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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러타이의 끝자락'에 이은 리쥐안의 두번째 산문집이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우선 멋진 제목과 예쁜 책 표지가 내 눈을 사로잡는다. 황금빛으로 물든 해바라기 밭!
하지만, 책표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는 드넓게 펼쳐진 황금빛 해바라기 밭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가득할 거라고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이 책은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에서 수로가 열리는 며칠동안 생존을 놓고 물 전쟁을 치러가며 해바라기 밭을 일구어가는 고통스럽고 지난한 과정과 그 과정에서 보고 느껴지는 대지와 만물의 소멸과 생명력, 인간의 염원과 탐욕 등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고된 삶 속에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던 '아러타이의 끝자락'과 달리, '아스라한 해바라기 밭'은 유난히 작가의 버거운 삶의 무게가 여기저기 녹아있는 느낌이다. 곳곳에 숨겨져 있는 작가만의 독특한 유머 코드를 찾아내면 마치 보물찾기라도 한 것처럼 만면에 웃음이 지어지고, 여전히 따뜻한 시선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러타이의 끝자락과 다른 결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전작에서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툭하고 던져진 한두마디 글귀에 킥킥대며 웃다가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면, 이번 책은 읽는내내 작가의 버거웠을 그 시절 삶의 무게가 피부로 느껴져 애잔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누군가는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데 중국 그중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 황폐한 고비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고된 삶 따위에 관심을 갖겠냐고, 그것이 우리네 삶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과연 우리의 삶과 정말 무관할까?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 숲 사이로 새어나오는 무수한 불빛과 네온사인 들, 고개만 돌리면 어김없이 우리의 시선을 가로막고 서있는 빽빽히 들어선 아파트 숲이 쏟아내는 불빛들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휘황한 거리에, 나홀로 섬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느낌을 받아본 경험이 누구나 한번쯤은 있지 않을까? 내 주위의 모든 것은 휘황한 불빛에 쌓여 반짝이는데 유독 나만 그 안에 속하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홀로 맴돌고 있는 듯한 절망감이, 벗어날 길 없는 막막함에 숨이 멎을 것만 같은 절박함이, 다들 너무 빛나기에 나의 어둠이 더욱 칠흙같이 깜깜해 보이던 그 두려움이, 아무리 둘러봐도 흙먼지만 폴폴 날리는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고비 사막에 홀로 서있는 것과 얼마나 다를까?
작가는 그 절망감이, 그 절박함이, 그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고 흔들어대도 결코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혹독함 속에서도 희망을 캐낸다. 그 과정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고 그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이 책을 통해 무엇을, 어떤 희망을 캐낼 수 있을까?
- 책속으로 -
엄마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늘과 땅은 텅 비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옷도 한 벌 걸치지 않았다. 모든 길은 시원하게 트였으며 모든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물은 빛 가운데서 힘겹게 걸음을 떼며 나아가다 어둠 속에서 청신호를 내며 꼭대기를 향해 달려갔다. 물이 이 대지에 가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바로 해바라기 꼭대기였다. 이 해바라기 밭은 물이 지구를 돌고 난 뒤에 다다르는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장장 사흘동안 밤낮 없이 해바라기 밭에 물이 골고루 스며들었다. 온 세상이 촉촉하게 젖었다. 꽃망물 깊숙한 곳에 있던 여인은 드디어 세상으로 나갈 때 입을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선택했다. 이제 막이 열릴 차례였다. 대지는 전에 없던 적막에 둘러싸였다. 엄마는 유일한 관객이었다. 천 한 조각 걸치지 않고 장화 하나만 달랑 신은 엄마는 촉촉하게 젖은 채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엄마를 보지 못했다. 엄마는 가장 큰 선물이었고, 삽은 소중한 권력의 지팡이였다. 장화를 신은 엄마가 다다르지 못할 곳은 없었다. 엄마는 여왕처럼 당당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엄마에게 이때의 일을 전해들을 때, 엄마의 눈동자에서 찬연한 빛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온몸으로 광합성하는 광경이 그려졌고, 엄마 삶 전체를 관통하던 인내와 희망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p 26
황사가 왔을 때 땅집은 노아의 방주처럼 망망대해를 표류했다. 온 세상이 진동하며 포효할 때 유일하게 조용하던 곳이 바로 이 자그마한 어둠 속이었다. 모두가 이 어둠 가운데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대지 깊숙한 곳에 묻힌 것처럼, 지금 막 조금씩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는 것처럼. 황사가 지나고 난 뒤 엄마는 조심스럽게 통로를 막았던 담요를 벗겨 내고는 신대륙에 첫발을 내딛는 양 대지를 향해 걸어 나갔다. p 72
갑자기 내가 할머니의 세계에 너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는 진즉에 길을 잃었고 어떤 동행도 없었다. 할머니는 길을 잃고 천천히 죽음 쪽으로 다가가며 죽음과 화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저 할머니를 잡아끌며 무책임하게 죽음과 다투었다. 나와 할머니의 거리는 죽음과 할머니의 거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온종일 할머니가 살아가는 세월의 언저리를 배회했다. 이상한 건 그 세월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독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마치 누에고치의 일생 같았다. 나는 누에고치처럼 자기 안에 침잠하던 할머니의 삶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알 수 없는 세계를 방해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 일방적이고 세속적이며 이기적인 '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p 83
나는 곧 버려질 마지막 남은 해바라기 밭 가운데로 걸어가며 인류의 기원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역경과 장엄한 전설을 떠올려 보았다. 이제 이 별은 어쩌면 인류의 생존 여부를 전혀 개의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다 가운데로 사라져 버렸다. 평생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낸 외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 즉 자녀를 낳아 기르는 임무를 완수하셨다. 가족들에게 그 오랜 세월 인류가 쌓아 온 방대한 기억과 천 년을 이어 온 삶의 지혜,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옛날 이야기를 남겨 주셨다. 이것이 바로 삶과 문명의 계승이 아닐까. 할머니는 한 평생 세상에서 가장 약한 줄 하나를 잡아당기며 사셨다. 나는 그런 약한 줄 수억만 개가 아주 무거운 배를 끌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p 104
해바라기 밭 남쪽에는 물결 모양의 사막이, 북쪽에는 납작하고 까만 자갈이 깔린 고비사막이 있다. 나무 한 그루, 사람 한 명 살지 않는다. 하늘 위의 구름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황혼녘의 공기는 액체처럼 투명하다. 이곳에 만 번을 넘게 와도 감각은 무뎌지지 않고 완전한 고독만이 느껴진다. 나는 그 순간에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2천여 평의 땅에 드문드문 자란 해바라기의 줄기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벌어진 꽃받침은 병 속의 꽃처럼 가냘퍼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이 결국엔 당당히 아름다움을 꽃피우리라는 걸 알았다. 결국엔 황금빛으로 반짝이리라는 걸 알았다. 그것들이 계속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p 105
정말 아무도 없었다. 고비사막에서 한 시간을 걸어도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했다. 천만 년을 걸어도 사람 하나 만날 것 같지 않았다. 지나는 길에 있는 장막과 땅집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고 흙길 위에 발자국 하나 없었다. 사방팔방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마치 천만 년전의 지구로 돌아온 듯했다. p 125
토끼와 엄마 사이의 애틋함은 고독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드넓은 은하계가 지구를 따라 돌듯이 토끼와 엄마도 지구 한 끝자락에 자리한 해바라기 밭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엄마는 싸이후에게도 애틋한 존재였다. 그 애틋함은 엄마가 주는 안정감에서 오는 것이었다. 안정감은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기도 했다. 싸이후는 토끼도 애틋하게 여겼다. 엄마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토끼를 보여 주었을 때, 싸이후는 꿈결에 무언가를 만지듯 아주 천천히 입으로 살짝 토끼를 건드렸다. 이 생명체가 자기 자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었다. 싸이후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아름답다는 걸 아는 듯했다. p 150
미래의 집은 그저 미래에나 우리를 보호해 줄 모양이었다. 지금 나에게 집이란 고작 너저분하게 어질러진 바닥이 전부였으며, 그 순간 내가 처한 고생스럽고 정신없는 상황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다. p 160
북방 엄동설한의 깊은 밤, 화로는 내가 살았던 낮고 어두침침했던 집의 심장이었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쿵쾅쿵쾅 뛰는 그런 심장이었다. 겨울밤에는 불을 쬐면서 책을 읽다가 화로 위에 올려 둔 찐빵을 뒤집었다. 찐빵은 금빛으로 노릇노릇 익어가다가 살짝 갈라졌는데 그 안에서 새하얗고 부드러운 소가 나왔다. 어두운 밤, 석탄은 까맣고 집 안의 들보 위는 더 어두컴컴해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찐빵의 하얀 빛이 그 어둠과 대비되면서 세상 만물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였다. 찐빵의 구수한 냄새는 세상의 끝없는 추위와 맞서고 있었다. p 175
들판에서 해바라기를 심는 것과 돌멩이를 캐는 것이 뭐가 다른가? 모두 약탈이었다. 굴착기로 약탈하고 대량의 화학비료로 약탈하는 것이다. 대지라는 스펀지를 단단히 틀어쥐고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며 갈취하는 것이다. p 193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금빛은 꿀벌이 가져온 금빛이다. 그것은 끝없이 펼쳐진 금빛 해바라기 밭에 자석처럼 끌리듯 날아온 금빛 파편들이다. 작지만 생기 넘치는 꿀벌은 우리를 금빛으로 인도하는 열쇠다. 꿀벌이 금빛 세상의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꿀벌이 찬란하게 빛나는 이유는 달콤한 꿀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벌꿀 역시 금빛이다. 우리들 입속으로 들어가는 모든 벌꿀은 수많은 금빛 꿀벌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해바라기 꽃은 이 모든 금빛을 마주한 채 천천히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p 209
나의 하찮은 고민, 느닷없이 밀려오는 슬픔, 어쭙잖게 지키고자 했던 존엄이 느껴질 때면, 마치 내 삶의 존재 이유가 단지 그것들을 무한대로 확대해서 어떻게든 정당화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나는 부질없는 이 삶을 살아 내면서도 좀 더 오래 살기를 소망했으며, 의미 있는 삶이기를 바라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이 논밭을 마주하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밭에서 자라는 씨앗과 대지의 풍요를 찬미할 뿐이었다. 온 힘을 다해 모래 한 줌, 물 한방울까지 찬미하는 것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열정으로 가득했고, 이를 분출할 출구를 찾아 헤맸다. 출구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 들판은 사방이 꽉 막혀 있었고, 우룬구강은 밤낮없이 무심하게 흐를 뿐이었다. 내 목은 자연을 찬미하느라 쉬어 버렸는데 마음속 공허는 그대로였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다. 외지고 조용한 곳에서 지낸다 한들 내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나는 늘 부산스러웠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세계와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의 푸른 풀은 하늘을 향해 자랐고, 파충류는 대낮에는 해를 밤에는 달을 따라다녔다. 투명한 강물 같은 바람과 차가운 유성처럼 쏟아지는 비, 모두가 있어야 할 곳에서 의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오직 나만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안절부절못하고 조급해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슬픔을 끄집어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나의 연약함을 완전히 드러낸 채 이유 없이 가슴을 치고 발을 구르며 미친 듯이 울부짖어 보지만 들어 주는 이가 없었다. p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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