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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지원] 여기 두 소녀가 있었다. 성인이 되었으나 행복을 모른채 살아가는 노라와 모라.소설은 노라와 모라의 시선으로 각각 보여준다. 한때는 가족이었다가 이제는 타인이 된 두 사람. 노라의 아버지는 급사로 돌아가셨다 엄마와 같이 살다 어느 날 모라와 모라의 아버지와 같이 살게 되었다. 사실, 노라는 사근한 소녀도 아니고 타인에게 쉽게 어떤 표현을 하지 않는 소녀였다. 물론 성인이 된 지금도 그렇지만 말이다.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시간은 겨우 7년만에 끝이 났다. 그렇게 노라는 계부 그리고 모라와 헤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모라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때는 그래도 같이 살았으니 전화를 했노라고 말이다. 노라는 거절을 할까 하다 모라와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한때나마 아버지라고 했던 사람을...아니 자신조차 왜 모라와 같이 장례식장으로 가는지 모르겠다. 가는 내내 모라에게서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어떻게 살았는지 왜 20년 동안 연락을 안하다 이제서야 연락을 했는지...자신의 엄마를 그저 엄마라고 부르면서 안부인사를 하는 모라를 보면서 노라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행복과 너무 인연이 멀었던 두 소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그저 짠하다. 모라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인쇄소가 부도가 나면서 모라와 아버지는 결국 노라와 엄마를 떠났다. 이혼이었고 노라의 엄마는 오히려 이혼하기 잘했다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그래도 한때나마 가족이었을 텐데...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모라에겐 엄마가 없다 어느 날 홀연히 가족 곁을 떠난 엄마 그렇게 아버지와 둘이 살았으며 어느 날, 엄마의 존재가 나타났다. 그러나 모라에겐 한없이 파고들고픈 존재가 아니었다. 어릴 적 자신들이 겪으며 살았던 노라와 모라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면 행복이 존재했나 싶다. 모라는 아버지와 다시 둘이 살게 되었으나 그후 16년 동안 고아나 다름없이 살았다. 아버지가 자신을 속인 사람들을 잡는다면서 나갔으나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오히려 노라는 엄마라도 있었지 모라에게 유일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사라졌다. 아버지의 장레식에서 모라는 가족이 아닌 타인으로 갔다. 노라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그 후 노라와 많은 얘기 대신 그저 오는 동안 모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모라의 연락처를 손바닥에 적었을 뿐이었고, 노라와 모라는 끊어졌던 인연이 ... 다시 한번 삶에 용기를 얻는다. 다시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두 소녀 아니 성인이 된 두 여인의 이야기 [노라와 모라]. 고요하면서도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 도서였다. |
![]() 노라와 모라 책 제목만 보면 외국소설일거라 생각했는데 노라와 모라는 김선재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이었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지 무척 궁금한 상태로 책을 읽어내려갔다. 언젠가부터 소설보다는 비문학 쪽 책을 많이 읽게 되어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영하, 히가시노 게이고 신작과 고전 문학을 제외하고는 소설 책을 잘 펼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김선재 작가님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인물의 내면과 상황 묘사를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는 분이라 생각된다. 이야기는 술술 읽히는데 자꾸만 가슴 속이 울컥해지고,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엄마와 딸의 관계, 재혼 가정에서 만난 두 아이의 관계를 보며 내가 몰랐던 인간 관계도 있겠구나, 싶었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터치로 인물들의 관계를 그리는 김선재 작가의 이 전 작품들도 조만간 찾아 읽어봐야겠다!
![]() 독특하게도 글자가 초록색으로 적혀있길래 어디까지 초록색인지 찾아보았다. 거의 중간 무렵부터 검은색 글자로 바뀌는데... 초록색은 노라의 이야기가, 검은색은 모라의 이야기가 적혀있다. 노라는 자신의 특이한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 설명하며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성은 노, 이름은 라인 노라는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인데 '라'는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를 뜻한다고 한다. 이 이름에도 사연이 있었는데 중국집 주방장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드디어 가게를 차릴 생각에 풍수지리 책을 열심히 보던 중, 거기에 나온 돌배나무에서 따와 딸 이름을 지어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중국집을 차리지 못하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신다.
노라의 엄마는 딸에 대한 애정이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너만 없었어도...'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말하고, 딸에게 살가운 말 대신 욕을 한다. 엄마는 노라에게 말한다. '나에게도... 내 삶이라는 게 있어.' 엄마라면 으레 모성애를 떠올리지만, 노라의 엄마에게서는 그 어떤 모성애를 찾아볼 수 없다.
![]()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해서였을까. 노라는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지도, 맺을 생각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철저히 혼자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누군가와 함께 살았었다고 느끼는 시간이 있다. 바로 모라와 살았던 7년이다. 이직한 회사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하던 노라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어린 시절에 7년을 같이 살았지만,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모라였다. 어느 날, 갑자기 노라의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모라라는 자매가 생겼다. 노라와 모라는 이름만 비슷했지, 성격은 정반대였다. 노라의 기억 속에 모라는 살갑고, 정이 많은 아이였다. 7년 간 함께 살았지만, 가정이 깨지면서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모라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만난 노라와 모라. 노라 입장에서 본 모라와 모라 입장에서 본 노라는 큰 간극이 있었다. 노라가 느낀 모라는 새엄마한테도 살갑게 굴고, 항상 밝은 아이었는데 그 모습은 모라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모라의 엄마는 어린 자식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 이후, 혼자 먹고 씻고 자고 놀 수 있는 아이가 되었지만,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로 가득하다. 그리고 새 가정이 생겼지만, 자신의 아버지에게 데면데면하는 노라가 밉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노라의 태도에서 늘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쓸쓸하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서 가슴 한 켠이 저렸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처 입고 어른이 되어서도 어느 한 곳 의지할 데 없이 살아가고 있는 노라와 모라. 그러나, 한 때 같이 살면서 느꼈던 따뜻한 기억이 있기에 둘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소설을 읽으며 새삼 느껴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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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살아도 여전히 처음인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108) "
두 소녀, 그리고 그녀들이 자라나 두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노라, 곤륜산에서만 자라는 돌배나무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노라와 모라,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모라. 이 둘은 7년동안 자매로 함께 살았다. 초등학교 때 노라의 엄마와 모라의 아빠가 재혼하며 동갑내기 자매가 된 두 사람은 20년만에 모라의 연락을 통해 재회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가 다시 헤어지게 되면서 둘은 다시 타인이 되었지만, 어느 한 때 이들이 가족이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을 묶어두는 질긴 연이 되어준다.
" 욕하기를 그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배운 건 욕뿐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온갖 종류의 욕을 그 절벽 위에서 내질렀다. 미워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의지로 움직여지는 건 아니었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22) "
노라는 알 수 없는 여자다. 노라가 어딘가 결여된 듯한 인상을 주는 까닭은 노라의 엄마에게서 비롯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예쁜 아이, 그러나 그 마저도 무심한, 타인의 감정 앞에서 뭘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으로 자라난 노라를 모라의 시선으로 보며 질투했다. 노라는 엄마에게서 항상 상처를 받아왔지만 모라의 시선에서는 그런 엄마도 노라를 모라보다 더 챙겼다. 모라 아빠의 손을 외면하던 노라와 노라 엄마가 노라에게 쥐어주던 용돈을 모른척해야 했던 모라. 자꾸만 모라에게 마음이 더 쓰이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근데.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숨을 쉬면서도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번진 루주 자국을 거즈 손수건으로 정리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나에게도..... 내 삶이라는 게 있어.(52) "
부모님이 사실은 나와 다른 우주를 가지고 있는 별개의 존재라는 사실은 가끔 너무 외롭다. 노라의 엄마가 너무나 차갑게 보이지만 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본다. 어린아이에게는 생존의 위협이나 다름없을 말이겠지만 지금 나이에서 보니 자신의 삶이 있다는 부모의 말이 아직도 씁쓸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이제와 문득 노라와 모라 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시선도 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두 사람은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노라와 모라를 바라보았을지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 언제부턴가 나는 이해한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이 싫었다.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관심을 보이며 이해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걸 알고 난 뒤로는 더욱 그랬다. 정말이지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너무 쉽게 이해한 나머지 다소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건 이해가 아니라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해와 동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쪽이 훨씬 대하기 편하다.(100) "
처음엔 노라를 싫어하면서 노라에게 연락한 모라가 불편했다. 그런데 모라의 이 문장이 마음을 끌었다. 나는 누군가를 너무 쉽게 이해한 적 없었나. 타인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어느 순간들이 사실은 다 오해였고, 나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더욱 쓸쓸하게 만들어 배웅한 적은 없었던가 마음이 철렁했다. 그러고나니 모라가 노라를 바라보며 차곡히 마음에 쌓아두었을 순간들이 어쩐지 눈에 밟혔다. 둘다 애틋한 면이 있지만 모라가 더 마음 쓰이는 까닭은, 그건 아마 내가 타인의 시선을 모라만큼 의식해서이기도 할테다.
잔잔한 이야기를 읽으며 최근 장례식장에 다녀온 날 밤을 떠올렸다. 코로나의 여파로 찾아오는 이는 적었고, 검은 상복을 입은 지인은 술잔을 한두잔 주고받다 '아무도 내 마음은 모른다'는 말을 지나가듯 흘렸었다. 날은 너무 춥고 밤이 늦어 지나가는 차도 별로 없었던 그날 밤 헛헛한 배웅을 받으며 어찌할 바 모르는 위로를 건네야만 했던 때가 내가 노라같고 그가 모라같고 그랬던 것 같다. 노라와 모라가 함께 한 시간이 비슷한 상황이어서 그랬을까, 책을 읽으며 그날이 많이 생각났다.
다산북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공개 사전 독자를 모집하는 기획이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모험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데,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이 기획은 그러나 분명 나를 기쁘게 할 것이라는 어떤 확신을 내포한 불확실성이라 언제나 기쁘게 신청한다. 겉이 온통 하얀 가제본을 받아들고 묵직한 느낌을,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을 샅샅이 살폈다. 혹시나 누군가의 이름을 떠올리게 될까? 아직은 하얀 표지 위에 어떤 제목을 붙이고 싶을까 생각해보며 읽었다. 가족이 관련된 제목이 아닐까 싶었는데 두 주인공의 이름이 곧 제목이었다.
책을 읽고 난 뒤에 '노라와 모라'가 김선재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게됐는데, 이름이 익숙해 되짚어보니 전에 작가의 시집 '목성에서의 하루'를 읽은 적 있었다. 그래서 시인으로 알고 있던 탓에 '노라와 모라'를 쓴 김선재 작가가 맞나 아닌가 헷갈렸었다. 그때 인상적으로 꼽은 시가 '그린란드'라는 시였는데, " 환승역에서 알았죠 집은 떠나는 순간부터 사라지는 곳이라는 걸 " 이란 문장으로 시작된다. '노라와 모라'도 어쩐지 '그린란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은 것은 그 사이를 연관짓고 싶은 기분탓일까. 시집도 함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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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매의 이야기일까, 아니면 굉장히 친한 사이인 두 여자의 이야기일까. 나의 예상은 이 정도였다. 제목에서 풍기는 이름이 너무 닮아있지 않은가. 소설을 펼치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다, 어느 정도는. 노라와 모라는 7년을 같이 살았다.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의 뜻을 가진 이름, 노라. 어느 날 갑자기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삶이 팍팍한 이유가 노라 때문이라고 입에 달고 살았다. 어느 날 엄마가 만든 자리에 따라간 노라 앞에는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의 모라와 그녀의 아빠가 앉아 있었다. 사실 모라의 엄마는 오래전 집을 나갔고, 아빠는 먼 친척에게 맡겨둔 모라를 가끔 보러 올 뿐이었다. 그런 모라에게 엄마를 만들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아빠는 노라의 엄마와 재혼했다. 그렇게 노라와 모라는 7년을 자매로 같이 살고, 이 부부가 다시 이혼함으로써 남남이 된다. 한때 가족이었다가 남이 된 사이, 하지만 두 사람이 가족이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은 고백처럼 읊조리는 노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자기 이름의 뜻을 말하는 삼십 대 여자의 일상이 평범하다 못해 무료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살아왔을까. 가끔 들리는 엄마의 근황과 과거, 그녀가 기억하는 어느 순간의 이야기와 모라. 무엇보다 노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참 담백하다. 아니, 이건 건조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혹시 감정이 없는 사람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일상의 모든 것이 무심하다. 타인의 감정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그럴까 싶은 궁금증이 생길 무렵, 어쩌면 노라의 그런 성격은 엄마에게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라의 엄마는 노라가 자기 딸이 맞는가 싶게 냉정하게 대했다. 엄마의 가시 돋친 말 한마디로 수도 없이 상처받았던 노라. 하도 찔리기만 해서 그 부분이 단단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도 노라의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노라의 지금 모습이, 자기만의 감정과 생각에 빠져 살면서 타인에게 영향 받지않는 모습이 엄마 때문에 만들어질 것으로 확신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노라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는 주는 사람이 되고 만다. 교차로 진행되는 방식인데, 소설의 앞부분이 노라의 이야기였다면 후반부는 모라의 이야기다. 마치 그동안의 세월이 아무렇지도 않게 모라는 노라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면서 장례에 와달라는 말을 꺼내는 모라. 문득 노라가 되어 모라의 전화를 받는 나를 상상했다. 한때 자매였지만 이제는 남이 된 사이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나는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모라 아버지의 장례에 내가 참석해야 할 의무나 이유가 있을까? 이제 나에게 없는 존재들에게 나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 걸까. 수많은 물음표로 이들의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애쓰지만, 이 소설을 다 읽은 지금도 나는 아직 이들의 마음과 의도를 다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같은 상황과 사건을 두고 경험한 시간 속 기억에서 상대와 내가 전혀 다른 이미지를 꺼내고 있다면 그 감정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남는다. 그러니까 이런 거 말이다. 노라에게 엄마는 자기에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다. 엄마라는 존재의 개념을 새롭게 쓴 존재 같지만, 모라가 바라본 노라의 엄마는 그냥 엄마다. 똑같은 딸로 대하지만, 노라의 엄마는 모라보다 노라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곤 했다. 모라가 어린 나이에도 생존의 법칙을 알게 된 건 이런 소소한 장면들 때문일 것이다. 아빠가 결혼한 여자와 그 여자의 딸에게 미움 받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몸이 먼저 배웠다. 이들에게 잘못보이면 또 아빠가 맡겨놓은 시골의 먼 친척 할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모여 사는 게 지금도 앞으로도 좋을 거라는 어린 마음의 계산 같은 게 모라를 휘어 감고 있었을 테지. 엄마에게 상처만 받았다고 기억되는 시간의 노라와 그런 엄마마저도 부러웠을 모라의 마음이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비로소 들려오는 게 참 아프기만 하다. 부모는 부모대로 바쁘고 그들만의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어린아이의 마음과 생각 따윈 알려고도 하지 않은 순간들이 이기적인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부모의 정서적 학대와 방치로 유년기를 보냈던 두 소녀의 만남은 세월이 흘러서도 그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로 가슴에 묻고 산다. 헤어진 후로 서로 잊고 산 듯하지만, 사실은 문득 한 번씩 찾아왔던 사람으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노라와 모라는 서로를 보면서 자기에게 비어 있는 것들을 찾는다. 노라가 보는 모라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였다.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는 것은 물론이다. 모라의 주변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노라는 부러워했다. 자기에게 없는 성격이 저 아이를 빛나게 해주고 있다고 믿었을까. 사실 모라는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고 맞춰주며 사는 것을 배워야 했던 건데. 모라에게 노라는 새침한 아이였다, 정작 노라 자신은 상처받았다고 여기며 외톨이처럼,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하루를 지낸다고 생각했을 텐데. 울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해 본 적은 없다. 그 마음이 뭔지는 나도 잘 몰랐으니까. 다만 입술을 깨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가 뻣뻣해지면 덩달아 목이 아파져서 울고 싶어진다는 걸 알 뿐이었다. (68페이지)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모라의 시선과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심하게 살아가는 노라의 시선이 겹쳐지고 얽히면서, 이제는 다른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만든다. 다시 만난 노라의 무심하지만 담담한 말들로 모라는 이제 자기 자신으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고,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아가기보다는 이제는 스스로 마음먹은 대로 살아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다짐 같은 거. 노라 역시 타인에게 무심해지는 게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시간을 뒤로하고,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조금씩 배운다.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 이 두 여성의 미래가 희미하게나마 그려지기 시작한다. 왜? 왜요?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묻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마음이 있듯이,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들이 있다. 나는 모르고 그들은 아는 마음과 나는 알고 그들은 모르는 마음. 그 사이에 우리가 있다. 이유를 묻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마음들. 그건 아주 오래되고 사적인, 비밀들이고 그 비밀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덧붙이고, 이어갈 거다. 내가 묻고, 또 묻는 이유다. (186페이지) 아마 각자의 시선대로 느끼면서 생각하고 살아왔을 그녀들일 것이다. ‘나 때문에, 나만 아니면’이라는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며 생존의 순간을 버텨왔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아이였을 그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생각하면 아프기만 하다. 가족이기에 감당해야 했던 감정과 상처가 더는 계속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게 되는 소설이다. 결국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들의 삶은 다시 시작되는 셈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기억으로 존재하는 많은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같은 기억으로 남은 어느 날 밤. 태풍이 지나가던 그 밤의 기억은 두 사람에게 비슷하게 남았다. 모라가 노라의 이불 속으로 기어서 들어갔던 그 밤, 혼자가 아니라는 고요하고 따뜻함을 실감했던, 혼자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떠올렸던 그날의 기억.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을 그 순간이 그대로 전해진다. 힘들었을 모든 순간에, 나만 아픈 건 아니었을 거라는 위안이 되는 단 한 장면이 새겨진다.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우리는 모두 혼자인 시간을 살아갈 테지만, 그때마다 ‘함께’였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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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두 자매의 재회와 성장 이야기이다.
사실 이름만 듣고 외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페이지부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노라의 노魯가 성이고, 라는 돌배나무의 라?였다.^^;
느낌 있는 사진 속의 작가 김선재 님은
숭실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2006년 『실천문학』에 소설을,
2007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 『얼룩의 탄생』 『목성에서의 하루』,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누가 뭐래도 하마』,
연작 소설집 『어디에도 어디서도』,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 등 다양한 책을 출판하였다. ^^
목차
눈을 감은 사람
혼자서 하나가 되는 법 …… 김숨
작가의 말
눈을 감은 사람
이 책은 노라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본인의 이름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특이하게 이 책은 두 가지 색깔로 글씨가 인쇄되어 있는데,
노라의 이야기는 초록색 글씨로 쓰여있고, 모라의 이야기는 검정색 글씨로 쓰여있다.
노라가 이름을 설명하는 부분 중 본명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는 부분에서 뜨끔했다.
아마 나도 똑같이 물어보았을 것 같아서 말이다.^^;;ㅎㅎ
노라는 어릴 때 아빠를 잃고 엄마와 함께 살았고,
모라는 엄마 없이 아빠와 단둘이 살다가
노라의 엄마와 모라의 아빠가 만나게 되면서
자매가 되었다.
둘은 아주 많이 달랐다. 같이 살다 헤어진 후 20년 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같은 시간을 보냈던 그녀들의 기억은 조금씩 어딘가 다르게 기억되어 있었다.
그 기억이라는 것을 구슬 목걸이에 묘사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이 페이지에는
모라의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노라와 같은 시간 속 기억들의 묘사이다.
잠깐! 145페이지에 두 번째 줄 모라
검은 글씨는 모라의 이야기인데,
'내 말에 모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라는 부분이 나온다.
분명 오타인 것 같다. 모라가 아닌 노라가 맞는듯하다.
(제 말이 맞는지 작가님 또는 출판사에서 확인 부탁드려요~~^^*)
기억의 시선에 따라
빛에서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빛으로 나아가는
섬세한 위로의 이야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의 잔잔한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인물묘사와 행동, 심리묘사가 섬세했다는 뜻이다.
7년간 함께 가족으로 살고 20년간 헤어졌던 의붓자매들의 재회 부분에서는
어쩐지 어색함과 익숙함이 함께 느껴졌고,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도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는 것을 보고
나의 경우에도 내가 기억하는 것들이 정확한 것인지, 상상인지, 들은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도 말이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다.
지금 힘들지라도 또는 힘들 예정이더라도 추억 속에 작은 온기가 남아있다면
앞으로의 일들이 힘들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 '노라와 모라'의 이야기를 통해 그 온기를 느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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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성장배경, 하지만 다른듯 닮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마주할 수 있는 책이다. 먹고 살기 힘든 요즘, 가족 간의 정이나 기본적인 가치가 무너지고 있고 다양한 사회문제로 번지며 사건, 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지만, 어쩔 수 없이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들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노라와 모라도 그런 불행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자신이 누구인지, 사회나 사람에게 맞추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쓸쓸한 감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우리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는 책이며 어른들의 책임감이 무엇이며 가족이라는 연결고리가 왜 중요한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혹은 성장한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이를 당연시 하는 정서가 팽배한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삶이라 책의 분위기가 무겁지만 불행한 환경속에서도 꽃들이 피어나듯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나 혼자라고 느꼈지만 나와 비슷한 심리나 정서를 가진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났을 때 채워지는 부분 등 정서적인 측면에서 교감과 연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불행의 연속,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이런 과정의 연속에 지쳐서인지 심리적인 위축보다는 체념하거나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삶이라는 연속성, 누군가는 또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우리 현실에서 잘 반영되는 모습이다. 가정을 지키는 일,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나 자식이 되는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가 생각하거나 꿈꾸는 행복한 인생이 무엇인지, 철학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일상의 현실감 있는 모습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갖는 특징적 요소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 더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고, 함께 멀리 갈 수 있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철저히 나라는 존재를 숨기면서 세상과 마주했지만 용기에도 한계가 있고 이를 잡아줄 누군가의 필요성은 우리의 현실에서 쉽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삭막한 세상과 사회를 살면서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 그리고 부정적으로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에게 불행과 실패는 계속된다는 사실까지, 일상적인 모습을 잘 표현한 소설이라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노라와 모라를 통해 가족애, 사람관계, 인생, 행복의 가치 등을 폭넓게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읽어 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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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생계에는 악착같지만 가족에게 정이라고는 찾아 볼수 없는 엄마의 딸 노라 6살때 집나간 엄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따뜻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늘 바쁘기만 한 아버지의 딸 모라 책의 주인공 노라와 모라는 재혼 가정에서 만난 아이다.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닌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가족 같기도한 노라와 모라는 7년을 함께 산다. 같이 다니기는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도 하지 않은채 남남처럼 살았고, 엄마와 아빠가 없을 땐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지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노라, 모라)의 의견은 물어 보지 않은채 엄마 아빠는 재혼을 한다. 그리고 어느날 둘은 또 이혼을 한다. 그런 가정사때문인지 노라는 공감 능력이 결핍된 성격을 모라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성격을 띄게 된다. 둘이 다시 만난건 노라의 계부, 모라의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다. 모라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누구 하나 연락할 가족이 없다! 그래서 노라에게 연락한다. 노라와 모라 주변에는 아무도 없을것 같고, 평범하지 않은 가정 생활로 불행할 것 같지만, 노라에게는 명농사의 직원들이 모라에게는 김용지씨가 있다. 그리고 노라와 모라는 아버지의 죽음계기로 다시 가족으로 이어진다.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일생을 보내고 죽음에 다가가는 시간, 일생이라는 건 사람의 일이 아니지만 그 일생을 사는 사람의 얼굴을 만드는 건 사람이 하는 일이다. 늙을 수록 단단해지는 나무처럼 모라와 노라는 주어진 운명안에서 그녀들이 만들어 가는 삶을 가꾸며 자기의 얼굴을 만들어 갈 것이다. 늙을 수록 단단해 지는 나무처럼... 처음에는 노라와 모라의 유년 시절때문에 책은 무겁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따뜻해 진다. 노라와 모라가 가꾸어갈 삶이 그려진다. 쌩뚱맞지만, 책을 읽고 엄마로써 느낀 마음은... 노라와 모라처럼 궂음 속에서도 단단히 아이들이 자라길 바라지만, 노라와 모라의 부모처럼 굳이 궂음을 주지 않아야겠다 생각한다. 노라와 모라의 부다가 굳이 궂음을 주고 있음을 모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주는 궂음은 또 뭐가 없나 생각해 본다.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가 만든 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게 한다. 연말 연시 가족의 온기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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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의 라. 그게 내 이름이다.노가 성을 쓰는 덕분에 나는 그냥 노라. "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심장마비로 죽고 엄마와 같이 살고 챙김을 받지 못하니 노라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간다.대학도 포기하고 작은 광고회사에 말단 회계담당으로 들어가지만 하는 것 온갖 자질구레한 일뿐다. 이마저도 조카로 사장이 바뀌면서 그만두고 명농사라는 가게에서 일하게 된다. 무료하게 일하던 어느 날 모라에게서 전화한통이 걸려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데... 그래도 한때 가족이었으니까..." 자신의 친아빠가 아니라 가지 않을 것 같던 노라가 모라에게로 향한다. 모라의 이야기 "내 이름은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뜻이래." "나는, 울고 싶지 않다. 울지 않기 위해 노라와 함께 온 거였다." 모라는 자기가 혼자라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겨져 외로운 신세가 되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않아 노라를 부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혹은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위안을 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 감상에 젖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연민에 빠지지 않는 것.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건 그거였다." 대비하고 준비하는 삶. 나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으로 노력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도처에 널린 게 삶이었다. 자신의 삶을 표현한 저 문장들은 모라가 살아온 시간을 애기해주는 듯했다. 엄마가 있는 노라보다 혼자서 모든것을 헤쳐나가야했을 모라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든든한 보호막이 없이 나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야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않고 체념하며 살아갔을 모라에게 짠함과 응원의 박수를 보내본다. 다시 노라의 이야기 "모라가 모라일 수 밖에 없듯이, 나는 나일 수 밖에 없다." 마지막 모라의 이야기 "혼자서 하나가 되는 법을 배워가겠지." 노라와 모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채워줄 수 없는 공허함과 고독과 외로움으로 힘겹게 싸워가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고, 종종 각자의 안부를 물으며 살았을지도 궁금했다. 아마도 그녀들은 홀로서기를 하고 서로가 잘 살고 있을 꺼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노라와 모라 그녀들을 응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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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와 모라> 노라 : 곤륜산에서만 자란다는 돌배나무의 라. 노씨 성을 쓰는 덕분에 노라. 모라 : 내 이름은 가지런한 그물이라는 뜻이래. p44
엄마와 노라, 아빠와 모라는 재혼 가정이다. 둘은 나이도 같다. 35년 중 7년을 산 밑 집에서 같이 살았던 둘. 각자 인생의 풍파를 겪었다. 모라는 옆집에 사는 김용지씨가 읽어 준 시 <노라씨에게>를 듣다 노라를 생각했다. 집을 나가 떠돌던 아버지의 죽음을 알게 된 모라는 노라에게 연락한다. 장례식에 엄마가 와야할 것 같은데, 아버지가 살갑지도 않았던 노라가 간다.
엄마가 갑자기 집을 나간 후 이불장에 숨어서야 편안함을 느꼈던 모라. 노라와 헤어진 후 버스터미널 공중 화장실에 숨어 안정감을 느끼는 모습이 안쓰럽다. 노라에겐 엄마가 있었지만, 엄마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고, 모라 역시 엄마의 사랑 없이 컸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둘이 이메일을 주고 받았으니, 혼자로 살아가더라도 가끔 만났으면 좋겠다. 모라가 갑자기 노라의 등을 껴안았던 어린 시절처럼, 아버지 장례식에 와 달라고 연락했던 것처럼 그렇게 적극적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뭔가가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온 건 내가 다시 잠이 들던 순간이었다. 차고 낯선 감각이 팔뚝과 등허리에 닿았다. 흠칫 놀랐지만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차고 말랑말랑한 그 감각이 모라의 손이고, 다리고 몸이라는 걸 닿는 순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뒤집어쓴 이불 속에서 모라와 내 숨소리가 섞이는 게 느껴졌다. 석이다보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아주 잠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같은방에서 자고 깼지만 살이 닿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모라가 손을 뻗어 내 손을 더듬었다. 이제 안심이야. 등에 대고 모라가 그렇게 속삭였다. 모라의 입김이 번지는 등이 간질거렸다. 이불 속이 꿈처럼 따뜻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다시 함께 잠이 들었다. p39
35년 중 7년이라는 시간, 그게 내가 누군가와 살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느낀 건 상대적인 온도였고 절대적인 고요였다. 혼자가 아니라는 고요하고 따뜻한 실감. 나는 한동안 혼자라는 걸 깨달을 때마다 그 밤의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어쩌면 20여 년 만에 노라에게 연락을 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밤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있고 노라에게는 없는, 살을 맞댄 실감의 기억 말이다.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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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다. 꿈에서라도 꿈이라 믿고 싶은 꿈.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고 난 후 작가와 작품의 정체를 알게 되는 미공개 서평단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편인데 오랜만에 다산북스에서 미공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작품을 접하고 모든 것이 열려있는 가능성 속에서 작가가 누구일지, 작품과 어울리는 제목은 무엇일지, 어떤 디자인의 표지로 출간이 될지 실컷 추리하고 상상하는 일은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서평단 당첨에 대한 욕심도 남달랐었는데 다행히도 미공개 서평단에 당첨됐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출판사에서 알려준 책에 대한 사전 정보라고는 국내 저자의 소설, 소설보다는 자기개발서나 심리서에 어울려 보이는 키워드(#공감능력결핍, #인간관계, #응원하게되는, #잔잔한감동) 뿐이었고 활자도 디자인도 아무것도 없는 무지 표지는 미공개 서평단 가제본에 충실해 보였다.
사 먹은 닭을 해 먹은 닭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내 말에 모라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상하네, 분명 그런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오래전이잖아. 오래된 거니까…… 전해들은 걸 경험한 걸로 착각할 수 있어. 기억은 종종 시간의 순서를 바꾸고 진짜와 가짜를 혼동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래된 기억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조금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그게 진짜일 리 없는 일이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이 아이는 예나 지금이나 뭘 의심하거나 따질 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노라가 편했고 또 그런 이유로 불편했다. p.144-145
뭘 모른다는 무구함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생각한다. 각자 부모님의 재혼으로 유년시절 7년간 의붓자매로 함께 지냈던 노라와 모라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서로의 연도 끊어졌다가 모라의 아버지(노라의 계부)의 죽음으로 20여 년 만에 연락이 닿고 만남을 가지게 된다. 닮은 듯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과정을 노라의 시점으로 반, 모라의 시점으로 반을 채우는 소설은 차갑다고 하기엔 따뜻함이 있고 따뜻하다고 하기엔 차가운, 그렇다고 미지근함은 절대 아닌 온도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더없이 차갑고 더없이 따뜻하다'라는 김숨 작가의 추천사는 그야말로 완벽하다(그러니까 제 말도 그 말이에요). 소설을 읽을 때보다 읽고 난 후 더 많이, 오래 생각나고 신경 쓰이는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를 먹먹함과 공허함의 감정을 내내 전해주는데 작가의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제대로 건드려준다.
엄마구나. 엄마도 저렇게 도망친 거구나. 어쩌면…… 저게 나일 수도…… 있겠구나.
누구도 바라지 않지만 역류하는 물과 오수 때문에 집을 잃거나 쫒겨나게 되듯, 내가 그런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여자가 사라진 골목 앞에서 생각했다. 문득, 사라진 여자가 나 같고, 내가 사라진 그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어디로 도망쳤을까. 어떻게 하면 이곳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까. 나는 부디 그녀들이 꼭꼭 숨어 다시는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원망하는 마음을 까맣게 잊고 그런 생각을 했다. 완벽은커녕 보통, 평균도 되지 못한 환경에서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고 당연하게 소외되어 있는 인물들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탁월한 이 소설은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말을 하는 세상에서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정하고 들려준다. 최근 무수히 발표되고 있는 경장편 한국소설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이번 소설만큼은 짧은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을 진하게 남긴다. 노라와 모라에 대해, 그들의 감정의 더 깊은 곳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고 그만큼 걱정도 된다. 작가가 그려낸 다른 작품 속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한 만큼 독서의 몰입도 굉장했는데 그 속에서 나름대로 추리했던 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지방 출신의 여성작가 정도였다. 구체적으로 작가를 맞춰보기엔 어려움이 있어 내가 읽어보지 못한 작가일 거라 생각하다가 모라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이은선 작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소제목(눈을 감은 사람 /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 다시 만난 세계 / 사진 /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 있는 것과 없는 것 / 말할 수 없는 마음 / 노라 / 모라) 중 소설과 가장 어울리는 제목으로 「그들에게는 그들만의」를 꼽았었는데 출판사에서 밝혀준 이 책의 정체는 김선재 작가의 『노라와 모라』였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작가의 작품이라니 좋았던 작품이 더 좋아지고 더 특별해 보인다. 김선재 작가님의 이전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에 시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진다.
*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 가제본을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