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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 소설가의 영화와, OST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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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아마 고등학생 정도? 거실에 TV가 있었고, 바로 옆이 안방이었다. 안방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무셨다. TV와 안방 사이 거리가 짧았다. 어떤 영화였는지, 어쩌면 드라마였는지도 모르겠다. 밤 12시에 방영했다.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숙면에 방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소리를 잔뜩 낮췄다. 전혀 재미가 없었다. 끄고 자러 갔다.영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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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이야기다. 아마 고등학생 정도? 거실에 TV가 있었고, 바로 옆이 안방이었다. 안방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무셨다. TV와 안방 사이 거리가 짧았다. 어떤 영화였는지, 어쩌면 드라마였는지도 모르겠다. 밤 12시에 방영했다.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숙면에 방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소리를 잔뜩 낮췄다. 전혀 재미가 없었다. 끄고 자러 갔다.


영상은 기본적으로는 시각에서 받아들이지만 영화, 드라마는 청각 없이는 오롯이 이해하기 힘들다. 소리 없는 액션은 밋밋하고, 호러는 전혀 무섭지 않으며, 로맨스는 식상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의 부제 '소설가 오성은의 영화 소리 산문'은 지극히 존재해야 마땅한 책이라 하겠다. 영화는 원래 듣는 거다. 그런데, 의외로 이런 책은 드물다. 출판 변두리 종사자로서 느끼기에는, 음악에 관한 책은 정말 인기가 없거든. 대중음악 비평도 독자가 좁은데, 그보다 더 협소한 영화 OST 이야기라니... 나오기 참 힘든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출간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책이라 하겠다.


나는, 영화를 그리 즐겨 보진 않는다. 아마도, 연애 시절 현재 배우자와 함께 본 영화과 살면서 본 편수의 3/4 정도를 차지할 만큼, 영화에는 그다지 애정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나조차도 알 만한 작품인 <라라랜드>, <베티 블루>, <비포 선라이즈>, <아비정전>, <이터널 선샤인>, <너의 이름은(키미노 나마에와)> 등이 이 책에서 다뤄지는 영화다. 잘 모르긴 하지만,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뭐, 물론 문화산업에서 예술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나 자신의 미학관을 밝히자면, 임성순 소설가의 『잉여롭게 쓸데없게』에 동의하는 편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모둔 문화적인 행위들은 본질적으로 쓸데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꽤 오랫동안 그 쓸데없는 짓이 우리를 남과 구분 짓고 자신을 정의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왜냐하면 꼭 필요하고 생산적인 무언가는 모두가 하는 일이기에 우리를 타인과 구분 짓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 다름이 우리를 남과 구분하지만, 꼭 필요한 무언가 역시 우리의 일부다. 따라서 '다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음'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중요한 지표인 것이다.

따라서 취향만으로 한 인간을 정의할 수는 없다. 취향을 끌고와 타인의 감수성을 재단하는 것은 취향의 수용소로 그들을 쫓아냈던 오리자퍼들과 같은 방식으로 타인을 대하는 문화적 파시즘일 뿐이다. 쓸데없는 것들의 훌륭한 점 중 하나는 굳이 우열을 정하거나 우위를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 예술적 수준과 미학적 완성도의 차이는 있다. 하지만 반드시 더 뛰어난 것을 택할 이유도, 그것을 택했다고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임성순, 『잉여롭게 쓸데없게』, 행북, 238쪽)


다시,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으로 돌아가자면. 이 책은 소설가 오성은의 인생 영화, 인생 OST를 공개한다. 각 챕터마다 톤이 미묘하게 다르다. 오롯이 작품과 음악에 관해서만 쓰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작품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본인의 삶과 사색에 관해 더 많이 쓴 대목도 있다. 영화를 별로 안 본 나로서는, 후자에 더 몰입해서 읽었다. 씨네필로 보낸 청춘, 10대 스쿨밴드에 헌신한 에피소드 등.


영화음악이 감미롭듯, 오성은의 산문은 리드미컬하다. 때론 과하게 감성적이라 느끼하게 읽힐 때도 있었지만, 코로나 시대 영화관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지금. 가성비 좋은 와인 한 잔과 읽어가며, 넷플릭스에서든 어디에서든 볼 만한 영화 고전을 골라 봐도 좋겠다. 굳이 여기서 나의 논평을 덧붙이는 것보다는 책 속 문장을 옮기는 걸로 독서 후기를 마무리하기로.


* TMI. 영화는 그다지 즐겨 보진 않지만, 음악은 참 좋아한다. 책은 폐지로 내놓아도, CD는 절대 플라스틱 쓰레기로 내놓은 적이 없다. 나도 언젠간, 인생 음악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 지금은 일본 돌밴드 ZONE 베스트를 들으며 이 허섭한 독서 후기를 남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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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끝나면 파리로 가서 한 달여 머무를 계획이었고, 이후 2년만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급선회하여 다른 도시로 떠나거나 다른 직업을 구해 살아갈 수도 있었다. 어차피 이 도시에서의 길고 긴 여정도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삶이라는 게 대체로 그런 식으로 이뤄져 있다고 받아들이던 때였다.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계절을 보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26쪽)


어쩌면 모든 사랑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일어난 가장 강렬한 순간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육신은 가을볕처럼 길고 가늘게 지다 결국 으스러지겠지만 사랑의 순간은 그 상태로 남아 어딘가를 부유할는지도. (31쪽)


어쩌면 듣는 행위는 들리는 것과 듣고자 하는 것의 충돌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충돌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이 때론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건지도. (65쪽)


우산과 시집은 잃어버려도 좋다고, 누군가 말했다지. 우산을 주워든 이는 비를 피할 수 있고, 시집을 얻게 된 이는 내리는 비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테니까. (91쪽)

'너'와 '나'의 거리를 좁히는 첫 번째 방법은 이름을 묻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며, 세 번째는 기억하는 것이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부르고, 기억하는 일보다 더 아름다운 순간이 있었던가. (122쪽)


세상일에 뾰로통하고 고집이 세며 지기 싫어하던 철부지의 나는 영화를 통해 타인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타인의 목소리를 들었으며, 타인의 삶을 엿보았다. 또한 영화를 통해 친구를 만났고, 그들의 친구가 되었고, 결별하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세상을 통해 영화를 공부하던 나날이었다. (131쪽)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텅 빈 공간이 있고, 그것은 영원히 메울 수 없는 거리다. 아무리 가까운 부부라 할지라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여도, 그 간극은 대륙과 대륙을 갈라놓은 바다의 너비만큼이나 아득하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을 수밖에 없는 이 불완전한 존재들은 그래서 울음을 참는다. 울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148쪽)


문득 내가 두고 온 길들이 떠오른다. 집 밖은 모두 길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 슈퍼로 가는 길,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쌀집 옆으로 난 골목길을 지나면 짝꿍이 사는 집이 나왔고, 분식집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름만 불러도 당장 달려 나오는 친구네 집이 있었다. 내가 유년기를 거쳐온 길이란 나의 전부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커갈수록 그 길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승용차를 이용해 목적지에 도착하는 길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의 그 '길'도 흐릿해져 가고 있다. 모든 것이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이다. (181~182쪽)


'꿈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깃든 매체'가 영화라는 저의 가설이 성립되는 지점은 '꿈은 재현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전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자 한계 아닐까요. 혹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어떤 지점이 아닐까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라라랜드처럼요. (202~203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20.11.28. 신고 공감 9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