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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렵지만 재미있다. '서울 해법'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처럼 서울이란 도시와 그 도시 안 건축의 관계를 다양한 건축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건축법과 도시법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함께 법의 실행에 대한 많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법들은 실행의 과정을 거쳐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가 되고 건물이 된다. 우리나라와 세계의 차이 또한 세밀한 눈으로 분석하였다. 책에 있는 건축과 도시에 관한 법의 역사는 대한민국 개발의 역사이자 서울의 성장 스토리인 것이다. 이 스토리 속에 들어가면 성장 속에 숨겨진 서울 집 값의 민낯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이 책은 도시 개발의 실체를 보여주는 책이며, 저자는 도시와 건축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히려는 노력으로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객관적이지만 깊이 있게 풀어놓고 있다. 법에 대한 내용을 모두 이해하기에는 어렵지만 개발의 실질적인 역사가 엿보이기 때문에 재미있다. 이 재미의 끝에는 서울의 미래에 대한 작가의 묵직한 관점이 펼쳐진다. 작가의 말처럼 좋은 것을 가려내고 좋은 개발을 하려는 의지가 보다 나은 서울을 만들 것이다.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과 ‘길모퉁이 건축’에 이어 좋은 책이 나와 너무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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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이질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이 책은 생각보다 많이 풍성하다. 옴니버스 형식이라 읽다가 덮은 후, 뒷부분 어딘가에 이어 읽어도 잘 읽어져서 재미있다. 책 앞에 "도시와 건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건축설계가 시작된다"는 말, 책을 닫는 글에 "좋은 건축은 좋은 기획이 전제되어야 하고, 좋은 기획 앞에는 옳은 도시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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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시대를 초월하는 생각을 가졌더라도 건축물은 장소, 기술, 노동이란 기반 위에 만들어진다...건축물이 제도판에서 잉태되어 현장에서 구현되는 과정은 역사에 비유하면 정사(正史)에 야사(野史)가 가려지는 경우다.“.. 이 인상적인 내용이 프롤로그에 담긴 책이 김성홍의 ‘서울 해법’이다. 저자는 수잔 랭거(Susanne K. Langer; 1895 - 1985)의 은유를 소개한다. 비담론의 넓은 바다에서 담론의 작은 섬에 갇히는 것이란 말이다. 사람들이 몸으로 느끼는 건축을 언어화하는 순간 깊고 풍부한 건축의 전체성은 언어의 논리로 축약된다는 것이다.
책은 1부 땅, 2부 제약, 3부 관성, 4부 명제로 이루어졌다. 서울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수도는 흔하지 않다. 베이징, 도쿄, 워싱턴 D. C, 런던, 파리, 베를린 모두 평지다.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였던 4대문 안과 그 밖 일부를 역사 도심이라 부른다. 이곳의 면적은 서울 전체 면적의 2.9 퍼센트(17.9 제곱 km)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는 9.7 퍼센트, 인구 밀도는 서울시 평균의 1/3이다.(42 페이지)
토지구획정리사업은 19세기 말 스위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은 20세기 초 이를 독일에서 도입하여 도쿄, 요코하마를 재건했고 한반도, 대만 등 강점(强占) 지역에도 시행했다. 1980년대에는 이 사업을 통해 가나자와, 사이타마, 지바 등 교외 신도시를 건설했다. 일본이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자국에 도입한 목적 및 배경과 경성을 포함한 강점 도시에 시행한 그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일제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편 것은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함으로써 토지 경작권을 잃고 영세 소작농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경성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54 페이지)
서울의 신시가지 조성은 한양도성 밖 동북쪽 관문이었던 혜화문 밖 돈암동에서 시작되었다.(55 페이지) 구획정리사업의 정점은 강남이 탄생한 것이다. 구획정리사업은 불규칙한 필지를 곧게 펴고 잘게 나누면서 개인이 소유한 필지의 일부를 떼어 길과 공원 등의 공공용지를 확보한다.(57 페이지) 세계 도시 비교 연구를 해온 존 페포니스는 모더니즘을 둘로 나누었다. 주변 맥락과 독립된 오브제와 스펙터클한 내부 공간을 만나는 모더니즘, 건축과 도시의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대면 접촉을 촉진하는 모더니즘이다.
저자는 성장하는 도시에만 익숙했던 한국도 서유럽과 일본이 겪고 있는 문제를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69 페이지) 저자는 서울의 인구 집중화에 따른 주택난을 해결하고 부족한 도시기반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했으나 부동산 투기와 정치 비리의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구획정리사업지구는 이제 필지 단위에서 소블록 단위의 재생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을 맞고 있다고 말한다.(73 페이지)
구획정리사업은 서울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이었다. 그리드 바탕 위에 작도한 경복궁 복원도가 전해오지만 조선 초기 경복궁을 이 방식으로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다.(76 페이지) 서울은 20세기 후반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도시 집중화를 겪었다.(117 페이지) 저자는 5년제 건축학 교육을 받고 실무 수련을 마친 예비 건축사의 설계 능력을 시험으로 판단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 논리로 건축사 수를 제한하는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120 페이지)
지난 50년간 건설사업의 성장 동력은 더 높은 용적률을 향한 집단적 욕망이었다.(128 페이지) 저자는 이 부분에서 여러 저자들이 쓴 ‘서울의 인문학’에 실린 자신의 글을 소개한다. 용적률(容積率)이란 대지면적에 대한 연면적(건물 바닥 면적의 합)의 비율을 말한다. 가령 집의 연면적이 대지면적과 같으면 용적률은 100퍼센트, 연면적이 대지 면적의 2배이면 용적률은 200퍼센트가 된다. 건폐율(建蔽率)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면적(1층 바닥 면적)의 비율이다. 건폐율이 50퍼센트인 집을 4층으로 지으면 용적률은 건폐율의 4배인 200퍼센트가 된다.(‘서울의 인문학’ 191 페이지. 積은 쌓을 적자다. 蔽는 덮을 폐자다.)
저자는 건축은 숫자로 치환할 수 없고 치환되어서도 안 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이지만 문제는 지난 50년간 건축을 추동한 밑바닥에 용적률이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130 페이지) 인구 밀도가 높다고 용적률 게임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땅값 상승이 받쳐주어야 하는 것이다.(133 페이지) 한양의 단층집은 수직으로 쌓을 수 없는 목구조와 온돌 결합 방식이었다. 구한말 한양은 건폐율과 용적률이 70퍼센트로 같았던 수평도시였다.
2016년 서울의 평균 용적률은 70퍼센트에서 145퍼센트로 2배 올랐다. 지난 100년간 서울의 시간은 용적률을 2배 올리는 과정이었다. 현재 평균 건폐율이 50퍼센트라고 가정하면 높이 평균은 2.9층이다.(145/ 50; 2.9) 저자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 1944 - )를 소개한다. 그는 거대 도시 맨해튼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부한 ‘광기의 뉴욕’이란 책으로 주목을 받은 사람이다.
건축 기술은 보수적이다. 변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145 페이지) 공장에서 생산하는 완제품과 달리 건축은 땅을 딛고 있으므로 하이테크와 로테크를 모두 필요로 한다.(146 페이지) 스위스는 전 세계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는 건축의 나라다. 850만의 인구에 건축사, 건축 엔지니어 수는 16,000명으로 인구 5000만 명인 남한의 건축사 수에 육박한다. 기존 건축사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건축사 합격자 수를 암묵적으로 조절하는 한국보다 경쟁이 더 치열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건축학과 졸업장이 곧 건축사 자격증이 된다.(149 페이지)
맑스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상품의 가치가 시장에서 어떻게 가격으로 전환되는지를 규명하고 이론화했다. 자본주의에서 상품 가치는 기술적 한계가 아니라 사람의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맑스의 가치론은 논쟁거리다.(155 페이지) 저자는 버내큘러(vernacular)를 번역할 마땅한 우리말이 없다고 말한다. 건축에서는 평범한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지역 양식을 의미한다. 평범, 비공식, 비표준, 장소, 지역, 언어, 방언, 양식 등을 포괄하는 단어다. 이 단어가 사전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1700년경이다. 집에서 태어난 노예, 원주민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르나(ver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영국이 아메리카와 서인도에 방대한 식민지를 구축하던 시기다.
저자는 일본 신사(神祀)를 닮았다는 김수근의 부여박물관 논쟁,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을 콘크리트 덩어리로 차용했다는 정봉진의 국립민속박물관 논쟁은 모더니즘의 수동적 학습자이면서 전통 현상에 대한 혼돈과 목마름을 앓았던 1세대의 필연적 결과였다고 말한다.(168 페이지) 부여박물관 논쟁은 도리이(鳥居; とりい) 논쟁이기도 하다.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부여박물관(현 국립문화재연구소)을 보고 김중업 건축가가 일본풍이라고 비판한 데서 비롯된 논쟁이다.
버내큘러와 비교할 말이 제네릭(generic)이란 말이다. 제네릭 도시란 특징 없고 무미한 도시를 말한다.(164 페이지) 저자는 주변과 무관하게 고유한 것이 있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며 만들어낸 가공이라 말한다.(175 페이지) 저자는 서울을 향한 타자의 비판, 냉소, 폄하, 훈수에 대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제3의 시선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한다.(176 페이지)
저자는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읽는 것은 필요하지만 고증을 통해 입증할 수 있는 사실과 상상에 기댄 가공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록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지배자, 승자, 강자의 틀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집중하면 된다.(177 페이지) 평면도는 허리 높이에서 건물을 수평으로 자르고 위에서 바닥면을 내려다보고 그린 도면이다. 평면도는 보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가정하고 그리는 가상 도면이다. 건축가들은 2차원 평면도와 단면도를 보고 3차원 공간을 상상할 수 있고 역으로 3차원 공간을 경험한 후 평면도와 단면도를 그릴 수 있다.(181 페이지)
서울에 2층 상가가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다. 단층이었던 상점을 2층으로 짓도록 한 조선총독부 정비령 때문에 조선 상인들이 파산하기도 했다.(215 페이지) 저자는 근린생활시설(근생)이 주택가에 침투한 사례를 열거한다. 신사동 가로수길, 강남 역삼동, 잠실 방이시장, 홍대앞 서교동, 연희동, 건대입구역 화양동 등이다. 저자는 왼쪽을 빨간 튤립이, 오른쪽은 노란 튤립이 이랑을 따라 일렬로 심어진 밭을 반(半) 자연이라 말한다.(255, 256 페이지) 사람 손을 거친 자연이라는 의미다.
패턴이란 자연이나 인공물에 내재하는, 확연히 구별되는 규칙성을 말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단순한 규칙이 만들어낸 집합적 패턴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낀다. 랭거는 비담론적 예술을 표상 상징이라 설명했다. 저자는 건축은 언어의 세계와 느낌의 세계 사이에 교묘하게 걸처져 있다고 말한다.(258 페이지) 건물은 공간적으로 시각 예술을, 시간상으로 음악의 스케일을 능가한다.(264 페이지) 건물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내외부 전체를 움직이며 경험해야 한다.
게슈탈트 심리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환경을 최대한 단순하고 정형적 형상으로 축약하려는 경향이 있다. 복잡한 사물과 현상을 쉽게 지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다.(267 페이지) 도시 연구는 귀납적이다. 현상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간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건축 연구는 연역적이다. 자신이 설정한 아이디어를 맥락화하고 합리화한다. 이미 내린 답을 역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274 페이지)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의 의식 세계는 분석하고 계량화할 수 있는 물질세계와 다르며 직관만이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직관은 대상을 맴돌며 분석하고 판단하지 않고 대상 안으로 곧바로 들어가 표현할 수 없는 무엇과 공감하는 것이다. 많은 장소에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고 도면을 분석하더라도 도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직관과 즉물적 감각으로 단번에 도시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다.(275 페이지) 도시계획은 집단의 욕망을 제어하고 건축설계는 개인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이질성과 역동성은 종이 한 장 차이다.(285 페이지) 동으로는 일본, 서로는 티베트, 남으로는 베트남에 이르기까지 기후, 재료, 기술, 관습에 따라 동아시아 목구조 건축은 다양하게 갈래를 쳐왔다.(288 페이지) 우리는 고유한 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우수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전통의 원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속성의 토대 위에 변용과 변화가 있을 뿐이다. 고정된 전통은 우리가 만든 가공이다. 도시와 건축에서 오염된 단어가 커뮤니티란 말이다.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물리적, 심리적 경계를 만드는 설계안에 커뮤니티라는 말이 붙는다.(300 페이지)
저자는 서울은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에서 정의한, 한 곳을 깊이 파는 고슴도치와 여러 곳을 살피는 여우의 모습을 지닌 다면적 브리콜뢰르 건축가를 기다린다고 말한다.(314 페이지) ‘서울 해법’은 새로운 개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책, 진지하고 묵직한 사유의 궤적을 보여주는 책이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다시 들춰볼 책이다. 건축의 매력과 특성을 단편적이나마 음미할 수 있었다. 조선과 일제강점기, 근현대 한국을 연결짓는 통시적 접근법이 빛을 발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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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해법’은 서울을 향한 예리한 질문들의 릴레이다. 이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서울, 활동하는 서울, 국가의 가장 큰 수도를 향한 건축적 질문이다. 건축적 질문은 생활사의 질문이자 역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며 서울에 사는 내 주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건축과 도시가 분리되지 않고 서울을 배경으로 ‘도시의 외적 힘’과 ‘건축 내적 원리’간의 밀착된 관계성을 다루며 본 책은 다음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도시계획이 어떤 건축 유형을 만들어냈는가?, ‘서울의 건축을 만드는 외적 조건은 무엇인가’, ‘건축 유형, 규모, 장소와 관계없이 내재하는 관성이 무엇인가’. 1부부터 3부까지는 질문으로 이뤄진데 반해 4부는 저자가 서울에 대한 명제를 세 가지로 정리하여 풀이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아름다운 것에는 규칙이 있다’, ‘도시와 건축은 불연속적이다’, ‘전통의 원형은 없다’. 프롤로그에서 서울을 일종의 ‘조직’이라고 표현하였듯, 저자는 에필로그의 ‘서울 재프로그래밍’에서 도시의 프로그래밍은 건축과 도시 영역의 계획 및 설계를 주축으로 많은 프로그램들이 채워지는 반면 재프로그래밍되기 위해서는 건축과 도시 영역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다. 저자마저도 집필을 마무리할 즈음 ‘서울은 무엇일까?’라는 최종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하니 주변의 질문들로부터 원론적인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다면 질문이 가득한 본 책은 왜 ‘해법’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을까? 저자는 서울을 향한 예리한 질문을 통해 서울이라는 조직에 다양한 생각의 길을 열고자 하였으며 살아 있는 서울의 유기체적 모습을 본 책에 핵심적으로 담아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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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모습이 갖추어진 과정을 건축가의 눈으로 설명하고 있다. 600여년 넘게 수도의 역할을 해온 서울이지만, 근대화된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반세기 남짓이다. 우리의 지난했던 근대화 과정이 고스란히 도시의 모습에도 남아 있음을 서울의 물리적 토대가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좋은 건축, 좋은 도시를 만들기에 앞서 필자의 고민은 '서울다운' 건축을 이야기하려 한다. 조금은 다르지만, 건축가들은 근대화 초기 우리 건축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우리 전통건축과 근대건축을 이어보고자 시도하면 시도할 수록 오히려 어설프고 우스꽝스러워지는 부끄러움도 겪었다. 이제는 아무도 억지로 역사성을 획득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궁금하지 않는가? 서울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유럽의 유서깊은 도시들이 갖고 있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거리의 이미지 혹은 고층빌딩으로 뒤덮인 미국의 산업화된 이미지... 그 무엇도 아닌 우리만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필자가 던지고 있는 좋은 도시,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도시와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보았을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 해답은 각자의 몫처럼 남아있는듯하다. 여전히 서울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발전(? 이것을 과연 발전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하고 있다. 건축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 외에도 도시계획가, 혹은 우리 도시에 관심있는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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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해법 이 책은 건축가가 바라본 서울이라는 도시, 서울 안의 땅과 건축에 관한 이야기이다. 오래도록 수도였던 서울이지만 지금의 근대 도시의 모습을 갖춘 것은 전쟁 이후이다. 지금의 서울은 세계 도시 경쟁력 순위에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도시가 되었기에 그 변화 과정이 궁금했다. 도시의 발전에 땅과 건축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에 흥미로웠던 책이다.
<기억에 남는 책 구절>
- 서울은 한국인의 집단 정신을 표상한다. 서울은 소수의 마스터 마인드가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 도시이다. 더 많고 더 높은 공간 욕망을 품은 개인, 단체, 기업, 이를 법과 제도로 통제하는 관료와 도시계획가, 욕망과 규칙 사이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건설사, 개발업자, 건축사 사이에서 다자간 게임이 벌어진다. 갈등과 진통을 거쳐 집단은 묵시적 합의점에 이른다. 현재의 서울은 여러 주체가 치열하게 싸워서 만들어낸 절충의 산물이다. 겉으로는 무질서해 보이지만 각 주체의 치밀한 논리, 전략, 전술이 숨어 있다.
- 지난 수십 년간 역사 도심에서 소필지별 건축 행위와 공공이 주도하는 대규모 정비사업 사이의 중규모 재생이 어렵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사실을 직시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완벽히 보존.복원하고,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곳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 반면 더는 내버려 둘 수 없는 곳들은 공공 주도하에 과감히 정비사업을 해나가야 한다. 그 목표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삶이 되어야 한다. 서울의 역사 도심은 살고 일하고 소비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살아야 새로운 산업이 창출되고 활력이 살아난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없고 복제만 있는 이런 집에서 작가는 중산층의 현실과 욕망을 읽는다.
- 새로운 아파트 디자인이 나오지 않는 것은 건축가가 생각과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중정형, 탑상형, 판상형 등 굳어진 유형, 직각 배치 구간, 단위 세대 조합 호수, 단위평면 베이 개수, 지정된 층고 등 천편일률적 설계 지침을 따르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암초는 설계 능력이 아니라 법률, 시행령, 규정, 규칙, 가이드라인, 설계 지침 안에 도사리고 있다. 혁신의 뇌관은 총론보다 각론에 숨어 있다.
- 도면으로 표현한 건축 디자인은 창작자 개인의 작품이지만 물리적으로 구현된 건축물은 한 사회의 집합적 산물이다.
- 1%의 명품 건축과 99%의 나쁜 건축으로 이루어진 도시보다, 10% 좋은 건축이 바탕을 이루는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다. 10% 좋은 건축에서 1% 명품 건축이 나올 확률도 높다. 이런 도시가 옳은 도시다.
- 오랜 시간이 지나도 평가받는 건축가는 소수를 위한 명품 건축보다 대중에게 좋은 건축을 남긴 사람들이다. 좋은 건축이 한 곳에 쏠리지 않고 도시 전역에 분산되어야 한다.
- 좋은 건축은 좋은 기획이 전제되어야 하고, 좋은 기획 앞에는 옳은 도시 계획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