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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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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겹이란 것 ]   종이컵 두 개를 포개놓고 따른다   두 겹이라는 것 한 겹을 지나 또 한 겹을 지날 때의 두려움   맥락 없이 무차별한 바늘 끝의 긴장을 따라 침소붕대의 의혹을 따라   뚫었습니다   저 개천도 두 겹이었다는 사실 열리는 물과 닫히는 물 합 겹은 벗고 한 겹은 입은 바늘 끝의 시간   미래를 말하지만 과거를 파내고   두 잔이었지만 넉 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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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겹이란 것 ]


 

종이컵 두 개를 포개놓고 따른다

 

두 겹이라는

한 겹을 지나 또 한 겹을 지날 때의 두려움

 

맥락 없이 무차별한 바늘 끝의 긴장을 따라

침소붕대의 의혹을 따라

 

뚫었습니다

 

저 개천도 두 겹이었다는 사실

열리는 물과 닫히는 물

합 겹은 벗고

한 겹은 입은 바늘 끝의 시간

 

미래를 말하지만

과거를 파내고

 

두 잔이었지만

넉 잔을 통과하고

 

취기가 흔드는 벚꽃 가지가

허공과 물결에 꽃잎 모양을 뜰 동안

한 겹이 젖고 또 한 겹은 마를 동안

 

뚫렸습니다

 

물길을 열고 한 사람이 닫히던 그날의 사건

접시 물에 익사한다는 농 같은 말의 현장에서

수면을 열고 닫는 천변의 불빛들

 

죽은 것과

죽은 듯 보이는 것의 심폐소생술처럼

두 개의 종이컵을 포개놓고

한 겹을 지나 또 한 겹을 지나

 

 

[ 설상가상 ]


 

눈 위에 유기견 발자국이 찍혀 있다

 

냉량한 밥상 위에 손톱 찍어누른 듯이

발톱을 쿡쿡 박으며 달린 흔적

 

밥 없는 밥상보를 걷어치우듯

혼자 나뒹굴었던 자리 위로

이장(里長)의 스피커 목소리만 떠돌다가 사라진다

발바닥을 누덕누덕 찍어먹으며

가도 가도 얼음밥상


 

한때는 푸른 초원이었던 설상(雪上)에서

어디까지 가야 새 밥상을 받나

 

허기진 개 발자국보다 개가 더 앞질러가고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가는 개의 온몸을 후려치며

 

전속력을 다해 눈이 내린다

 

 

 

[ 눕듯이 서듯이 자작자작 ]


 

봄 자작나무가 하늘로 하늘로

어린 청개구리 잎들을 토해낼 때

철없는 청개구리들이 우주 밖으로 뛰어내릴까봐

신들이 저 나뭇가지를 선물로 내려준 것처럼

다투고 있던 당신과 나도 자작나무 골짜기에 멈춰 섰다

한 실랑이가 다른 실랑이에 기대어 사르락거릴 때

당신이 하얀 자작 길에 취해 앞서 걸어가기 시작한다

모서리를 숨겨온 잎들이

당신 앞에 산을 둥글게 만들어

산의 광기와 골짜기의 맹렬을 다 덮었다고 생각할 때


애초에 모든 길이었던 자작과 자작사이

자주 멈추는 발자국 소리처럼 당신의 그림자가 자주 턱턱 걸린다

먼 발아래 꽈리처럼 부푼 비닐하우스가 없었다면

저 밭뙈기의 냉증을 이해하지 못했을 터

앞서가는 당신 뒷등이 바람에 불록 부풀어서

당시의 냉증은 그대로 내 몸속의 꽈리가 된다

냉증의 땅이 꽈리를 불어서

누워 있는 장작 장작 사이

서있는 자작과 자작 사이에

눕듯이 서듯이 푸른 한 잎 또 터져올라온다

서로 다른 말을 삼켜서 목이 희어지는 병으로

아직도 자작자작 속을 태우는 중이다

 

 

[ 반구대 ]


 

그 얼굴은 멀리서도보인다

누군가가 걸어들어갔다가

빛의 속도로 빠져나간 흔적

 

맨발로 걷는 빗길

밤의 아스팔트처럼

바다는 바닥을 단단히 위장한다

저 수심 밑에 숨겨둔 뼈들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튀어오른다

고래의 얼굴, 사슴의 얼굴, 어부의 얼굴,

호랑이의 얼굴,

희미하지만 토악하는 아가리들,

음푹음푹한 얼룩무늬들


 

아가리 딱딱 벌리던 내 새끼가 고래 뱃속에서

자라게 된 역사와 공격과 방어라는 수륙양생의 화급한 생이 절벽을 타고 오른다

살점을 다 태우고 함성만 남긴다

 

손가락으로 다 더듬을 수 없는 말을

끝까지 듣느라 꼼짝달싹 못한 절벽의 고요

 

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저 절벽에는

보고도 못 본 척한 내 얼굴도 걸려 있다

 

 

[ 물집 ]


 

비명이었다 절벽을 흐르는 분홍 꽃

그는 귀머거리처럼 절벽을 모른다

 

아찔한 것은 언제나 나였다

 

신음이었다 바위 사이를 벌리는 초록 잎

그는 원시안처럼 틈을 모른다

 

아득한 곳을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었다

 

마른가지 끝에 꽃 대신 눈을 찔러 걸어놓고 간 날들

꽃 핀 흔적들은 다시 꽃눈이 되었다

사월은 다 피어나고

나만 흔적이다


 

아물 듯 터질 듯 대기는 다시 더듬는다

 

이쯤이었을으리라 그가 멈춰선 봄

 

 

[ 묵 ]


 

묵이 좋다

이리저리 찔러도 캄캄한 도토리묵

기포가 터지면서 얼굴을 때리는 그 뜨거운

묵 솥을 휘휘 휘저을 때

당신을 위해 집을 짓겠소

속삭임까지 훅훅 뜨거운 묵이 좋다

어차피 들어가 살지도 못할 집

그래도 피피 내 목소리를 흉내내며 다짐한다

어떤 그릇이라도 내밀어봐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지어줄게요

내 집이 아닌 걸 모를 리 없는 묵은

어떤 선심처럼 억지처럼 검게 바닥부터 타들어간다

휘휘 마음대로 저을 수 없는 앙금들이 눌어붙기 시작할 때

불을 끈다


별빛을 다 담지 못하는 수천 개의 호수들처럼

단편의 기억을 굳히려는 종지 종지들

당신을 위해 이 집을 지었소

말랑말랑한 검은 봉분

젓자락으로 쿡쿡 찌르면서

이미 떠날 것을 예감하면서

묵묵히

 

 

...  소/라/향/기  ...

s******8 2021.06.25.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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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천수호#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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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언니만 몰랐다, 에서 가족들은 언니에게 아픔이 왔다는 사실을 숨겼었나 보다. 첫 시로 ‘검은 철사 너머’의 가짜 사과 이야기가 실렸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가짜에서 넘어오는 덤의 열매가 아닐까,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하루하루를 거짓을 해결하는 일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이 눈속임 하는 일들 속에서, 차창을 보다가 달려온 친구 진영의 얼굴, 나는 말
"#문학동네,#천수호#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둑" 내용보기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언니만 몰랐다, 에서 가족들은 언니에게 아픔이 왔다는 사실을 숨겼었나 보다.

첫 시로 ‘검은 철사 너머’의 가짜 사과 이야기가 실렸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가짜에서 넘어오는 덤의 열매가 아닐까,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하루하루를 거짓을 해결하는 일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이 눈속임 하는 일들 속에서, 차창을 보다가 달려온 친구 진영의 얼굴, 나는 말을 거는데 대답이 없는 얼음조각 같은 강물, 두 겹의 종이컵에서 한 겹은 젖고 한 겹은 마른다. 눈빛으로 쓸어보는 구석구석은 쓸쓸하고 파도가 그려내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모호한 회귀선, 모래 바람이 불어오는 사구에는 어디쯤에서 끝날지 모르는 드라마가 시작된다. 석조원 앞에서는 돌사자에게 합장을 시키고, 사월의 바람 앞에서는 순백, 순정 명사도 과연, 가장 말을 자르며 부사 놀이를 만든다. 시마다 보는 이의 발자국을 멈칫거리게 하는  찰진 그림자들이 서려있다. 흑심으로 나타낸 흑심은 내 얘긴가, 엄마 얘길까, 언니 얘길까,

아마 그만큼의 흑심을 안 가져보는 사람은 없을 걸 생각한다. 수생고구마  닮은 장기를 꺼내지 말라하고, 에게의 울음 담은 온 돌 하나, 물방울에게서 시한부를 읽어내고, 입김을 낼 수 없어 묵독 속에 생기는 물집, 여든여덟의 어머니는 하얀 밤처럼 나를 고아로 만들고, 순두부를 먹으면서 병을 나누고 싶은 사이, 남이 읽지도 듣지도 못하게 밀봉해둔 연분홍 유언을 품고, 여주에 가서 오빠의 땅에 이름을 올린 ‘여주’ 속의 그녀를 읽는다.

꽉 찬 시편들이 펼쳐 놓은 마당가에는 산허리, 바닷가, 바위, 벼랑, 돌, 물방울 소소한데까지 다 마음을 얹어 놓으며 현실을 가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의 기도가 숨겨져 있다.

d*******f 2020.12.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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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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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얼마나 많은 수건을 적셔왔던가! 사는 동안 우린 얼마나 많은 수건을 적셔왔던가! 그런데 그 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눈물로 적시고 땀으로 적시고 우리 몸을 씻은 물로도 적셨다. 그 물기가 점점 마르고나면 우리는 건조한 가루가 되어 땅으로 묻히겠지? 가루가 묻힌 그 자리에 새꽃은 피고 또 지고...       눈(雪)은 기어서 흙탕물에 닿는다 눈이 녹은 흙 웅덩이를 건너서
"시집" 내용보기
우린 얼마나 많은 수건을 적셔왔던가! 


사는 동안 우린 얼마나 많은 수건을 적셔왔던가! 그런데 그 물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눈물로 적시고 땀으로 적시고 우리 몸을 씻은 물로도 적셨다. 그 물기가 점점 마르고나면 우리는 건조한 가루가 되어 땅으로 묻히겠지? 가루가 묻힌 그 자리에 새꽃은 피고 또 지고...

 

 

  ()은 기어서 흙탕물에 닿는다 눈이 녹은 흙 웅덩이를 건너서  해도 기어갔고 달도 넘어갔다 숱한 것들이 기울어져 녹아들어갔지만 새로 걸어나오는 게 없다 훨훨 타고 식고 또 갈려서 한 줌 재가 된 밤이 마흔아홉 번 지나갔어도 흙탕물은 눈을 게워내지 않고 꾸덕꾸덕 말라만 간다 심장만하던 물웅덩이가 이 들판의 씨앗으로 심어졌다 한 생이 거기 닿았다는 신호처럼 눈 녹은 물속에 싹이 튼다 육신도 영혼도 풀물이 든다 기어코 놓아야 하는 봄이 온다 배밀이하던 한 생의 애도가 목감기만 남기고 떠났다

                                                                                       -<그 자리전문

 

누군가의 애도는 그런 것일까. 그를 대신하여 핀 풀꽃을 보고 잠시 목감기를 앓는 것! 그것이 자연의 순리고 이치겠지? 그게 뭐 그리 슬플까? 단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갈 뿐인 걸!

이 시집을 읽고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 안달하고 슬퍼할 이별이 있을까 싶은...

e******2 2020.12.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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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 내용보기
천수호 시인의 첫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그 후에 새로 출간되는 시집은 구매하고 있다.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는 천수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시집 해설을 인용하자면 천수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시집의 주조(主潮)는 병(病)과 죽음이다. '한 몸을 건너가는 병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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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시인의 첫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그 후에 새로 출간되는 시집은 구매하고 있다.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는 천수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다. 
시집 해설을 인용하자면 천수호 시인의 세번째 시집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시집의 주조(主潮)는 병(病)과 죽음이다.
'한 몸을 건너가는 병이 구름 사이로 떠다니지 않게 병명이라는 검은 돌들을 별자리처럼 놓아본다. 이 시집이 별들을 가리키는 헛된 손가락이라 할지라도 언니를 아프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해설을 읽고나니 시인의 말이 더 와닿는다. 

e*****e 2021.02.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