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우 작가의 장편소설 <운명 게임>은 여러 장르가 뒤섞인 새로운 형식의 실험적 소설이다. 또한 지나치게 사소함에 몰두하는 요즘 소설과 대척점에 서 있는 묵직한 관념소설이기도 하다. 각 장마다 작중인물인 이보리의 삶이 내화처럼 들어있고 가림막 저편엔 익명의 인물인 어르신이 존재한다. 둘은 장막의 이쪽과 저쪽에 앉아 인간 문제의 궁극에 관한 철학적인 문답을 나눈다. 둘의 대화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대사와 지문으로 처리되고 그 뒤엔 작가의 에필로그처럼 #이 붙는다. 그러니까 한 편의 소설에 극적 효과를 주는 희곡적 요소가 삽입되고 소설 창작에 관한 작가의 후기가 뒤따르는 방식으로 소설은 큰 틀을 이룬다. 그렇다면 #에 나오는 작가 박상우는 작중 인물인가, 아니면 실재하는 현실 속 존재인가. 우리가 알다시피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까 #에 나오는 작가 박상우는 작품 밖에 실재하는 작가 박상우와 동일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러면 소설 속 작가는 왜 존재하는가. 그가 창조한 이보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속적인 방식으로 돈을 버는 일과 무관한 영적 인물이다. 그의 육체는 화폐적 가치를 위한 도구로서 작동하지 않는다. 이보리는 오로지 인간으로서 궁극을 탐구하는, 샤카모니의 제자이며 명상을 업으로 삼는 일종의 구도자이다. 그런 이보리와 대조적으로 돈과 지위에 몰두해 살았던 어르신이라는 인물은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장막 뒤에 숨어서 질문하는 자이다. 그는 독자 일반과 심정적으로 가까운 지점에 위치하며 독자들의 시각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또 한 명의 인물인 #의 작가는 소설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매개자이며 작품 밖에 실재하는 작가의 아바타인 동시에 내화의 이보리를 창조한 상위자아로서 얽힘과 연결의 고리이다. 그는 이보리를 통해 인간의 궁극을 탐구하게 하면서 자신은 작가로서 소설이란 무엇인지, 소설 창작의 과정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운명 게임>의 정점에는 이보리가 있고 그와의 문답을 통해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어르신이 존재하며 소설 창작을 고뇌하는 작가가 나온다. 그런데 #의 작가에 의해 창조된 이보리는 작중 인물의 천부인권설을 내세우며 작가에게 항의할 뿐만 아니라 작가에게 소설쓰기에 대해 조언까지 하는 독자적인 면을 지닌다. 마찬가지로 #의 작가도 상위자아인 실제 작가에 의해 의도되고 기획된 아바타임에도 지속적으로 상위자아와 교신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자율적 측면을 지닌다. 그러므로 얼마나 다행인가. 인생이 프로그래밍된 게임이라 할지라도 인간 존재는 그리고 소설 속 인물들은 터럭만큼의 자유의지일지라도 그 의지에 따른 자율적 선택으로 자신의 미래를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니. 요컨대 각 존재는 서로 얽혀 있고 상위 자아에 의해 기획되고 의도된 분신들이므로 깨달음을 얻은 샤카족의 성자인 샤카무니(석가모니)조차도 누군가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이 인간에게 부여된 운명이지만 주어진 인생 대본에서 우주 전체의 공연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확률적 가능성, 즉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이러한 미망에서 벗어나려면 샤카모니의 가르침인 바로보기로 돌아가야 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주어진 것에 집착하지 말고 현현하는 대상으로서의 ‘이것’, 즉 현상으로서의 껍데기를 지양하고 상위자아의 의도인 본질을 의식하며 상위자아와 교감하는 삶. 이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깨달음이며 주어진 ‘이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을 감행해야 하는 이유이다. 인생 게임에서 프로그래밍된 캐릭터이더라도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으므로 결코 게이머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이보리가 말하는 윤회 프로그램의 자율 운영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처럼 인간은 의식의 지향성을 지닌 영적 존재로서 의식, 즉 각성을 통해 ‘나’라는 즉물적 존재를 타자화하고 ‘낱’으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 나와 남의 구분이 없어지는 '나남무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다시금 샤카모니의 바로보기 명제를 깨닫고 이를 몸소 살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혼란스럽다. 이보리가 썼다는 논문이 소개되고 그가 검색한 각종 경전의 신화와 설화와 노래들. 그리고 성서나 윤회에 관한 다양한 해석과 용어들이 수시로 쏟아진다. 그리고 뒤를 잇는 #에는 작가의 소설 쓰기 과정이 상세히 소개되면서 일종의 소설 창작론을 이룬다. 이를 과연 온전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확실히 이번에 출간된 <운명 게임>은 기존의 소설과는 차원과 색이 완연히 다를 뿐만 아니라 작가 박상우의 이전 작품과도 결이 다른 문제작이다. 전생과 환생이 나오고 수시로 외계인과 접속이 이루어짐에도 이 모든 것이 영적 기운으로, 우주와의 교감으로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소설이라는 장르의 속성 때문일 것이다. 최인훈과 이청준 이후 사변적인 관념 소설이 가물었는데 모처럼 사유의 깊이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을 만나서 반가우면서도 의미보다는 재미를 우선시하는 경쾌한 독자들이 과연 이 소설의 무게를 얼마만큼이나 견디어낼 수 있을지 염려도 된다. 끝까지 읽는 자에게 영광이 있으리니. 책을 읽다보면 처음과 달리 점점 더 운명 게임의 핵심 화두인 샤카모니의 바로보기 세 가지 명제가 체화되어 결말에 이르러서는 내면화된 음성으로 양감과 질감을 가지고 내부에서 울려퍼지는 신기한 체험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 게임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시작되었고 이 게임판에서 졸이 되지 않으려면 현상에 매몰되지 말고 초연하게 바로보기, 즉 의식의 지향성을 통해 주어진 역할을 지속적으로 벗어내는 해탈의 일상을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두 우주의 영에 얽힌 정신적 외계인이기도 하다. 몸은 행성의 감옥에 갇혔는데 코비드19로 마음까지 묶인 당신에게 사유의 즐거움을 누리시라고 <운명 게임>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누구인지, 소설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대답들과 만나면서 한껏 흔들리기를. 이 책을 펼쳐든 순간, 당신이 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만날 수 있으리니. 부디 당신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을 기대해 본다.
|
|
박상우 소설가의 신작 <운명게임>은 1, 2권으로 구성의 장편소설입니다. 1권의 시작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샤카무니의 말로 시작하는데요.
<운명게임 1권>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인 이보리와 이 소설 세계를 이끌어가는 작가 박상우라는 인물이 번갈아가면서 장을 이끌어 나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보리가 주인공일 때는 1, 2, 3, 4......이고 작가가 주인공일 땐 1#, 2#, 3#, 4#...... 이런 식으로요. 처음에는 조금 난해하고 복잡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면 괜찮아져요.^^
주인공 이보리는 어르신이라는 인물에게 가르침을 주는 역할인데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샤카무니의 가르침에 '이것'을 '참자아'라고 바꿔서 읽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1권의 중반부부터는 작품의 결이 조금 달라지는데요. SF음모론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됩니다. 인류문명의 시작인 수메르 문명이 외계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내용인데요.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견해라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읽을 수 있었어요.
보리를 돕는 정여진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요. 재미있었던 건 작가의 하위자아인 이보리가 '타임라인 복구'라는 걸 한다며 자신과 정여진의 관계설정을 다시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작가의 이야기와 작가가 만든 작품 속 인물(이보리)이라는 액자식 구성이지만 오히려 '이보리'라는 인물이 작가의 초자아를 담당하는 상위자아처럼 느껴졌네요. ㅎㅎ
마지막 장은 작가의 이야기인데요. 어머니가 혼수상태에 빠져서, 영과 혼과 육의 관계에 대해서 심도있게 고민합니다. 자신의 상위자아와 싸워가면서요. 그런데 우연히 만난 아저씨가 순대국집에서 그 비밀에 대해 알려줍니다. 작가는 왜 영혼육이 일반적으로는 분리되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분리되지 않는 개념인지 알게 되지요. 마치 물리학의 코펜하겐 해석에서처럼 한 물질의 성질에 대해 파악하려면 입자성과 파동성을 모두 정의해야하듯, 영과 혼도 분리되지 않는, 같이 붙어다니는 개념이었던거죠.
<운명게임 2권> 2권부터는 주인공인 이보리가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걸 각성하여 '워크인(이보리처럼 외계에서 지구로 들어온 상위차원의 외계인들)'을 모아 지구암흑사단과 싸우는 내용인데요. '텔레파시'라든지 '순간이동'과 같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이 나와요.
작가 파트(숫자#)에서는 상위자아와 연결이 끊기고 외계인 에어럴과 교감하며 감옥행성 '지구'와 윤회시스템에 대한 사실들을 알게 되어요. 작가는 큰 충격을 받죠.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이에요. 인간은 '운명'을 살 수 밖에 없는데, '운명'은 가변적인 '운'을 통해서 인간에게 무수한 기회를 제공하고 자기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해서 매 순간의 경험을 인생 데이터로 누적시켜 간다. 고로 인간은 단순한 '게임 캐릭터'가 아니며, '윤회를 통해서도 성장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해냄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
|
<운명 게임>은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이에요. 불교적 관점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종교 이야기가 아닌 범우주적 이야기가 펼쳐져요. 액자식 구조는 들어봤지만 아바타식 구조는 처음이에요. 소설 속에 주인공을 창조한 소설가 자신이 등장해요. 소설가는 소설 전체 시공간을 만들어낸 창조주라면서, 물론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관계가 매우 심각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어요. 첫 장면은 주인공 이보리가 자신의 원룸 방 한가운데 이부자리를 펴고 자고 있어요. 원룸의 천장으로부터 눈부신 원통형의 광선이 밀려 내려와 그를 비추고 있어요. 무대 위 조명처럼. 곧이어 빛기둥 속에서 예리한 탐침봉 같은 것이 내려와 잠을 자고 있는 이보리의 심장을 향해 그대로 삽입돼요. 거의 동시에 심장 부위로부터 미세한 색상이 바늘을 타고 위로 상승하더니 붉은 기운이 점차 푸른 기운에서 백광의 상태가 되어 바늘과 함께 원통형의 빛기둥에서 사라져버려요. 와, 이건 미드 <엑스 파일>에 나올 법한 장면이네요. 이보리의 원룸에 조필규라는 남자가 찾아와 자신이 모시는 어르신과의 면담을 요청해요. 그건 이보리가 쓴 『인간 문제의 궁극에 대한 답』이라는 책 때문이었고, 어르신이 원한 건 바로 책 제목과 동일한 것이에요. 어르신이라는 인물은 철저하게 얼굴을 숨긴 채 이보리로부터 그 답을 얻고자, 면담을 위한 종신 계약을 체결해요. 어르신이 죽을 때까지 유효한 계약. 이보리 : 잘 들어보세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는 가르침을 제가 하나의 단어만 바꿔서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참자아는 나의 것이 아니다. 참자아는 내가 아니다. 참자아는 나의 자아가 아니다. 어르신 : 흠, '이것'이라는 말을 참자아로 바꾸니 그 말이 그 말이 되는군. 정말 신기하군. 자넨 이걸 어떻게 알았지? (더욱 믿어지지 않는다는 어조.) 이보리 : 이 지구상에 샤카무니의 무아와 힌두교의 참자아가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밝힌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이보리뿐! (못을 치듯 단정적인 어조.) (122p) 어르신과 면담을 한 뒤 원룸으로 돌아오던 중 이보리는 납치를 당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는 다짜고짜 이보리의 정체를 털어놓으라며 폭력을 가하고... 다행히 정신을 잃은 이보리를 조필규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주고,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줘요. 소설가는 자신의 창조물 이보리의 무의식과 접속할뿐 아니라 상위자아의 존재와도 소통할 수 있어요. 이보리는 자신의 원룸과 어르신과의 면담이 있는 세상을 거대한 프로그램 속 게임이라고 이야기해요. 명상을 통해 의식이 우주적으로 확장될 때 비로소 실재계와 접속하는 것이라고 해요. 그러니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운명 게임'의 참관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재미있는 건 소설가 자신 역시 이 게임의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는 거예요.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애초에 구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형되는데도 속수무책이에요. 소설가는 상위자아가 이런 정황을 완전히 간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러나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기는 어려워요. 왜냐하면 이 게임은 '나'라는 인간의 존재에서 시작하여 인생, 그리고 지구와 우주의 근원을 파헤쳐가는 여정이기 때문이에요. 소설가는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어요. "나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지구에 태어났다!"라고. (51p) 저 멀리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표현했듯이, 우리는 운명 게임이라는 거대한 세상 속 하나의 점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보리와 소설가 그리고 상위자아... 그 너머 우주적 존재까지 모든 것은 운명의 프로그램 속 설정값이라면, 과연 인간 문제의 궁극의 답은 무엇일까요.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어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지구에 태어났는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Read a book 204, 205 운명게임 박상우 지음 해냄출판 운명게임이라는 제목을 책을 읽었다. 이책의 분류는 한국소설로 구분해야하는지 SF로 구분해야 하는지 난해할 것 같다. 그 이상의 분류가 필요 할것 만 같다. SF로 분류를 한다면 흔한 SF는 아니라는 것이다. 1권에서는 주인공 이보리와 어르신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어르신을 어떤존재인지 알 수 없지만 철학적인 측면에서 우리 자아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 자아 전체를 모든 종교를 끄집어 내어 우리가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을 바라보게 한다.
이보리에게 세상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보기’ 입니다. 바로보기? 눈으로 보는 것 말인가 눈으로 보는것에 국한된 게 아니고 ‘나’라는 존재, ‘나’를 에워싼 세계. 우주 만물에 대한 바로 보기 입니다. 마음의 눈, 이른바 심안이라는 것으로 본다는 말인가.? 이보리는 말한다.: 서양에서는 철학을 필로소피라고한다. 그 말의 뜻은 ‘지혜를 사랑한다.’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철학을 다르샤나라고 한다. 그 말의 뜻 ‘봄’이다. 서양에서는 철학이 일상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인도에 서는 일상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가 철학이고 곧 종교였다.샤카무니라고 불리는 고타마 싯다르타도 그런 인도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출가를 하고 깨달음을 얻오 45년 동안 중생을 가르쳤다. 샤카무니 가르침의 진정한 핵심 요체도 바로보기라고 생각한다. 그 가르침의 요체는 단 세 문장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참 자아는 육체라는 수레를 타고 가는 주인공이다. 그대의 식별능력은 수게를 모는 마부이며 그대의 마음은 말을 제어하는 고삐이다. 감각기관은 말이며 감각이 좇는 여러 대상은 말이 달리는 길이다. 육체와 마음과 감각기관을 참자아 주인공과 혼돈하지마라 육체와 마음과 감각기관을 그대라고 생각하는 동안에는 기쁨과 슬플이 번갈아 찾아오는 번뇌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뭐야 인간이 참자아의 수레아는 말인가 샤카무니의 무아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우파니샤드의 참자아를 거쳐 인간을 창조한 우주인의 이야기로 황당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것을 일개 소설가인 나의 소설적 상사력이나 의도로 생각하면 안된다. 나의 의도로 마구 다릴 수 있었다면 나는 소설을 결코 이렇게 전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명의 게임이라는 이소설은 여러가지 세상이 공존한다. 소설속의 현실, 그리고 작가의 현실, SF의 현실 그리고 또다시 작가가 경험하는 SF의 세계 이책을 읽는 처음 작가의 현실은 소설속 내용의 작가의 또다른 생각인지. 현실 박상우라는 작가의 현실인지 조금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작가의 책들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작가는 박상우작가의 현실이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소설속으로 계속해서 현실에 있는 나를 끌어들이는것 같다. 로즈웰 사건 내용이 나오는 부분에서도 이것이 소설의 내용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이것역시 현실에서 있었던 사건이고 이것에 관해 소설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한다.
내안의 모든것이 정수리를 통해 허공으로 뽑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이렇다 죽는게 아닌가. 하는 본능적인 공포감으로 퍼뜨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뭔가, 기이한 이탈감은 도대체 뭔가! 살아생전 처음으로 경험하는 ‘육체를 빠져가는 상황’으로 인해 그날발 나는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이소설에는 두개의 차원이 공존하고 있어요. 실제적으로 두개의 평행우주가 구동회는 셈이죠, 지금 당신이 쓰고 있는 이작가 영역은 당신에게 무한 자유의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어요. 하지만 잉카가 등장하는 영역은 당신이 주관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다른 차원에서 관장하기 때문에 당신은 그 영역에 아무 권한이 없어요. 다만 그 공간을 관장하는 에너지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당신은 그 에너지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종사당하고 있어요. 그걸 언제 부터 자각하고 있었나요?” 현실에서는 이보리는 주인공으로 SF에서는 잉카로 지구암흑사단과 지구수호연대 대립하는 가운데 지구수호대 연대에서 활약을 한다. SF의 실감나는 묘사의 작가의 상상력의 대단함을 볼수 있었다. “ 사랑과 감사가 샤캬무니의 일깨움으로 생성되는 상승 차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가 실현되면 이 우주에서 오직 사랑과 감사만 충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샤마쿠니의 가르침을 한 단계 더 증류하여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고 일깨웠라. 그 하나의 문장 안에 지구인들이 최면에서 깨어날 수 있는 근원 에너지가 내재돼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운명게임이라는 이책은 1권에서는 철학에 대해서 나란 도데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했다면 2권에서는 SF의 재미를 충분히 전해주고 있다. 이책에서는 사람의 창조에 대해서 다른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구의 서사를 우주의 서사를 이야기 하고 있으며 그 안에 어찌 보면 우리는 지구의 생명체가 아닌 다른 생명체의 DNA를 가지고 있으며 어쩌다 보니 인간의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서 살아가는 존재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한다. 현실과 비현실, 실제와 비실재, 진실과 거짓은 모두 ‘하나’양면성이고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 의해 원하데로 증강되거나 약화된다. 진짜 같지만 진짜가 아닌 무엇 그러나 모든것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모든것을 내려놓은면 사랑과 감사만 충만할 것이라는 교훈도 주고 있는것 같다. 이글은 “서평단활동”으로 도서를 “지원” 받아서 작성한 글입니다. [운명게임 1,2 /박상우 지음/ 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