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10.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Fifty Shades of Gray: 저마다 다른 명암의 그림자들. 그밖은 한여름이었다.
"Fifty Shades of Gray: 저마다 다른 명암의 그림자들. 그밖은 한여름이었다." 내용보기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여름에 온도가 화씨 110도 이상 올라간다. 최근 몇년간 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로 매우 더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섭씨로 따지면 거의 매일 40도가 넘는 셈인데, 다행히도 고온이기는 하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 안에만 있다면 아무리 무더운 날이라도 살만은 하다.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면 지열 때문에라도 숨이 턱턱 막힐 수 있겠지만, 공원이나 나
"Fifty Shades of Gray: 저마다 다른 명암의 그림자들. 그밖은 한여름이었다." 내용보기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여름에 온도가 화씨 110도 이상 올라간다. 최근 몇년간 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로 매우 더운 여름이 지속되고 있다. 섭씨로 따지면 거의 매일 40도가 넘는 셈인데, 다행히도 고온이기는 하지만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 안에만 있다면 아무리 무더운 날이라도 살만은 하다. 빌딩숲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면 지열 때문에라도 숨이 턱턱 막힐 수 있겠지만, 공원이나 나무가 많은 곳의 그늘 속에 있다면 한여름이라도 오히려 서늘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울에 태어나서인지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럭저럭 내가 여름을 버틸 수 있는 건, 내가 사는 곳이 캘리포니아이기 때문이다.

오은경의 첫 시집인  『한 사람의 불확실』은 우선 내게 한여름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6월의 여름도, 7월의 여름도 아닌, 8월 초의 여름. 그것도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 떠 있다. 모든 것들이 명징하게 보이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제 생명력을 마음껏 뿜어내고 있다. 누군가는 이 때를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부르지만,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건 소위 인생의 여름을 살고 있는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시절을 이미 건너온 사람들이나 아직 그 시절에 닿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때가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겠지만, 막상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의 시간일 수도 있겠다. 눈이 부시다 못해 눈이 멀 것처럼 태양이 작열하는 한여름이라면 과연 이 시기를 어떻게 버텨야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오은경이 택한 방식은 그림자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이다. 시종일관 오은경은 '서늘함'을 취하고 있는데, 이건 그가 생을 대하는 (전략적) 방식으로 보인다. 살기 위한 생존 방식으로 택한 '서늘함'. 저마다 다른 명암을 가진 50가지의 그림자들. 그것이 오은경의 시다. 그밖은 한여름이다.




나는 존 싱어 사전트를 좋아한다. 대체로는 이 화가가 그린 도도하고 우아한 여성들의 초상화를 좋아하지만, 이 단순한 그림을 보고 단번에 매료되었다.
1909년에 그린 「Corfu: Lights and Shadows」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여기서 'Corfu'는 그리스에 있는 '코르푸'라는 섬이다. 아마 화가는 이 섬으로 휴가를 떠났거나 이 섬에 머물며 한동안 그림을 그렸던 모양인데, 여기서 그가 그린 것은 빛과 그림자다. 
수채화로 그린 매우 단순한 그림이기는 하지만, 초상화로 명성을 얻은 화가가 중년에 접어 들어 그린 그림이어서인지 마치 인간이라는 존재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단단한 외면과 서늘한 내면, 그것이 인간이라고 말이다.

나는 오은경의 이 시집이 사전트의 이 그림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림자들이 존재하고, 그 안은 매우 서늘하다. 그리고 그밖은 한여름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당신이 그림자 안에 있다는 것은. 당신이 서늘함을 느낀다는 것은. 이것은 안온함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 지언정, 적어도 당신을 지금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라면 당신은 얼마든지 한여름을 관조할 수 있다. 서늘함을 느낀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 그림자 안에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안심하시길.


c*****g 2024.05.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