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예수 3 새로운 약속 윤석철 지음, 나남출판사, 2020, 12, 05. 446쪽 올해 4월 1,2 권 출간에 이어 이번에 3,4 권이 나왔다. 작가는 이 책이 생애 첫 소설이다. 무명작가가 일년에 4권의 소설책을 썼다는 것이 놀랍다. 글 저장고에 가득 채워 두었던 글들이 창고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나온 모양이다. 리뷰는 문자 그대로 "리뷰", 책 내용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려고 한다. 옮기고싶은 구절들이 많음이다. 따라서 책의 문장 인용이 많아지고, 일종의 <리더스 다이제스트 Reader's digest> 형식이 될 것이다. 책 내용에는 카인과 아벨, 성전 정화, 희년, 요셉, 주인에게 달란트를 위임받은 종들, 광야 이야기가 들어있다. 니산월 10일 아침 예수와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성전 뜰에 모였다. 예수를 성전과 로마군의 압제에서 구해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움막마을 사람들과 예루살렘 아랫구역 사람들이다. 하얀리본 결사대는 성전을 더럽힌 대제사장과 지도부를 처단하려고 거사 계획을 세우고, 예수는 제지들에게조차 계획을 말하지 않고 성전에 들어선다. 도성 예루살렘 이곳저곳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 현재 누리고 사는 것을 지키겠다는 사람, 자기가 가진 것을 몇 배로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다음 아침 끼니거리 때문에 어린 자식의 머리통을 끌어안고 누워 한숨쉬는 사람도 있다. 60쪽 무리들과 길을 가던 예수는 무화과 나무를 들여다본다. 그리곤 무화과 나무가 성전과 같다고 말한다. “열매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배고픈 사람은 한시도 더 기다릴 수 없는데...” 87쪽 성전이야말로 배고픈 사람 사정 모르고 덜 익은 채 매달린 무화과 열매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135쪽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설명은 항상 지금 여기 우리들 안에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과 하느님 말씀은 따로따로 떨어진 일이 아닙니다. ~ 하느님은 따로 어디 멀리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92쪽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던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나? 소설은 예수의 입을 통해 하느님은 이런 분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사람 사는 일이란 한가운데에 커다란 선을 하나 죽 그어놓고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쫙 갈라 나눌 수는 없습니다. ~~~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강제하면 그건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 행하는 억압이라는 말입니다. ~~~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골고루 빛을 비춰주시는 하늘 아버지, " 139쪽 하느님이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모두 햇빛도 비도 똑같이 내려준다면,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하느님이 내린 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달았다. 140쪽 "무서운 심판자, 벌을 주고 호령하고 꾸짖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 여러분이 집 앞에 이르기도 전에 내다보고 또 내다보다가 맨발로 쫓아 나오시는 분입니다." 150쪽 "서로 사랑하고 한 가족이 되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이고, 여러분이 즐기며 누리고 살아야 할 세상이 이뤄진다는 말입니다." 151쪽. "하느님의 형상은 생김새가 아니고 하느님의 본성, 사랑입니다. ~~ 하느님의 본성을 따라 지음받았으니 여러분이나 나나 바로 우리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153쪽 한 사건에 대하여 여럿이 듣고 보고 겪은 사람이 있는 내용은 쉽게 파악할 수 있으나, 왜 그랬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예수는 "왜 그랬냐" 이유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왜 그런가를 묻는 것은 근원을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러는지 궁금하면 성전에도 묻고, 제사장에게도 묻고, 로마군에게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왜 그런지 질문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이 억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묻지도 말고, 의심도 하지 말고 오직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 억압자입니다." 158쪽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었다. 자신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줄 메시아가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마침내 그 메시아로 예수가 온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가 누구든지 우리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좀 어루만져주고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맨날 우리더러 뭐 잘못했다, 뭐 고쳐라, 무슨 죄를 지었으니 회개하라,,,, 그런 말은 좀 그만 하고, 좋은 세상 온다고 희망을 주었으면...” 269쪽 시대를 보면 예언으로 전해져 내려온 종말의 날에 가깝고, 예수는 예언을 실현하는 사람 바로 메시아로 보인다. 아무리 여러번 메시아가 아니라고 예수 스스로 거듭거듭 부인했지만 제자들은 그에게서 예언된 메시아의 징표만 보았다. ~~ 메시아를 요구하는 시대에 예수가 서있기 때문이다. 353쪽 나는 여러분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들으십시오! 하느님은 메시아 한 사람을 내세워 세상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두 함께 손잡고 아뤄야하는 나라가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160쪽 유월절 명절에 성전에서는 빵을 나눠주면서 아랫구역 사람들은 성전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를 따라 성전에 따라 들어갔고, 빵을 주는 성전과 말씀을 주는 예수 사이에서 그들은 갈등한다. 예수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끌어안으려던 사람들, 움막마을 사람들이 제일 먼저 등을 돌렸다. 새 세상이 오기를 가장 절실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당장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하고, 졸리면 드러누워 눈 붙이고 잠을 자야 한다. 207쪽 유대인들은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 분 야훼 하느님을 섬긴다. 둘째, 그 하느님이 내려준 토라를 지킨다. 셋째, 하느님을 섬기되 오로지 예루살렘 성전에 나와서 제사드리며 섬긴다.~~ ~~ 그런데 사실상 황제 폐하를 섬기고, 로마의 법을 따르고... 225쪽 성전은 그냥 제사만 드리는 신전이 아니고 로마가 유대를 통치하는 공식 기구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종교가 하나로 통합된 기구였다. 241쪽 백성을 따라 이동하던 장막의 하느님이 땅 위에 고정 거처를 정한 곳이다. 사람들은 유대 땅 예루살렘 성전산 위에 세워진 성전은 움직일 수 없는 성소로 섬겼다. 무너지고 불타고 다시 세우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심장이 됐다. 하느님과 세상이 연결된 배꼽으로 믿었다. 249쪽 <희년>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의 가장 큰 부분이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이방인 뜰의 하늘과 이스라엘 뜰의 하늘을 나누는 구획도 없고, 높은 곳 낮은 곳도 없고,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290쪽 "희년은 사람이 넘어졌을 때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주는 일입니다. 희년은 굴러 떨어진 바위에 깔려 숨이 넘어가게 생겼을 때 바위를 밀어 치워주는 일입니다. 희년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밧줄을 던져주는 일입니다. 그것이 희년을 시행하는 일입니다. 밧줄을 든 사람이 그걸 던지지 않으니 '내가 던지마!' 하느님이 나서신 겁니다. 바위에 깔린 사람에게 '언제부터 깔렸냐, 무슨 짓 하다가 깔렸나, 바위를 치워줄테니 앞으로 어찌어찌 살아라' 묻고 다짐받는 것보다, 우선 바위 아래 깔린 사람을 구해내는 일입니다. 결국, 세상에 세워진 어떤 가치나 제도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선언입니다." 293쪽 예수의 가르침 중에 거듭거듭 강조하는 부분은 하느님은 모두의 하느님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예지몽을 꾼 요셉의 예를 들면서 모두의 하느님임을 이야기한다. ~~ 하느님은 모든 생명의 하느님이다.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이스라엘 민족 안에 가둘 수 없는 하느님이다. ~~ 하느님을 내 하느님, 우리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고 편협하게 섬기는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316-317쪽 왕이 꾼 꿈을 해석하여 하느님이 계시한 풍년과 흉년을 미리 알게된 요셉이 결국 이집트 백성을 모두 왕의 노예로 삼아서 왕은 아주 부유해졌고, 왕의 사랑을 받아 요셉은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 흉년에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기회를 틈타 백성을 모두 왕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섬긴 하느님은, 히브리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경전을 떠나, 토라를 떠나, 성전을 떠나 이제부터 그는 오로지 하느님을 향해 걸어간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 어떤 생명이든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하느님께 대적하는 일입니다. ~~ 하느님이 허락한 지혜를 이용해서 백성을 노예 삼는다면 그건 하느님의 뜻을 이용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종으로 삼는 일에 하느님은 언제나 반대하십니다. 321-325쪽 포도원 주인이 종에게 돈을 맡기고 멀리 출타하였다가 돌아와서 그 돈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묻고 돈을 불리지 못한 종을 게으른 종이라고 꾸짖으며 내쫓는 이야기가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이 이야기를 예로들어 하느님의 뜻을 설파한다. 첫번째 종은 추수 때 그 돈으로 밀을 사두었다가 식량이 떨어질 때쯤 곱절의 값으로 팔아서 원금이 2배가 되었다. 두번째 종은 빚놀이로 역시 원금의 2배를 만들었다. 그러나 세번째 종은 돈을 땅에 파묻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가져왔다. "저는 그 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걸 해보려면 저게 걸리고, 저걸 해보려면 차마 못하겠고... " ~~만약 자기가 그런 경우라면 어찌할 것인가? 첫번째, 두번째 종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늘려 주인에게 칭찬받을 것인가? ~~ 세번째 종처럼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못해서, 배고픈 사람 차마 등쳐 먹지 못해서 받은 돈 그대로 돌려주고 쫒겨날 것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세 번째 종이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종의 마음으로 새 세상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을 변화시켜 가난한 사람에게 채워 주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입니다. 332 - 336쪽 우월절 명절에 성전으로 몰려드는 인파, 그들은 왜 성전에 나왔나? 그들이 믿고 섬기는 하느님은 축복도 내리지만 저주도 내리고 벌도 내리는 하느님이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면 농사도 잘되고, 양도 건강하게 새끼를 잘 낳아서 금방 숫자가 불어나고, ~~ 이번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 제사드리지 않으면 당장 닥칠 저주의 벌이 무서워 나왔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생활형편이 나아지기를 기원하기 위해 나왔다. 341 - 342쪽 하느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떻게 섬겨야 하나? "하느님을 섬긴다는 말은 나 한 사람, 개인이 하느님과 맺는 관계가 아닙니다. 나와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겁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일은 세상 모두에게, 모든 생명에게 좋은 일이어야 합니다. 나 혼자 생명을 누리는 것이 아니고, 세상 모든 생명이 각 생명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누리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375쪽 예수는 성전의 무너짐을 예언한다. "내가 얘기합니다. 여러분이 감탄하는 저 성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무너지는 날이 올 것입니다." 383쪽 "~~성문은 구분과 차별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끝나는 지점이 됩니다." "그런데요, 선생님! 어제까지는 성전이 경비대가 그 성문을 지켰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 로마군으로 바뀌었습니다." "맞아요! 사람들 살아가는 일을 통제하는 권력이 성문을 지킵니다. 거룩과 권력이 한 몸이 된 셈입니다. 386쪽 광야는 어디인가? 광야란 무엇인가? 작가는 예수의 광야 시험에 대하여 '수련'과 '수행'을 구분한다. 시험자들은 수련이라 말하고 예수는 수행이라 말한다. 수련은 한시적으로 단련하는 것이고, 수행은 일생을 통하여 삶으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광야는 스스로 찾아 들어가야 할 장소다. 광야는 눈을 뜨는 자리다. 자기를 보는 자리다. ~~ "사람이 어찌 한 번 고통을 겪었다고 세상 모든 고통을 다 겪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광야는 매일 들어가고 매일 머물고 매일 다시 걸어 나오는 곳입니다." 410쪽 광야는 오로지 혼자서 하늘과 땅과 바람 속에서,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에서 자기를 찾는 곳이요. ~~ 시험이 있고, 시험자가 있고, 겪어야 할 당혹이 있고, 하늘로 불어 올라가는 바람이 있고, 결국 지나야 할 '때'가 있는 광야,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되지요. 445쪽 예수는 시험을 다 이겼다. 시험을 이기고 통과했다기 보다는 스스로 시험에 대하여 깨달았다. 하느님의 참뜻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으로 광야에서 사람들 속으로 걸어들어왔다. 태초부터 있었던 하느님을 광야에서 만나려고 굶주리며 찾았다. 예수가 태어날 때부터 말 걸고 지켜보던 그 분, 새삼 그 말씀을 듣겠다고 쉰 날이 넘고 예순 날이 넘도록 광야에서 기다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하느님은 사람이 먹어야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 하느님을 섬기고 따른다고 먹지 않고도 배부르지는 않다. 그런데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지 않는가? 말씀으로 먹여주신다는 얘기지. 무언가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빵 대신 말씀만 내세워 어디로 끌고 가시는 하느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땅은 기적 대신 땅으로 먹을 것을 내는 품이었다. ~~씨앗과 사람의 땀, 땅과 물과 햇빛, 슬쩍 흔들고 지나가는 살랑 바람과, 기다리는 시간과, 싹트고 자라는 신비, 바로 하느님이 개입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한 사람이 모두 먹어치우면 하느님도 배고프시다. ~~하느님은 세상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엎을 만한 큰 일에만 관계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분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처음부터 함께 계셨던 분이었다. 432 - 437쪽 메시아든 왕이든 그건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하느님은 제일 힘센 사람을 뽑아 씨름판에 내세우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자 나서서 세상을 구하고, 혼자 나서서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해방하고, 혼자 나서서 세상을 바꾸는 일은 하느님의 방식이 아니다. 439쪽 책의 내용중에 발췌해서 알려주고 싶은 구절이 아주 많다. 그 욕심대로 리뷰를 쓰자면 책을 거의 반쯤은 옮길 지경이다. 주마간산격으로 인용문을 나열했다. 앞으로 예수는 어떤 길로 발걸음을 내디딜까? 작가는 예수의 입을 통하여 무슨 이야기를 이어갈 것인가? 자못 다음 호가 기다려진다. 다행히 다음호 4권도 동시 출간되었으니 나의 다음 북리뷰는 <소설 예수> 4권이 될 것이다. 읽다가 멈춰서 긴 시간동안 나 자신을 성찰한 부분이 있다. 내 삶 속에 기둥으로 삼아도 좋을만한 구절이다. 이투레아 산 속에서 히스기야에게 준 현인의 가르침이다. "창끝에 저항하면 그곳에 단단함이 생기고, 결국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나, 한없는 부드러움이라면, 마치 창끝으로 물을 찌르듯 허공을 찌르듯, 작은 자국 하나도 생기지 않는다." 162쪽. 내 가슴엔 얼마나 굳은 살이 많이 박혀있는가, 수 십년 전에 찔린 굳은 살이 아직도 무르지 않고 단단히 박혀있다. 이제 그 굳은 살을 녹여햐할텐데... |