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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세요?’ 라고 말한다. 언젠가 어렸을 때 우리나라는 왜 안녕한가를 자주 묻는지 모르겠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마 유교적인 습성 때문인 것 같은데 조선시대의 양반 자제들은 부모에게 ‘밤새 평안 하셨습니까’ 라고 물었다. 밤사이 별일 없었는지를 묻는 안부인사가 지금의 ‘안녕하세요’로 굳어진 것 같다.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이 말이 외국인이 보았을 때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 아닐까. 물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인사말이고 그 나라만의 문화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배우는 국어는 말의 뜻을 배운다고 하기 보다는 말의 쓰임새와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뜻을 배운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친다고 했을 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많을 것 같지 않다. 현재의 우리도 만약 외국인이 낱말의 뜻을 물어봤을 때는 답을 할 수 있지만 조사나 부사 등의 쓰임새 물어봤을 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할 뿐이지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안녕하세요?’를 영어 발음 그대로 가르치며 그 뜻을 물었을 때 ‘Are you in peace?’ 라고 말해 주었다. 학생들은 ‘평안하냐?’는 말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타워즈」의 요다가 할 것 같은 말이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가르쳤을 때의 상황들이 예상되어 웃음을 몇 번이나 터트렸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초급 한국어』는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 때문에 서수진 작가의 『코리안 티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코리안 티처』가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고학력자 여성들과 그에 얽힌 비정규직에 관련된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다면, 문지혁의 『초급 한국어』는 뉴욕에서 이민 작가로 활동하고 싶은 한국인 강사가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며 그에 얽힌 에피소드와 어머니 그리고 그것으로 비롯된 과거의 기억들이 공존하는 다소 유머러스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초급 한국어』의 화자 문지혁은 작가의 이름 그대로를 가져왔다. 그래선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여겨졌다. 작가의 경험들이 그대로 드러났고 에피소드 또한 있었음직한 일들이었다.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들이 뭉클하면서도 위트 있게 다가왔다. 작가가 뉴욕에서 공부하고 가을 학기 동안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간에 어머니가 쓰러졌다. 여동생이 어머니를 보살피는 거를 알고 있어도 학기가 끝나 가지 못했던 그는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어머니와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사용하는 모국어를 가르친다는 건 곧 어머니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기억 중에서 웃음을 터트린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2점 어디 갔니?’ 였다. 받아쓰기에서 98점을 받아온 아들에게 2점의 부재에 대하여 말하는 부분이었다. 그야말로 파안대소를 하였다. 나도 아이들한테 문지혁의 어머니 같은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와 같은 유머를 갖지 못해 안타까웠다.
외국인들은 한국어 배우기 정말 어렵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시간을 읽는 방법이다. 나는 시간을 묻고 답하는 부분을 읽을 때까지 그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가령 10시 10분을 읽을 때, 시간을 나타내는 큰 시간 ‘10’은 ‘열’이라는 고유어로 읽고, 분을 나타내는 작은 시간 ‘10’은 ‘십’이라는 한자어로 읽는다는 거다. 영어 같은 경우 간단하게 ‘ten-ten’ 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복잡하여 어렵다고 할만 했다.
낯선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도 소설을 잘 쓰고 싶은 주인공은 글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내비치기도 한다. 국립예술학교에 다닐 때 창작 워크숍에서 중견 소설가이기도 한 선생님이 문지혁의 소설의 심사평에서 ‘너무 반듯한 게 탈’이라는 말에 큰 상처를 받았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반듯한 사람 같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외모도, 주일에 교회를 다니는 생활도, 그의 목소리도 반듯했다. 책을 다 읽고 산책길에서 오디오북으로 다시 한번 그의 책을 읽었는데 목소리도 좋고 참 반듯하게 읽는구나, 였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다. 누구는 그렇지 않겠냐마는, 왜 소설을 쓰는지, 왜 소설을 쓰려고 했는지,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졌다. 난 이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모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헤어진 예술학교에 다닐 때 소설 창작의 고민들이 그는 힘든 기억일 텐데도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느껴졌다. 그 또한 계약이 짧은 강사였음에도 삶을 고달프게 여기지 않았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물론 고민이 많았겠지만 다 표현하지 않아서 소설이 더 담백했던 것 같다. 위트 있고, 유머스러운 표현, 담백한 문장이 참 좋았다. 앞으로 출간될 그의 소설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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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서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 이윤영의 <어두운 기억의 저편>부터였을 것이다.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든 ‘1984 이상 문학상 작품집’에서 읽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매료되어 7년을 거슬러 올라가 1977년 첫 번째 수상작인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1984년 이후로 ‘이상 문학상’은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최일남의 <흐르는 북>,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어졌다. 눈코 뜰 새 없는 초년병 시절이었지만 수상작이 발표되면 출장 다니는 중에도 틈틈이 읽었다. 그러다가 1989년 김채원의 <겨울의 환>이 선정되었다. 이때부터 조금씩 소설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의무감으로 그 후로 몇 년 더 읽었다. 그렇게 읽은 작품집은 젊은 날의 기억이 묻어있는 것이어서 몇 년 전까지 내내 책장 한쪽에 꽂아두었다.
생각해보니 문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두운 기억의 저편>의 긴장감 넘치고 탄탄한 줄거리 때문이었고, 관심이 멀어지게 된 것은 <겨울의 환>이 낯설고 읽기 불편했던 데다가 그 이후의 소설이 대체로 그랬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의식을 흐름을 따라간다는 소설은 내게는 그저 두서없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고, 자전적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가 겪은 에피소드를 늘어놓고 그 관계를 억지로 꿰어 맞추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라는 것 자체와 멀어졌다. 생각해보니 전혀 읽지 않은 건 아니고 줄거리 위주의 소설을 몇 권 읽기는 했다.
<YG와 JYP의 책걸상>에서 소설 한 편을 소개했다. 쓸데없이 가방 끈이 긴 우등생이 미국에서 우리말을 가르치는 중에 일어난 에피소드를 통해 불안정한 신분의 이방인으로서 겪는 당혹감, 난감함, 그리고 내재된 슬픔을 표현했다고 했다. 곳곳에 들어있다는 유머 코드도 몇 개 소개했다. 진행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읽기를 추천할만한, 기념비적인 소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마지막 한 문장’을 언급했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십 년 넘게 해외근무를 하고 있다. 업무 때문에 외국인을 만나야 했고 때로 출장도 다녔지만, 우리 나이의 평균적인 남자들이 그러하듯 영어를 따로 공부한 일은 없었고, 말하기에 앞서서 문법이 맞는지 살피느라 진땀을 흘려야했던 나로서는 해외근무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우리 나이의 남자라고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말라는 법이 있었겠나만, 눈 뜨면 출근해야 하고 퇴근하고 나서는 잠자기 바쁜 세월을 보내면서 그렇게 사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동료 하나 없는 곳에서 십 년 넘게 보내면서 언어로 인한 압박감 때문에 수없이 자책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다.
작가는 영어 자체가 아니라 한국어를 영어로 가르치면서 일어나는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니 내가 겪은 압박감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남의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겪는 언어에 대한 어려움이니 뭔가 공감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미도 있으면서 각각의 에피소드 바닥에 흐르는 작가의 페이소스를 헤아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줄 알았다. 소설이란 결국 누군가의 삶을 함께 경험하는 것이니 그것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유익이 있겠다는 기대도 있었다.
작가는 미국에서 두 번째 대학원을 마치고, 다른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학 가르치는 일을 시작하고, 7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방이 하나인 집으로 이사 갔다는 이야기로 소설을 시작한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한국어를 가르칠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만 자기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은는이가’의 차이와 같은 숫자 10인데 왜 ‘열 시 십 분’으로 읽느냐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 그렇다.) 그러는 중에 어머니가 입원해 수술을 하고, 풀타임 교원에 한 발 다가가고, 끝내는 풀타임 교원이 무산되면서 귀국하기로 한다.
이런 줄거리에 작가가 가르치면서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가 변주처럼 들고나면서 소설이 진행되는데, 아쉽게도 내게는 그것이 이 소설의 전부였다. 나는 그 에피소드의 바닥에 깔린 작가의 페이소스를 읽어내지 못했다. 에피소드가 특별히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고, 딱히 줄거리라고 할 만한 것도 없고, 작가의 의도조차 읽어내지 못한 것이니, 결국 읽기는 했으나 뭘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읽어가면서 <책걸상>의 진행자가 여운을 남겨두었던 마지막 한 문장에 기대를 걸었다. 읽기는 했으되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채 소설을 덮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진행자는 이 소설 앞머리에 나오는 헌사 “나의 모국어, 어머니께”와 마지막 문장 “내가 사랑하는 모국어의 단어 하나를 영원히 잃었음을 알게 되었다.”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었다고 했다. 진행자는 어떤 면에서 이를 반전으로 여겼는지 모르겠지만 (반전으로 여겼던가?) 내게는 주인공이 귀국을 결정할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소설을 덮어야 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어를 바라보게 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삶을 한 발짝 거리 둔 채 돌아보도록 한다.” “우리의 언어를 타인의 눈에 비추어 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마침내는 아릿한 아픔을 남기며 삶과 세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살아남겠다는 욕망’이 새 시대의 지형지물에서 어떤 유머로 표현되는지 이 작품은 기념비적으로 보여 준다.” “냉혹한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더불어 그럼에도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의 욕망이 담겨 있다.”
이 소설에 대한 소개와 추천의 글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중 어느 하나도 경험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문해력이 딸린다고 스스로를 자책할 생각은 없다. 단지 요즘 문학작품을 읽기에는 내가 너무 구식인 사람이라는 건 인정해야겠고, 그래서 책을 고를 때 조금 신중해져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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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책은 부드러워서 좋아요. 읽는 내내 저를 한번도 괴롭히지 않았어요. 책에 그대로 담겨있는 작가님의 성품을 너무 잘 알겠어요. 어떤 사람이길래 봄이 한창일 무렵 예상치않게 쏟아진 차가운 비를 맞아 떨고있는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책을 쓰지? 정말 감사했어요. 반면 내가 쓴 글은 나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 불안하네요. 제발 좋은 사람으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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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리는데, 읽다 보면 그 경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질 정도로 푹 빠져서 읽었다. 주인공 이름도 작가 본명과 똑같은 '지혁'이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뉴욕으로 갔지만, 현실은 대학교에서 시간강사로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며 비자 문제와 생계를 걱정하는 이야기다. 보통 뉴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하면 낭만적이거나 세련된 성공담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정반대다. 찌질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현실적이다. 이방인으로서 겪는 외로움, 꿈과 현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처지를 아주 담담하게, 그리고 위트 있게 풀어낸다. 재밌는 건 한국어 문법을 가르치는 장면들이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은는/이가의 차이나 존댓말을 설명해 주는데, 그게 단순한 어학 강의가 아니라 마치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모국어가 타인의 눈에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싶어서 신선하기도 했다. 읽으면서 피식피식 웃다가도 문득 코끝이 찡해진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는데 여전히 내 인생은 '초급'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불안감. 그 마음을 작가가 대신 긁어주는 것 같았다. 거창한 사건 사고는 없어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문체가 아주 깔끔하고 잘 읽힌다. 무언가 되려다 아직 되지 못한 사람들, 혹은 낯선 곳에서 서툴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 읽고 나면 "그래, 서툴러도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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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가 흥미로워서 구매했는데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에요 가독성도 좋고 주인공이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찾아보니 중급 한국어가 초급 한국어 이외의 내용이더라구요 중급 한국어도 구매할 생각입니다 ㅎㅎ 저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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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책들 중에는 좀 특이한 형식의 책이었어요 처음엔 조금 낯설었지만 읽다보니 이야기 흐름자체도 그냥 따라가게 되고 또 한국어 문법에 관련한 모르는 부분도 확실하게 각인되기도 하더라고요. 가볍게 읽고 꽤 남는게 많은(?) 책이어서 좋았습니다 |
| 초급 한국어를 읽고 쓰는 후기입니다. 이 작품은 출판사 유투브에서 후기를 보고 너무 궁금해서 냅다 구매해서 읽은 작품입니다. 보는 내내 진행이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 감상했습니다. 그 후속작 중급 한국어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
| 지금은 그때 내가 저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가 더 궁금하다. 열 살 즈음의 나는 이름이란 게 뭐라고 생각했을까? 명사처럼 내 이름도 영어로 번역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문지혁은 영어로도 문지혁이라는 것을,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혹시 나는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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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초급 한국어는 그저 독특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는 이 소설만의 서술 방식이 무척이나 돋보이는 책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던 저자의 경험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자전적 소설입니다. 제게 있어 문지혁 작가는 P의 도시나 비블리온과 같이 재미는 있으나 다소 마니악한 느낌을 주는 책을 썼던 작가로서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는데, 초급 한국어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제가 문지혁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오며 느꼈던) 무언가와는 그 궤가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요. 오히려 그러한 부분이 문지혁 작가가 얼마나 다양하면서도 끝을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으신지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무척이나 행복했는데, 이 책의 후속작으로 알려져 있는 중급 한국어에서는 과연 어떠한 이야기로 다시 한번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실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
| 도서관에서 <중급 한국어>부터 읽고 반해서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를 함께 구매했습니다 :) 순서대로 읽고 싶었어요. 소설인듯 에세이인듯 읽히는게 새로웠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 중간중간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어요. 시리즈처럼 나오는 책이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세 번째 책 제목은 무엇이 될지, 그게 마지막 책이 될지 아니면 또 이어지는 책이 될지 그것도 궁금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