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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눈사람 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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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단련함 ]   매일 한 차례씩 같은 시간에 모기에 물린다면 우리는 모기를 힘들어하지 않을뿐더러 그 작은 모기에게 사자처럼 굴지도 않을 것이다   꼿꼿하게 앉아도 되는 저녁이므로 지나치게 균형을 잃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일 한 차례씩 알람을 맞춰놓고 같은 시간에 모기에 물린다면 먹고 사는 일에 다짐 따윈 필요 없으지도 모른다   남은 저녁은 좀더 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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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을 단련함 ]


 

매일 한 차례씩 같은 시간에 모기에 물린다면

우리는 모기를 힘들어하지 않을뿐더러

그 작은 모기에게 사자처럼 굴지도 않을 것이다

 

꼿꼿하게 앉아도 되는 저녁이므로

지나치게 균형을 잃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매일 한 차례씩

알람을 맞춰놓고 같은 시간에 모기에 물린다면

먹고 사는 일에 다짐 따윈 필요 없으지도 모른다

 

남은 저녁은 좀더 단정히 피가 통할 것이며

맨발의 급소들도 순해질 수 있겠다

 

봉합이 필요한 시간에

모기에 물리자고 팔뚝을 내놓는다면

시간의 딱지들은 도톰해질 것이다

 

저녁의 바닥을 향해 서 있는 것 모두를

진창이라 여기지 않아도 되겠다

 

서서히 가려우므로 괜찮아진다

하물며 최선도 지나간다

 

피하느니

제법 지나갈 것이다

 

[ 아파도 가까이 ]


 

나는 냄새만을 맡을 수 있는 씨았이었다

 

나는 나무에 기댄 채 성장하였다

 

어느 번개가 나무를 쳤고 나무가 꺾였다

 

나는 나무의 남은 몸뚱이를 타고 올라 울울히 키를 키웠다

 

죽어가는 나무 냄새를 맡으며 줄기로 기고 꽃을 피우며 몸을 늘렸다

 

신에게 술을 권했다


 

신은 나에게 감정을 나눠주었다

 

신은 아프게 태어난 나를 강으로 데려갈 수 없다며 나를 편애하였다

 

어느 멀리로 달릴 수 없는 발목을 내놓고 비를 맞았다

 

신에게 말을 건넸다

 

신은 아파도 가까이 있으라 하였다

 

돌을 지고 태어난 나의 시(詩)가 씨앗 하나만을 더 가지고 돌아온다면 대신 나는 발목을 잘라 차려 놓겠다

 

이 실컷 울고 난 고래의 날들이 끝나기 전까지 시가 도착한다면 쓰임을 바라지는 않겠다

 

그 불가한 것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이 모든 것 다행이다

 

[ 어떤 아름다움을 건너는 방법 ]


 

잠을 자고 있는데 철썩 뺨을 올려붙이는 무언가

마지막 기적의 양(量)처럼

차가운 폭포를 등줄기에 쏟아붓는 무언가

 

눈이 내릴 것 같다

 

그 무언가 힘으로도 미치지 못하면서

나를 이토록 춤추게 하는 무언가

 

내 몸 위에는 한 번도 꽃잎처럼 쌓이지 않는 눈.

바다에도 비벼지지 않는 청어 떼 같은 눈,

태생이 함부로여서 눈은 생각이 많다


 

그 무언가 때문은 아닐 텐데 무언가에 의해

아무나 때문도 아닐 텐데 아무개에 의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그날들을 닮으면서 내리는 눈,

오늘 내린 눈을 두 눈으로 받아 녹이고서야

울먹울먹 피가 돌았다

 

단 한 번도 순결한 적 없이 마취된 척

한 세계를 가득 채운 냄새나 좇으며

허술한 사랑을 하려는 나여

 

눈이 저 형국으로 닥쳐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란다

 

이 마을에서 조난을 당해서라도

서로에게 붙들려야 한다면

 

그 밤 모두 우리는 눈이 멀어야 한단다

 

[ 눈사람 여관 ]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

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

 

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

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

 

...  소/라/향/기  ...

s******8 2021.07.27. 신고 공감 2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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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란 무엇인가?
"시란 무엇인가?" 내용보기
역시 시는 어렵다. 간혹 시집을 펼쳐 들고 시를 읽어보지만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기도 하고, 때론 암송하고 싶은 시가 있기도 하지만 모든 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시는 이해가 불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뜻인지를 헤아리다 제풀에 지친다. 그럼에도 시집 한권 읽고 싶은 마음에 손에 잡지만 여전히 끙끙 앓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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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시는 어렵다. 간혹 시집을 펼쳐 들고 시를 읽어보지만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마음에 와 닿는 시가 있기도 하고, 때론 암송하고 싶은 시가 있기도 하지만 모든 시가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시는 이해가 불가하기도 하고, 또 어떤 시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뜻인지를 헤아리다 제풀에 지친다. 그럼에도 시집 한권 읽고 싶은 마음에 손에 잡지만 여전히 끙끙 앓는 시간이 더 많다. 산문집으로 많이 만난 시인, 그의 글들은 산문도 마치 시 같아 보였다. 그러나 막상 그의 시집은 읽어본 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눈에 띄는 시집 한권을 골랐다.

 

 

나는 여기에 일 년에 한 번은 온다/몸을 씻으러도 오고 옷을 입으려고도 온다//돌이킬 수 없으려니/너무 많은 것을 몰라라 하고 온다//그냥 사각의 방/하지만 네 각이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제 마음에 따라 여섯 각이기도 한 방//물방울은 큰 물에 몰두하고/소리는 사라짐에 몰두한다//얼룩은 옷깃에 몰두할 것이고/소란은 소문에 몰두할 것이다//어느 이름 없는 별에 홀로 살러 들어가려는 것처럼 몰두하여/좀이 슬어야겠다는 것/그 또한 불멸의 습()인 것//개들은 잠을 못 이루고 둥글게 몸을 말고/유빙이 떠다니는 바깥//몰려드는 헛것들을 모른 체하면서/정수리의 궁리들을 모른 체하면서//일 년에 한 번 처소에 와서/나는 일 년에 한 번을 몰두한다

- ‘침묵여관전문 -

 

 

  얼핏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번쯤 예정에 없이 여관에 들어간 일이 있다. 지인을 만나기 위해 사전에 연락도 없이 먼 길을 떠났지만 만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돌아오기도 왠지 싫다. 그래서 주변을 헤매다가 술 한 병을 사들고 여관으로 들어간다. 정말 여관 같은 여관, 형광등 불빛아래 드러나는 것 이라곤 방 한쪽에 개어져 있는 이불 한 채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별에게 감히 말을 건 것을 용서해다오/색깔을 잘못 사용한 죄를 씻어 가다오//이 가을 하늘 지붕에다/오늘따라 몸부림치는 구름에다 빠트려/나를 심판해다오//바람의 가시를, 혁명의 마디를 뽑아다오//아침마다 황금빛으로 울먹였던 서리들을 분류해다오//이토록 불능하고 불가능하여 남루한 것을 모른 척 해다오/내가 먹을 밥이며 내가 발설한 배반의 혼란까지도//이 다리를 건널 수 없게/마지막으로 붉은 열매를 먹을 수 없게 힘을 가져가다오//허공에 던졌으나 모두 붙어 떨어진/공깃돌을 흩어다오/서서히 작아지면서/서서히 덜어내게 해다오//부디 다시 태어나게 하거나/다시 태어나지 않게 해다오//소매를 체온을 손금들을 끊어다오/이 몸속 깔깔한 먼지들을 서둘러 빼내어 가다오//간신히 이해하면서 잊게 해다오//모두 베어다오/나와 당신이/죽도록 가까웠던 기적들을 마침내 거둬 가다오

- ‘맨발의 여관전문 -

 

 

  처음부터 시집의 제목이 눈사람 여관이었다. 아마 그래서 이 시 맨발의 여관에도 눈길이 머물렀을 것이다. 무언가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시를 읽고서 눈사람 여관이란 시를 읽으면 조금은 덜 막막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나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다는 걸 알기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밥은 더러운 것인가/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숙박을 가요//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여관에서 만나요//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여관 앞에서/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거짓을 생략하고/이별의 실패를 보러//나흘이면 되겠네요/영원을 압축하기에는/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

- ‘눈사람 여관전문 -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시보다는 산문이 낫다. 내가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읽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유독 산문집을 통해서 시인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산문집을 먼저 읽고 그 글이 마음에 들어 시를 읽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병률 시인도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풀어지게

허공에다 놓아줄까

번지게

물속에다 놓아줄까

                             - 붉고 찬란한 당신을전문 -

 

 

  차라리 짧은 이 시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인의 마음도 헤아려보고, 핑계삼아 내 마음도 헤아려보고.. 이래저래 시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 어렵다는 생각에 또 다른 시집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k*****1 2019.01.16. 신고 공감 1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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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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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뒷표지에 있던 글을 찾기 위해 샀던 책인데... 아쉽게도 e북이라 볼 수 없었다. 이병률 시인의 시가 불쾌한 묘사가 없고 알기 쉬운 느낌들이라 좋았는데 도정제 이슈에 관해 하신 발언을 봐서 현재는 잠시 닫아놓고 있다. 작가의 사상과 얼마큼 작품을 떼어놓고 볼 수 있는가... 는 아직도 고민중이다. 고민이 끝난 뒤에 실물 책을 살지 e북을 지울지 결정할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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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 뒷표지에 있던 글을 찾기 위해 샀던 책인데... 아쉽게도 e북이라 볼 수 없었다.

이병률 시인의 시가 불쾌한 묘사가 없고 알기 쉬운 느낌들이라 좋았는데 도정제 이슈에 관해 하신 발언을 봐서 현재는 잠시 닫아놓고 있다.

작가의 사상과 얼마큼 작품을 떼어놓고 볼 수 있는가... 는 아직도 고민중이다. 고민이 끝난 뒤에 실물 책을 살지 e북을 지울지 결정할 수 있을듯 하다.

YES마니아 : 로얄 u***i 2023.1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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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님의 눈사람 여관 리뷰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을 곧잘 사고는 하는데 이번에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샀는데 겨울에 읽게 되었네요 제목과 어울려서 마음에 듭니다 올 한해가 저물고 있는데 시집과 함께 해가 저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시 많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이 이 리뷰를 보실지 모르겠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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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님의 눈사람 여관 리뷰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집을 곧잘 사고는 하는데 이번에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에 샀는데 겨울에 읽게 되었네요 제목과 어울려서 마음에 듭니다 올 한해가 저물고 있는데 시집과 함께 해가 저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시 많이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이 이 리뷰를 보실지 모르겠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s*********k 2019.12.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