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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O. 허시먼 - 세속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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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갑자기 누가 대뜸 ‘지금 생각나는 사회과학자 있어? 있다면 누구야?’라고 물어본다면, 카를 마르크스, 칼 폴라니 정도가 아닐까, 하긴 평전을 즐겨 읽지 않더라도, 이들의 사상에 관심이 있고, 매력적인 전기를 읽어본 적 있으니 생각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겠다. 앨버트 O. 허시먼(이하 허시먼)은 마르크스나 폴라니만큼 잘 알려진 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주저 세 권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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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자기 누가 대뜸 지금 생각나는 사회과학자 있어? 있다면 누구야?’라고 물어본다면, 카를 마르크스, 칼 폴라니 정도가 아닐까, 하긴 평전을 즐겨 읽지 않더라도, 이들의 사상에 관심이 있고, 매력적인 전기를 읽어본 적 있으니 생각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겠다. 앨버트 O. 허시먼(이하 허시먼)은 마르크스나 폴라니만큼 잘 알려진 학자는 아니지만, 그의 주저 세 권은 이미 국내에 출간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아예 생소한 인물은 아니다.

 

‘World philosopher(세속의 철학자)’란 근사한 제목의 이 책(허시먼 평전)을 처음 접하고 기억 저 너머에 있던 그와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허시먼이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금은 절판된 <<열정과 이해관계>>(나남출판)를 통해서였다. 초기 자본주의 출현 당시 사상가들이 이해한 자본주의의 전망을 담은 꽤나 어려운 이 책을 꾸역꾸역 읽어나갔고, 그 후에 출간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는 내 소장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허시먼이 내 사유에 미친 영향은 일단 거기까지였다.

 

평소 두꺼운 책 읽기에 거부감이 없고(사실은 조금 즐기기도 하지만) 올해 읽은 책들 중 <<중국 군벌 전쟁>>과 더불어 가장 두꺼운 축에 속하는 무려 12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이상하리마치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아마 <<열정과 이해관계>> 이후로 허시먼이란 사람이 그냥 쉬 넘길 수 없는 학자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 듯하다(이 책을 다 읽은 후면 누구든 과연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자.

 

2.

허시먼은 교수이자 수많은 현장 연구 및 강연과 컨설팅을 행한 사람으로, 그의 활동 공간은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거의 전 대륙을 아우른다. 이 때문에 연대기 순으로 기술된 이 전기의 구성을 딱 잘라 구분하긴 어렵지만, 역사적 흐름, 주 활동 대륙을 고려하면, 20장의 구성을 크게 두 부분, 1~7(전반부) / 8~20(후반부)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독일 유대인 집안에서의 출생(1915)부터 미국에 정착하여 그가 참전한 2차 세계대전 종결(1945)까지의 약 30년에 해당하는 이 시기로, 이 시기는 허시먼의 사유와 학문적, 정치 경제적 태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하에서 성장한 허시먼의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이주의 이력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후반부는 이보다 더하다). 나치의 부상이라는 독일의 정치 상황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피해 혼자 프랑스로 이주하게 되며, 몇 년 후에는 런던정경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다. 수학 도중 에스파냐 내전에 공화국군으로 참전한 후 이탈리아에 머물게 되며, 유대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다시 파리로 이주한다. 1939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프랑스군에 복무하게 되고,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프랑스 남부에서 유대인의 유럽 탈출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1941년 본인도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고, 경제학 연구를 지속하던 중 미군으로 입대하여 1945년까지 북아프리카 및 이탈리아에서 통역병으로 근무하고, 종전 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이제 미국이라는 기회의 땅에 정착한 이후의 모습을 그린 후반부는 학자로서의 허시먼이 꽃을 피우는 모습이 부각된다. 마셜플랜의 입안자로 정부 부처에서 활동하기도 하며 대학에서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저술 활동을 하며 결국에는 하버드대 등의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게 된다. 그런데 허시먼은 주류 경제학이 아닌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소위 후진국들의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개발 경제학이란 신생 학문의 개척자가 되는데, 그는 책상에서 경제 발전을 연구하는 책상 물림이 절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등의 남미뿐만 아니라 수단, 우간다, 나이지리아 등의 아프리카, 인도 파키스탄,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을 종횡무진 누비며 현지의 전문가들 및 업무 담당자들을 만나고 현장을 돌아보며 개발 프로젝트를 관찰, 평가하는데, 이는 다시 허시먼 자신의 사유를 가다듬고 벼리는 데 있어 기초이자 원자료가 된다. 허시먼은 행동하는 사람이 그 행동 과정에서 배우게 되는 통찰(‘경험과 가까운 지식’)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사상가였다.

 

허시먼은 생전,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전문가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곤 했는데, 그것은 허시먼의 위와 같은 행동적 지식인의 면모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에 대한 생각과 사유의 독특함과 탁월함에 있다. 그는 평생 거대 계획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돌격대적 접근법에 저항하였다. 이는 유럽에서의 청년 시절 나치뿐만 아니라 공산당(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으로(그는 한 번도 혁명에 찬성한 적이 없다), 남미 개발에 미국의 개입이 한창 일 때의 접근방식 즉 지식인(경제학자)이 개입하여 주류 경제학, 예컨대 통화주의 등에 기초한 일련의 거대한 계획을 도입하면 개발의 장애가 일거에 제거되고 발전의 과정이 부드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인식은 해당 지역의 문제들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는 회의주의에 기반한,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 변화를 강제하고 추동해낼 수 있는 긴장을 창출하는 동력으로서의 개혁을 중요하게 여겼다.

 

3.

책 전반부의 즐거움이 허시먼의 행적을 통해 보는 1930~40년대 유럽의 정치 지형도와 변화에 있다면, 책 후반부의 즐거움은 허시먼이 경제학자로서 인정받는 과정(그는 미국에서 정식 박사 과정을 밟지 않았다)과 경제학자 아마티야 센, 사상사가 퀜틴 스키너,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 등 유명 학자들과의 개인적 친분과 사상적 교류 과정에 더해, 가장 유용하고 의미있기로는 그의 주저들(국내에 출간된 세 권의 주저 <<정념과 이해관계>>(후마니타스에서 재출간, 책 제목이 살짝 바뀌었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이 출간된 과정과 학계의 반응이었다(허시먼은 학계의 반응과 서평에 꽤나 민감했다). 그의 유명한 책들이 저술되기 시작한 사회적 배경과 개인적 사유에 대한 면밀한 탐구는 허시먼 독해에 매우 유용하며, 그의 저술 읽기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두께가 워낙 있어, 읽기에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서술과 묘사가 구체적이고 유려할 뿐만 아니라 시대와 사상의 배경을 폭넓고도 깊게 파악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의 깊이에 집중과 몰입이 한층 배가되었다. 허시먼이 중요하게 생각한 사회 변화에 있어서의 개혁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며, 자본주의 탄생기에 대한 그의 사상사적 탐구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허시먼을을 직접 읽을 때다. 이 책은 앞으로 나의 허시먼 읽기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는 건강이 많이 쇠약해진 허시먼 말년에 그와 교유하며 이 전기를 써나갔다. 그리고 그의 사후 1년 뒤인 2013년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생애를 이토록 넓고도 깊게 다루는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는 얼마나 행운인가! 아니, 오히려 10년 동안 연구할 만큼의매력적이고 깊이 있는 학자가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더 큰 행운은 아닐까.

 

* 상당한 품이 들어갔을 번역을 훌륭히 해준 번역자, 많이 팔리지 않을 책을 훌륭한 만듦새로 펴낸 출판사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YES마니아 : 로얄 g******g 2020.12.21.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너무 아름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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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책 모두가 너무 아름다웠다.이건 작가도 인정을 좀 받아야할 듯.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상도 놓지 않은 낭만적이면서 진실된 경제학자로 기억될 듯. 그런데 그의 끊임없는 학문에 대한 사랑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그대로 책으로 옮겨온 것 같다. 그에 대한 서술이 그와 닮아 있어서 정말 감탄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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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책 모두가 너무 아름다웠다.
이건 작가도 인정을 좀 받아야할 듯.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서 동시에 이상도 놓지 않은 낭만적이면서 진실된 경제학자로 기억될 듯. 그런데 그의 끊임없는 학문에 대한 사랑과 현실에 대한 관심이 그대로 책으로 옮겨온 것 같다. 그에 대한 서술이 그와 닮아 있어서 정말 감탄하며 읽었다.
e****8 2024.12.1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앨버트 허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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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허시먼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이자 20세기 가장 비범하고 독창적인 지식인, 가장 생산적인 지성으로 평가받는 경제사상가 앨버트 허시먼에 대한 책이다. 수많은 경제학계, 경영업계와 출판업계의 의 추천과 찬사는 생략한다. 주석까지 포함해서 12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 온전하게 앨버트 허시먼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그만큼 우리가 배우고 기록해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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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버트 허시먼 


반동에 저항하되 혁명을 의심한 경제사상가이자 20세기 가장 비범하고 독창적인 지식인, 가장 생산적인 지성으로 평가받는 경제사상가 앨버트 허시먼에 대한 책이다. 수많은 경제학계, 경영업계와 출판업계의 의 추천과 찬사는 생략한다. 


주석까지 포함해서 12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 온전하게 앨버트 허시먼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다. 그만큼 우리가 배우고 기록해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사상가였다. 부끄럽게도 경제학 전공자이지만 앨버트 허시먼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그의 사상적 뿌리가 마르크스주의였다보니 국내 학계에서 자주 다루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허시먼에 대한 설명중에 가장 명쾌하게 설명한 대목을 인용하자면 공산주의적 유토피아에 동조하지 않았고, 제3세계에 파견된 외국인 전문가였지만 외국인 전문가의 과도한 역할을 비판했으며, 시장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음에도 시장만능주의에 휩쓸리지 않았고, 경제학자이면서도 그 경계 안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명문 대학의 교수를 지내면서도 권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활동가이자 지식인이었다. 


책의 구성은 1915년 앨버트 허시먼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2012년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시간 순서로 서술하고 인간 앨버트 허시먼 뿐만 아니라 경제 사상가 앨버트 허시먼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그의 사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해설되어 있다. 또한 그가 살았던 당시 세계 정세에 대한 허시먼 주변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는 점이 책의 매력이다.  


첫장은 교양 있고 낙천적인 유대인 소년 ‘오토 알베르트’를 그려낸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1914년 8월, 독일 수도 베를린은 축제분위기였다. 영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다! 열띤 연설과 징집을 독려하는 퍼레이드, 신속한 승리를 기원하는 포스터와 배너 모두가 6주 안에 전쟁이 끝나리라 예상하면서 전쟁 발발을 축하하고 있었다. 


이후로 나치 집권을 막으려 분투한 청년 사회주의자, 유럽의 국경을 넘나든 지적, 실천적 여정, 유대인 구출 활동의 수완꾼 ‘비미시’, 유럽부흥계획의 막후에서, 매카시즘의 그늘 등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좌파 연대의 필요성을 여전히 믿고 있었지만 공산주의자들의 권위에 항복하면서 자율성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후반부에서는 그의 주류에 도전한 독창적 개발 이론들과 라틴아메리카의 개혁가들과 더불어 연구했던 이론, 세계의 개발 프로젝트 현장을 누비며 이룬 성과들이 서술되고 고전 경제사상의 재해석과 정치와 경제를 관통하는 집합행동 이론들과 그의 좌우 극단주의에 맞선 마지막 외침들을 다룬다. 


그는 세계은행이 자금을 지원해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나라들이 빈곤과 후진성에서 탈피하는 것을 도왔는데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해 제3세계 국가들이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지킬 수 있게 도움으로써 공산화를 막는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가 보기에, 저개발사회에서 희소한 것은 자본도, 중산층도, ‘기업가 정신’도, 개인주의적 근대성의 토대를 닦을 올바른 문화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의지와 기량, 즉 ‘개발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했다. 


허시먼은 사람들이 기회를 ‘인식’하지 못한 나머지, 있는 자본도 저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희소한 것은 자본이 아니라 “개발을 위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협업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학생들은 인간 본성을 “경제학자들이 좋아하는 합리적 행위자”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에 더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허시먼이 인간을 “실수하는 이상주의자, 이해관계와 정념 둘 다를 가진 자”로 묘사하자 이것을 도덕적인 주장으로 여겼다. 양자택일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허시먼의 이야기는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으로 보였다. 하지만 허시먼이 원한 것은 인간 행위자를 “더 사랑스러운 인물로, 어느 정도 안쓰러운 인물로, 그러면서도 약간 무서운 인물로, 따라서 비극적인 인물로” 그리는 것이었다. 이 인물은 때로 도움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지식인이다.



g****y 2020.12.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