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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뒤랭의 집에 가는 길에 브리쇼를 만나게 되고 스완의 죽음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스완의 죽음이 충격이었고, 당시 어린아이였지만 지금은 당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 더 오래도록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는 화자의 말이 들어있다. 그의 죽음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질베르트를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마음의 가책과 고통 때문이었다. 또 하나는 스완이 대공과 가졌던 대화의 고백 상대로 화자를 선택했던 이유를 영원히 듣지 못하게 된 것, 부셰의 어떤 장식 융단과 콩브레에 관해서 스완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자, 미루기만 했던 자신이 후회스럽다. 그 어떤 사람의 죽음보다 고통을 주었기에 죽음에 관한 이런 생각에 이른 것 같다.
‘타자의 죽음은 마치 우리 자신의 여행, 파리에서 100킬로미터 거리의 장소에 이르자마자 두 묶음의 손수건을 잊어버리고 왔으며, 요리사에게 열쇠를 맡기는 것이고, 아저씨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과,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옛 분수가 있는 도시의 이름을 묻는 것을 잊었음을 기억해 내는 여행과도 같다.’(P14~15)
브리쇼와 함께 마차에 타고 베르뒤랭의 집으로 가면서, 예전에 엘스티르가 기이한 행동이나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당혹하게 했던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젖는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화자는 스완과 함께 했을 때 제대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일을 자책하고, 그가 훌륭한 달변가였다는 점을 회상한다.
브리쇼와 화자가 베르뒤랭 부인 댁에 도착하는 순간 거대한 몸을 휘저으며 두 사람 쪽으로 오는 샤를뤼스 씨와 마주친다. 화자가 발베크에 체류했던 첫해에 보았던 근엄하고 남성다움을 가장한 오만한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의 샤를뤼스 씨다.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이어지면서 그가 애정하는 모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진다. 용인되지 않은 일은 아슬아슬하기 마련이다. 동성애 이야기 또한 그런 분위기가 짙었다. 거짓말을 하게 되고 속게 된다. 하인을 시켜 탐정에게 감시하도록 일을 맡기고 연회가 끝난 후 어쩌다가 샤를뤼스 씨가 모렐에게 온 편지를 실수로 보았다가 큰 고통과 놀라움에 빠진다. 유명한 여배우 레아와 모렐이 아는 사이였다니.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에 샤를뤼스의 충격은 더욱 컸다.
‘거짓말, 특히 우리가 아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과 가졌던 관계며 우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행동 동기에 대한 완벽한 거짓말,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것, 또 우리를 사랑하고 또 우리를 하루 종일 포옹하고 있어 우리를 자신과 닮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존재에 관해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거짓말, 이런 거짓말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향한 전망을 열고, 또 마비된 감각을 일깨워 우리가 결코 알지 못했을 세계를 관조하도록 하는, 이 세상에서 드문 것 중 하나이다.’(P42)
모렐의 거짓말이 들통나 고통에 빠졌음에도 샤를뤼스 씨는 모렐의 모든 것을 찬미했고, 모렐이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며, 연주회나 카드 게임에서 이긴 것처럼 기쁨을 느끼기까지 한다. 어딜 가도 모렐은 창녀나 종업원들이 바라볼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음악가로서 모렐의 재능과 명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남작의 마음이 느껴져서 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샤를뤼스와 달리 모렐의 속마음은 교활함도 느껴졌는데, 그런 그가 얼마나 샤를뤼스 씨의 마음을 헤아릴까 싶었다.
알베르틴은 베르뒤랭의 집에 오고 싶어했는데, 뱅퇴유의 딸과 그 친구가 참석한다는 말을 듣고 화자는 격심한 고통을 느낀다. ‘나’의 안색이 나빠지자 주변 사람도 그걸 알아차리게 된다. 헤어질 결심을 했으면서도 아직 마음 정리는 안 되는 모양이다. 이제까지 알베르틴의 숱한 거짓말을 들어왔고 그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 화자의 마음속은 또다시 새로운 의혹으로 마음속이 혼란스럽다.
‘만일 우리가 팔다리 같은 것만 가진 존재라면, 삶은 견딜 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마음이라 불리는 작은 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마음은 병에 걸리기 쉽고 또 병에 걸린 동안에는 어떤 사람의 삶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극도로 민감해져서, 만일 거짓말이(중략) 그 사람으로부터 와서 우리의 작은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면, 외과 수술을 통해 그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P56)
베르뒤랭의 살롱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그대로 그려진다.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였지만 좋은 풍경만 있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인물이 살롱에 편입되고 나면 그 사람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일게 마련이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에는 기존 친구들과 관계가 미세한 틈을 만들면서 알싸한 분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신도 하나가 베르뒤랭 씨 부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를 조롱하거나 그 ‘버릇없는 태도’에 두 사람이 ‘분노의 시선’을 교환하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접하다 보니 살롱에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초대된 것인지 궁금하다. 생틴의 경우는 샤를뤼스 씨가 여러 유보 조항을 붙여 허가했던 유일한 사람이라 한다. 이렇듯 베르뒤랭 부인은 자기 집에 초대해도 괜찮은 사람들의 이름을 제시했었다. 샤를뤼스 씨는 그다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늘 사랑받는 건 아니었으면서도 살롱에 초대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거나 승낙하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베르뒤랭 부인은 ‘여주인’으로서의 권위를 잃었다며 싫어했고, 사교적으로도 샤를뤼스 씨에게 마이너스가 되었다. 초대한 사람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푼 만큼 실추시키는 일도 비례했으니 그 영향은 더욱 컸다.
살롱에서는 샤를뤼스와 브리쇼의 사교계의 평판이나 동성애에 대한 담론이 길게 이어지다가 샤를뤼스에 큰 곤경에 빠지는 장면에 이루게 된다. 평소부터 샤를뤼스를 못마따하게 여겼던 베르뒤랭 부인은 샤를뤼스가 모렐의 험담을 했다는 둥 샤를뤼스가 없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하며 이간질을 부추긴다. 급기야는 샤를뤼스가 젊은 음악가를 겁탈하려는 순간 베르뒤랭네 집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동성애라고는 해도 샤를뤼스가 모렐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드러나지 않았고, 그저 모렐을 추앙하고 찬미한 죄밖에 없었는데. 이런 모욕을 받다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단순히 앞일을 예측한다는 관점에서도 우리는 오류를 범한다. 우리가 관찰했던 악한 모습은 틀림없이 결정적인 방식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이런 악한 모습보다 더 풍요롭고 다른 많은 모습들을 갖고 있으며, 동일한 인간에게서 그 다른 모습들이 다시 돌아올 테지만, 우리는 그가 과거에 저질렀던 악행으로 인해 그 다른 모습이 주는 기쁨을 거부한다.’(P273)
샤를뤼스를 곤경에 빠뜨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베르뒤랭 부부가 화자에게 곱게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 부부에게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었을 것이다. 또한 알베르틴과 ‘나’를 어떻게 하는 건 아닐까 의혹도 있었다. 그런데, 의사인 코타르가 큰 빚을 지고 곤경에 빠졌을 때 선뜻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흔히 우리는 자신이 본 것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는지도 모른다. 악한 모습보다는 ‘더 풍요롭고 다른 많은 모습들을 갖고 있다’는 통찰적인 문장에 깊은 공감이 간다. 나이어린 화자가 어떻게 어른들 틈에서 참을성 있게 대화를 듣고 있나 신기했는데, 머릿속에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알베르틴 생각으로 가득하다.
알베르틴과 헤어질 결심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했었는데, 내용의 절반을 훨씬 넘기고서 나온다. 9권에서 알베르틴에 대한 질투와 화자의 심경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면 여기서는 뚜렷한 윤곽을 알려주는 것처럼 선명해진다. 발베크에서 처음 만났던 장면부터 앙드레와 뱅퇴유 양의 친구와 어울리면서 했던 말이 거짓말의 연속이었다는 것, 그로 인해 화자는 많은 고통을 받았다. 베르뒤랭네서 돌아올 때 알베르틴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집에 들어가 ‘갇힌 여자’를 만난다는 느낌 대신 ‘갇힌 남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동안 의심을 하고 프랑수아즈의 도움을 받아 감시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어도 직접 물어보고 확인하는 일은 없었다. 궁금한 점을 모두 알아내려는 듯 둘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나’는 점점 알베르틴의 거짓말로 인해 비탄에 빠지고 절규한다.
‘어쩌면 우리가 입 밖에 내는, 거짓으로라도 하는 슬픈 말은 그 자체로 슬픔을 담고 있으며, 또 우리 마음 깊숙이 이 슬픔을 주입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략) 모든 거짓말에는 아무리 소량이라도, 우리가 속이는 상대가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불확실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런 이별의 연극이, 실제 이별로 이어진다면! 비록 사실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이는 듯하다.’(P282~283)
화자는 왜 그렇게 알베르틴에게 집착했을까. 헤어질 결심을 하고, 알베르틴에게 그 말을 전하고도, 좀 더 지내보자고 연장을 한다. 좀 우습기도 하고 우유부단한 성격도 느껴졌고, 그만큼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어쩌면 할머니와 어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여성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포르투니 의상에 요트, 마차, 자동차 등 그녀에게 베풀어준 것이 있으니 더 많이 소유했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이 주었으니 그녀가 그에게 충분히 만족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알베르틴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헤어지지 않은 것이 불행이었음’을 절감한다.
‘알베르틴과의 삶은 내가 질투를 느끼지 않을 때는 권태로웠고, 질투를 느낄 때는 고통스러웠다.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고 해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P350)
알베르틴에 대한 ‘나’의 사랑을 압축한다면 위의 문장을 꼽을 수도 있겠다. 참... 안타까운 사랑이지 않은가. 질투와 집착, 애착으로 점철된 사랑이라고 할까. 그녀의 거짓말을 듣고 고통만 당하지 말고,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해서 바로잡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저 혼자 아파하고 그녀가 떠날까봐 전전긍긍했던 화자의 나약함이 안타까웠다.
다음 날 아침, 극구 말렸음에도 편지를 남겨 놓고 새벽에 알베르틴이 떠났다는 프랑수아즈의 말을 듣게 된다. 태연자약했지만 ‘나는 숨이 막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녀가 ‘나’에게서 멀어지려는 모습을 감지해야 했던 그 모든 것이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열 권 시리즈는 여기서 막을 내렸다. 이제 겨우 ‘의식흐름’ 기법에 적응될 만하니 완독을 마쳤다! 다음 권이 나올 예정이라 하는데 이제는 내가 책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화자의 변화된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건가? 정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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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지난해(2020년) 2월경 부터였다.(3월에 1권 리뷰를 작성한 걸로 보면..^^) 국일미디어에서 출간된 책을 거의 읽어갈 즈음 민음사 출간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이 벌써 2012년경.그러나 민음사의 잃어버린...시간은 아직 완간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10권은 아주아주 천천히(거의 3달^^) 읽었다. 10권이 마무리 될 즈음..11권 출간 소식을 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던 거다.시간차를 두고 11권을 읽는다고해서 물론 문제될 건 없다는 생각이다. 처음 읽을 당시..다음에 읽게 된다면 어느 권을 골라 읽어도 상관없다고...인물마다 성격이 있고, 관계도가 있지만..인물중심의 이야기란 생각보다, 인간군상의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핵심이란 생각이 들어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놀라운 건.10권의 부재(?) '갇힌 여인'..은 실은 남자(마르셀)가 갇힌..인물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다. 알베르틴을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에 스스로 침몰 되어 허우적 거리는 모습...헤어져야 겠다 생각하는 순간엔..사랑하는 것 같고.. 질투와 불안과 의심 속에 허우적 거릴때는..알베르틴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괴로워 하는 남자...그러는 시간 동안 남자의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가고 만다...."나는 그녀가 내게 키스하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이 모든 것이 잃어버린 시간이며 키스를 하고 나서야 드디어 마음이 평온해지는 진정한 순간이 시작되는 걸 깨닫고 그녀에게(...)나는 알베르틴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과 비교적 평온한 마음 사이을 계속 왔다 갔다 했다"/362쪽 아주 꼼꼼하게 읽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으나' 잃어버린 시간' 이란 언급이 유독 눈에 들어온 부분이다. 주인공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를 시시콜콜 기억할 수도 없다. 그런데 알베르틴을 통해 '던져진 심오한 질문 사랑'(" 우리는 뭔가 접근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할 때만 사랑하고 소유하지 않은 것만을 사랑하는 법이므로 나는 이내 알베르틴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335쪽)은, 수많은 메커니즘 속에 허우적 거리는 인물들을 만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주인공남자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끝없이 등장하고,고구마를 외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누구도 굴레에 스스로 갇히려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불안과 예민함이 나를 가두고, 의심이 나를 가두고,질투가 나를 가두게 된다. 문제는,이런 감정이 상대방으로 향하게 될때..함께 불행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상대에 대한 의심을 하기 보다,내 안에 문제를 바로 인지하고 있었다면....알베르틴의 습관을 이해했다면...등등의 가정법은 그래서 조금은 아픈 메아리처럼 돌아온다."오늘 아침 8시 알베르틴 양이 자기 가방을 달라고 하더군요.감히 거절할 수 없었어요.(...)아가씨는 원치 않았고, 도련님께 이 편지를 남겨 놓고 9시에 떠났어요"/384쪽 알베르틴이 어떤 마음으로 떠났는지에 대해 아직 목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적어도 10권을 읽는 동안..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알베르틴 역시 자신의 마음 속에 갇혀 살았던 여인이었을지 몰라도...) 그녀의 이후가..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만..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11권에서 그녀가 떠나게 된 마음을 읽게 될 수 있을 지 궁금하다..물론 남자의 시선으로 만나게 된다면...물음표가 따라올 수 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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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알베르틴을 데려오고 그녀를 자신(화자)의 집에 머물게 한다. 이건 자유로운 분위기 같지만 실상은 구속에 가깝다. 친구인 앙드레와 택시기사를 통해 감시까지 하는 걸 보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 (물질적인 것)은 무엇이든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댓가로 그녀의 마음을 얻은 건 아니었다. 어느 사랑이 그렇듯 이 사랑도 집착과 질투 그리고 욕망이 드리운다. 사랑이 과연 이런걸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더 깊이 빠져들고 헤어나오지 못한다. 상대에 대한 구속은 결국 자신에 대한 구속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샤륄르스와 알베르틴의 사랑은 마치 클래식한 영화 한편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마음에 그리고 행동에 동서고금은 다르지 않다. 누군가를 오롯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고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강한 집착과 소유욕이 정상적인 사랑이라 평가받지는 못한다하더라도 누구나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다. 물론 그건 결국 비극으로 이어질 뿐이야 라고 조언도 가능할 것이다. 동성애는 수치스럽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이 사랑할결심으로 바뀌는 순간 이 숨겨진 사랑은 양성간의 사랑보다 훨씬 힘이 강해져 거침없어 진다. 프루스트는 이 사랑에 대한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이야기에서의 사랑의 힘은 결국 묘사의 힘이다. 그리고 행간의 힘이다. 프루스트가 써내려 간 문장들은 읽는 이에게 많은 시간의 사유를 요구한다. 그런 시간은 결국 이야기에 더 빠져들어 인물들과 같이 고민하고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분노하고 갈망하게 한다. 프루스트는 슬픔을 고백하는 순간은 쾌락을 포기하는 순간이라 묘사하고 있다. 이 문장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야기 속 베르뒤엥 부인이 사교계에서 하는 행동에 대한 심리 묘사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이런 상황을 통해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이기도 하다. 후자인 독자의 입장에 보면 그 해석은 전자와는 확연히 달라지기도 한다. 사랑은 예술일까? 많은 예술작품들은 사랑에서 영감을 얻었거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 베르뒤엥 부인이 거실에서 튼 벵트유의 7중주는 사랑의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려 한 것 같다. 사랑의 영원성은 예술의 영원성으로 환원되기도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변주는 불안과 안정의 사이에서 요동친다. 프루스트는 이런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과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예술이 되려면 어떻게 표현해야할까에 대해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정리하고 다시 고치고 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듯 사랑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런 시간을 갖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가혹한 예술이다. 10 갇힌 여인2에 나오는 주요 등장 인물은 벵트유와 베르고트, 엘스티르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음악과 미술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간다. <잃어버린 시간들>을 읽는 가장 큰 매력이 시리즈 10 갇힌 여인2에서 나타난다. 비교적 짧은 내용이다. (전체에 비해서 말이다 ^^) 하지만 그 무엇보다 긴 내용이었다. 그만한 사유와 고민의 시간이 있었고 또 그만한 가치와 행복이 있었다. 책의 본문 중에, 프로스트가 거짓말이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띄었다. 기억해 보면 '거짓말 (중략)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대한 거짓말, 이런 거짓말이야말로 새로운 것이나 미지에 대한 전망을 열고, 또 마비된 감각을 일깨워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관조하도록 하는 세상의 아주 드문 것 중 하나다. ' 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마 우리가 무언가를 표현할때 그 진위 여부에 대한 것도 함께 고민하게 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게 과연 진실인지 아님 진실을 가장한 거짓인지 말이다. 그 거짓을 진실로 느끼고 받은 것은 그럼 진실인지 거짓인지 하는 것 말이다. 천착하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예술 이 셋 사이의 관계로 이어질 것이다. 표현이라는 건 원래 그대로의 전달일까 아님 재창조일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마 그는 이야기속의 인물들이 서로 전하고 전해받는 말과 감정이 서로 뒤섞이는 과정을 통해 이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듯, 우리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니 그 사유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도 충분히 사유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잃어버린 시간들>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고 한다. 어쩌면 그만큼 이 책은 읽기 힘든 책이다. 민음사의 것만 봐도 1권에서 13권까지 총 13권을 읽어야 한다. 이제 10을 다 읽었으니 3권이 남았다. 사실 조금 힘들다. 그래서 13권까지 다 사버렸다. 펼친 김에 다 읽어버리려고 말이다. 책을 읽음에 서두를 순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아마 한동안 다 읽지 못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두고 두고 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고 반드시 다시 읽어야 하는 책이기도 하다. '나 이 책 읽었어.'라고 말하려면 책을 읽은 시간보다 몇배나 많은 사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마 그러고도 그렇게 자신있게 말하긴 힘들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읽고 또 읽으련다. 우직하게 말이다. 아마 이 더위가 끝날 즈음에는 그 순간이 와 있지 않을까 싶다.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들>은 표지도 참 예쁘다. 우리 때와는 달리 요즘은 책표지도 장식효과를 중시한다 들었다. (물론 우리 때도 그런 경향은 있었지만 ^^) 이 책의 표지를 보면서 예쁘다 라는 생각과 함께 얼마전 읽은 책의 역사가 떠올랐다. 과거 지금처럼 출판이 그리 쉽지 않았던 시절, 책 하나를 만드는 정성이 정말 대단했다는 걸 느꼈고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 했다. 책 표지는 단순한 표지만의 역할이 아니다. 내용을 표현해야 하고, 간직하게 싶게 해야 하고,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한다. 어쨌든 여러 의미를 놓고봐도 민음사의 <잃어버린 시간들>은 마음에 든다. 마르셀 프루스트도 아마 이걸 봤다면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갇힌 여인을 읽고 갇힌 시간을 생각하고 갇힌 사랑을 사유했다. - 2025년 7월 10일 폭염의 한가운데서 |
| 신경안정제처럼 읽다보면 묘한 동질감과 안정감을 준다 포인트 때문에 구입 리뷰이지만 책으로도 산 책이고 이번엔 이북이다 리뷰를 보고 살 사람은 몇이나 있고 10권을 읽고 있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까 싶다 벌써 이번년도 반이 지났는데 내가 산 고전들을 하나라도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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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권 - 마르셀 프루스트 뭐라고 해야 돼... 프랑스 사람들의 이게 뭐야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우당탕탕 갬정적 이야기... 로만 생각했는데 시대적 배경 지식이 없으니 읽기가 너무 힘들어서 슬며시라도 프랑스사를 뒤져보게 되는 것임미다... 벨에포크... 네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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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될 때 마다 보장된 미래의 행복처럼 1권씩 적립하듯 책장에 꽃혀있는 걸 보는 것으로도 행복!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제나 마들렌과 한 잔의 홍차와 함께해야하는 이상한 의식마저 생김! 1권씩 출간 될 때마다 번역자님의 건강을 함께 빌어보는 유일한 책! 나의 세 번째 파리에서 함께하려고 아껴두고 보고 있는데 빠른 시간내에 빨리 읽겠다는 욕심은 접어두고 가끔 생각 날 때 마다 부담없이 읽고 있는데 전권 다 읽을려면 남은 생 걸릴 듯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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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0권까지 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정말 대장정이긴 하다 전개가 빠른게 아니라 느릿느릿 걸어온 기분이다 중간중간 출간이 되지 않은 책때문에 스텝이 끊기기도 했다. 인물도 잊어버리고 관계들도 가물가물해 진 적도 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자기엔 너무 대장정인 기분이고,, 아직도 언제 다 번역이 완료되어 완간이 될지도 불투명하고 완간이 되기로 예정된 날을 아주 훌쩍 넘어 몇년이 더 지나가 버렸지만 나에게 주어진 또다른 목표라 생각하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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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슬픔의 비탈길에서 점점 더 깊어져 사는 절망을 향해, 마치 추위를 느끼면서도 추위와 싸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떨리는 몸에서 일종의 기쁨마저 느끼는 사람의 무기력한 태도로 점점 더 빨리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 사랑은 누군가 상대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내가 정의하는 사랑의 환상을상대에게 끊임없이 찾으려는 몸부림 같다. [우리는 뭔가 접근할 수 없는것을 추구할 때만 사랑하고, 소유하지 않은 것만을 사랑하는 법이므로……] 사랑에 대해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으며 덤으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이 시기 아름다운 그곳을 클래식음악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제발 다음책이 빨리 나오길 바라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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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마르셀 프루스트 <김희영 옮김>
<갇힌 여인>편인 9권, 10권 모두 내용보다는 독백과 사유로 거의 대부분이 진행되었다. 10권의 내용에는 베르뒤랭 부인의 연회에서 샤를뤼스를 퇴출시키는 내용과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싸움과 화해 그리고 단조로운 생활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마르셀이 원하고 있는 알베르틴을 향한 완전한 소유의 욕망은 그에게 질투와 의심만 들게 했고 그것들은 그의 내면에 오해와 왜곡을 만들어 냈다. 마르셀에게 있어 알베르틴에게 느끼는 질투와 의혹이야말로 그의 사랑을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이고 질투와 의혹이 오히려 그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키우고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알베르틴과의 생활은 마르셀이 질투를 느낄 때는 고통스러웠지만 느끼지 않을 때는 권태로웠다. 마르셀 앞에서 한없이 순종적인척하는 알베르틴과의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알베르틴이 가고 싶어 했던 베드뤼랭 부인이 초대한 연회에 못가게 한 마르셀은 저녁이 되자 베르뒤랭 부인의 집으로 향했다. 베드뤼랭의 부인이 개최하는 연회에 마르셀이 좋아하는 뱅퇴유의 유작이 완성되어 모렐에 의해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마르셀은 뱅퇴유의 딸과 여자친구(동성애 성향을 가진)가 그곳에 오는지의 여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연주되는 뱅퇴유의 유작을 듣기 위해 뱅퇴유양과 여자친구가 당연히 올 거라고 예상했기에 알베르틴을 못 가게 한 것이다. 고아였던 알베르틴이 유년시절 뱅퇴유양의 여자친구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베르틴으로부터 들은 이후부터 마르셀은 알베르틴의 동성애적인 성향을 더욱더 의심하게 된 것이다. 마르셀이 어렸을 때 뱅튀유양과 여자친구가 아버지의 사진에 침을 뱉고 악덕의 행위를 하는 것을 몰래 봤던 기억이 너무나 선명했기에. 마르셀은 뱅퇴유양과 여자친구와 알베르틴의 관계를 좋게 이해할 수 없었다. 뱅퇴유양과 여자친구와 알베르틴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베르뒤랭 부인 댁에 간 마르셀은 그 자리에 뱅퇴유의 딸과 여자친구가 참석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뱅퇴유의 미발표곡인 칠중주곡을 모렐과 그의 단원들은 아주 훌륭히 연주해냈다. 뱅퇴유의 칠중주곡은 찬란하고 완벽한 걸작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마르셀 또한 뱅퇴유의 칠중주곡을 들으며 일체감을 느끼면서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모렐이 연주하는 칠중주곡은 동성애의 성향을 가진 딸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으로 작곡한 것 같은 마음이 전달되었고 마르셀 또한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진 알베르틴 때문에 힘들어하는 자신의 마음과 일치한다는 것이 전달이 되었던 것이다. 졸부인 베르뒤랭 부인이 개최하는 사교 파티는 언제나 근사했지만 부족한 것은 관객이었다. 그래서 관객을 초청하는 권한을 전통 귀족인 샤를뤼스 씨가 가지고 있는데 그의 괴팍한 성격은 베르뒤랭 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가 초대한 '자기 세계'의 사람들은 베르뒤랭 부인을 끔찍할 정도로 무시했고 샤를뤼스 또한 성공적인 파티의 공이 다 자기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연회에 참석한 공작부인들은 주인인 베르뒤랭 부인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샤를뤼스에게만 성공적인 파티의 모든 공을 돌렸다. 화가 난 베르뒤랭 부인은 샤를뤼스를 본인이 주최하는 사교모임에서 퇴출시키기로 마음먹고 샤를뤼스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모렐을 불러 샤를뤼스에 대한 욕을 하면서 그와의 관계를 끊고 자신과 관계를 유지하라고 이간질로 부채질을 했다. 귀가 얇은 모렐은 베르뒤랭 부인의 말만 믿고 그동안 보살펴 준 샤를뤼스에게 등을 돌렸고 그 충격으로 샤를뤼스는 병을 얻어 점점 더 병세가 악화되어 베르뒤랭 부인을 향한 복수전도 펼치지 못하게 되었다. 혼자 있으면서 마르셀을 기다리고 있을 알베르틴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온 마르셀은 알베르틴에게 베르뒤랭네의 사교모임에 다녀오는 길이라 이야기를 한다. 마르셀은 베르뒤랭 부인이 개최하는 연회에 뱅퇴유의 딸과 여자친구가 왔는지 궁금해서 간 것이었는데 그곳에 갔다 왔다고 말하는 마르셀에게 알베르틴은 화를 냈다. 유년 시절 함께 지냈던 뱅퇴유양과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 가겠다고 한 것인데 마르셀의 저녁 외출에 이미 모욕감에 사로잡힌 알베르틴은 마르셀이 간 곳이 알베르틴은 못 가게 했던 곳이니.. 마르셀이 베르뒤랭 부인 댁에 갔다는 말에 화가 났던 것이다. 알베르틴은 마르셀이 뱅퇴유의 음악에 열광하는 것을 알았기에 뱅퇴유양과 여자친구와 친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 마르셀이 더 좋아했을 거라는 생각으로 한 것인데 이는 오히려 마르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분노를 참지 못한 알베르틴은 그동안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해왔던 레아와 여행도 함께 다녔고 매우 친한 사이라고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들은 마르셀은 알베르틴의 고모라적인 성향에 확신을 가지며 그동안 거짓말로 일관해 왔던 알베르틴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이곳에서 보내는 알베르틴의 삶이 그녀를 따분하게 하고 있으니 내일 아침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별을 선언하는 마르셀. 마르셀의 이별선언에 그녀는 이 집에서 행복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녀가 진심으로 자유를 갈구하지는 않는지 정말 그녀가 행복했는지 마르셀의 마음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따뜻한 봄이 오는 어느 날 마르셀은 갈망했던 베네치아의 여행을 결심했을 때 가정부 프랑수아즈로부터 알베르틴이 아침에 가방에 짐을 챙겨 나갔다는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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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의 하나의 미션이 되어버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 사는 사람들은 있어도 다 읽은 사람들은 찾기 어렵다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권까지 모았지만 아직 1권도 제대로 다 읽지 못했다는... 슬픈 현실...ㅠㅠ 올해 목표는 10권까지 완독하기입니다! 계속해서 쭉쭉 잘 읽어갈 수 있도록 다시 시작해볼게요! 민음사 버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잘 읽어갈 수 있도록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