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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열심히 전시회를 다녔다.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니까, 교과서에 수록됐을 정도로 뛰어나므로, 그림 주변을 서성이며 이해의 폭을 넓히려 노력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안목에는 한계가 있었고, 알려 들수록 모르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적이 잦았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읽어내지 못한 탓이 컸다. 글과 마찬가지로 그림 또한 이면에 깃든 게 많았다. 이를 테면 화가의 생애라든가, 그림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 같은. 그림 이야기라 하기에 살짝 거리감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이 들었다. 복불복이다. 정말 흥미진진하거나 연신 하품을 터뜨리거나. 어느 쪽이 될지 결론이 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보통은 처음의 몇 페이지를 읽으면 바로 알아챌 수가 있다. 아주 많은 작품을 만났다고 볼 수는 없다. 다량을 섭렵하려 들었으면 오히려 난잡하고 집중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대신 하나의 그림으로부터 풀어낸 이야기의 폭이 드넓었다. 어딘가 닮아 있어 연결이 가능한 그림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시간의 간극이 존재했다. 거기에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까지 곁들이다 보니 자칫 메마를 수도 있는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내가 초점을 맞춘 것은 그림이었을까, 화가였을까, 아니면 저자? 어느 쪽이건 상관은 없을 터다. 결국 읽어내는 일은 독자 개개인의 몫이다. 난 내게 주어진 자유를 맘껏 즐겼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크게 어려움을 느끼질 않았다. 이야기는 ‘매화가 피었다’라는 문장으로 출발했다. 봄을 알리는 첫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주인공 매화. 나도 여러 해 전 매화를 보겠다는 일념 하에 따스한 남쪽나라를 기꺼이 찾아가는 모험을 저지르고는 했었다. 설종보의 그림 속 매화는 꽃보다는 뻗어나간 가지의 생동감이 멋드러졌고, 그 아래 놓인 자그마한 집 안의 부부는 그런 나무를 말없이 응시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계승했다는 매화서옥도에 담긴 정신을 저자는 ‘수졸’로 보았다. 처음 듣는 용어인데다 어감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음에도 매화가 지닌 특성을 떠올리자 이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구성은 비슷하고, 어쩌면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허련의 매화서옥도. 이를 가능케 했다는 송나라 시인 임포의 이야기까지. 꽃 하나로부터 이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그저 놀라웠다.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전해진 감정이 있다면 떠난 언니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었다. 2019년에 세상을 떠난 언니에게도 죽음은 너무나 급작스레 찾아온 것이었고, 남은 이로서는 채 피우지 못한 고인의 삶을 못내 아쉬워하는 마음 또한 절절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흩날리는 풀꽃으로 화폭이 가득 채워진 그림 ‘바람숲’은 몽환적이면서도 희망에 가득찬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죽음이 실로 이와 같은 것이라면 더는 만져볼 수 없다 하여도 마냥 슬프지만은 않으리라. 어머니로서의 언니의 모습은 이수영 님의 ‘쌈밥집의 풍경’으로 다시금 태어나기도 했다. 자녀를 지켜내는 과정에서 생성된 억척스러움, 그 가치를 세상은 애써 낮추어 보기 바빴다. 품에 안은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만이 엄마로서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의 전부는 아닐 텐데, 왜 우리는 아름다운 새색시의 모습만을 바라고 또 열광했는지 싶다. 여행이 힘들어진 이 계절, 그림을 바라보며 하는 간접 여행도 일품이었다. 특히, 현 시점에선 결코 닿을 수 없을 북녘 땅의 금강산을 그려낸 그림들이 지닌 생생함이 그랬다. 정선의 ‘단발령망금강산’과 김응환의 ‘단발령’, 이인문의 ‘단발령망금강’은 모두 18세기에 그려졌다. 웅장함은 세 작품 모두가 지녔으며 구도 또한 대동소이한데, 서로 대비되는 세상을 그려낸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역력했다. 어느 쪽이 좀 더 현실에 가까운지, 실제로 금강산의 진면모를 접해 본 바 없는 나로서는 판단이 어려웠다. 청와대에 걸려 있다는 송필용의 ‘만물상’은 이들 그림을 이어받았다고. 여전히 매혹적인 소재인 금강산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프로 여행꾼을 자처하는 이들 다수가 봇짐 하나 짊어진 채로 금강산을 향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지 싶었다. 그 외에도 ‘비로자니불도’로부터 동서양을 잇는 연결고리를 읽어낸 지점이라든가,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대가의 그림과 오묘하게 닮은 루씨쏜의 ‘유유자적’을 소개한 대목 등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아는 게 없어 리트머스 종이처럼 마냥 흡수가 가능했던 걸까, 알지 못했기에 좀 더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놓친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즐거웠으므로 어느 쪽인가는 내게 그리 중요치는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