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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내놓은 도서 '산에서 살다' 책이 2020년 9월 '그래서 산에 산다'로 개정판이 찾아왔다. 그래서 초판서문과 개정판 서문이 각각 존재한다. 세월이 흘러 보는 자신의 책이 다시 새옷을 입는 다니 저자의 심상도 남다르겠지 싶었다. 도시에서의 삶에 포레스트의 삶의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삶은 자연인의 삶이자 서른둘에 들어간 외딴 시골집에서의 삶이 20년 5개월 사이 어떻게 지냈는 지 동경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저자와 같이 뒷짐지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든다. 게다가 운치있는 시도 있다. 밝은 숲속길은 밤에는 칠흙같이 어두움으로 다가오겠지! 반딧불이도 찾을 수 있을 꺼 같다.
농촌의 삶은 사진으로 보는 삶과 다르게 고되고 부지런하다. 시골서 자란 나는 어느 새 하루 종일 일한뒤 먹는 새참과 막걸리가 생각났다. 하루를 빠듯하게 움직이고 자식을 가르치고 먹이고 또 그렇게 하루하루 1년은 지나간다. 낫 한자루에 온 힘을 담아 가족을 위해 일하신 고달프지만, 희망을 실은 노동, 산에 살면서 자급자족은 숙명처럼 받아들인 삶이겠다 싶었다. 전체적으로 책을 보자면 참 대책없이 자연친화적인 양반이다. 이름 모를 잡초풀 주름조개 따위를 함부로 떨궈내지 못하고, 콩 세 알을 심는다.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산속 삶을 살아가는 철학을 피력한다. 내 것과 니것의 경계가 없고 다른 종, 같이 가는 삶만 있는 것이다. 나는 시골할머니의 처절한 삶의 투쟁과 같은 삶을 바탕으로 자라왔다.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있으면 농약을 못 치면 고사리같은 손으로 꾹꾹 잡아내야 했고, 쌀에 바구미가 끼면 참새를 쫓아가며 햇볓 좋은 볕에 잘 말려야 했다. 그리고 그걸 감시하고 감독하는 몫은 나였다. 그런데 저자는 그냥 놔둔다. 아니 같이 공조한다. 세상에 진드기의 고단한 삶이라니... 진드기때문에 고단해진 나의 삶이 아니라...달라이라마의 법력과 사리를 몸에 지니신 분 같이 사신 것 같다. 그러면서 살아가기에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빛, 바람, 공기, 숲, 나무 산과 어울리며 살았나부다. 치열하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동식물과 함께 하는... 도시생활의 치열함에 퇴색해버리고 인색해진 나를 돌아보기에 더할 나위없는 넉넉함을 선물하는 도서다. 날씨도 쌀쌀해지는 데 마음만이라도 자연을 품은 저자처럼 초월한 마음을 품은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가보고 싶어지는 마음들게 하는 도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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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모두 욕심이다 박용범 독서작가(2022년)
그래서 산에서 산다. 산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일종의 삶의 철학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죽을 때까지 내가 먹을 것 내 손으로 농사지어 먹으며 사는 것이 곧 수행이 되는 그런 나날을 살아야지. 벌레나 풀과 싸우지 않는 농사. 오히려 그들로부터 배우는 나날을 살아야지. 농사가 곧 공부로 이어지는 그런 나날을 살아야지. 때로 길손이 들르면 따뜻한 밥 지어 대접하고 가만히 들어야지. 길손을 통해 하시는 한울님 말씀을, 죽는 날까지 딱딱해지지 않도록 사람은 물론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에까지 늘 고개 숙이며 살아야지. 하늘 아래 자연의 일부분으로 들어서서 살아가야지. 조화롭게 자연에 스며들어 조용히 살아가야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야지.
P265 한때 한 달 가까이 단식을 해 본 적이 있다. 단식을 끝내고 복식을 할 때는 하루에 귤 한두 알씩을 오래오래 씹어 먹었다. 백 번이었을까. 이백 번이었을까. 죽이 될 때까지 씹었다. 그렇게 귤 한두 알만을 먹으며 일주일을 살았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머릿속은 더없이 맑고, 마음은 가벼웠고 한없이 평화로웠다. 하루 식량이 감자 두 알뿐이었다는 인도 수행자들의 삶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도 운동이라고는 가벼운 산책이 전부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가만히 앉아 명상을 했다. 임서기林棲期, 곧 자식들이 다 큰 뒤에 주어지는, 집을 떠나 숲에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 주어지는 그 수행의 시기에는 누구나 한 번 시도를 해 봄직한 길이 아닐까 싶다. 감자 두 알로 수행자의 하루를 보낸다.
사는 곳에서 좋은 여행을 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철새처럼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의 삶은 썩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육신을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소유로 애를 태우게 된다. 덕을 쌓기보다는 야박한 짓을 하기 쉽다. 사람보다 물질이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기 쉽다. 긴 여행, 예를 들어 100일간의 사막 걷기나 6개월간의 실크로드 횡단 여행 같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려는 자는 일정이 정해지면 몸에서 살을 빼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긴 거리 걷기에는 몸의 살도 짐과 같아서 적은 것이 좋다. 짐을 줄이는 작업에 몰입해야 한다. 내려놓음을 미덕으로 삼고 아름다운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인생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삶을 이어가고자 한다.
산살이의 인연이 닿는다면 산에서 살게 된다. 풀과 나무와 벌레, 그리고 조화로운 자연의 일부분이 되어 간다. 아직 흘려보내지 못한 욕구를 바람에 툴툴 털어버리고자 한다. 신이란 무엇인가? 산천초목 그 자체가 신이다. 작은 새가 신이고, 배추와 무가 신이다. 나비가 신이다. 무심히 볼 때 자연의 모든 것이 신이다. 그밖에 다른 신은 없다. 지구에는 꽃이 피고, 나비가 춤추고, 작은 새들이 노래한다. 이 이상의 천국은 없다. 신이 에덴동산으로부터 인간을 추방했다기보다 인간이 자신의 지혜로 늘 신을 쫓아내고, 죽이고 있다고 해야 한다.
자연농법이란 사람의 지혜를 보태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뛰어들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길이다. 어디까지나 자연이 주이고 사람은 그 시중을 드는데 머문다. 무지無智, 무위無爲의 길이다. 지혜를 버리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가 출발점이자 결론이고 수단이기도 하다. 땅을 갈지 않고,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다. 김매기도 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를 원칙으로 한다. 지구를 죽이는 악마의 손을 거두어 신을 돕는 엔젤이 되자. 다시 한번 지구를 신의 손에 돌려주다. 숨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하기에 충분하다. 나머지는 모두 욕심이다. 욕심은 내려놓아야만 한다. 그 내려놓음에서 삶이 완성된다. 수행자의 삶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무엇을 이루고 가려고 하지는 말아라. 삶이란 그러한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오늘을 받아들이고 욕심을 내려놓아라. 하늘 아래 욕심보다 더 무서운 본능은 없었다. 정신 차림으로 이어지는 순간들에게 삶의 안락함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자.
《그래서 산에 산다(최성현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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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노래 류시화
선생이 이메일 친구한테 받은 시라면서 본문에 인용했다. 이메일 친구도 저자도 누가 쓴 시인이 알지 못한다고 썼지만 선생은 시를 인용한 뒤 “풀잎만큼의 높이라도 서둘러 내려와야지” “남을 아파하더라도 / 나를 아파하진 말아야지”를 다시 인용하며 이러한 마음이 겨울나무들, 얼음 속에서 낮은 소리를 내며 흐를 시냇물, 내리는 눈 같은 겨울 손님들에게서 듣게 될 말씀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산에서 홀로 살며(다른 사람이 없을 뿐이지 실상 선생은 온갖 나무와 새, 풀, 동물과 곤충, 자연농법으로 짓는 작물, 결국 나-우리들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듣는 말씀이 류시화 시인의 시가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선생이 쓰거나 번역한 책 몇 권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좁쌀 한 알』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여기에 사는 즐거움』 『더 바랄 게 없는 삶』이 쉽게 눈에 띄는 책장에 꽂혀 있다. 선생처럼 자연농법을 실천하며 산에서 살지 못하지만 선생의 삶과 책이 내 일상에 크게 작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풀잎의 높이라도 높다며 서둘러 내려오려고 부단히 자신을 살펴보는 마음 자세가 그렇다. 이를테면 뱀에게서 수행자(「수행자처럼 사는 뱀」)를 떠올리거나 파리에게 피를 빨리면서 지구는 결코 사람만을 위한 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프게 재학습하는 모습(「이름 모르는 파리」) 들에서 선생의 그러한 마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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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 /저자 최성현/출판 시루/발매 2020.09.08.
산에서 살아가면서 '숲밭'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데 힘을 쏟으며, 자연농법으로 자급 규모의 논밭 농사를 짓는다. 자연농법이란 사람의 지혜를 보태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뛰어들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길이다. 어디까지나 자연이 주이고 사람은 그 시중을 드는데 머문다.
P38~39 나는 발탈곡기로 벼 타작을 한다. 물론 발탈곡기를 쓰면 일이 많다. 낫으로 베어야 하고, 단을 지어 묶어야 하고, 묶은 벼를 탈곡기가 있는 곳까지 날라야 하고, 털어야 하고, 턴 뒤에도 알곡만 남도록 검불을 걷어 내야 하고, 그런 뒤에야 겨우 벼를 자루에 담을 수 있다.
P41 자급 규모의 농사를 짓고 있는 내 경우에, 벼농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기쁨이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늘 왁자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여름 내내 밤마다 반딧불 구경을 할 수 있는 것도 논농사 덕분이다. 개구리와 반딧불이가 논에 기대어 살림을 꾸린다는 것도 논농사를 지으며 알게 되었는데, 그런 것을 어디서 돈을 주고 살 수 있으랴!
우리 집에서는 탈곡이 끝나는 대로 바로 볏짚을 논에 되돌려준다. 맨땅이 보이지 않도록 훌훌 뿌린다. 해마다 그렇게 한다.
P60~61 정원이나 논밭을 건전한 농산물의 생산지, 혹은 꽃밭인 동시에 지구에서 인류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모색하고 배우는 도장이 될 수 있다. 그곳에서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그곳에서 지구 혹은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거기에 참여하며 사는 천인합일의 삶을 살 수 있다. 만물과 맺는 사이좋은 관계를 사랑한다. 그런 관계를 자신의 정원이나 논밭에서 이루어내고 싶어 한다.
P110~111 나는 땅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기 때문에 논밭에도 여러 가지 풀이 자란다는 점이다. 풀을 싹 뽑아 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집에서 김매기를 하듯이 적당한 때에 낫으로 풀을 베어 준다. 그렇다. 뽑지 않고 베어 준다. 벤 풀은 그 자리에 펴놓는다. 그러므로 우리 집 논밭에는 벌거숭이 땅이 없다. 늘 풀이 나 있는데 풀 가운데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P118 사는 곳에서 좋은 여행을 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언젠가는 철새처럼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의 삶은 썩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육신을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소유로 애를 태우게 된다. 덕을 쌓기보다는 야박한 짓을 하기 쉽다. 사람보다 물질이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기 쉽다.
긴 여행, 예를 들어 100일간의 사막 걷기나 6개월간의 실크로드 횡단 여행 같은 장거리 여행을 떠나려는 자는 일정이 정해지면 몸에서 살을 빼는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긴 거리 걷기에는 몸의 살도 짐과 같아서 적은 것이 좋다. 짐을 줄이는 작업에 몰입해야 한다.
P198 "고혈압, 당뇨, 암, 동맥경화, 심장병 등의 이 5대 성인병이 왜 생기는지 알아요? 그게 모두 많이 먹고 기름진 것 좋아하고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과식과 게으름이 원입입니다. 가장 좋은 치료법은 적당히 먹고 자꾸 걸으면 돼요. 그 길밖에 없어요."
먹을 것이 많으면 과식을 하기 쉽고, 그렇게 되면 속을 비우고 지낼 때만 못하기 쉽다. 내 경험으로는 수행이든 생활이든 뱃속으 꽉 채워서는 안 된다.
평당 10만 원 부지 400평의 땅을 4,000만 원에 구한다. 욕심은 금물이다. 마인드로 찾는다.
《그래서 산에 산다(최성현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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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세상에 더더욱 산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살고싶은 생각을 가득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산에서 스무해동안 살았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책속에 작은땅이라도자시만의 텃밭을 만들어 작은것을 수확해보는 기쁨을 느껴보라고 말합니다. 흙을 만지고 씨를 뿌리고 물을주고 , 새로운 기쁨을 누려보라고 요즘은 주말농장 운영하는사람들도 있는데 다 이런기쁨을 위한게 아날까 집에있는 화분하나 안죽이고 키우는것도 힘든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수있는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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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최성현 펴낸이: 신민식 펴낸곳: 가디언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유선방송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가 뭘까? 아마도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들 말하는 사회관계의 어려움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유독 자연인들 중에 남자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자연인이 아니다. 산골농부다. 어엿한 자급자족 농부이다. 그래서 자연에서 살지만 자연인과는 다르다.
산이 좋다고 산에 가는 것과 산에 사는 것은 또다른 문제이다. 산에 가는 것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놀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산에 사는 것은 일상이고 생활이기 때문이다. 수 년 전 부터 귀향이나 귀경 등 도시를 떠나는 이들이 많이 생기고 있고 요즘에도 많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와 같은 생활을 아니다. 일종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이들이 귀향을 하더라도 그 동네 분들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멋진 집을 지어놓고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사는 것은 좋은데 자신만의 삶이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여전히 도시인들처럼 자신만의 울타리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반가워하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더욱이 50~60대의 나이가 대부분이다보니 60~70대의 동네 어른들과 어울리지 못함은 주거환경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이들이 자랑스럽게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사니 좋다고 하는 말에 귀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인 최성현은 30대 중반에 산으로 들어갔다. 남이 살던 집을 그래도 이어 받았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했다.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동기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일상을 더듬어보면 자연과 더불어 상생하는 삶을 살고 있음이다.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고 자급자족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저자의 삶에 눈길이 가는 이유가 담긴 책이다. 그는 어떻게 살고 있기에 자연과 상생이 가능한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산으로 자리를 옮겨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원하는 이들에게 일종의 길라잡이가 되기도 할 만한 책이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다. 훼손하지 않는다. 침범하지 않는다. 방해하지 않는다. 자연의 흐름속에 자신의 삶을 슬쩍 끼워놓았을 뿐이다. 먹고 살기 위해 밭과 논을 일구지만 일체의 농략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베어내고, 뽑아낸 풀마저 그대로 그 자리에 던져 놓을 뿐이다. 당장은 힘들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길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산짐승들에게도 자신이 일군 밭의 일부분을 할당할 정도이다. 이런 그의 삶을 알게 된 이들이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시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과 어우러지는 방법을 배우곤 한다. 또한 그는 마을의 일에도 적극적이다. 혼자만의 삶이지만 동네사람들과의 유대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다른 이들과 다른 최성현의 삶의 방법이다. 자연과도 상행하고, 사람들과도 상생하는 그만의 생활방식을 배우려거든 먼저 『그래서 산에 산다』를 읽을 필요가 있다. 부족하다면 그를 찾아 산으로 가면 된다. 그의 성정상 기꺼이 받아주리라 생각한다. 다만, 가려거든 지금까지 도시에서 배우고 익힌 거의 모든 것들을 두고 가야 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가 산에 사는 이유를 배우면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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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문명이 발달 속에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은 점점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 발전이 가져다준 혜택은 정말 인간의 삶의 질을 바꾸어 놓으며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세상이다. 이러한 편리함과 생활의 윤택함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또한 많다. 매년 봄은 물론이고 중국의 공장이 가동되는 상황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농도는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준의 수치로 올라가며 일본의 원자력 개발 기구에서 누출된 방사선은 온 바다를 뒤덮으며 수자원을 오염시켰다. 이러한 환경파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와서 호흡기질환, 아토피, 면역저하, 방사성물질로 인한 호르몬 계통 이상 등 많은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산에 산다>는 도시 속에서 갇혀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고마움을 잊고 살아가고 있거나 몰랐던 현대인에게 자연과 함께 20년이 넘게 생활하며 느끼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저자의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차분하게 전달하는 도서다. 스스로 한국판 월든을 실천하고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라고 칭하는 저자에게 방문객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바로 무슨 재미로 산에 살아요?이다. 여기서 저자는 산에 살며 느끼는 즐거움 중 가장 큰 두 가지에 대해서 답한다. 하나는 나를 찾아오는 풀과 나무, 새, 벌레, 짐승들을 만나는 재미이며 다른 하나는 풀을 헤치고 눈보라를 맞으며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을 찾는 풀과 나무며 벌레, 짐승, 바위를 형제라 생각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여행 손님들을 저자는 하늘이 보낸 귀한 선물이라고 한다. 그래서 산에 산다를 읽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자연과 함께 사는 즐거움과 행복을 전달받는 느낌이 든다. 도시의 복잡함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신선처럼 사는 저자의 눈을 통해 자연생활의 산경험을 느껴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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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최성현씨를 몇 년 전 <녹색평론>에서 처음 만났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이 그를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당시에 그의 책들을 찾아보았으나 읽지는 못했다. 이번에 가디언 출판사에서 나온 <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소개를 읽는 순간,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그래서 산에 산다>는 2006년 출간되었던 <산에서 살다>의 개정판으로 자작시 열세 편과 하이쿠 열다섯 수도 추가로 실었다.
강원도에서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농부의 일기, 혹은 에세이다. 이 책은 도시에 뿌리박고 살면서 언젠가는 자연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로망을 심어줄 것 같다. 산에서 농사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을 굳이 일부러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편하게 도시에서 계속 살겠다고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자연에 대한 것이지만 자연을 여행 삼아 다녀온 사람의 단상이 아니다. 그 곳에서 직접 생을 영위하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꽃, 새, 산짐승, 하물며 작은 곤충까지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철새인 벙어리뻐꾸기의 이동을 보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는 거의 법정 스님의 강독인 줄 알았다.
p.118
멀리 가는 것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삶에도 있다. 한곳에서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단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바뀐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일들을 통해 우리는 벙어리뻐꾸기처럼 먼 곳을 가지 않고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깊고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제가 있다. 사는 곳에서 좋은 여행을 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언젠가는 철새처럼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의 삶은 썩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육신을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소유로 애를 태우게 된다. 덕을 쌓기보다는 야박한 짓을 하기 쉽다. 사람보다 물질이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기 쉽다.
책 내용 중에 반야심경과 불교에 관한 것들이 꽤 있다. 저자의 책을 찾아보니 불교 역서도 있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이라는 제목으로 반야심경 해설서이다. 불교의 생명 중시 사상이 몸에 베인 것일까, 아니면 산에 살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늘 자연과 대화한다. 더 나아가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말벌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말벌이 저자의 집에 집을 지어서 떠나 달라고 간곡히 부탁 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강제로 헐어내는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결국 쫓아냈다. 저자는 그 과정을 서로에게 고단했다고 표현한다. 그 다음 해에도 말벌이 집을 지어서 지인의 추천으로 모기향을 피워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모기향에 덤벼드는 말벌의 행동이 기이하여 벌집을 확인해보니 애벌레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벌집 곁에 창문이 있어서 비닐로 통로를 내어 그 창문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말벌님에게 편지를 썼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말벌 한두 마리가 그 비닐통로를 통해 창문으로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뒤로 말벌들이 모두 창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말벌집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스스로 처치하지도 못해 119를 불러 태워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말벌과 사람, 지위고하 없이 모두 같은 생명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말벌에게 사람에게 하듯, 오히려 더 깍듯하게 대했다. 책으로 자연보호를 배운 우리는 감히 생각도 못한 태도이다. 도시에 살면서 어쩌다 등산이라는 이름으로 산에 오르는 우리로서는 저자가 사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배울 것은 배우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따라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가 독자를 가르치려고 쓴 글은 아닐 것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나는 최근에 죽음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잘 죽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 중 사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죽음 이후 장례 절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인간도 지구 전체로 보자면 엄청난 유기질 자원이라고 했다. 아마존 원주민 수아르 족의 풍장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런 장례 방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상 풍장을 하기 힘들고, 뭣보다 장소가 부적합하다. 저자는 아직도 매장과 화장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중이라한다. 최근 수목장도 하는 추세이지만 그것 역시 화장을 먼저 해야 한다. 자연속에서 사는 저자가 풍장을 가장 자연스런 장례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산에 사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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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세 알을 심는다 한 알은 새를 위해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을 위해
산에 사는 지은이의 철학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은이의 자연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은 또 있다. 반야심경의 반야바라밀이란 진리나 행복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이란 뜻이다 .
바라는 것 없이 주는, 이것만 돼도 살기 아주 편할 겁니다. 거기 '나'가 없어야만 그것이 가능할테니까 말입니다.
책의 지은이는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논은 논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그 자리에 자연 그대로 있기를 바란다. 인간은 그저 잠시 머무는 손님처럼 살다가 가길 원한다. 배추밭에 배추를 심으면서도 배추벌레들이 먹을 배추는 따로 심어 애벌레를 옮겨 놓는다. 벌레 하나 죽이지 않고 그들은 그들대로 함께 살아갈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마음이 예쁘다.
「그래서 산에 산다 」에 지은이는 자신이 산에 사는 이유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놓는다. 나는 대도시에 살다가 소도시에 옮겨와 산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서울을 가면 내가 수십 년을 살던 곳임에도 불구하고 낯설다. 지금 사는 곳의 나지막한 빌딩과 크게 가꾸지 않은 강가가 더 정답다. 이보다 더 산속에 사는 지은이야 오죽하랴.
지은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산속을 찾아 들어간 것인지, 산 속에 살다 보면 욕심이 없어져 절로 이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동안이라도 지은이의 동화되어 잠시 꿈꾼 거 같다. 치열한 삶에 지친 현대인들은 모두 자연을 꿈꾼다. 그래서 요즘 캠핑과 템플스테이가 유행인가 보다. 나도 갑자기 자연 속에서 며칠 밤 머물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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