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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홍상화는 낯이 설다. 당연히 그의 작품을 읽어본 기억은 없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을 읽게 된 까닭은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젊은 날을 돌아보는 것 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어떤 시대를 살았기에 우울하다고 느끼는지 호기심이 들어서다. 나의 젊은 시절은 어떠했는지, 나는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보고픈 마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집은 작가의 8개 중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품 전체는 하나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중심에 있는 배경은 한국전쟁이었고 능바우라는 시골에서의 기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런 배경이 작가의 경험이 아닐까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실여부야 알 수 없지만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소설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능바우 가는 길]에서 이진우는 50대 후반에 들어선 전업작가이다. 어느 정도 성공을 얻기도 했지만 창작활동에 대한 절망에서 탈출하기 위해 아프리카지역에 파견된 의사들의 활동을 취재하러 나선다. 킬리만자로 상공을 나는 경비행기 안에서 이진우는 바깥의 풍경을 보며 자신의 지난시절을 회고한다. 창작활동을 위해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고집했던 그, 그는 자신이 머무른 서해안 바닷가 별장에서의 생활을 떠올린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마사이족을 위해 의술을 베푸는 유종수씨와 마사이족의 삶을 보면서 이진우는 초등학교 때 1년 반을 보냈던 외갓집이 있던 마을 능바우가 생각났다. 돌아오는 길에 이진우는 기성세대인 자신들과 젊은 세대와의 차이는 가슴 속에 터잡고 있는 가난이란 응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서해안 별장을 처분하고 능바우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순간 계곡을 보기위해 하강하던 비행기의 프로펠러 회전이 불규칙해지며 조종사가 파랗게 질린다. 아마 작가는 이진우의 킬리만자로 여행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절의 어려움을 소환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외숙모]는 눙바우에서 생활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확장되는 작품이다. 일요일 아침 화자의 집필실로 자신이 성백희씨의 아내라며 성백희씨를 아느냐는 전화가 걸려온다. 성백희씨는 전쟁 전 아홉 살 때 본 외삼촌이다. 외삼촌은 전쟁 전에 고향 능바우에서 혼인했다. 그 후 전쟁이 터지면서 의용군으로 끌려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당시 능바우 외갓집에 맡겨졌던 화자는 가족들이 행방불명되면서 외숙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지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나타나고 화자가 아버지와 함께 떠나자 그 이듬해 외숙모가 가출했다는 소식만 들었다. 40여년간 소식이 끊어졌던 외숙모가 나타나자 화자는 외숙모를 주제로 한 소설을 구상하며 한강 유람선 선착장에서 기다린다. 마침내 나타난 외숙모, 화자가 상상한 것처럼 세월에 찌든 노파도 아니었고 지난날 가출한 것 역시 친정아버지의 부름에 따라 능바우를 떠난 것이라고 했다. 능바우 골방에서 자신에게 가르쳐준 노래가 무엇이었냐고 묻는 화자에게 외숙모는 ‘타향살이’였다고 대답한다. 그제서야 화자는 고아가 된 조카를 위로하기 위해 외숙모가 그 노래를 가르쳐 준 것이란 생각을 한다.
[세월 속에 갇힌 사람들]에서 화자는 큰고모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중환자 대기실에서 만난 고종사촌은 고혈압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어머니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심장박동이 멈췄고 호흡보조기구를 부착했다며, 어머니의 병세가 외삼촌과 똑같다고 한다. 외삼촌, 그러니까 화자의 아버지는 10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화자는 고종사촌의 얼굴에 어리는 근심과 불안을 엿보고 회상에 빠진다. 큰고모는 전쟁 중 고모부와 생이별을 했다. 와세다대 경제과를 다니던 큰고모부는 광복 후 귀국하여 남로당 핵심요원으로 사상활동을 했고 당시 중학교 5학년이던 화자는 큰 고모부를 우상으로 생각했다. 전쟁이 나고 큰고모부가 빨치산으로 입산을 하자 화자도 부모 몰래 빨치산에 지원했었다. 전쟁이 나기 전 6개월간 부부생활을 했던 고모는 지금껏 고모부가 살아있으리라 믿는다. 병원을 나와 어머니에게 간 화자는 아직도 큰고모부와 화자사이에 비밀이 없는지를 캐묻는 어머니를 피해 집을 나선다. 도중에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신 화자는 갑자기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큰고모 귀에 대고 고모부는 돌아가셨다고, 지리산에서 동상에 걸려 죽어가는 큰고모부의 청에 따라 자신이 고모부를 편안하게 해주었음을 말한다. 순간 고모의 얼굴이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화자는 병실을 뛰쳐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큰고모가 조금 전 별세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화자는 고모가 자신의 말을 듣고 고모부를 기다릴 필요가 없음을 알고 눈을 감았으며, 40여년 전 지리산에서 했던 자신의 행동을 고모가 용서했으리라고 믿는다. 전쟁의 와중에서 있었던 기억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서 작가는 세월의 덫에 갇힌 사람들이라고 말했지 싶다.
[어머니] 또한 전쟁 중 헤어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서울 변두리 카바레에서 색소폰을 불며 살아가는 인구는 중국에 있는 큰아버지의 딸인 금자누이를 통해 아버지의 편지를 받는다. 전쟁이 나기 전까지 함양에서 보통학교 선생을 하던 아버지는 인구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북으로 갔다. 춘천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어머니를 찾아가 아버지를 만나러 중국에 간다고 하자 어머니는 발작을 한다. 아버지와 헤어진 후 많은 남자의 품속을 거치며 살아온 어머니를 인구는 경멸한다. 중국에서 체류기한인 3개월이 다되도록 아버지는 나오지 못했고, 인구는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다롄으로 온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벗어나기만을 고대하며 아버지가 탈출구가 되어 주리라 생각하며 살아온 인구는 다롄의 바닷가에서 사색에 잠긴다. 시간이 되어 웨이하이로 가는 배에 오르려 할 때 금자누이가 아버지와 함께 헐레벌떡 달려온다. 웨이하이로 가는 배를 같이 탄 인구는 아버지가 2개월 허가를 받아 나왔다고 하자 서울로 갔다가 다시 오겠다고 말한다. 웨이하이에서 인구는 아버지에게 양복을 사드리고 가지고 있던 돈을 다 드린다. 아버지는 북에 있는 동생들의 사진을 인구에게 준다. 7개월이 지난 후 인구는 아버지를 꿈속에서 만나고 있다. 여비 등 돈 때문에 다시 중국에 가지 못했고 금자누이는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성화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나 춘천으로 간 인구는 아버지 얘기를 하지만 어머니는 계속 동문서답이다. 인구가 동생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자 안보려고 실랑이하다가 마침내 사진을 본 어머니가 울기 시작한다. 사진 속에 있는 아버지와 재혼한 그 여자는 동료선생이었고 아버지가 꼬셔서 데리고 도망간 것이라고 한다. 3년 전에 죽었다고 하자 그 여자의 팔자를 한탄하며 다시 운다. 인구는 이제 다른 꿈을 꾸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는 꿈을... 이밖에 당숙과 당숙의 처남을 통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이산의 아픔을 그린 [유언] 역시 전쟁과 분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집에 실린 8개의 작품 중에는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을 떠나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적인 실상을 그린 작품들이 있다. [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은 해직기사 출신인 최형민과 그의 친구 박진우가 미국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한국에서의 실패를 딛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미국으로 갔지만 삶이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냉혹한 삶이지만 그럼에도 부패와 자기기만이 없는 생활 속에서 닥쳐오는 위기를 우정의 힘으로 극복한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에서는 실패한 사업가 김성수의 회고와 현실을 살아가는 고단한 삶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전반에 깔려있는 부조리와 탐욕을 고발한다. 그리고 종국에는 가족 간의 사랑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임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무늬]는 전쟁, 사랑, 열정, 욕정, 기적을 주제삼아 뜨겁지만 스산한 삶, 잔잔한 사랑, 애틋한 그리움 등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인생의 무늬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이 작품집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쟁과 분단에 따른 이별과 상처, 분노, 그리고 사회적 부조리와 폭력에 치인 사람들의 아픔과 피해의식을 통해 상처입고 부서진 사람들의 서러움을 씻어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함께 껴안는 것 일게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득한 먼 옛날의 일처럼 생각되어지는 소설의 배경이 사실은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었고, 어찌 보면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사회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제목에 호기심을 느끼고 읽은 소설집이지만, 더 이상 젊음의 기억들이 우울해지지 않는 시대가 오길 기원하는 작품집으로 읽었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 해방 이후 우리 한국 문단은 독재와 부패가 소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북한은 북한대로, 남한은 남한대로 정부 정부를 수립해 정치적, 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아픔과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다. 갓 해방된 정국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고, 한편으로는 지배 정권과 정권에 야합하는 무리들이 나라의 운명을 틀어잡고 있어서 독재 권력의 면죄부가 주어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한 문학이야 쉽게 접할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남한에서는 민주 정부라고 해서 수립됐지만 분단 상황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모두 이념 대립의 마당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다. 같은 민족이란 정체성은 서로 알고 있지만 정부 수립도, 정권 창출도 이념적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시대였다. 이에 당대 지식인 중 세계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모두 '반공'이란 정부 이념에 그대로 쓸려 들어갔다. 특히 독재 정권을 학생과 시민의 힘으로 끝장 냈지만, 들어선 군사 정부는 독재와 정권 지속을 위해 내세운 '반공' 아래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식인 대부분이 정권을 비판하거나 독재에 맞서는 글을 쓰기 어려웠다. 일부 지식인만 독재는 안된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고, 온 힘으로 항거했지만 중과부적으로 스러져갔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등장이다. 이는 분단 문학의 주를 이뤘고, 지금도 그들의 민주 의식은 굳건하게 나라의 근간이 되어 있다. ![]() 이 책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도 작가 홍상화의 이러한 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인식의 체계 위에서 집필된 작품이다. 작가 홍상화의 작품세계는 두 개의 커다란 기둥으로 이루어 있었다. 한국 소설사에서 처음으로 독재와 부패의 시대상황 속에서 권력과 돈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우리 사회의 거품스러움을 낱낱이 해부하여 화제가 되었던 세태소설 『거품시대』,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시대에 북한의 간첩과 남한의 정보요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면서도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 존재의 본질적 문제를 탐구하여 주목을 끌었던 『정보원』이 바로 그것이다. 홍상화 작가가 이번에 출간하는 작품집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은 이 두 작품세계의 축을 하나로 품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더 따스한 시선, 인간에 대한 도저한 애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작가는 상처 입고 부서진 사람들의 서럽고 원통한 사연들을 무겁게 끌어올려 이야기하면서도 '함께 아파하기'라는 생명의 지혜를 발휘함으로써 그 모든 상처의 시간들을 치유하려 한다. 상처받은 자만이 진정으로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다는 통찰력을 갖춘, 진정한 치유 작가로서의 문학적 성취가 유감없이 발휘된 치유의 소설들이다. ![]() 이 작품집은 원래 『능바우 가는 길』이란 제목으로 지난 2000년 출간되었던 것을, 2년 전 타계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을 기리는 마음에서 작가가 재구성해 선보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김윤식 선생에 대한 헌사이자 작가 자신의 문학적 열정을 되새기는 새로운 다짐의 선서이기도 하다. 김윤식 선생은 이 땅의 수많은 문학인들이 홀로 남긴 무력한 ‘두뇌의 자식’들을 예외 없이 무한한 애정으로 정성껏 챙겨주신, 그 ‘두뇌의 자식’들의 대부였다는 사실은 문학인이 아니어도 잘 아는 사실이다. 작가는 선생님의 뜻을 기리며 이 책을 펴냈다고 '작가의 말' 「그래도 남는 것은 글밖에…」에서 피력한다. 인간 존엄의 실현이라는 깃발을 높이 들고 낮은 자세로, 만신창이 역사를 껴안고 깊이 고뇌하며 써낸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 그 지극한 진정성의 서사들이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8편의 중단편 소설이 이 책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이다. 모두 하나같이 한국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서사의 중요한 밑그림으로 깔고 있는 작품들로서, 작가는 깊이 있는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에 깊게 드리워져 있는 ‘어둠과 그늘’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먼저 전쟁, 욕정, 열정, 사랑, 기적을 주제삼아 뜨겁고 신산한 인생의 무늬를 만들어 보여주는 작품 「인생의 무늬」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능바우 가는 길」의 세계는 이 작품집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 피란지였던 능바우에서의 시간에서 50년 세월이 지나, 이제 소설가로서 명망을 얻은 주인공이 멀고먼 킬리만자로까지 날아갔다가 결국 능바우로 귀환하는 서사 구조가 분단의 현실 속에서 펼쳐진다. 「세월 속에 갇힌 사람들」과 「어머니」, 「유언」, 「외숙모」 모두 분단의 현실과 그 아픔을 소환한 작품들이다. ![]() 모래를 씹는 듯한 문체, 승부를 노리는 강력한 대화체, 형용사에 대한 거부 등등 작가 홍씨의 소설적 운용방식도 혹시 헤밍웨이에게서 영향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샤머니즘적 문체와 분위기로 이루어진 이 나라 소설의 주류에서 비추어볼 때, 홍씨의 작품이 매우 동떨어져 있음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헤밍웨이 역시 근원적으로는 일종의 지방성이겠지만, 좌우간 스승 헤밍웨이를 따라 작가 이진우, 그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진우, 그는 실상 ‘능바우’로 가고 있었던 것. 능바우로서의 아프리카, 그의 글쓰기의 기원인 그곳. 그곳을 떠나서는 어떤 글쓰기도 근원적으로 불가능했던 곳. 지방성(센티멘털리즘)의 시발점이자 초극이 가능한 곳. 인간의 고귀성, 그것이 가능한 지점을 향해 그는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죽음’이 가로놓여 있었다.(김윤식, 작품해설, 「‘능바우’에서 ‘킬리만자로’까지」 중에서) 뭉게구름 속으로 낙하하면서 실패한 소설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가 속속들이 아는 소설의 소재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 소재는 ‘구름’이었다. 땅 위에 서 구름을 쳐다보았고, 비행기 위에서 구름을 내려다보았으며, 이제는 구름 속에서 온몸으로 느끼기까지 해봤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이 구름에 대해 잘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 「인생의 무늬」 중에서 ![]() 홍상화의 소설 한복판에는 거의 언제나 자신을 뒤돌아 살피며 끊임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는 어기찬 열정의 굳센 정신이 움직이고 있다. 인간 존엄의 실현이란 깃발을 높이 들고 낮은 포복으로, 만신창이 역사를 껴안고 깊이 앓으며, 글쓰기의 자의식이 이끄는 준엄한 자기반성의 발길이 앞을 열어, 그리하여 장엄한 역동의 세계를 일구며.(정호웅, 「맑고 따뜻한 눈길, 생명의 지혜」 중에서) 그러나 오늘 밤은 다른 꿈을 꾸고 싶다. 미래 한 시점, 우리 세 식구가 한자리에 모인 데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어머니는 코를 ‘헹’ 하고 푼 다음에 아버지를 용서하는 꿈이다. 세월의 흐름이 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면, 세월의 흐름이 용서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미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세월의 흐름은 죽음을, 한 서린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는 것을, 나는 몰랐지만, 어머니는 당연히 알고 계실 것이다. - 「어머니」 중에서 ![]() 반면 다른 한 축인 「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과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서사는 한국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이 화두가 되어 펼쳐진다. 「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은 한국에서 실패한 삶을 살고 새로운 인생을 찾아 미국으로 간 두 남성의 이야기로, 냉혹한 삶의 법칙을 그려내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하나의 힘으로서의 우정을 보여준다.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은 실패한 사업가의 삶을 통해 처절한 한국의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모든 희망의 근원으로서의 가족애를 드러낸다. 어쩌면 여인의 고통은 여인들끼리 이어주고 이어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인은 죽음의 운명 을 받아들이며 인생의 고통을 마무리짓고, 또 다른 여인은 그 여인이 끝맺음한 고통을 이어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한반도 여인들, 특히 격동기를 살아온 한반도 여인들만의 숙명처럼 보였다. - 「세월 속에 갇힌 사람들」 중에서 ![]() 사회의 지도층을 이루는 관료와 사업가, 그리고 정치인들…… 그 누구나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사회입니까?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인간미를 따지고, 예의를 중히 여기고, 관대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듯하지요.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미와 예의란 부정부패를 조장하고 은폐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고, 관대함이란 지배층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자기 보호막에 불과합니다.(「독수리 발톱이 남긴 자국」, pp.111-112) 나는 그때 뉴욕 친구 집에서 그 영화의 비디오를 빌려 밤을 새우며 세 번이나 보았고, 세 번 다 눈물을 질금질금 흘렸었다. 영화의 예술성이 나를 울린 것이 아니라, 열여덟 살 소녀의 기막힌 연기가 나를 울렸던 것이다. 신의주 고급중학교 2학년 때, 자강도 미인대회에서 최고 미인으로 뽑혀 영화 〈꽃파는 처녀〉의 주연으로 발탁되었다는 그 소녀의 연기…… 어디서 그런 연기력이 나왔을까?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유언」 중에서 ![]() 이렇듯 이 작품집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겨난 굽이굽이 서러운 사연들,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부조리에 치여 떠밀리고 짓밟힌 사람들의 원통한 사연들. 생이별, 죽음, 불구, 배신, 분노, 피해의식, 죄의식 등이 뒤범벅된 아수라 지옥의 풍경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모든 상처와 아픔을 결코 회피하지 않고 함께 껴안고 아파함으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작가가 오랜 고투 끝에 체득한 “상처투성이의 지난 역사를 어떻게 껴안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특히 작품집 말미에 남긴 정호웅, 김인숙 두 작가의 통찰력 넘치는 글은 작품 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며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디딤돌이 되어주고 있다. 저자 : 홍상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거쳐, 1989년 장편 『피와 불』(『정보원』으로 개제)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여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했다.소설 『거품시대』는 조선일보에, 『불감시대』는 한국경제신문에 연재되었으며, 장편소설 『거품시대』(전 5권) 『사람의 멍에』 『범섬 앞바다』 『디스토피아』 『신·한국의 아버지』, 소설집 『전쟁을 이긴 두 여인』 『우리들의 두 여인』 등이 있다. 2005년 소설 「동백꽃」으로 제12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예지 『한국문학』 주간과 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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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분단과 전쟁은 어떤 의미있까?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겪어야만 했던 현실과 아픔을 담고 있는 작가 『홍상화』님의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한국문학사 펴냄)은 첫 소설집 '능바우가는 길'을 새로운 제목으로 구성하여 다시 펴낸 단편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에는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각의 작품이 하나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으로 읽힌다. 홍상화님의 작품은 최근 2편을 만나본 기억이다. '범섬 앞바다'와 '정보원'이 그것이다.
작가의 시선은 먼 곳을 돌아 한국전쟁 당시 잠시 머물렀던 외가 '능바우'를 향하고 있다. 10살 소년이 이모를 따라 피난길로 선택한 '능바우'와 1년반 정도를 함께 한 외숙모를 중심으로 분단의 현실에서 피할 수 없었던 각자의 삶 속에서 북으로 간 사람과 남쪽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아픔을 말해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경제성장의 중심에서 밀려 한국에서 실패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두 젊은이의 이야기 '독수리 발톱이 남긴자국'에서는 좌절과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패한 사업가의 삶을 통해 처절한 한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 같이 아픈 기억의 이야기다. 책 표지에 담은 과거의 모습과 현대 서울의 모습을 대비시킨 것 자체가 지나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왜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한 시대를 살아야만 했던 어머니.여인이 등장하는가? 남자는 자신의 신념과 이상을 찾아 떠나고 온전히 기다려야 하는 건 여인들이다. 그 아픈 현실이 온전히 전해진다.
『어쩌면 여인의 고통은 여인들끼리 이어주고 이어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인은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인생의 고통을 마무리짓고, 또 다른 여인은 그 여인이 끝맺음한 고통을 이어받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한반도 여인들, 특히 격동기를 살아온 한반도 여인들만의 숙명처럼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가던 길에서 갑자기 시내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금쯤 큰고모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고 계실 어머니와 같이 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세월 속에 갖힌 사람들 중에서 -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상상이 아니라 우리 의 현실적인 문제이고, 아울러 과거 아픈 기억들이 있기 때문인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몰랐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문장 속에서 지금까지의 나를 치유하고 모든 걸 용서하는 마음으로 읽혀져 소설이라는 느낌을 넘어 삶의 에세이 느낌도 든다. 작품속의 이야기가 한국전쟁과 분단의 비극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수 많은 사연과 생이별, 죽음, 배신, 분노, 피해의식, 죄의식 등에서 끌어 안아야만 했던 것들로부터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극복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결국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능바우'로의 귀환이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길이다. 전쟁 중 이모의 손을 잡고 찾아간 '능바우'에서 함께 했던 외숙모와의 40년만의 만남에서 그 동안 모르고 있던 사연을 알게 되고 모두를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그 혼란의 시기를 넘기면서 발생한 모든 일들은 각자의 사연들로 가득했다. 다만 외면하거나 서로 가슴에 묻어 두었을 뿐.
어쩌면 인생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낸 어느 누구보다도 능바우에 대한 나의 애정은 더 깊을 것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성년이 되기 전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있었던 유일한 경험이었다든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던 나의 뇌리 속에 깊게 파고든 시골의 정경과 인정 때문이었다든지, 오랫동안 시끌벅적한 도시생활을 하다보니 나이가 들면서 점차 도시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든지. 여하튼 1년 반 동안 지낸 능바우에서의 생활은 내게 특별했다. 내 소설 여러 곳에 배경 무대로 등장할 만큼 능바우는 내 정신세계의 원형이었다. - 외숙모 중에서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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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문학 이였다. 수능으로 귀결되는 목적없는 공부 중에 "문학"이라는 과목은 나를 항상 진심으로 몰입하게 해준 과목이였다.
그 즈음에 한국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그 후론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었던 차에, 서평단에 이 책, "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들" 이 올라와, 그 때의 그 감정으로 한국의 근현대가 배경인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서평단을 신청했다.
이 책은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은 전쟁세대의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연들, 북한과 연계되어 있는 사연들
작가의 경험을 녹여낸 소설이라 그런지, 좀더 묵직하게 그 의미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또, 나 또한 글 쓰기 좋아하고 사색하는 사람으로서 공감할 만한 문구들이 많았다. 마치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때처럼, 세대도 다르고 성별도 다르며, 겪어온 사연들조차 다른 사람이지만, 그의 말들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소설 쓰는 일에도 직업병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한 만족, 세속적인 행복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점차 상실하게 되는..63p]
[나 자신이 과거에 한 생각, 과거에 저지른 일들이 경멸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실망스러운 자신을 이끌고 살아야 하는 고통은 나로 하여금 완전히 자신감을 잃게 했다. 69p]
[문득 아프리카에 온 이후로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이 싫어 무의식적으로 거울을 피했는지, 아니면 나 자신이 하는일에 빠져들어 외모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아프리카에 온 직후에는 자신이 싫어서였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심취되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따. 그러자 문득 거울은 폭군이라는 생각이 들어쏙,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군 밑에서 살아왔다는 늒미이 찾아왔다. 그 폭군은 인간을 현실로, 추악한 현실로 돌아오게 하여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은 존재였다. 83p]
[순간 홍수가 났을 때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았던 한강이 떠올랐다. 분노에 차 용솟음치던 그때의 모습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직므의 한강은 평온해 보였다. 어떠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본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강이 부러웠다. 사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사람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는 커녕 고통이 남긴 골을, 흐르는 세월이 더 깊게 파고 있지 않은가? 299p]
글쓰는 이로서의 고뇌와, 이념갈등으로 골이 패인 그 상흔이 시간을, 환경을 가진채 살아가는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