 대안적인 가족 형태의 가능성을 경력 양립불가론을 낳은 가족을 흔들어대는 시작점으로 삼았다. 전통적인 남편-아내 관계가 도전받는 이유는 나이 든 기혼 여성이 광범위하게 느끼는 불만족 때문이 아니라 오늘날 대학에 다니는 세대의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가치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두 가지 가치란, 하나는 개인적인 성장이고 또 하나는 대인관계다. 전자는 개인성과 자기 성취를 강조하고 후자는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 개방성 정직함 평등을 말한다. 다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불편했던 건 어쩌면 이런 대목들이었다... 나는 '사랑' 을 좀 더 소중히 생각하기에. 남성 여성이라는 젠더 구분을 떠나서, 스스로 선택한 사랑 앞에서 일련의 '책임' 을 다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앞선다면, 이렇게 역할 구분을 떠나서 '내가 더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라든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라든지, 결국 나보다는 너를 위하는 마음이 우선시 되는 관계라면, 결국 그것이 나를 지키고 너를 지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기계적으로 역할 구분을 하는 것이 얼마나 오래, 진정성 있게 갈까 싶었기에... 누가 무엇을 할 지 리스트를 만들고 가사에 책임 있는 사람이 그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지 아닌지 판단하도록 한다 가사를 맡은 사람이 그 일을 마쳐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할 책임이 있다. 무얼 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무얼 미리 계획할지에 대한 책임을 두 사람이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만일 파트너인 남성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한 협조를 완고하게 거절한다면, 당신의 일이라기보다 그가 맡아야 하는 일의 목록을 정리하고 그 일을 절대 대신하지 마라.
가족의 형태는 다양하겠다. 결혼의 형태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그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의 방향도, 목표도 모두 제각각.... 다만 나는 이 책을 마냥 신뢰하거나 좋게 읽지 못했던 건, 결국 '사랑' 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기존의 통념적인 '나쁜 배우자'의 습성에 대해서 '나' 를 지키는 법은 이러합니다 라는 걸 말하는 것 같았기에. 그 면이 불편했다. '사랑' 을 더 큰 위치에 두고자 한다면 결국 나든 너든 의식적으로 '노력' 이라는 걸 하게 된다는 것. 나보다 너를 위할 줄 아는 마음. 결국 그것이 두 사람을, 나를, 그 결혼 생활을 구원하게 된다는 것. 그런 가정에서 격려와 사랑을 받고 자란 또 다른 '구성원 (아이) ' 들은 결국 그 결혼 생활 속의 두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 나는 책을 덮고 우리 부부의 현재를 생각할 뿐이다. 감사한 마음, 서로 더 위하게 된 이 시간들...가진 게 많은 우리들의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잘 '의식' 적으로 인성 바른 '인간'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 공통된 목표 앞에서 우리 부부가 굳건하기를, 바랄 뿐이다.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