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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일본은 중국보다 원시적이어서 왜를 동쪽 오랑캐를 뜻하는 '동이'라고 호칭함 당은 중국 역사상 가장 국제적인 왕조 일본은 중국의 사상과 제도를 광범위하게 수용함 중국은 중요한 모든것을 보유-->일본은 중국으로부터 배워 개선추정 630년이후 왜의 승려 학생 관리들이 수도 장안(시안)에 중국의 기술과 사회체제,역사,철학,예술, 그리고 건축술을 배우러 연이어 방문 그 수가 자그마치 600명에 이름 왜 : 당의 정치체제+관료주의 모방 장안을 수도 헤이안쿄(교토)의 모델 중국문학과 의복,요리습관 수용 중국의 사대부가 된 사례도 등장함 아베노 나카마로 : 중국에 가서 19세에 당대 최고 교육기관인 황실학교 태학에 입학 727년에 과거시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진사에 합격해 장안에서 고위직에 임명 당시 변방도호부인 안남(북베트남)절도사로 봉직함 그의 벗으로 시인 이백과 왕유가 있었음 16년간 중국에서 생활한뒤 그는 고향에 귀국요청을 하였으나 752년까지 허락받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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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수사와 견당사
수와 당 시절에 일본인 외교관(사절)들은 자신들의 사무실을 중국문화와 제도를 배우면서 귀중품을 구입하는 장소로 활용 첫 사절단(630년)이 당 조정을 찾아 간지 23년이 지난 뒤653년에서 701년 사이에 사절단이 7차례 중국을 방문함--이 기간 일본 황실에서는 6명의 천황과 1명의 여성 천황이 있다라 등극함 8세기에는 평균 10년마다 한번씩 사절단이 갔으며, 9세기에도 30년마다 한번씩 갔다. 횟수의 변동은 일본의 필요와 조공제도 틀 안에서의 주권상태를 반영함 중국관직과 물품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재능과 학식,장인정신등을 추구함 284년 왜의 고위관리들이 중국의 조공국인 백제로 가서 학자 왕인을 고용해 황세자의 선생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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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제도하의 일본
일본 사절단은 드문드문 산발적으로 중국에 갔다. 기원후 57년 왜사절단이 최초로 다녀간 뒤 50년동안 사절단이 가지 않았다. 1세기와 9세기 사이처럼 활발한 때도 있었고 휴면기일때도 있었다. 왜 사절단은 2세기와 3세기초까지는 찾아가지 않았으나 바로 뒤 9년동안에는 4회나 찾아가기도 했다. 이렇게 불규칙하게 방문했다는 것은 일본인들 스스로 방문 일정을 정했음을 시사한다 7세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600년에서 614년사이에 왜사절단이 다섯차례나 중국에 갔고, 그들 중 누구도 중국관직을 요구하지 않았다. 일본인 정치적 통일을 이루고 더는 중국식 제도가 부여하는 정통성을 추구하지 않게 되자 한때 갈망했던 명예는 그 가치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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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제도
중국인들은 교역이나 외교,전쟁, 그리고 동맹관계를 통해 그들을 막으려 했다. 한무제는 흉노를 막기위해 스키타이인(대월or월지)과 친구가 되었다. 당나라를 세운 고조 이연은 수나라에 대적하기위해 동돌궐의 지원에 의지했다. 당 조정은 나중에 반란을 제압하고 티벳인들을 물리치기 위해 위구르와 동맹을 맺었다. 힘의 균형에 기댄 결과 유목민들은 대등한 관계가 됐고, 때로는 동맹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대체로 중국인들은 조공제도와는 별개로 느슨한 통제나 자치를 허용하는 기미제를 활용해 평화를 유지하는 쪽을 선호했다, 중국인들은 중국문화를 거부하는 부족들이 거주하는 유목민의 땅을 정복해봤자 얻을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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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센카쿠열도, 스프래틀리군도, 파라셀군도에 관련된 걸 자주 접했을것이다. 중국이 인공섬을 설치하고 군사적 충돌도 간간히,,, 세계최강의 미국도 여기 개입되어있는 상황. 역사적인 배경을 모르면 왜 저러는지 알수가 없는데 괜찮은 서적이 나온듯 합니다. 중국이 1980년대부터 개혁 개방정책으로 급성장하고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의 라이벌(?)로 급부상하면서 중국의 세계적인 역할이나 위상이 재조명되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죠 관대한 거인인가? 다루기 힘든 트러블 메이커인가 지금도 금융위기와 지구 온난화같은 글로벌공동의 문제에 대처하기위해 국제협력이 없이는 불가능 한 세상인데 과연 중국은 어떤 나라인지, 먼저 중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관계부터 시작하는데 이 파트는 그래도 역사시간에 배워서 그런지 비교적 아는 내용들이 많이 나오네요. 중국 한나라때 왜가 속국이였다는 사실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지 후한광무제가 왜의 노국왕 인장을 사절단에게 보내었다는 내용으로 출발 명나라-무로마치막부시절까지만 해도 조공책봉관계였는데 에도막부-청나라시절에는 그런 관계가 아니였다는 점도 의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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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다 본책이다. 국제시사관련한 뉴스나 주제로도 자주 등장한 지역들이라서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전통의 라이벌이자 역사적으로 맺힌게 많은 중국과 일본 16세기 중계무역으로 전성기를 지내다 일본에게 강제병합된 류쿠(현 오키나와) 몽골 프랑스 미국 중국의 침략을 극복한 저력의 베트남 스페인-미국-일본-미국으로 이어지는 지배를 받은 섬나라 필리핀 대항해시대 허브역할을 담당하였던 말라카해협의 핵심국가 말레이시아
센카쿠열도를 두고 일본과 중국 미국까지 개입, 시사군도와 난사군도를 둘러싼 주변지역 국가들의 경쟁.
중동에 발칸반도만큼 화약고라 생각되는 이 지역에 대해서 잘 설명해준 서적입니다.
마지막 파트 [중국과 세계질서]에 쑨원이 1924년 중국을 묘사한 장면의 일부를 소개합니다.(p226) 오늘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약한 나라로, 국제적으로 가장 비천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저미는 칼이요 요리접시라며, 우리는 생선이요 고기 신세다. 지금의 우리는 가장 위태로운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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