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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_017
지은이: 경남 문해교실 67인 저/ 초록담쟁이 그림 출판사: 책숲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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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런 생각을 평소에는 하지 못했어요. 글이란 당연히 누구나 다 알고 쓸 수 있는 것이라 여겨서 였겠지요.
여기 뒤늦게 글을 배워 제2의 인생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경제적 이유로 또는 남아선호 사상으로 인하여 제때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야 배움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시는 문해학습자 분들이세요.
경상남도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에게 한글 배우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 뿐만 아니라 글의 의미와 맥락을 이해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께서 직접 쓰고 그린 작품을 대상으로 매년 시화전 행사를 진행했고, 그 중 67명의 시니어 작가님들의 작품을 모아 이렇게 책을 펴 냈다고 합니다.
책 머리에 이런 글이 있어요. 각각의 시들을 눈으로 또 꼭 소리 내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맞춤법의 족쇄에서 벗어나서 그들의 마음이 표현되는 소리가 어떻게 한 글자 글자에 담겼는지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소리 내어 읽는 시에서 어르신들의 고단한 삶이 보였어요. 더불어 한(恨), 설움, 무시, 비웃음 거리, 슬픔, 답답함 등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지요. 글을 모른다는 것은 자식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었고, 손자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고, 농협에 가서도 이름을 적지 못해 모르는 이에게 대신 부탁해야 했고, 버스를 잘못 타기도 했고, 남편이 대신 글을 써줘야 했고, 선거날 투표소 안에 들어가는 것은 공포였고, 글을 몰라 무시당한 한을 보따리 안에 넣어둬야 했고, 경찰서는 무섭지 않으나 글을 몰라 관공서에 가는 게 더 무서웠고...
그러다 글을 배우면서 참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어 즐겁다고 전합니다.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병원에서 간호사가 건낸 종이를 들고 이곳저곳을 찾아갈 수 있고, 내 이름을 폼나게 쓸 수도 있고,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고, 은행 통장 관리도 하고, 자식들에게 당당한 부모가 되었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고, 버스번호, 아파트 동호수도 알게 되었고… 행복, 당당, 열정, 희망, 설렘, 용기, 자신감 등도 동시에 엿볼 수 있었어요.
시에는 참 귀엽고 재미난 표현도 있고, 구수한 어르신들의 말투도 엿볼 수 있어서 울다 웃으면서 보았는데요, 한 자 한 자 집중하며 정성스레 꾹꾹 눌러 쓰셨을 모습이 상상이 되었어요.
그리고 어르신들 아니 작가님들의 멋진 표현력에 감탄하기도 했답니다.
총각 ‘ㄱ’이 처녀 ‘ㅏ’를 만나 옥동자 ‘가’를 낳는다는/문해교실 선생님!/힘들게 공부할수록 태어나는 아이들/한글은/혼자 사는 80살 가시나의 가족이 되었다 (오정이 작가의 ‘80살 가시나의 가족’ 중에서) 이건 뭐고 저건 뭐고/알 수 없는 고지서는 나를 보고 비웃네 (김숙희 작가의 ‘고지서’ 중에서) 나비가 앉으려다가/호미에 치어 날개가 떨어졌다/"우짜꼬?"/날개가 꺾여 날지 못하는 나비가/늦깍이 공부하는 내 신세 같다 (이의숙 작가의 '나비') 농협에 가도 우체국에 가도/내 얼굴이 불이 안 난다/우리 학당 내 얼굴에 불끈 119 소방서다 (임복순 작가의 ‘우리 학당 119 소방서다’ 중에서) 인자는 공부배가 고프네/한글 공부 고봉밥으로 묵어도/한 글자 더 퍼묵고 잡다 (이삼순 작가의 ‘공부밥’ 중에서)
책 뒷편에는 작가소개도 수록되었는데요, 대부분 1930~1950년대생이신 작가분들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나 시를 쓰게 된 동기 등이 간략하게나마 나와 있어요. 또한 ‘초록담쟁이’ 작가님의 귀엽고 사랑스럽고 다정한 그림이 어우러져 한권의 멋진 시화집이 완성된 것 같습니다.
시화집 <어느 멋진 날>은 글배움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나오신 우리의 부모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코끝 찡한 인생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시 한편 한편을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쓰고 세상을 만난 이야기, 꼭 소리내어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공부가 최고다 (박연수)
공부하고 내 이름도 쓸 수 있다 은행 가서 일도 잘 본다 자식들이 말한다 "아이고! 우리 엄마 최고다!" 내가 학교 갈 때마다 동네 할마이들이 흉본다 이상하다 저거들도 모를낀데 왜 욕을 할까 함께 공부하자 친구들아! ---------------- 칠십칠 년 만에 처음 써보는 아들에게 (정도순)
아들아 엄마가 칠십칠 년 동안 눈먼 봉사로 살았다 아들딸들 한테 편지 한 번 못 써보고 팔십에 가까운 세월을 살았다 지금이라도 머리에 남는 글자보다 날아가는 글자가 더 많지만 그래도 용기 한번 내어 볼란다 김종원 김종철 김정숙 사랑하는 우리 아들딸 이름 한번 제대로 쓰고 싶었다 지금 내가 행복한 만큼 너희들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다 같이 건강하자
초등학생이 되어 행복한 엄마가
https://blog.naver.com/sojulove77/22265632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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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담쟁이님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삽화가 참 따뜻하고 아름다워요. 그래서 초록담쟁이를 검색하다가 이책을 알게 되었고, 구매하게 되었어요. 어르신들의 삶의 애환과 희가 녹아있는 진솔한 글귀들이 그림과 너무나도 잘 어울립니다. 글을 알게 됨으로써 느끼게 된 여러 감정들을 소박하고 진실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고요, 그림들은 어쩌면 또 하나하나 그리 예쁘고 따스한지. 오랜만에 좋은책을 만난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