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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늦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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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에 돌입하기 전부터도 지금과 같은 개발 일색의 정책이 지닌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하지만 일말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였다. 소위 선진국은 밍기적거리면서 책임을 회피했고,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앞서 모든 걸 이룬 국가들의 이기심을 탓할 뿐 자신들에게 온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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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기후 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시위에 돌입하기 전부터도 지금과 같은 개발 일색의 정책이 지닌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하지만 일말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였다. 소위 선진국은 밍기적거리면서 책임을 회피했고,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우 앞서 모든 걸 이룬 국가들의 이기심을 탓할 뿐 자신들에게 온 기회를 차버릴 용기를 내지 못했다.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듯 뒷짐지고 물러나 있는 동안에도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몇 십 년 남았다는 말이 이제는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막연했던 문제를 책을 읽으며 구체화할 수 있었다. 사실 기후 문제는 내 삶과 크게 연관이 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으며, 개개인의 노력으로는 개선이 어려운 영역에 속한 것처럼 여겨지고는 해 왔다. 익히 알고 있듯, 저자 또한 오늘날 인류가 봉착한 위기를 인간이 환경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처럼 취급하고 소비 일색 태도로 일관한 결과로 보았다. 여기서 그쳤더라면 이제껏 접해 온 많은 의견들과 비등하게 여겨졌을 텐데, 저자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를 파고들기로 마음먹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개개인의 이기심도 물론 원인일 테지만, 저자의 책에서 보였던 건 ‘정치’가 지닌 무한에 가까운 힘이었다. 한 때 거대했던 국가는 어느 순간부턴가 더는 힘을 지녀서는 아니 되는 비효율적인 존재로 전락하고야 말았다. 국가의 힘을 대신한 건 자본이었으니,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도래했다. 경제발전과 번영을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배척당했다. 국가 간의 경계가 희미해졌으며, 번영의 상징과도 같은 국제 무역이 급등했다. 과거처럼 오랜 시간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점에 내가 원하는 물건을 언제든 받아볼 수 있으니 어마어마하게 편리해졌다는 평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항공기 운송이 내가 구입한 물건의 운송 방법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껏 한 번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지 못했다. 내 주변의 이웃은 굶고 있지만 수출용 곡물을 재배해야 하는 현실, 이를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무가 벌목의 대상으로 전락하고야 마는 현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 발생한 위기의 구체적 상황 또한 다분히 정치적으로 여겨진다. 자연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같은 허리케인이 휩쓸고 갔어도, 이후 복구 과정은 동일하지가 않았다. 어느 지역에 얼만큼의 물자를 투여하느냐는 정치가 결정했고, 정치의 이면에서는 아마도 자본이 거대한 힘을 발휘했다. 누구나 충분히 예측 가능한 대로 가난한 이들은 자연 재해에도 취약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지닌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겉으로 여실히 드러나는 경제력에 따른 삶의 차이, 가난하기에 기후 위기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낀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오로지 환경 영역에만 걸쳐 있는 게 아니라는 거,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어마어마하게 많은 가지들이 탄소 사회를 건드리자 끌려 나왔다. 이 말은 탄소 사회를 잘 해석한다면 인류가 봉착한 위기, 더 나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 또한 잘 도출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듯했다. 주체가 누구이건, 각자 취한 입장은 우리가 처한 위기의 시급성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해 보인다. 많은 기업들이 신기술을 언급하며 자신들의 움직임이 위기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선전하고 있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 이는 je 이상 누구도 환경에 반하는 움직임을 대놓고 하기 힘들어진 실상을 반영하는 듯해 보인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오늘날 인류를 위축시킨 코로나19 또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읽혔다. 개발 이데올로기 하에 파괴된 삶의 터전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살아가다 보면 당연히 각종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는 동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어쩌다 우리는 희망을 부르짖으며 절망을 향해 내달렸단 말인가! 지금도 부디 늦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21.07.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