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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그 보편적인 공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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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구성하는 것은 어쩌면 숱한 사건 사고일 수도 있겠다고, 매일 크고 작은 소식을 접할 적마다 생각한다. 다소 밋밋하고 흥미가 떨어지더라도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그 중에는 과연 21세기에 일어난 일이 맞나 미심쩍을 정도로 비극적인 사건도 존재한다. 난 그가 속한 세계와 그가 겪은 경험을 제3 자인 양 물끄러미 응시한다. 무엇이 나와 그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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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구성하는 것은 어쩌면 숱한 사건 사고일 수도 있겠다고, 매일 크고 작은 소식을 접할 적마다 생각한다. 다소 밋밋하고 흥미가 떨어지더라도 아무 일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그 중에는 과연 21세기에 일어난 일이 맞나 미심쩍을 정도로 비극적인 사건도 존재한다. 난 그가 속한 세계와 그가 겪은 경험을 제3 자인 양 물끄러미 응시한다. 무엇이 나와 그 사이에 이토록 거대한 차이를 빚어냈을까를 헤아리면서. 지독히 운이 없었을 뿐일까. 어른들 말처럼 학창시절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서? 만일 유수의 대학을 졸업했더라면 그들의 삶이 평탄했을까. 왠지 책임 회피 같다. 그리고 현실 도피 마냥 느껴진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재구성할 길 없는 사회 질서를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아니겠는가!

오래 전 용어를 사용하자면 상고 혹은 공고 정도가 될 것이다. 마이스터교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 나이가 드는 탓인지 요즘엔 명칭부터가 참으로 어렵다. 굳이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도 이후 삶이 보장되는 사회. 개개인이 지닌 기술이 인정받는 사회를 꿈꾸며 많은 이들이 이렇게 명명된 학교로 진학했고,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일자리를 얻었다. 취업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도 힘겨운 시대니, 그들의 선택은 탁월했다고도 볼 수 있으리라. 단순히 취업과 비취업 상태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모든 게 열악했다. 사람이 다치고 심지어 죽는 일이 너무도 자주 발생했다.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말 이면에 숨은 충분히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꼈다. 하루 10시간 혹은 그 이상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해도 받을 수 있는 임금은 적었다. 저자처럼 군대 대신 일을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어디에도 항의하지 못한 채 주어진 환경을 감내해야만 했다.

감히 좌절이라 표현하고 싶진 않다. 막연히 그려온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깨달았다. 글이 쓰고 싶었고, 예술학교 진학을 꿈꿨지만 여러 사정상 현실로 만들 수가 없었다.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야에 손을 담갔고, 바깥 세상에서 보았을 땐 참 투박해 보이는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기 시작했다. 앞서 걸은 아버지의 삶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다소 일이 고될지라도 조금은 나으리라고 막연히 짐작 혹은 기대했다. 저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철저한 외부자의 것이었다. 반복해 그의 글을 읽을지라도 난 결코 그가 될 수 없었다.

일부러 주목하려 들지 않아도 그는 사람을 놓치지 않았다. 자신의 부주의한 작업이 누군가에게 해를 가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같은 시공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곧 같은 꿈을 꾼다는 것과 동일어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았다. 군복무 기간의 종료와 함께 공장을 관둔 그가 있었고, 대학에 진학하거나 해외로 나간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교복을 입고 있건 작업복을 그 위에 덧입었건 그들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마땅했다. 군복을 입지 않은 군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린 그토록 단순한 진리를 잊었다. 그들이 우리가 규정한 ‘보편’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으며, 아예 그들의 존재를 지우려고도 들었다. 어떠한 모습을 하고도 20대 초반을 살 수 있는 게 인간임을 망각한 나머지 그 나이 또래는 모두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고 믿었다. 우리의 믿음에 반한 삶은 가차 없이 인식의 영역 밖으로 몰아냈다.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다. 아마 알려 든 적도 전혀 없었을 것이다. 왜 그리도 독하게 울부짖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아닌 ‘그들’을 손가락질했지만,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히 그래야만 했다. 알리고 또 알려도 그들의 이름은 이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었으므로.

나이로 모든 걸 판단해선 아니 되나, 그는 나보다 훨 어린 연령대로 추정됐다. 경계를 허물며 살아온 그의 시간은 나와는 자못 달라 보였다. 그 결과로 이와 같은 글이 탄생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경험에 온전히 감사하기가 힘든 현실이 슬펐다. 지금도 누군가는 배척당할 텐데, 현재도 적잖은 이들은 자존심이 무너지고, 크고 작은 상처에 휘청이다가 세상을 떠날 텐데. 참으로 빈번한 일들을 내 세상의 것이 아니라며 그간 외면해 온 나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보고 듣고 말하지 않았던 건 나의 비굴함은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일까.

q*****2 2021.04.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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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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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취업 체험을 하러 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도 나이 어린 노동자의 사망 뉴스는 가끔씩 들려왔죠.. 문제로만 인식하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몇 줄 읽어주시기에 얼른 구매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가 숙제하는 기분으로 집어들었는데 밤새 읽어버렸네요.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에서 고통이 느껴지고 그 고통도 일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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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취업 체험을 하러 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도 나이 어린 노동자의 사망 뉴스는 가끔씩 들려왔죠.. 문제로만 인식하다 얼마 전에 아는 분이 몇 줄 읽어주시기에 얼른 구매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가 숙제하는 기분으로 집어들었는데 밤새 읽어버렸네요.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에서 고통이 느껴지고 그 고통도 일상이 되어 그 안에서 희노애락과 희망을 찾는 모습에서 눈시울이 시도때도없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도 학교를 다녔고 취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읽을 수록 저자가 사는 세상과 제가 나이먹으며 보아온 세상은 너무 다르네요. 그런 조악한 정도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 부끄러움이 앞서고 비극적인 죽음의 순간에만 분노했다는 부끄러움이 뒤를 잇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최약자로 밀어넣는 짓을 효율로 포장하던 시절에도 저는 여전히 어른이었습니다... 죄스럽네요
 

이 사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허태준 건강하세요

 

 

s******4 2021.09.3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