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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주의/서평) 한길사에서 출판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은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청역 근처에 있는 순화동천에서 책을 쭉 둘러보다가 표지 때문에 제목을 읽기도 전에 책을 들었다. 그때는 키르히너의 [베를린의 거리 풍경](Berlin Street Scene)만을 보고 무슨 책인지 궁금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바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책은 한나 아렌트가 챕터 별로 특정 인물에 대한 견해를 밝히며 글을 써 내려간 구성으로 되어있다. 그 인물들은 브레히트부터 오든, 하이데거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뛰어난 사람들이다. 각 인물을 챕터 별로, 마치 단편소설집을 상기시키는 구성이 맘에 든다. 그리고 표지가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다. “어두운 시대”라는 제목과 키르히너가 그린 1900년대의 독일 풍경이 잘 어울리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그림 속 사람들과 아렌트가 챕터 별 언급한 인물들(물론 인물들끼리 아는 사이인 경우도 있지만)이 대치를 이루는 듯하다. 또한 키르히너의 그림에는 센터에 매춘부와 그 (남성) 고객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아렌트가 그린 인물들은 이들과 같이 당시에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받았을 것이다. 여러 챕터 중 제 8장, 발터 베냐민(Walter Benjamin)에 대한 챕터에 집중하여 서평을 쓸까 한다. 나는 언제나 관심이 가는 철학자나 인물에 대해 생각할 때, 이들의 작품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지, 이들에 대한 작품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지 고민한다. 베냐민에 대해 매번 관심만을 품고 있다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읽으면서 베냐민에 대한 글을 먼저 읽게 되었다. 물론 아렌트 한 명의 의견이기는 하나, 그녀는 베냐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 다양한 인용 등을 통해 베냐민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인 평가가 모두 포함시켰고, 그래서 읽기 정말 좋았다. 기억에 남는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1) 명성은 사회적 현상이다. 우정이나 사랑은 한 사람의 의견으로 충분하지만 4) 보들레르는 “나는 유용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언제나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베냐민은 분명히 이 말에 동의했다. 5) 우리는 베냐민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극심한 동요로부터 정적인 것으로의 전환, 즉 운동 자체의 정적인 관념을 그의 모든 문장 이면에서 느껴야만 한다. 한길사에서 출판하는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처음으로 이번 책을 읽게 됬는데, 일단 하드커버라서 들고 다니기도 좋고 (무거울 수는 있지만 커버가 찢어지거나 꾸겨지는 걱정은 없다) 디자인도 예쁘다. 커버를 벗기지 않으면 명화가, 벗기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빨강 색이 보인다. 내부의 장점은 여백이 충분하다는 점이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고 완벽하게 적당한 양의 여백이 있다. 그래서 글을 읽다 생각나는 점이나 적어야 할 내용이 있다면 이 여백을 활용하기에 딱 이다. 어떻게 끝맺음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상 서평 끝~! #한길사 #한나아렌트 #한길그레이트북스 #어두운시대의사람들 #키르히너 #발터벤야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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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관한 이야기니까.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야스퍼스, 발터 베냐민, 베르톨트 브레히트, 하이데거 등, 솔직히 학생 입장에서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띵해지는 대지식인들이기도 하다. 평소 같으면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쉬운 설명이 있을 것이라고 하겠지만. 이 책은 아니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겁다. 이 무거움은 불편할 수도 있다. 어렵고, 그에 대한 해석이 요하다.
하지만 이 무거움이, 어렵다고 안 봐도 될 것은 아니다. ‘악의 평범성’이 한 개인에 의한 악을 이야기 한다면, 이 책은 그 악이 가득한 시대, 혼란스러운 어두운 시대의 이야기니까. 물론 이러한 한나 아렌트나 여기에 있는 인물들의 이론, 생각, 주장이 완벽하다 이런 것으로 추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두울 때 가장 빛이 환하다고, 이들의 주장은 다들 강한 자기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 책은 시대를 밝히려고 노력을 했던 사람들을 바라본 한나 아렌트의 의견이 섞인 책이다. 무지는 죄라고, 평소에도 농담으로도 진담으로도 말하고 다니는데 이 책을 읽을 때, 내 무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름만으로 보던 사람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명 한명씩만 하자고 해도 주변에 ‘덕후’급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한 학술서로 보는 것은 맞지 않는다. 시대에 관한 이야기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도 혼란의 세대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기 일 수도 있다. 서로 항상 올바른 자세를 지녔단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목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한 책이다. 단순히 넘어가기엔 우리의 세대가 그 시대와 동일 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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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는 브레히트의 유명한 시 <후손들에게>에서 가져온 문구로 저자 한나 그랜트는 존재하는 것을 노출시키지 않고 은폐하는 언어, 오래된 진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진실을 무의미한 사소한 것으로 폄하하는 도덕적인 또는 다른 형태의 권고 때문에 빛을 잃게 될 때 어두움은 찾아온다고 한다. 책은 이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자신의 빛으로 조금이나마 밝히려 노력했던 사람들을 공유하고 있다. 소개한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면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모두 같은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그 시대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전제하에 글을 썼다. 책에서는 총 열 네명의 사람을 이야기하는데 레싱, 로자 룩셈부르크,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카를 야스퍼스, 이자크 디네센, 헤르만 브로흐, 발터 베냐민, 베르톨트 브레히트, 발데마르 구리안, 랜달 자렐, 마르틴 하이데거, 로베르트 길벗, 나탈리 사로트, 위스턴 휴 오든이 그 주인공이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웠던 철학가, 사상가들의 이름이 많이 보여 반가웠고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이 책을 번역한 홍원표 한국어외국어대학교 교수의 ‘어두운 시대의 세계를 밝히는 빛: 우정, 정치적 사유 그리고 후마니타스’란 여는 글로 시작했는데 저자 아렌트와 소개된 사람들의 실존적 소통을 통해서 우정의 본질을 확인할 수 있다며 가장 가까운 친구란 공적인 것과 관련해 두 사람이 이익과 손실을 공유하는 투쟁에서 서로 씨름하는 친구라는 표현이 굉장히 인상깊었고 몇 번 생각하고 곱씹어야하는 철학, 사상의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이해하고 그 사람들의 깊이있는 철학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나는 세계의 이러한 현상을 억지로 알려 하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는 지금까지 수없는 문명이 유혈과 공포가 사라진 문명을 갖게 될 날을 이 지구를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나는 우리의 지구가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우리가 100만 번째 또는 400만번째의 생일잔치까지 이러한 선물을 가져올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지구는 마침내 우리에게 최후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생각이 깊지 못한 우리를 벌 줄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쇠퇴해가있으며 역사를 폐허의 장소로 본 베냐민은 1935년 파리에서 보낸 편지에서 위와 같이 썼다. 이 구절은 현재 2019년에도 의미심장하고 되새겨들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은 쉬운 책을 아니지만 매일 조금씩 조금씩 과거를 살았던 사람들과 이야기한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분명 지금의 시대를 보는 시각도 조금 더 깊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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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은
나는 어떻게 기억 될까?
내용은 어려웠지만 문장은 쉽게 읽혔던 책.
하루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삼일 정도에 걸쳐서 읽느라 조금 힘들었다..
다음에 더 집중해서 읽어봐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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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반의 유럽은 그야말로 어둡고, 절망적이며 피비린내 나는 시기였다. 1914년부터 4년 동안 이어진 제 1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리고 1929년에 닥친 대공황은 인플레이션, 대량실업, 그리고 혁명적 불안을 야기했으며, 1939년 발발한 제 2차 세계대전은 추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럽 전역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 시대는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었고 어떤 행동도 의미를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개인을 무의미한 축제로 몰아넣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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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에 빛을 밝혔던 사람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은 독일 출신 현대의 대표적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의 저서이다. 여기서 ‘어두운 시대’란, 브레히트의 시 「후손들에게」에서 빌려온 문구로, ‘어두운 시대’를 정치적 은유로 수용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1968년 출간한 영어본에 수록된 열한 편의 에세이뿐 아니라, 1989년 독일 피퍼 출판사의 개정판에 수록된 네 편의 에세이까지 포함되어있다. 레싱부터 시작하여 로자 룩셈부르크.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카를 야스퍼스, 이자크 디네센, 헤르만 브로흐, 발터 베냐민, 베르톨트 브레히트, 발데마르 구리안, 랜달 자렐, 마르틴 하이데거, 로베르트 길벗, 나탈리 사로트, 위스턴 휴 오든의 인물들에 대한 논문, 에세이, 연설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렌트가 이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이유는 이들이 이 시대의 어둠을 각자의 영역에서 밝히는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시대정신을 대변하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시대의 빛이 되고자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했다고 아렌트는 밝혔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은 ‘어두운 시대’에 있었다. 아렌트는 어두운 시대가 세계대전 시기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반복해 등장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때 나오는 어둠은 지난 세기 공적 불의가 대변자들의 교묘한 은폐와 정당화에 의해 보이지 않게 가려졌다는 의미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가장 어두운 시대는 전체주의 정치가 전 세계를 공포, 무질서, 혼돈으로 몰아넣었던 시대이다. 그리고 그 어둠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자유를 억압한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나는 한 사람에 주목을 해보려한다. 사실 이 책을 읽다가 다들 낯선 이름들과 더불어 이해하기 어려운 사상들이 나열되어있어 읽다가도 난관에 봉착한 적이 많았는데, 아는 이름이 딱 나와서 어렵지만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부분이 있다. 바로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독일의 극작가 겸 연출가이며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인물로 아렌트는 그와 정신적 왕래를 한 덕분에 그의 시어를 정치적인 은유로 수용한 것이었다. 사실 예전에 나는 그의 시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처음 읽고, 파블로 네루다처럼 낭만적이고 애틋한 ‘연애 시’를 주로 쓰는 시인인줄로만 알았다(...) 아니, 얼마나 그대를 사랑하면 그것에 살해될까 떨어지는 빗방울마저도 두려워하면서 길을 걷는단 말인가! 이는 한 번 읽어보자마자 감탄을 했던 몇 안 되는 시였다. 사족은 넘어가서 아렌트의 글에 따르면, 브레히트는 “무엇보다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만 하고, 모든 사람이 침묵할 때 침묵할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시인”이었다.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던 해에 16세 였으며 전쟁이 끝나는 해에 위생병으로 징집되었는데, 그에게 초기 시작(詩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전쟁 그 자체보다는 전쟁으로 나타난 세계였다. 4년간의 파괴는 세계를 말끔히 씻어버렸으며, 그 폭풍은 모든 인간의 흔적, 즉 문화적 대상과 도덕적 가치를 포함하여 사람들이 지킬 수 있었던 모든 것을 휩쓸어 갔다. 그리고 ‘어두운 시대’, 즉 전후 세계의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대지는 브레히트 초기 시에 반영되고 있다.
객관적으로 이 책을 본다면, 한나 아렌트의 책을 처음 입문하는 사람이거나, 배경지식이 아예 없다면 이 책을 읽는게 조금은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조금 읽다가 ‘너무 어렵네’하고 책을 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들인다. 그 ‘빛을 밝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어두운 시대’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필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후손들에게(An die Nachgeborenen)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1898-1956)
I
참으로, 나는 어두운 시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 없는 말이란 어리석다. 매끈한 이마는 무감각함을 드러낸다. 웃는 이는 무서운 소식을 미처 듣지 못했을 뿐이다.
어떤 시대인가, 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범죄가 되는 시대는, 침묵은 그렇게 많은 불의를 담고 있기에. 저기 느긋이 길을 가는 이는 곤경에 빠진 친구들에게 이르지 못 하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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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정치체제나 정치적 사건이 아닌 특정 인물들의 삶을 주제로 독자들에게 전기와 같다는 인상을 주지만 완독을 하고 두 번째 읽고 있는 중인데도 내용이 어려운 부분이 많다. 1955년부터 1968년 사이에 출간 된 연설문과 논문, 에세이들로 구성 된 시인, 작가, 철학자, 혁명가 그리고 성직자 들로 구성 되어 있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은 찰학자 아렌트의 표현으로는 "시대정신의 대변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두운 시대에 빛을 밝히려고 했던 인물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두운 시대는 역사 속 어느 한 시기를 가리키는 것일까? 싶지만 어두운 시대는 세상이 만들어져 사람들이 살아오기 시작한 이후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분부터 들어난 뉴스 속 이야기까지 수없이 많은 어두운 시대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이유는 어두운 시대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밝은 빛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으로 한나 아렌트는 인물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세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시대의 움직임에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언급하고 있어 인물의 자서전을 읽음과 동시에 그들이 세상에 미친 영향까지 파악해야하니 내용이 어렵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듯 정치체제나 정치적 사건과 같은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속 인물들이 '어두운 시대'에 어떠한 영향을 받았고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지를 로자 룩셈부르크,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 카를 야스퍼스, 이자크 디네센, 헤르만 브로흐, 발터 베냐민, 베르톨트 브레히트, 발데마르 구리안, 랜달 자렐, 팔순의 마르틴 하이데거, 로베르트 길벗, 나탈리 사로트, 위스턴 휴 오든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은 이야기의 시작 전 각 인물에 대한 사진과 요약된 전기를 정리해놓았다. 한나 아렌트의 서술 그대로만 보면 전기임에도 철학적인 생각과 시대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독서가 쭉 이어지지 않고 중간중간 자료를 찾아보며 책을 읽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져 아쉽기만 하다. 심지어 '어두운 시대'라는 용어 자체가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은유적 표현으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유럽 국가들에 존재했던 어두운 시대를 다루고 있어 조금은 무겁지만 아렌트와 등장인물의 만남과 관계는 이 어두운 분위기에 한 숨 돌리고 갈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한나 아렌트의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유대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계가 되어 있어 유대인으로 살아야 했던 현실의 고통과 어두운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사상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으며 더불어 15명의 인물의 소개 속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아렌트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이자크 디네센에 관한 에세이에서 두 여성의 지적 발전에 대한 열정을 부각시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살며시 드러내고 있다. 아렌트는 로자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오히려 로자와의 만남은 어머니인 마르타와 남편인 블뤼허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블뤼허는 이 반란에 직접 연루되었다. 따라서 아렌트는 남편을 통해 로자를 알게 되었으며, 이후 네틀의 로자 룩셈부르크 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처음 읽을 때는 시대 속 인물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시대의 배경과 그 안에 담긴 철학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문장이 너무 어렵고, 번역의 의미가 맞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들이 많아 오히려 기존에 읽었던 철학도서보다 좀 더 심오하고 헤비하게 느껴지는 바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읽어야 각 인물의 전기와 한나 아렌트의 관계를 연결시키고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지 고민된다. 어쩌면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단어의 의미 하나하늘 파악하고자 하는게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까 '-'? 재미가 없는 책은 아니지만 빠르게 휙휙 읽어나가기엔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한 내용들이 머릿 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어두운 시대라는 것 자체가 과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위치는 과거의 유대인으로부터 언급되었지만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어려운 책이지만 미래에도 존재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글자 한글자 의미를 가지고 정독 해봐야지. (오랜만에 멘붕에 빠지는 책을 만난 것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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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와 시대의. 사람들에 대해 가장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도서입니다. 철학을, 한나 아렌트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한 출판사의 노력이 돋보이는 도서입니다. 인물과 역사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입니다. 이 시리즈가 좀 더 다양해지길 바랍니다. 특히나 길벗과 관련된 내용은. 제게 있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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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나 아렌트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당신은 이 책 제목을 보고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마치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어두운 시대에서 자신의 신념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침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떠오를 수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총 15명의 인물은 모두가 슈퍼맨처럼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지도를 갖고 있거나, 그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개인적 신념을 어두운 시대에 굽히지 않고 저항한 인물들로 우리는 그들을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를 지향해야 할지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다만, 이 책은 당 역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이라면 어려울 수 있다. 책에서 나오는 시대는 전체주의가 태동하고 활동하던 시대로 전체주의, 그리고 유대인 박해 사건 등에 대한 배경이 부족하다면 어려울 수 있고, 배경이 있더라도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 나도 의뭉스러웠다. 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을 사람들은 왜 읽어야 하고, 읽으면 어떤 도움이 될까에 대해서 고민해보았고 그렇게 한 번 시도해보았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 영역 가운데 사적 영역을 '어둠의 영역'으로 묘사함으로써 어둠이라는 시어를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P.33
사실 어둠이라는 시어는 분명히 '숨김'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근대는 숨김을 통해서 친밀성을 획득할 수 있고 숨김이 없어진다면 오히려 친밀성으로 얻은 무언가의 고귀성을 상실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어둠은 부정적 의미로 표현되어 공공영역이 신뢰성을 상실한 상황을 의미한다. 하지만 '어두운 시대'는 은유이고,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통찰하기 나름에 따라 뜻은 달라진다. 나는 레싱 부분을 가장 주의 깊게 읽었고, 그 때문에 레싱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다.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간략히 이야기할 것이다. 제1장 어두운 시대의 인간성 : 레싱에 관한 사유 레싱은 극작가이자 평론가로서 독일문학·연극을 촉진시킨 시조이다. 위키백과 레싱은 목자의 아들로 태어나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나는 이 책에 쓰인 그의 의견 중 하나가 크게 마음에 와닿았는데 "우리를 합리적인 기독교인으로 만든다는 구실 아래 우리를 비합리적인 철학가로 만들고 있다"이다. 또한, 《종교와 철학이 모두 세계 속에서 자기 장소를 가지되 "각기 자신의 칸막이 뒤에서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개별적인 장소를 지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p.72》 나는 이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종교와 철학이 대척점을 가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적 논증으로 신앙을 강제하려는 것이 아닌, 즉 무언가 해결하려 하는 강박관념에 매이지 않고 어쩌면 모순된 상태에 놓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추론이나 궤변 또는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사유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의 폭정이 정통 학설의 고수보다 자유에 훨씬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p.73 나는 개인적으로 관용을 가치관으로 삼는 입장으로서 동의한다. 무언가 설득력 있는 말로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상대방을 압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이는 이 격언과 동일하다. "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은 옳지 않다. 한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 진리는 오히려 사유의 중단을 낳는다.(그것이 진리일지라도)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 넓고 다양한 세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이동의 자유'의 기반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 스스로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바를 말하게 하라. 그리고 진리 그 자체는 신에게 맡겨라! 「하인리히 라이만 루스에게 보낸 레싱의 편지」(1778년 4월 6일), 『전집』 제18권, 269쪽.
나치 시대의 정신적 망명 내가 알기로 독일은 전범 국가였던 과거에 대해 통렬히 후회하고 있고, 이번에도 사과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러한 독일 또한 1933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이 마치 존재하지 않기라도 한 듯이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이것을 한나 아렌트는 '합리적인 태도를 발견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는 결코 과거를 극복할 수 없으며, 과거를 극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감내하는 것이며,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글을 보며 일본이 떠올랐다. 일본이 대한민국에 자행했던 수많은 악행들의 진상을 지금 외면하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진상을 외면하고 감내하지 않기 때문에 과거사 해결이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일본이 과거에 대해 정확히 바라보고 감내하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과거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바라봄으로써 인내할 것이다.
3장에 나와있는 안젤로 주세페 론카리는 1958~63년의 교황으로 요한 23세로도 불린다. 그는 굉장히 탈 권위적인 인물로 온화하고 겸허하였다고 한다. 교황이 자선사업비를 삭감해야 종업원의 임금을 충당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우리는 자선사업비를 삭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는 자선에 앞서는 것이기……때문입니다."라고 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그가 탈 권위적인 인물이었음을 밝히는 반증이기도 하다. 카를 야스퍼스 "…따라서 평화 상은 (중략)…역사를 통해 항상 모험적인 불확실한 과정을 내딛는 데 헌신하는 사람으로부터 아직 분리되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작품에 수여되기도 합니다. …" 독일 출판서적상협회가 카를 야스퍼스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던 1958년 아렌트가 행한 연설문 중 일부이다. 이는 카를 야스퍼스가 항상 모험적인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자신의 신념을 불굴의 의지로 지켜나가고 책임을 다했음을 알린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길 책임이란 증명을 하고 애매한 것을 명확히 하며 어둠을 밝히는 것을 천성적으로 즐거워하는 데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고 했다. 그는 항상 이 책임을 다했고 그는 이것을 조명이라고 은유하였다. 그는 항상 그의 후마니타스를 자랑스럽게 밝혔다. 정치인과 다르게 철학자는 자기 민족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 앞에서 자신이 대답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책임의 무게를 내려놓고 싶은 욕구에 유혹되지 않았다. 이는 그에게 무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주어진 시대가 제시하는 실재에 대한 경험의 부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어두운 시대에서 제시하는 것보다 자신의 책임의 중요성을 더 높게 상정하고 그의 쾌활한 발랄함을 이어나갔다. 사실 나는 지금의 대한민국이 어두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기술·미디어의 고도화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는 개인이 표현할 수 있는 범위를 오히려 좁히고, 획일화된 의견을 강요하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할 인터넷에서 오히려 수많은 정보들로 인해 시야각이 좁혀지고 억압된 사회 풍토로 인해 개인은 억압되고 있다. 나는 야스퍼스를 보면서 애매한 것을 명확히 했다는 부분이 대단히 존경스러웠다. 실 사회를 살아감에 있어 애매한 부분을 명확히 하면 그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애매하게 두면 편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소신을 지켰고 소신을 지키면서 고독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그의 벗들과 함께 이성적으로 직관하였다. 나는 그의 쾌활한 발랄함을 본받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문단 하나하나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끝없이 되돌아갔다. 나중에는 이러한 과정이 지쳐서 8장부터는 편한 마음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꼭 완독해야겠다는 상대 없는 승부욕이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해 가지 않는 부분들이 정말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모르니 위키백과를 통해서 보더라도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이러한 부분들은 향후 내가 더욱 독서를 함으로써 채워질 것이며, 그 후에 다시 이 책을 본다면 얻어 가는 것이 또한 있을 것이다. 마치 어렸을 때 어린 왕자의 느낌과 지금 읽는 어린 왕자의 느낌이 다르듯이 말이다. 한길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 덕분에 좋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오래간만에 사피엔스 이후로 두꺼운 책을 읽어서 상쾌했다. 물론 읽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마치고 「우리는 왜 한나 아렌트를 읽는가」를 읽을 것이다. 그 책을 보고 이 책을 생각하면 또 느낌이 다르겠지. 이것이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 항상 무언가 계속 배우는 것이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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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상징되는 20세기 전반기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일종의 인물평전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아렌트는 20세기 전반을 ‘어두운 시대’로 정의한다. 공적인 삶을 상징하는 ‘밝음’의 대척점에 있는 어둠은, 모두가 사적인 것에 매몰된 상황에 대한 은유다. 역자 홍원표에 따르면 아렌트에게 어둠이란 가치판단이 배제된 중립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공적인 삶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던 고대 그리스로부터 지대한 영감을 받은 아렌트가 과연 어둠에 대해 일말의 부정적인 평가도 남기지 않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특히나 그가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를 마주했고, 전후에는 《뉴요커》 기자로서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취재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러한 어두운 시대에 아렌트가 집중한 건, 다름 아닌 ‘사람’이다. 사람이 백만 명 단위로 죽어나가던 시대에 사람이라니, 지나치게 한가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렌트가 조명한 사람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온 세상이 사적인 것에 얼굴을 박고 있던 때, 이들은 용감하게 공적인 것을 향해 목소리를 냈다. 가톨릭의 개혁을 추구한 보수적인 리버럴 발데마르 구리안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좌파 시인 그룹을 이끌었던 위스턴 휴 오든까지, 사상도 행적도 가지각색인 아렌트의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에 역자의 섬세하지 못한 번역까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읽어가는 과정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쓴 약을 먹어가듯 두꺼운 책을 꾸역꾸역 읽어가며, 어둠으로 가득 찬 20세기를 비추었던 등불과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위로받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20세기 전반 유럽의 이야기인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을 읽으며, 난 엉뚱하게도 20세기 후반 한국을 떠올렸다. 최인훈이 『광장』에서 이명훈의 입을 빌려 이야기했듯,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의 간판을 내건 신생국 대한민국 역시 광장(公)은 없고 밀실(私)만 빼곡한 사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전반의 유럽과 마찬가지로, 20세기 후반의 한국에도 밀실을 젖히고 나와 기꺼이 광장을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학인 최인훈과 김수영, 종교인 함석헌과 문익환, 정치인 장준하와 김대중, 언론인 한창기 등이 바로 그들이다. 한국의 어두운 시대를 밝혀간 이들의 역사 역시, 누군가가 써주었으면 싶었던 건 지나친 욕심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