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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맥 메카시의 소설 '모두 다 예쁜 말(馬)들'을 베껴와 '모두 다 예쁜 말(言語)들'로 제목을 붙여도 좋을 에세이다. 다양한 비유와 풍부한 표현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참 곱다. 흔들리는 전철안보다 이른 아침, 일찌감치 회사문을 밀고 들어가 앉아 조용히 정독하면 좋을 책이다. 재차 읽고 소리 내 말해보고 싶은 구절들이 여럿 있다.
. 필자는 분명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활자로 인쇄된 그녀의 따뜻한 기운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 뒤돌아가는 외로운 이의 뒷모습을 품어주기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안연하고 맑게 재잘거리는 이의 말에 귀 기울여도 주며 주변인을 비롯, 독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가닿을 것이라 확신한다.
. 주옥같은 표현들을 위해 많은 공을 들인 필자의 노력이 엿보인다. 처음 본 단어도, 새로이 의미를 알게 된 단어도 많았다. 자신의 귀를 자른 고흐의 행동을 '고수레하다'로 표현한 것도 신선했다. 허나 조금은 과하다고 생각된 부분도 있었다. 물 위에 떠 물살 따라 움직이는 종이배에 억지 손헤엄으로 길을 내주고 있는 느낌이랄까. '멀어진 실체를 찾으려는 게임보다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에 유연한 시선을 보탤 일이다' '개인의 자발성을 묶어놓은 채 획일화된 질서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려 하는 면이 없진 않았지요' 같은 표현이 그랬다. '현재 마주한 것에 우선할 일이다' '주체성을 존중하기보다 획일화된 기준을 부여했지요' 정도로 간결하고 담박해도 좋았을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 문학적 감성이 풍부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책 속에서]
적당한 거리가 확보되어야 현명한 소통에 이를 수 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입니다. 시공간적으로 너무 가까운 거리는 느긋하고 성숙한 관계를 해치는 훼방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략) 흔히, 믿었던 상대에서 실망감을 맛보면 우리는 '초심을 잃었다.'라고 표현합니다. 곰곰 생각하면 그 누구도 초심을 잃은 적 없는데 말입니다. 초심은 한 가지가 아닐뿐더러 거기 그대로 있는 데다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이런저런 초심들이 사람 안에 살지만 우리는 상대에게서 보고 싶은 한두 가지만 봅니다. 좁은 거리감에서 오는 기대감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이지요. 초심을 잃은 건 상대가 변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믿음이나 환상을 가진 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자신의 환상을 상대에게 투사해 초심을 잃었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지요. 내 환상이 걷힌 자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상대의 초심이 되는 것입니다. 기대라는 가지에 달아버린 나의 환상이 언제나 문제인 것이지요. 이 모든 게 너무 가까워서 생기는 심리적 착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