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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 일본 근대의 4가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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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는   이 책은 금융시스템과 중앙은행 이론에 대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월터 바지호트(Walter Bagehot, 1826~1877)의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를 바라보는 일본 근대정치 입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근대에 대한 교양서를 기대하는 독자보다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일본 근대 정치에 대해 심화 학습을 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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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는

 

이 책은 금융시스템과 중앙은행 이론에 대한 최초의 이론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월터 바지호트(Walter Bagehot, 1826~1877)의 관점에서 일본의 근대를 바라보는 일본 근대정치 입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근대에 대한 교양서를 기대하는 독자보다 좀더 다양한 관점에서 일본 근대 정치에 대해 심화 학습을 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정당정치

 

19세기 말 월터 바지호트는 <자연학과 정치학>에서 “ ‘관습의 지배’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 정치의 형태가 이행하는 것, 이것이 근대” [p. 73]라고 주장했다. 우선 ‘토의에 의한 통치’라는 개념 자체가 상당히 모호하다.

자, 따져보자.

의회제와 정당정치가 이식된 것 만으로 ‘토의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애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일본의 근대는 언제 시작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메이지 유신이 아닌 정당정치가 시작된 ‘타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시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볼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2차 대전 이전의 정당정치는 “1924년 중의원 총선거가 실시된 결과, 중의원에서 다수파를 형성한 3파 연립내각인 카토 타카아키[加藤高明, 1860~1926] 내각이 성립한 이후부터 1932년 5.15 사건으로 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 1855~1932]의 정우회(政友會) 내각이 붕괴하기까지, 타이쇼 후반에서 쇼와 초엽에 걸쳐 약 8년간 전개” [p. 43]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일본의 근대도 그 기간만 존재했다고 말해야 할까?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저자가, 전근대에 속하는 조선 후기에서 ‘경영형 부농’을 찾아 자생적 ‘자본주의 맹아(萌芽)’를 주장한 김용섭(金容燮, 1931~2020)처럼, 일본의 전근대에서 근대의 맹아를 찾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발견한 근대의 맹아는 에도[江戶] 막부의 ‘권력 억제 균형 시스템’이다. 동시에 저자는 막부 체제를 무너뜨린 번벌정치(藩閥政治)가 실질적인 정당정치의 출현을 가져왔고, 나아가 본격적인 입헌정치로의 이행을 끌어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모순되어 보이기에 더 납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오히려 번벌정치가 ‘토의에 의한 통치[근대]’를 정지시킨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자의 주장을 근대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조선시대의 ‘당쟁’ 혹은 ‘붕당 정치’도 ‘토의에 의한 통치’의 싹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본주의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체제를 먼저 도입한 국가와 나중에 수용한 국가간에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후발 주자들이 선진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적 지배에 빠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일본의 경우는 내무성(內務省)을 추진기관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립적 자본주의’ 체제로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 수용은 유럽적 국민국가 형성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이 택한 소위 ‘자립적 자본주의’는 어떤 것일까?

이 자립적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① 정부 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시행, ② 외자 도입에 대한 소극적 자세와 지조(地租) 개정을 통한 안정도 높은 세입[국가자본의 원천] 확보, ③ 양질의 노동력을 산출하는 의무교육제도의 확립, ④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대외전쟁의 회피가 필요하다.

 

이렇게 성립된 일본의 ‘자립적 자본주의’는 청일전쟁 이후 외채에 의존하는 ‘국제적 자본주의’로 점차 이행하기 시작했지만 금본위제의 붕괴와 국제적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이노우에 준노스케[井上準之助, 1869~1932]의 암살로 막을 내렸다. 이는 월터 바지호트가 ‘토의에 의한 통치’의 추진력 중 하나로 거론한 자유 ‘무역’이 일본에서 내뱉은 단말마(斷末魔)이기도 하다.

 

 

식민지

 

영국 등 선진 식민제국은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비공식 제국’을 지향했다. 즉, 최혜국 조항으로 대표되는 불평등 조약을 무기로 하는 ‘자유무역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반면 후발 주자에 속하는 일본은 러일전쟁 승리 이전까지 선진 식민제국의 이너 서클에 합류할 자격이 없었고, 또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상이 경제적 이익에 관심을 두기보다 군사적 안전 보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유럽의 식민지가 본국과 인접하지 않는 원격지에 조성되었던 것에 비해, 식민지제국 일본의 팽창은 본국의 국경선이 곧바로 연결된 남방 및 북방 지역의 공간적 확대” [pp. 174~175]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일본은 ‘공식 제국’을 지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탈(脫)제국주의 시대가 전개되면서 일본은 “제국주의의 유산을 탈제국주의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p. 216]라는 문제에 부딪혀야 했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일본은 ‘군축조약’과 ‘금본위제’로 대표되는 보편주의적 국제주의에서 벗어나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이라는 ‘국제적 지역주의’를 선택했다.

 

 

천황제

 

후쿠다 츠네아리[福田恒存, 1912~1994]이 “유럽의 근대는 종교개혁을 매개로 유럽 중세로부터 ‘신(神)’을 계승했지만, 일본 근대는 메이지 유신 전후의 ‘폐불훼석(廢佛毁釋)’ 정책과 운동으로 상징되듯이, 전근대로부터 ‘신’을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p. 246]라고 했듯이 일본에는 유럽 문명의 기독교처럼 국가체제의 기초로서 역할을 하는 종교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메이지 정부를 탄생시킨 정치지도자들은 그 역할을 기독교의 기능주의적 등가물로 판단된 천황제에 맡기게 되어 정교(政敎)가 결합한 근대 천황제가 성립되었다. 즉, 교육칙어를 통해 천황이 신격화되었고, 동시에 천황은 일반 국민의 공공적 가치체계를 표현하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의 원천이 된 셈이다.

 

이처럼 일본의 근대는 서양의 근대를 내용적 측면이 아니라 형식적 측면에서 수용, 변형했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중국의 중체서용(中體西用)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일본 근대에 대해 파악하려면, 월터 바지호트의 ‘근대’에 대한 기준을 적용하는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좀더 다양하고 명확한 ‘근대’에 대한 기준에 대한 갈증이 차오른다.

 

 

* 이 리뷰는 도서출판 평사리로부터 받은 책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w******f 2021.03.03. 신고 공감 20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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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미타니 타이치로 著, 책사리)
"[Review]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미타니 타이치로 著, 책사리)" 내용보기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미타니 타이치로 著, 송병권, 오미정 共譯, 책사리, 원제 : 日本の近代とは何であったか-問題史的考察)”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사를 유럽과 비교하여 정당정치, 자본주의, 제국주의 및 천황제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 책입니다.    일본의 근대는 이와쿠라 사절단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구미를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저자 역시 일본의 근
"[Review]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미타니 타이치로 著, 책사리)" 내용보기

“일본 근대는 무엇인가 (미타니 타이치로 著, 송병권, 오미정 共譯, 책사리, 원제 : 日本の近代とは何であったか-問題史的考察)”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근대사를 유럽과 비교하여 정당정치, 자본주의, 제국주의 및 천황제에 대한 고찰을 시도하는 책입니다. 


 

일본의 근대는 이와쿠라 사절단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하게 구미를 모델로 만들어졌습니다. 저자 역시 일본의 근대는 유럽 열강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은 특별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와는 구별되는 나라이며 당시에는 후진국에 가까워 일본이 생각하는 비유럽 국가의 유럽적 근대화의 성공적 사례로 인식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의 영향은 매우 클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근대는 현대의 정치 체제나 사상이 시작한 시기일 뿐만 아니라 현대를 이루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형성된 시기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많은 국가들의 근대사는 말 그대로 현대의 자양분이 되어 영향을 끼쳤을 망정 실질적으로 현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은 일본 근대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중 하나인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현대 일본 ‘뿌리’이자 ‘출발’로 여기고 있으며 여전히 긍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떠오른 국가와 버려진 국민, 강상중 著, 노수경 譯, 사계절) 또한 현대의 일본 정치의 많은 부분들이 메이지 유신 체제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많은 학자들이 일본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메이지 유신을 비롯한 일본 근대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대중 서적이라기 보다는 학술서에 가까워 읽어나가는 데 마냥 쉬운 책은 아닙니다만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일본의 근대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인사이트를 이 책이 제공해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근대는무엇인가, #미타니타이치로, #송병권, #오미정, #평사리,  
 
 

m******6 2021.01.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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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키워드로 분석해 본 근대 일본의 특징
"네 가지 키워드로 분석해 본 근대 일본의 특징" 내용보기
동아시아의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는, 특히 그 중에서도 근대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주로 제국주의적 침략자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을 뿐, 왜 일본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의 근대역사를 (복수)정당제, 자본주의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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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의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는특히 그 중에서도 근대 역사는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사실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주로 제국주의적 침략자의 이미지로만 알려져 있을 뿐왜 일본이 그런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둬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일본의 근대역사를 (복수)정당제자본주의로의 전환식민지주의천황제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분석해 낸다. ‘대중역사서라는 출판사의 소개와는 달리다분히 학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책이라언급되는 정보의 양과 폭이 꽤 넓고 깊다간단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하면 고전하기 쉬울 듯하다.

 

 

     일본의 탈아시아사상은 잘 알려져 있다동아시아의 귀퉁이에 위치한 섬나라임에도(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자신들이 아시아의 제 국가들과는 차별되는 존재라는 것이다이 책의 저자는 막부 시대 말기 일본의 지식인들이 미국을 어떻게 자신들의 모범으로 삼았는지를 언급한다.

 

그렇지만 당시 일본의 입장에서 봐도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와 동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구별되는 후진국에 속했고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과 동등한 위치였습니다그러나 미국은 일본보다 먼저 유럽 모국인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유럽 여러 나라와 대등하게 일본에 대해 불평등조약이 초래한 권익을 향유했습니다당시 막부 말기 세계 정세에 정통했던 일부 일본 지식인에게 미국은 양이의 성공적 사례로까지 인식되었고비유럽국가로서 유럽적 근대화를 이룬 선구적 사례를 제공했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처음부터 이렇게 서양의 그것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책에서 제안되고 있는 세 가지 요소(정당정치자본주의식민지주의)는 서양의 제국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 구체적인 적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일본적인 현실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예컨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는 유럽의 사례에서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방식으로 도입된 것에 반해일본에서는 오히려 특정한 세력이 지나치게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상호견제 시스템으로 도입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이는 막스 베버가 말한전문가들의 경쟁을 통해 지배자의 통제를 강화하는 경우와도 비슷하다(51). 이런 차원에서 저자는 권력분립제가 오히려 왕정복고 이념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도입되었다고도 말한다.

 

즉 메이지 헌법이 상정한 권력 분립제는 막부적 존재의 출현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든 제도적 장치로왕정복고 이념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권력 분립제 하에서는 어떠한 국가기관도 단독으로는 천황을 대행할 수 없습니다.

 

     외세에 의한 강제적 개항과 그들에게 다양한 특례를 보장해 주어야 했던 일본은초기에는 외국 자본을 들여와 경제를 발전시키는 계획을 완강히 거부했다책에는 여기에 남북전쟁 당시 북군 사령관이자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었던 그랜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했던 조언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일종의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발전을 꾀했던 것인데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실천했음에도 불구하고결국에는 대만과 한반도 등지를 식민지로 만들어 수직적 국제분업’ 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이른다식민지를 자원창고이자 상품판매지로 삼는 행태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일본의 그것은 조금 다른 면이 있었는데유럽 제국의 식민지가 직접 영토를 맞대고 있지 않은 곳이었다면일본은 바로 인접한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174). 그 결과 이는 단순한 경제적 식민지를 넘어 안보선적 성격을 띠게 된다.

 

     일제의 우리나라 식민지배에 관해서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조선 총독 자리를 두고 문관을 임명하려는 중추원과 무관을 임명하려는 군부 사이에 제법 오랫동안 대립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를 멋대로 쳐들어와 식민지로 만들어버린 죄가는 사라지지 않겠지만처음에도 이야기 했던서로 간의 견제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서 좀처럼 협업이나 정보의 원활한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처럼 느껴졌다.

 

 

     천황제에 관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는 조금 독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요새 젊은이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정권을 틀어잡고 있는 세력이나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의 발언을 보면그들에게 천황은 단지 입헌군주국의 상징적 존재를 넘어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저자에 따르면 애초부터 이런 미묘한 문제가 있었다서양의 근대로의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애썼던 일본은서양에는 있고 자신들에게는 없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바로 기독교였다기독교는 오랫동안 유럽의 정신적 통합을 이루는 핵심이었지만일본의 은 단지 소원을 들어주는 문화적 기념물 수준이었다이에 기독교와 같은 기능을 하는 존재를 만들고자 했고그것이 천황에 대한 신격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도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타의에 의해 정리된 측면이 있다. ‘천황은 더 이상 도덕적 중심으로서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지 못하다물론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어떤 인사들은 이 부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그것이 애초에 도입될 당시부터 있었던 일종의 모순(‘천황과 헌법 사이의 관계)을 해결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아 보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본도 한국도각각의 근대사를 일국사로서 쓸 수는 없(231)”두 나라그리고 중국까지 포함한 세 나라의 역사가 밀접하게 엮여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는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특히 근대사에 관해서 제대로 된 지식이나 공부가 없었다는 걸 느끼는 독서 시간이었다식민지배 시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감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한일 삼국이 대등한 행위자로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에 바탕을 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전망하는데여기에 이 삼국의 젊은이들 사이의 공통되는 몇 곡의 노래가 생기는 것(아마도 K팝을 말하는 듯)을 꼽는다언제까지 서로를 적대하고 공격하기만 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테니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가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북한의 김정은이 할아버지가 일으킨 전쟁에 대해 사과하지 않더라도 관계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처럼일본의 집권 세력이 과거 그들의 조상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인정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관계를 탐색해 나갈 수 있을까어려운 문제다.

 

 

p*********n 2021.01.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